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922
3부 040화
“저 영광스러운 도시는 본래 우리 연방의 소유였습니다! 1404년에 비타우타스 대공께서 스몰렌스크 공국을 멸망시키고 획득하신 이래, 계속 우리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카자크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빈틈을 노리고 쳐들어온 러시아놈들이 훔쳐 가 버렸습니다.”
즈비슈코는 하루 뒤에 도착할 도시에 관해 설명하면서 한참 이를 갈았다. 그에 따르자면 스몰렌스크는 폴란드가 회복해야만 하는 고토(古土)였다.
“얀 2세께서는 반란을 일으킨 카자크들과 그놈들을 후원하는 러시아 놈들을 거의 쳐부숴 굴복시키셨습니다. 하지만 그만 국내에서 반란이 일어나는 바람에 안드루소보 조약을 맺고 1667년에 저 도시를 러시아에 넘기실 수밖에 없었지요.”
자기가 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어린아이 시절에 있었던 사건이건만, 즈비슈코는 마치 어제 있었던 일처럼 분개했다. 흥분한 사람 건드릴 이유도 없어서 실컷 말하게 내버려 두었다.
“지금은 튀르크인들 때문에 놓아둘 수밖에 없습니다만, 놈들을 몰아내고 나면 탈환하고야 말 겁니다. 20년 기한으로 빌려준 우크라이나도 3년 뒤에는 우리 손에 돌아올 테니, 그때는 스몰렌스크 탈환을 시작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대들은 지금 러시아와 동맹을 맺고 오스만을 공격하려고 교섭하는 중 아닌가? 그런데 벌써 러시아를 쳐서 땅을 되찾을 생각부터 하는가?”
“동맹을 맺고 있는 동안에는 함께 싸우겠지만, 튀르크를 물리치고 나면 곧바로 저놈들을 쳐서 영토를 탈환해야 합니다. 저 야만적인 놈들도 어차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터, 먼저 공격해야 우리 목적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즈비슈코는 한참 동안 러시아가 얼마나 후진적이고 야만적인 나라인지 열변을 토하다가 돌아갔다. 우리는 쓴웃음을 짓고 표트르를 우리 편으로 만들기 위한 계획 수립을 계속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사절단을 구성하는 주요 인사들은 즈비슈코처럼 혈기가 치솟아 러시아를 적대하지는 않았다. 스몰렌스크를 러시아에 양도한 바로 그 세대일 사람들이 전혀 분노를 드러내지 않고 외교에만 종사하는 모습은 충분히 감탄할 만했다.
“끓는 피만 가지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건만.”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지금은 스몰렌스크를 되찾겠다고 몇몇이 불타오르기라도 하지만…백 년 뒤의 폴란드는 옛 영토를 탈환하기는커녕 가지고 있던 땅도 조각나서 주변에 빼앗기는 신세가 되지.
얀 소비에스키는 러시아가 스웨덴을 노릴 거라는 내 이야기에 안심했지만, 그보다 80년 뒤에 폴란드에 닥칠 운명에 대해서는 상상도 못 하고 있을 거다. 미리 말해줄 수도 없고, 말해준다고 해도 폴란드 귀족들의 그 지독한 이기심을 생각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겠지.
– 4 –
러시아 행정관들은 우리 일행에게도 괜찮은 대접을 했다. 500명이나 몰려온 폴란드보다 좀 떨어지는 대접을 받을 건 각오했는데 상당히 정중한 취급이었다. 우리 중 러시아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은 없지만, 러시아 관리 쪽에 독일인이 있어서 이홍석이 나서면 충분했다.
“조선에서 손님이 찾아오신 건 알렉세이 1세 폐하 시절 이후 처음입니다. 다시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환영합니다.”
“배려에 감사드리오.”
1658년에 변계조약을 맺으러 러시아에 온 7차 견서사는 스몰렌스크까지 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여기 있는 고위 행정관 일부는 그때 모스크바를 방문했던 조선인 사절단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를 융숭하게 대접했다.
