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924
3부 042화
프랑수아는 오스만과 러시아가 지난번 전쟁을 어떻게 마무리했는지 설명했다.
“우리는 3년 전 크림 칸국의 수도 바흐치사라이에서 오스만 인들과 평화조약을 맺었지요. 국경은 드네프르강으로 하고, 앞으로 20년 동안 평화를 유지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약속한 휴전 기간은 아직 17년이나 남았으니, 섭정이신 공주께서도 부담이 있으실 겁니다.”
“러시아가 그런 약속을 깨는 데 부담을 느낄 나라는 아니지 싶은데.”
러시아가 ‘우방’의 뒤통수를 친 게 한두 번인가? 표트르 3세는 프리드리히 2세 추종자라 대프로이센 연합전선에서 혼자 빠져나갔고, 20세기에 들어와 스페인 내란에서는 공화파를 배신했다. 여기에 본래 우방은 아니었지만 일본과의 중립조약도 기습적으로 파기했다.
하지만 그 숱한 배반 사례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소련)는 세계 최강대국의 지위를 냉전이 끝날 때까지 지켰다. 애초에 강대국이니까 그렇게 배짱으로 약속을 어기면서도 별 탈 없이 무사했던 거지만.
프랑수아도 내 말이 틀린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모양이다. 딱히 러시아 측을 옹호하는 말 같은 건 하지 않고, 그냥 씩 웃을 뿐이었다.
“그래도 3년 만에 조약을 깨는 건 좀 그렇지요. 신의는 둘째 치고, 러시아군에게도 아직 휴식을 취하고 전력을 보충할 시간이 필요하니까 말입니다.”
“실제적인 이유가 있기는 하군.”
게다가 지난번 전쟁 때는 러시아가 폴란드에 원조를 청했지만, 폴란드가 방관했던 전례가 이미 있다. 애초에 사이도 별로 좋지 않은 데다가, 이쪽이 도와달라고 할 때는 구경만 하던 폴란드가 동맹을 제안한다고 넙죽 수락하면 러시아 쪽에서도 위신이 안 서리라.
“폴란드 국왕은 이번에 실망을 맛볼 수밖에 없겠군. 그런데 달레 중령, 어차피 우리한테는 섭정을 알현할 차례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차르께 먼저 찾아가 인사를 드려도 되지 않겠소? 그 절차를 교섭해주었으면 하는데.”
“외국 사신을 맞이하는 공식적인 알현은 차르 두 분께서 모두 참석하시게 되어있습니다. 작년에 스웨덴 대사가 찾아왔을 때도 그랬지요. 정부 고위 관리들도 나와야 하니 섭정께서 마음을 정하시기 전에는 일정이 잡히기 쉽지 않을 겁니다.”
“우리는 공식 사신이 아니잖소. 그럼 굳이 공식적인 알현이 아니라도 괜찮지 않소? 내가 들으니 동생이신 표트르 폐하께서는 요즘 크렘린이 아니라 교외 쪽 별궁에서 지내고 계신다 들었소. 나들이 삼아 교외로 나갔다가 찾아뵙고 인사를 드려도 될 것 같은데.”
모스크바 내를 돌아다닐 자유는 얻었다지만, 명시적으로 허가를 받지 않고 교외 지역까지 나가기는 좀 불안하다. 일단 표트르가 있는 마을이 어디인지를 정확히 파악하기도 힘들고, 우리 안전 문제를 생각하면 소피아 눈치도 좀 봐야지. 실권이 아직 그쪽에 있으니까.
“표트르 폐하께서 홀로 외국 사신을 접견하시는 건 법도가 아닌데….”
“아무렴. 나도 이 나라 법도를 어지럽힐 생각은 없소.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여행을 온 사람이지, 국무를 처리하러 온 사람이 아니오. 공식적인 사신이 아니니 시골에 나가 계시는 차르께 문안 정도는 드려도 되잖소.”
원래 세상만사를 원활하게 해결하려면 적당한 수준으로 기름칠을 해야 하는 법이다. 내 눈짓을 본 정호찬이 묵직한 금화 주머니 하나를 건네자 잠시 머뭇거리던 프랑수아의 태도가 곧바로 바뀌었다.
“음, 맞습니다. 공식적인 사신이 아니니까 표트르 폐하를 한 번쯤 따로 만나신다고 문제가 생길 건 없겠지요. 고관들을 통해 섭정께 허락을 청해 보겠습니다.”
“부탁하오.”
