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927
3부 04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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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70이 다 돼서 12살짜리를 친구라는 것도 웃기지만 일단 친구는 친구다. 친구가 아프다는데 문병을 안 할 수는 없다. 어차피 나이 따지면서 친구 사귀면 이번 생에서 친구 사귀기는 다 글러 처먹었으니…하지만 이형준을 비롯해서 일행 전원이 나를 뜯어말렸다.
“전하께서는 마진(痲疹)에 걸린 적이 없으십니다! 혹시 병자에게 옮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내가 홍역에 걸린 적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어릴 때 감염되어 면역력이 생기지 않았다면, 어른이 되어 걸렸을 때 사망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상희도 못 만나고 본국에 돌아가지도 못한 채 객지에서 병사할지도 모른다.
“알겠네. 그럼 이 의관이 본왕 대신 좀 다녀오게.”
“예, 전하.”
이진원과는 상희 친척이라는 걸 알게 된 이후 조금씩 말을 텄다. 내가 알고 있는 상희의 의녀 시절 이야기와 상희 부친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다. 궁궐 내에서 전해진 일화들이라고 전제하고 들려주니, 가문에서도 모르던 이야기를 들었다고 의심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조선이라고 해서 홍역에 무슨 유효한 치료법이 있는 건 아니다. 지금 시대에는 유럽이건 조선이건 어차피 홍역 치료를 위해서 대증요법밖에 시도할 수 없는지라.
나를 대신해서 병문안할 사람으로 이 의원을 고른 건, 내 나름대로 성의를 보이는 시도일 뿐이다. 러시아가 아직 폐쇄적인 나라라지만 동의보감은 이미 들어와 있고, 조선 의원들이 솜씨가 좋다는 것도 알려져 있다. 동쪽에서 이루어지는 직접 교역의 효과다.
“소인이 도착했을 때까지만 해도 신열과 발진이 꽤 심했습니다. 다만 루스 수령은 워낙 신체가 건강하여, 병균도 맥을 못 추었는지 정말 위험한 지경까지는 가지 않았습니다. 며칠 안 가서 금방 잦아들었습니다.”
돌아온 이진원이 간단히 보고했다. 약재가 없는지라 이진원도 표트르 옆에 붙은 러시아 의사들보다 딱히 나은 처치를 할 수는 없었다. 다만 그 증세를 살펴보고 표트르가 확실히 홍역에 걸렸음을 확인할 수 있었을 뿐이다.
“수고가 많았네.”
나를 대신해서 병자를 살피고 왔으니, 당연히 감사해야 할 일이다. 홍역 병균이 범접하지 못할 정도라니, 표트르가 건강하긴 한가 보다. 그런데 사람의 몸에 홍역을 일으키는 놈들이 바이러스였던가, 박테리아였던가…?
이진원과 대화를 트면서 들은 이야기 중 내가 가장 충격을 받았던 건 조선에서 병원체의 존재가 발견됐다는 사실이었다. 그것도, 외부의 영향이 전혀 없이 자체적으로 말이다.
“연가 7년(1656)의 일이옵니다. 인천에서 의원을 하는 김씨 성에 인황이라 하는 의원이 있었는데, 이 의원은 평소 산에 올라가 천리경으로 제물포 항구를 드나드는 배를 보는 것을 즐겼사옵니다.”
여기까지는 별로 놀랄 것 없이 들었다. 본래 망원경이라는 물건의 용도가 그것이고, 조선 사정을 생각하면 이제 취미로 망원경을 들여다보는 사람이 충분히 나올 시대가 되었으니까 말이다. 내게 충격을 준 건 바로 다음 내용이었다.
“의원 김인황은 멀리 있는 배를 가깝게 보이게 할 수 있는 물건을 사용한다면 사람 몸을 들여다보는 데 활용할 수 있지 않은가 하여, 애용하던 천리경을 부순 후 자기 손으로 다시 조립하여 세치경(細緻鏡)을 만들었습니다. 심지어 경편(鏡片, 렌즈) 깎는 법까지 익혔지요.”