“모스크바를 방문하실 예정이시라면 저희가 먼저 연락을 넣어두겠습니다. 반가운 손님이 오셨으니, 두 분 차르께서 기꺼이 맞이하실 겁니다.”
“배려 고맙소. 하지만 우리는 폴란드 측 사절단과 달리, 공식적인 국사가 아니오. 본왕이 유럽을 방문하는 도중에 인접국인 러시아를 한번 찾아보고 싶어 임의로 온 거요. 유럽 국가 중에서 유일하게 우리와 국경을 맞댄 상대가 러시아잖소?”
우리는 태황의 친서를 가져온 것도 아니고 내가 개인적으로 찾아왔을 뿐이다. 이런 입국 경위를 처음부터 정확하게 밝혀두지 않았다가는 혹시 나중에 곤란해질지도 모른다. 자기들 멋대로 내가 ‘차르에게 조공을 바치러’ 왔다고 생각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러시아도 은근히 동양적인 동네. 이형준이 ‘피부 하얀 야인’이라고 부를 정도인 동네다. 혹시 저놈들이 자기들 멋대로 우리가 조공사절이라도 되는 것처럼 생각하면 나중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본국에 서한을 보내 엉뚱한 소리를 할지도 모른다.
‘그런 일이 생기면 형황이 내 목을 매달겠지….’
내가 이렇게 말하기는 했지만, 지금 조선에서 법으로 규정된 사형 방법은 독살형(사약), 참수형, 교살형 세 가지뿐이다. 그동안 몇 차례 수정된 형전에도 서양식 교수형이나 총살형 같은 처형법은 실려있지 않다. 이 문제를 질문했더니 이형준은 이렇게 답했다.
‘목을 졸라 죄인을 처형하려면 밧줄과 막대기 하나만 있으면 되는데 왜 그런 커다란 흉물 ? 교수대 ? 을 만들어야 합니까? 그리고 죄인 따위를 처형하는 데 왜 아까운 화약을 써야 하는지요?’
이 시대 사람들은 사형집행인이 직접 손에 피를 묻히는 데서 오는 PTSD 같은 데 아직 관심이 없는 모양이다. 몇 푼 들지도 않을 화약 값이 더 중요하다면 할 말 다 했지 뭐.
다만 수군에서는 비공식적으로 교수형을 한다. 을미동정 때 정발이 선례를 남긴 이후로, 바다에서 붙잡은 해적들을 활대에 매달아 교수형에 처하는 건 용인되고 있다. 바다 위에서 한 번에 많은 죄인을 쉽게 처형할 다른 방법이 딱히 없기 때문이다.
다른 처형법은 없다. 내가 옛날에 했던 능지형이나 책형 ? 사실상 아사형 ? 은 애초부터 법전에 실리지도 않은 처형법이었고, 당연히 나 이후로는 아무도 그런 방법을 써서 죄인을 처형하지 않았다.
그나마 합법적인 처형법이었던 거열형도 그동안 한 번도 시행되지 않았다고 했다. 거열을 당할 만한 큰 죄인이 거의 없었을뿐더러, 지나친 혹형은 효과도 없고 백성들에게 거부감만 불러일으킨다는 여론이 퍼진 결과라고 말이다.
“아…그러십니까? 그렇다고 하셔도 기왕 우리나라까지 오셨으니 차르를 한번 뵙고 가도록 하시지요.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우리 루스 차르국 공자가 조선을 찾아갔는데, 조선 국왕께 인사도 드리지 않고 멋대로 다니다 돌아간다면 귀국에서는 무례하다고 여기지 않겠습니까?”
“허허, 그렇기는 하지요. 그럼 기왕 온 길이니, 인사는 드리기로 하겠습니다.”
러시아 관리들은 어떻게든 내가 차르를 찾아가 인사를 올리게 하려고 애썼다. 물론 나도 처음 목표가 목표였으니만큼 못이기는 척 수락했다.
지금 러시아 차르는 2명이다. 올해 12세의 표트르, 그리고 그 이복형인 18세의 이반 5세 두 사람이 2년 전부터 공동으로 재위하고 있다. 허나 이들은 허수아비고 실권은 이반 5세의 동복 누나인 소피아에게 있다. 폴란드에 있는 동안 확인한 바에 따르면 소피아는 27세다.