– 6 –
내가 사적으로 표트르를 만나러 가도 좋다는 허가가 떨어질 때까지 한 여드레쯤 걸렸다. 프랑수아가 내 바람대로 승인을 받아온 날은 7월 9일, 우리가 모스크바에 도착한 날이 5월 31일이었으니 거의 40일만인 셈이다.
소피아는 실권도 없는 어린애인 막냇동생을 따로 만나보고 싶다는 우리에게 뭔가 의아한 기분을 느끼긴 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딱히 못 만나게 할 이유도 없다고 생각했는지, 내가 은근히 걱정하던 것보다는 빠르게 허락이 내려왔다.
그동안 폴란드 사절단은 소피아와 네 차례나 회담을 거듭하면서 신성동맹에 동참하라고 제안했다. 하지만 소피아는 자기들이 평화조약을 맺고 휴전한 지 겨우 3년밖에 안 되었다는 점, 그리고 아직 지난번 전쟁에서 얻은 피로가 회복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거절했다.
즈비슈코와 프랑수아를 통해서 전해 들은 얘기를 종합해보면, 소피아는 권력욕만 가득한 무능한 여자는 아닌 듯했다. 이번에 폴란드와의 교섭 건만이 아니라 국내 정치에서도 제법 수완을 발휘했다. 신하들의 조언도 잘 들었다. 역시 표트르의 누나다웠다.
내가 이번 생에서 스웨덴이나 폴란드 국왕쯤 되었을 것 같으면 소피아랑 손을 잡고 실제 역사보다 빨리 러시아에 여제가 등극하게 만들어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표트르를 제거하면 다른 계승자가 없으니 자연스럽게 소피아가 차리차(차르의 여성형)가 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다음? 표트르 없는 러시아는 절대로 세계적인 강대국이 될 수가 없다. 아무리 희망적인 전망을 세워도 자기 땅을 지키는 정도에서 그칠 뿐이지 절대로 서구화된 강대국이 될 수가 없다. 강철 거인 표트르가 아니면, 누가 러시아를 서방으로 끌어낸단 말인가.
문제는 장기적으로는 러시아를 확실히 주저앉혀버릴 수 있는 이 계획이 단기적으로는 내 목을 스스로 긋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사실이다. 내가 그런 짓을 벌인 사실을 형황이 안다면 절대 날 가만두지 않을 거다.
이유는 간단하다. 합당한 군주인 표트르를 없애고 소피아가 제위에 오르게 만든다면 그건 문자 그대로 반역이다. 그것도 혈족 간에 벌어진 패륜이다! 아무리 조선이 변화했다고 해도 그 사상적 기반에는 유교 윤리가 있고, 이런 건 용납될 수 있는 수준의 일이 아니다.
차마 말로 전하기도 어려운 이런 악행을 내가 뒤에서 부추긴다고 하면…나는 평생 귀국을 포기하고 유럽에서 살아야 할 거다. 소피아의 고문관 같은 자리에나 취임해서 적당히 살다 죽어야 하겠지.
소피아의 쿠데타에 내가 관계했다는 사실을 비밀로 유지할 수도 없다. 지금은 연락수단이 부족한 장조 시대도 아니고, 우리 일행 중 금위사가 있는 판이다. 설사 금위사 요원을 빼고 생각하더라도, 유럽에 주재하는 익문사 관원들의 눈과 귀는 어떻게 막는단 말인가?
장차 우리 백성들이 러시아의 압박에 시달리지 않도록 만드는 건 분명히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지금 내 처지에서는 소피아를 부추겨 표트르를 제거하는 데 성공한다고 해도 그다지 얻을 게 없다. 그러니 일단은 역사대로 표트르가 차르가 되리라고 가정하고 움직일 수밖에.
요즘 표트르가 지내는 곳은 프레오브라젠스키인지 젠스코예인지 하는 시골 마을이었다. 선선대 차르 알렉세이 1세 시절에는 사냥에 쓰는 매 훈련장이었다고 한다.
그 이웃에는 러시아 정부가 고용한 외국인들이 지내는 정착촌이 있었다. 거기까지 안내는 역시 프랑수아가 맡았다. 러시아에 온 지 14년이 되는 그의 집도 그 동네에 있었다.
일행은 단출하게 구성했다. 무관 세 사람과 통변 이홍석, 나까지 다섯 사람에다가 선물을 실은 짐수레 두 대, 수레를 몰고 짐을 내릴 러시아인 하인 4명뿐이었다. 프랑수아까지 하면 10명, 그리고 경호병으로 따라온 러시아 병사가 30명이다.