해상용으로 제작한 투박한 망원경의 배율은 보통 5배율 내외다. 성능이 뛰어나 봐야 겨우 10배율 정도 되는 물건을 쓴다. 지나치게 배율이 높은 물건은 시야가 좁아질뿐더러 조금만 움직여도 크게 흔들려 앞을 보기 힘들다. 선상에서 사용하기에 불편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10배율 정도 렌즈를 가지고는 뭔 짓을 해도 현미경으로는 쓸모가 없다. 김인황이 직접 렌즈 깎는 법을 익힌 것도 무리가 아니다.
“마침 내달인 유리공들이 만든 질 좋은 유리를 손에 넣었고, 유주에서 들어온 갈릴레이라 하는 학자의 경편 가공에 관한 저서도 읽은 뒤에 김인황은 직접 경편을 깎아 자기가 보고자 하는 것들을 볼 만큼 정밀한 세치경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자기 손부터 들여다보았지요.”
손등과 손바닥 주름을 들여다본 다음에는 닭을 잡아 그 목을 자르고 단면을 들여다보고, 배를 갈라 신체 안을 들여다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관아에서 해부용으로 얻어온 행려병자의 시신을 갈라 유럽에서 들어온 해부학 서적과 비교하는 데도 유용하게 썼다.
이때 김인황은 과연 핏속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 하는 궁금증에 빠졌다. 조선 의학에서는 피를 가리켜 몸을 성하게 하는 존재라고 설명하지만, 그 성분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밝히지 못했다. 상희도 근거를 댈 수 없어 동의보감에 적힌 저 서술을 바꾸지는 못했다.
하지만 김인황은 혈액 속에 분명히 뭔가가 들어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이 만든 고배율 현미경을 사용해서 유리접시 위에 놓인 핏방울 속을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봤다.
“본래 물이란 맑은 것인데 진흙이 들어가 흙탕물이 되지 않습니까? 천을 물들이는 색물도 염료를 풀었기 때문에 색이 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핏속에도 붉은빛을 띠는 물건이 일부 들어갔으니 피가 붉다고 추측함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실로 타당한 이야기로다.”
“헌데 물을 타서 살짝 묽게 하여도 핏속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생각하다 못한 김 의원은 맹물을 사용한 것이 문제인가 하여, 피와 비슷한 정도로만 짠맛이 나게 소금을 탄 염수로 피를 희석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비로소 붉은색을 띤 혈구(血球)를 보았지요.”
그게 1656년의 일이었다고 한다. 붉은 혈구, 적혈구가 무슨 일을 하는지까지는 그로서도 알 수 없었으나 피가 왜 붉은가 하는 수수께끼는 풀린 셈이었다. 김인황은 만족한 마음으로 관찰 대상을 바꾸었다.
“사람의 머리카락, 피부, 심지어 정교할 때 나오는 남자의 정(精) 속에 들어 있는 아기씨 모습까지 세치경으로 보고 그 형상을 그림으로 그려 인천부에서 나오는 시보에 실었습니다. 그러다가 유명해지면서 조보에까지 그 그림을 실었으니, 얼마나 대단한 일이옵니까?”
“정말 대단한 일을 하였군.”
조선에서는 아직 ‘학계’라고 할 만한 모임이 없다. 그렇다 보니 누군가가 새로운 현상이나 이론을 내세웠다고 해도 그걸 세상에 알릴 방법이 별로 없다. 전통적으로는 자기 주변 사람들에게 밝혀서 풍문으로 퍼지게 하거나, 상소로 조정에 알리는 방법뿐이었다.
그런데 이제 조보와 시보가 누군가를 세상에 알리는 새로운 창구가 되고 있었다. 과거에 합격하거나 공적을 세운 벼슬아치와 무대에 서는 배우만이 아니라, 기술과 학문을 비롯하여 다양한 분야에서 업적을 세운 이들까지도 신문을 통해 자기를 알리고 있는 거다.
“그러다 보니 김 의원은 병에 걸린 이의 피를 들여다보면 혹시 병의 근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사옵니다. 허나 두창 환자의 피를 들여다보아도 혈구 외에 다른 것을 발견하지는 못했고, 다시 역리 환자의 변을 들여다보다가 비로소 이상한 것을 보았습니다.”
역리(疫痢)는 상희한테 예전에 들어두었던 병명이다. 세균성 이질을 가리킨다. 김인황은 모르고 고른 거겠지만 적절한 대상을 선택한 셈이다.