러시아인 행정관은 차르가 맞이해줄 거라고 했지만, 실질적으로 지금 러시아를 다스리는 통치자는 섭정을 맡은 소피아다. 이반 5세는 신병(身病) 탓에 제대로 사람 구실을 못 하고, 표트르는 어린 데다 확실하게 권력에서 소외당하고 있으니까.
“12살이면 충분하지.”
정치적인 이야기를 나누려면 머리가 좀 더 굵어져야겠지만, 어린 것도 괜찮다. 어린애가 꼬드기기는 더 쉬울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물론 내 앞에 앉혀 놓고 내 얘기를 듣게 할 수 있을 때 이야기긴 하다만.
표트르와 지금 뭔가 정치적인 합의를 보는 건 포기했다. 애초에 실권이 없으니 구슬려서 뭔가 얻어내도 실행할 힘이 없다. 그러니 이번 러시아 방문은 표트르와 나 사이에 인간적인 유대감만 쌓고 가는 정도로 만족해야 할 듯하다.
“내가 그렇게 루스 수령과 친해지기만 해도, 훗날 루스가 우리 변경을 넘보기를 망설이게 만드는 데는 충분하지 않겠는가?”
“물론입니다, 전하.”
지금 내 유일한 정치 참모라고 할 수 있는 이형준도 장차 표트르가 러시아를 지배하리라 믿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공동 차르인 이반 5세는 폐인이나 마찬가지고, 섭정을 맡은 이복누이 소피아가 아무리 권세를 휘두른다고 해도 차르는 표트르지 소피아가 아니니 말이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하는 법이지요. 수령이 어려서 모후가 수렴청정하는 것도 아니고, 공주 따위가 감히 국권을 농단하니 이는 당나라 태평공주와 같은 일입니다. 필시 끝이 좋지 못할 것입니다.”
태평공주(太平公主)는 당나라를 말 그대로 지배했던 측천무후의 막내딸이다. 어머니처럼 황제 자리에 오르지는 못했으나, 정권을 잡고 휘두르다가 조카인 당 현종이 무력으로 들고 일어나자 도망가다가 칼에 맞아 죽었다. 소피아도 그 비슷한 최후를 맞았지 아마?
“맞소. 그러니 장래 확고한 군주가 될 꼬마 수령을 잘 구슬려 두어야지. 준비한 선물에는 이상이 없소?”
“예, 전하. 모든 상자에 봉인을 뜯거나 개봉한 흔적이 없음을 소관이 직접 확인했습니다.”
대단한 선물을 준비한 건 아니다. 어린아이 취향에 맞을 만한 이런저런 잡동사니들이다. 물론 준비한 물품들은 모두 고급품이긴 하다. 장차 러시아에서 대제로 불릴 사람에게 값싼 싸구려를 선물할 수는 없지 않은가. 물론 소피아를 위한 선물도 좀 준비하긴 했다.
“이제 내일이면 막수구파로 출발하지. 다들 푹 쉬어두게.”
스몰렌스크에서 모스크바까지는 열흘 정도 걸린다. 동행인 폴란드 사절단도 함께 출발해 모스크바로 갈 예정이지만, 섭정인 소피아를 알현하는 자리는 따로 가질 예정이다. 용건이 워낙 다르니 당연한 일이지만 말이다.
– 5 –
모스크바로 가는 길은 별 소동 없이 평화로웠다. 무법자인 카자크나 산적들이 습격하면 어떡하나 하고 사실 꽤 걱정했는데, 폴란드군 300기가 함께 움직이고 있는 덕인지 여행 중 강도 같은 건 단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얀 소비에스키에게 감사하기는 해야 할 것 같다.
만약 우리끼리 움직였다면, 진즉에 몽땅 털렸을지도 모르겠다. 5천 두카트 어치는 족히 될 막대한 선물도 말이다.
“총 21만 4528두카트입니다. 어떻게 처리하시겠습니까?”