“경호대를 붙여 주다니, 조선 왕자로 대접은 해주는 거요? 중령?”
“섭정께서는 전하의 지위를 대놓고 부정하지는 않으셨습니다. 뭐랄까요, 격에 맞는 합당한 대접을 받지 못해서 기분이 좀 상하셨을 뿐이지요.”
경호원들은 소피아 지지파인 스트렐치 연대원들이었다. 모두 보병이라, 말을 타고 가는 우리 뒤에서 자기들 장교의 지휘를 받으며 짐수레 양편으로 줄을 지어 걸어왔다. 표트르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건, 이 경호대의 존재 자체가 임석한 이들 모두에게 압박이 될 터였다.
“그런데 전하, 옹주께서는 뭐라 적으셨던가요?”
“별다른 말 있겠나, 서장관. 보고 싶으니 어서 일을 마치고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하지.”
표트르를 만나도 좋다는 허가가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동안 올렝카에게 편지가 왔다. 내가 작년에 빈에 갔을 때는 수취인 부재 ? 즉, 내 전사 ? 라는 명목으로 반송될까 봐 무서워서 하나도 못 썼다더니, 러시아에서는 적어도 생명에 위협은 안 겪으리라고 생각하나 보다.
“폴수국왕은 올해도 돌궐군과 싸워 승승장구한다는 모양일세. 자기는 정확한 사정까지는 모르겠다지만.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수를 놓고 있다고, 돌아오면 보여주겠다는군.”
“귀엽군요.”
정호찬이 유쾌하게 웃었다. 올렝카가 하는 행동이 자기가 보기에도 귀엽다면서 말이다.
“예법만 좀 가르쳐서 데려가시면 눈총은 받지 않을 겁니다. 대유주 체류가 원체 길었으니, 양첩 하나쯤 데려온다고 해도 아무도 놀라지 않을 테고요. 아무리 금상이시라고 해도 이런 문제로 전하를 질책하지는 않으실 겁니다.”
형황은 그다지 신체가 튼튼한 편은 아니다. 그래도 황후 이외에 귀비 하나, 빈 하나, 미인 하나 해서 후궁 셋을 두고 있었다. 밤마다 여자를 찾을 정도는 아니지만, 며칠에 한 번씩은 침소를 바꿔가며 동침한다고 한다.
형황도 그렇지만, 칭제건원 이후에도 과거 중국 황제들처럼 천하를 뒤져 미녀를 뽑아다가 후궁을 채우는 태황은 없었다. 성이도, 연이도, 선황도 후궁은 3~5명으로 그쳤다. 후궁을 가장 많이 둔 임금은 8명을 둔 장조…바로 나였다!
황실 기풍이 이대로 계속 유지된다면, 장조는 조선 역사상 가장 호색한 임금으로 기록될 것 같다. 8명 중 상희를 포함한 3명은 내가 입궁시킨 이들이긴 했지만…어쨌든 경성군 탓이 크다! 젠장할, 망할 경성군 놈 같으니.
다만 앞선 태황 두 사람과의 차이점이 하나 있기는 하다. 연이는 내달인, 선황은 대국인 후궁을 하나씩 두었지만 형황은 순 조선인 후궁만 두었다는 정도다.
형황이 얻은 후궁 소생 자녀는 박 귀비(貴妃)와 진빈(珍嬪) 홍씨가 딸 하나씩이다. 미인 백씨는 아직 자식이 없다. 황후 소생 딸도 하나 있어서, 형황의 자식은 총 2남 3녀다.
“궁이 너무 작아서 선황들께서 후궁을 안 두신 건 아닌가?”
“물론 도성에 있는 세 정궁을 합쳐도 북경에 있는 청나라 황성보다 작기는 하지요. 허나 채우려고만 하면 후비(后妃) 수십 명을 넣지 못하겠습니까? 그저 역대 선황들께서 여색은 적절히 즐기고 자제하신 것이지요.”
명나라가 무너질 때 자금성은 다행히 별 해를 입지 않았다. 주상순을 끓여 먹은 고영상은 자기가 천자 자리에 앉을 생각으로 궁궐을 잘 보존했고, 건주군과 싸우러 나가면서도 만약 패하면 궁궐을 불태우라거나 하는 지시는 내리지 않았다.
고영상은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북경에서 수성을 시도하지 않고 평원으로 나가 다이샨과 정면으로 결전을 벌였냐고 물어봤었다. 그랬더니 정호찬이 대답하기를, 그놈도 나름대로 세 가지 이유가 있었다고 했다.