“자기가 발견한 것을 건강한 이의 변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기에, 김 의원은 이것이 정말 역리를 일으키는지 확인하고자 그 변을 직접 먹어보았습니다. 혼자만 먹어서는 확실히 입증할 수 없겠기에, 집안에 거느린 노복 6명에게도 먹였지요. 그리고 모두 발병하였습니다.”
이 실험이 이루어진 해가 연가 14년(1663)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자기가 발견한 존재를 ‘균(菌)’이라고 명명했고 말이다. 적혈구야 원래 붉은색이니 그렇다고 치더라도, 제대로 된 세포 염색도 없이 이질균을 발견하다니 김인황이라는 의원은 시력이 정말 좋았던 모양이다.
“그럼 그 작은 균이 병을 일으킴은 입증된 것이냐?”
“아직도 의논이 분분합니다. 사실이라면 마땅히 동의보감을 그 밑바닥부터 뒤집어서 다시 써야 할 일이나, 두창과 마진처럼 균이 나오지 않는 병도 많습니다. 그래서 균이라는 것을 아예 믿지 않거나, 균이 있는 병과 없는 병이 따로 있다고 믿는 이들이 많사옵니다.”
“그대는 어떠한가?”
“소인은 모든 병에 균이 있되, 아직 균을 보지 못한 병은 그 균이 너무나도 작은 탓으로 세치경으로도 보이지 않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하옵니다.”
이진원이 가져온 짐 중에 조선제 현미경이 하나 있었다. 김인황이 만든 구조에서 조금 더 개량한 것으로, 내가 과학실에서 보던 현대식 현미경과 비교했을 때 구조적인 형태는 별로 차이가 없었다. 다만 속에 든 렌즈 구조나 성능은 아직 현대에 비기려면 멀었다.
어쨌든 병원균 인정 문제를 놓고 의원들끼리 상당한 논쟁이 벌어졌었다고 했다. 발제자인 김인황은 조보에 여러 차례 그림을 실었던 유명인사다 보니, 반대론자들은 일단 여론전에서 상대가 되지 않았다. 이 문제를 벗어나고자 이들이 택한 해결책이 새 신문 창간이었다.
“조보서가 김 의원 편에 있는 거나 마찬가지니, 김 의원에게 반대하는 이들로서는 자기들 주장을 펼 시보를 만드는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같은 크기로 목소리를 내야 하니까 당연하겠지.”
말할 것도 없지만 조보는 조정에서 배포하는 관영신문이다. 예전에는 예조 예하에서 서적 발행을 맡는 박문국에서 발행했지만, 칭제건원 이후 조정 기구가 일부 개편되면서 박문국은 조보 발행에서 손을 뗐다. 대신 조보서(朝報署)라는 전문 관청이 아예 별도로 독립했다.
시보(市報)는 민간에서 나오는 잡다한 신문을 가리키는 통칭이다. 그 발행 주체나 형식은 제각각이고, 내용 구성도 각양각색이라 일관된 특징을 제시하기 어렵다. 조정에서 지원받는 돈이 한 푼도 없다는 게 유일한 공통점으로 꼽힐 정도다.
예전에는 광고를 팔아 유지비를 버는 시보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시보 숫자가 증가하자 경쟁이 심해지면서 광고로 버는 돈도 당연히 쪼그라들었다. 그러자 시보들도 제각각 살길을 찾았다. 크게 보면 대략 세 부류로 나뉜다.
성공률은 낮지만, 독자들에게 질 높은 기사를 보여주고 구독료를 받겠다는 정론을 내세운 이들이 그 하나다. 아예 돈 따위 신경 안 쓰고 사재를 털어서 운영하는 이들이 그 둘이고, 돈 되는 기사라면 뭐든지 싣는다는 놈들이 그 셋이다.
첫 번째 부류라면 별로 걱정할 게 없다. 두 번째는 대개 특정 개인이나 가문이 자기 집안 세력을 과시할 생각에 운영하니 그것도 별문제가 아니다. 골치가 아픈 건 세 번째 부류다. 말 그대로 옐로 페이퍼 ? 지금 조선에서는 참보(讒報)라고 한다 ? 를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리학 사회인 조선에서 ‘언로 보장’이란 절대적인 가치 중 하나다. 그러니 시보를 발행할 사람은 누구든 찍어낼 자유가 있고, 싣고 싶은 기사를 실을 자유가 있다.