폴란드를 떠나기 전, 2월 말에 마침내 얀 소비에스키로부터 빈 해방 때 노획했던 내 몫의 전리품을 정산한 금액이 왔다. 아니, 여기서 절반 이상은 솔직히 올렝카 몫의 지참금이라고 보는 게 맞겠지만 말이다.
본국에 선물로 보내거나 내가 기념으로 간직할 일부 귀중품은 따로 떼어놓았지만, 돈으로 바꾸기 쉬운 금은괴를 포함해서 대부분은 현금으로 바꿨다. 그게 처리하기 편했다. 물론 이 막대한 돈을 내가 직접 짊어지고 다닐 생각은 전혀 없다.
“당신네 은행에 내 계좌를 하나 만들어주시오. 당장 쓸 현금은 빼고, 20만 두카트는 거기 예치할 테니까.”
내 앞에 불려온 암스테르담 은행 관계자들은 기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당연한 일이다. 이런 막대한 금액을 예금하겠다는데 싫어할 은행원이 어디 있겠는가?
“다만 그중 5만 2천 두카트는 바로 베네치아 국립은행, 조선 정부 계좌로 송금해 주시오. 그리고 내가 프랑스에 배를 한 척 주문할 참인데, 조선소 측이 귀 은행으로 청구서를 보낼 거요. 그러면 그 대금 지급도 맡아 주시오.”
“알겠습니다. 그 외에도 대공 전하께서 서명하신 어음이 저희 은행으로 들어오면, 확인을 거쳐 바로 지급이 이루어지도록 하겠습니다.”
유럽 전역, 더 나가 전 세계에서 자유롭게 인출하고 사용하려면 지금 시대에는 네덜란드 은행이 제일이다. 유럽 안에서만 쓸 거라면 장조 때처럼 베네치아 은행을 이용해도 되지만, 이 큰돈을 유럽 체류 중에 홀랑 다 써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프랑스에 있을 때 투르빌 제독을 통해서 소개받은 위박 가문에 배를 주문한 것도 장래를 위한 투자다. 위박 가문은 아주 유능한 조선공 집단이고, 루이 14세가 조선에 보내주겠다고 한 조선공도 이 가문에서 뽑아 보낼 예정이다.
이런 상대에게 배를 사면 저들과 우리 조선의 관계도 더 좋아지지 않겠는가. 더구나 내가 내 배를 가지고 있으면 추가로 돈벌이를 할 수 있다. 대서양에서 직접 무역을 벌여도 되고, 본국에 직접 선물을 보낼 수도 있다. 귀국할 때도 내 배를 타고 편하게 갈 수 있다.
편하게 가는 게 전부가 아니다. 귀국할 때 가져갈 화물과 인원도 내 마음대로 골라실을 수 있다. 예왕과 충돌을 각오해야 한다면, 무기와 사병을 가득 싣고 갈 수도 있다는 말이다. 물론 정말로 그런 짓을 시도하다가는 자칫 내가 먼저 역도로 몰릴 수도 있겠다만.
꼭 내란에 활용하지는 않더라도, 내 배가 따로 있는 것만으로도 행동의 자유가 엄청나게 넓어진다. 최악의 경우, 배를 타고 어디든 도망갈 수도 있지 않은가.
“여차하면 해적이 될 수도 있겠지.”
저절로 쓴웃음이 나왔다. 글쎄, 과연 내가 해적선장 노릇은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세계 역사상 최고위 신분을 가진 해적이 될지도 모르겠다. 대한의 친왕이 해적이 되다니, 후대에 황실 족보에서 파이고도 남을 일이다.
“그런 미래는 생각하지 말자…괜히 말이 씨가 될라.”
혹시나 죽은 뒤에 만난 천녀가 ‘해적왕도 왕이네’ 어쩌네 하고 씨부렁거릴까 봐 겁난다. 만약 정말로 그런 소리를 지껄이면 당장에 달려들어 그 입을 찢어놓고 말겠지만…일단 그런 소리를 지껄일 핑계를 안 만들어주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