첫째, 황제를 죽이고 기세가 절정에 달한 참인데 전투를 회피하면 수하들의 사기가 크게 떨어진다.
둘째, 황도를 함락한 뒤 민심을 얻기 위해 황실과 조정의 창고를 몽땅 열어서 백성들에게 마구 재물을 뿌렸기 때문에, 정작 수성전을 시도할 군량이 남지 않았다.
셋째, 머릿수를 믿고 건주군을 얕보았다. 압도적으로 많은 군사가 있으니 결전을 벌이면 당연히 이길 것이고, 곧바로 화북 전역을 쉽게 제압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이처럼 고영상에게도 계산은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웅정필군 탈주병까지 자기 수하에다 끌어들였다고 해도 건주군과 이에 합세한 원숭환군에게는 미치지 못했다. 아무리 웅정필군 군사라도 고영상 밑에 들어가면 그냥 고영상군일 뿐이었다.
참패한 고영상은 절망한 끝에 그 자리에서 칼로 목을 그어 자살했다. 놈의 부장 이자성과 장헌충은 패잔병을 규합해서 남쪽으로 튀었다. 장헌충은 파촉으로 들어가 서나라를 세웠고, 이자성은 강남으로 가서 더 큰 발판을 노리다가 조승복에게 패해서 죽었다.
이렇게 해서 동방에서 가장 큰 궁궐은 건주 측의 손에 떨어졌다. 황궁을 지키던 고영상의 수하 장수는 황성을 고스란히 바친 대신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청국 황제는 정작 그 큰 궁궐에는 별로 머물지 않는다면서?”
“예, 전하. 옛날 대명 정덕제가 그랬듯이 남방에 가까운 고을에 나가 있을 때가 많습니다. 내전(內殿)은 북경에 두고, 조정 신하들만 끌고 대명부와 제남에 있는 별궁에 가 있을 때가 많지요. 종종 산서까지도 순행을 나가고 말이옵니다.”
옛날에 떠돌면서 살던 기질이 아직 남았는지, 건주 계열 황실들은 수도를 여러 개 두고서 오가면서 영토를 통치한다. 청나라는 북경?대명부?제남을 합쳐서 셋이고, 후금은 카라코룸과 상도 둘이다. 상도는 내몽골 지역, 카라코룸은 외몽골 지역을 지배하는 중심인 셈이다.
건주 계열 다섯 수도는 모두 예전과는 그 전경이 매우 달라졌다. 상도와 카라코룸은 아주 폐허가 되었던 땅에다 번화한 대도시를 새로이 건설하였으나, 청나라 쪽 세 도시는 명나라 시절보다 도리어 인구가 줄었다. 북경 같은 경우, 한창때의 절반밖에 안 된다.
“건주군의 진입에 맞서다가 통째로 전멸당한 큰 고을이 넷, 그 안에서 살던 백성 숫자만 2백만, 건주군에 대한 공포와 기근 때문에 강남으로 도주한 자가 대략 1천만. 그러니 어찌 인구가 줄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명나라 때도 화북은 식량을 자급자족하지 못했다. 수천 년 동안 농사를 짓다 보니 토양이 열화되고, 농업 생산량이 떨어진 탓이다. 부족한 식량은 대운하를 통해 강남에서 공급했다.
하지만 이제 강남은 다른 나라가 되었다. 화북의 생산력만으로는 기존 인구를 감당할 수 없다. 다이샨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남는 입을 줄인다’라는 간단한 방법을 택했다.
“우리라면 차마 그렇게까지는 못했을 겁니다. 하지만 건주에서는 하더군요. 그때 들어온 익문사 보고서를 펼쳐보면, 50년 전 사건인데도 읽다 보면 모골이 송연해지는 것이 꼭 어제 일처럼 끔찍하기 그지없습니다.”
그 온화해 보이던 다이샨이 서슴없이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니, 사람은 역시 얼굴만 보고는 모르는 거다. 숨기고 있던 본성인지, 필요에 의한 변화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명나라가 무너졌을 때 화북에서 벌어졌던 여러 학살 사건에 대해 넷이서 이야기를 나누며 가는데, 앞에 가던 프랑수아가 말을 세웠다.
“여깁니다! 여기가 표트르 폐하께서 지내시는 프레오브라젠스코예 마을입니다.”
별로 크지도 않은 평범한 농촌 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 여기가 바로 표트르 대제가 유년기를 보낸 거기로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