물론 관청에다 신문사를 설립한다고 신고는 해야 한다. 하지만 이것도 신문사가 광고료나 구독료로 버는 수입에 세금을 물리기 위해서지 기사 내용을 검열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렇게 언론이 자유롭다 보니, 요즘은 선비들이 조정에 상소를 올리는 대신 시보를 통해 세상에 자기 견해를 알리는 풍속도 생겼다. 시보 중에는 이런 투고만 전문으로 받아 지면에 게재하는 업체들도 있다. 이들은 투고를 실어주는 대신 필자에게 게재료를 받는다고 한다.
물론 쓰는 것은 자유라 해도 쓴 내용에 관한 뒷감당은 본인이 책임져야 한다. 민사소송이 터지는 일은 흔하고, 세 번째 부류에 속하는 시보들은 혹세무민이나 풍기문란으로 관아에서 오랏줄 신세를 질 때도 잦다. 후자는 수위 높은 음담이나 춘화를 싣다가 걸리는 경우다.
김인황의 병균론에 극히 반대하는 의원들이 창간한 같은 신문은 전형적인 두 번째 부류에 속한다. 전국에 있는 돈 있는 의원들이 기부금을 대고 또 광고도 실어주니, 운영비 걱정 따위는 애초에 하지 않는다.
물론 이렇게 돈을 들여 만든 신문을 가지고 고작 김인황과의 다툼 같은 데만 동원할 리는 없다. 의료계에서 나오는 뉴스 전달이나 유명한 명의들의 제자 모집 공고 ? 장조 때 도성에 설립한 의학교 이외에 각 지방에서는 여전히 도제식으로 의원을 양성하고 있다 ? 및 의학계 주요인사의 부고 게재 등 업계를 대표하는 역할도 아주 충실히 하고 있다.
“병균론을 지지하는 의원이라고 해도 대한의보를 무시할 수는 없사옵니다. 병균론에 대한 찬반을 벗어나서, 본국 13도는 물론이고 외지 9주까지 나가는 유일한 시보를 어찌 막 대할 수 있겠습니까. 의원을 차렸으면서 의보를 구독하지 않는 이는 사실상 없습니다.”
“옳은 말일세. 그런 시보와 싸우는 건 본왕이라도 하기 힘든 일이로군.”
비록 발매 주기는 한 달에 한 번인 월간지라지만, 몇천 부씩 찍어서 전국에 흩어져 있는 의원들에게 배송한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대한의보 이전에 나온 시보는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지만, 모두 인근 지역에나 뿌리는 수준이지 이렇게 전국에 배포하지는 못했다.
“시작한 배경이 배경이다 보니, 의보에서는 병균론을 부정하는 의견이 주류입니다. 하지만 김 의원을 지지하는 의원들도 없지는 않은지라, 옹호론도 가끔 실어주고는 있습니다. 어느 쪽이건 언로를 아예 막아서는 안 되니까요.”
그 시초는 분명히 의원들끼리 병리(病理) 문제를 놓고 싸우다 만든 신문이다. 하지만 그 결과가 사상 첫 전국 단위 민간신문이라니 놀라운 일이다.
물론 창간 공고는 조보에 실어서 알렸고, 조정이 운영하는 우편망 덕분에 유지할 수 있는 신문이다. 그렇기는 해도 놀랄 일에는 놀라야 하지 않겠는가?
게다가 의보 구독자 명단은 곧 전국 개업의 명단인 셈이다. 그러니 대한의보 구독자는 곧 전국 의원협회 가입자나 마찬가지다. 대한의보가 내는 논지에 따라 의학계 전체가 움직일 수도 있다.
나중에 과학계도 이렇게 전국 단위로 배포되는 신문이나 잡지를 만들 필요성을 절감했다. 하지만 자기들이 알아서 돈 들여 만드는 의원들과 달리, 과학계 회지는 아무래도 조정에서 돈을 내서 만들어줘야 하겠지 싶다. 과학자들은 의원들만큼 돈이 없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