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938
3부 056화
4.
그날 표트르와의 술자리는 결국 제시간에 끝나지 못했다. 이제 10대 중반밖에 안 된 놈이 술은 또 얼마나 센지, 이번에도 먼저 뻗은 건 내 쪽이었다. 휘청거리면서 방에 가서 그대로 쓰러져버렸고, 계획한 학회 방청 준비는 전혀 못 했다.
다만 표트르도 자기 숙소로 돌아가지는 않았다. 내가 뻗은 다음에는 카자크 형제 여섯을 상대로 해서 계속 주연을 벌였다. 어차피 다음날 왕립학회를 방청하러 가야 하는 건 자기도 마찬가지라고, 그때 나와 동행할 생각으로 실컷 마시고 내 숙소에서 잤다.
다음날 내가 아직 숙취 때문에 멍해 있는 동안에도 표트르는 쌩쌩했다. 나보다 훨씬 많이 마시고도 저렇게 멀쩡한 건 정말 타고났다고밖에 설명이 안 되지 싶다.
“젊다고 과음하시면 안 됩니다. 그건 만용이에요.”
오늘의 왕립학회 모임은 학회 그 자체보다는 ‘뒤풀이’ 쪽에 훨씬 더 가치가 있었다. 전임 왕립학회 회장이자 잉글랜드 해군을 일으켜 세운 뛰어난 해군 관료, 새뮤얼 피프스와 따로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저도 맛있는 음식과 술을 즐기는 사람입니다만, 늘 도가 지나치지 않게 조심합니다. 지금 조심하지 않고 약간 선을 넘는다면, 그만큼 오래 즐기지 못하게 되니 말이지요.”
“옳은 말이오.”
새뮤얼 피프스는 일기 작가로도 꽤 유명하다. 현대에 있을 때, 나는 이 사람의 정치적인 업적보다는 일기를 더 인상적으로 기억했었다. 다 외우거나 한 건 물론 아니지만, 자신의 일상을 사실적으로 기록한 부분이 무척 재미있게 다가왔다.
“하지만 술도 실컷 못 마시면서 세상을 어떻게 산단 말이오? 그깟 술 한 모금을 참는다고 해서 큰 복이 굴러오는 것도 아니고.”
표트르는 내 집에서는 그래도 행동을 조심하지만, 자기 숙소에서는 실컷 마시고 난장판을 만들어놓기 일쑤다. 벽에 걸린 초상화가 총알구멍으로 벌집이 된 꼴을 보고, 넋이 나가 할 말을 잊었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알렉세이예프 경, 귀하는 여기 나와 함께 해군에 관한 강의를 들으러 온 거지 술주정을 자랑하러 온 게 아니지 않소?”
“…예, 죄송합니다.”
표트르의 정체는 당연히 잉글랜드에도 이미 알려져 있다. 하지만 우리를 대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네덜란드에서처럼 표트르를 그냥 ‘피터 알렉세이예프’로 대해주었다. 본인이 죽어라 자기는 ‘표트르 알렉세이예프’라고 주장하니 별수 있겠나. 나도 남들 앞에서는 그렇게 한다.
2백 년 뒤라면, 대영제국 해군장관이 러시아 차르에게 효율적인 해군을 조직하려면 어떤 점을 주의해야 하는지 강의하는 건 꿈도 꿀 수 없을 거다. 하지만 세계선이 뒤엉킨 여기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
“국왕이 직접 통제하는 참모본부의 설치, 그리고 경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은 역시 체계적인 사관 교육이요?”
“그렇습니다, 대공 전하. 해군 사관에게 전문적인 항해술과 해상 전술을 가리키는 학교는 꼭 설립하셔야 합니다. 지금 조선 해군은 별도의 교육기관이 없다고 하셨지요?”
조선에서는…전통적인 ‘통합군’ 체제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웬만하면 육군과 수군으로 갈라진 장수들이 다른 쪽으로 옮기지 않긴 하지만, 전군(轉軍)은 규정상 가능하고 실제로 가끔 일어난다.
애초에 강무관 선발시험인 무과부터가 육군 장수를 뽑는데 맞춰진 시험이다. 강무관에서 가르치는 교육 내용도 거의 육군 지휘를 위한 수업이다. 수군은 현장에 배치된 뒤에 비로소 수군에서만 필요한 기술을 배운다.
“조선에도 나름대로 해군을 조직하는 관료기구가 있을 테고, 제가 그 실상을 모르니 어떤 부분을 고치시라는 말씀은 드리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효율적인 해군 운영을 위해서 어떤 기능이 필요한지를 설명해드리는 건 실례가 아니겠지요?”
역시 즐거운 이야기를 하다 보면 숙취도 잊게 된다. 흔쾌히 대답했다.
“물론이오.”
고개를 끄덕인 피프스가 표트르 쪽을 돌아보았다. 얼굴에 장난기가 살짝 도는 게, 왠지 놀리려고 하는 티가 살짝 났다.
“그런데 알렉세이예프 경, 러시아는 바다가 아예 없지 않습니까. 해군에 관해 배우더라도 활용할 곳이 없을 텐데, 굳이 배우려고 하실 필요가 있으십니까?”
“우리도 바다를 얻을 것이고, 해군도 만들 거요! 우리가 언제까지나 내륙에만 머물러있을 줄 아시오?”
“아, 알겠습니다. 장차 러시아 해군이 대서양으로 나올 날을 위해서라도 경께서 지금 배워 두시면 좋을 과제들이긴 하지요.”
표트르가 버럭 화를 내는 모습을 본 피프스는 은근히 재미있어했다. 저 양반이 아무래도 일부러 표트르를 놀리는 게 맞는 것 같은데?
“러시아는 발트해와 흑해를 넘보고 있지요. 스웨덴을 무너뜨릴 생각인가 본데, 생각처럼 쉽지는 않을 겁니다.”
표트르가 화장실에 간다고 잠시 나간 사이 피프스가 내게 간략히 설명했다.
“스웨덴은 소국이긴 하나, 강국이기도 합니다. 지금 섭정에게는 그럴 용기가 없지만 장차 러시아에 강철 같은 의지와 끈기를 가진 군주가 나타난다면 스웨덴을 쓰러트리고 발트해를 차지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면 우리 잉글랜드는 스웨덴을 돕겠지만요.”
잉글랜드는 국내 목재 자원이 고갈되어서 조선용 목재 상당 부분을 스웨덴에서 들여온다. 우리가 목재 자원 확보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함을 알려주는 앞선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러시아는 육지에 적이 너무 많지요. 바다에서 귀국을 위협할 여유는 없을 겁니다.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으실 거요.”
“대공 전하께서 하신 말씀이 맞기는 합니다.”
피프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왕국의 가장 큰 적은 아직은 프랑스와 스페인이죠. 러시아 따위는 아직 멀고도 먼 미래에 상대해야 할 테니, 그때 가서 볼 일입니다.”
이쪽 세계에서는 영국과 러시아 사이의 ‘그레이트 게임’이 어떻게 진행될지도 흥미진진한 주제다. 아마, 조선도 영국 편에서 한 몫 끼게 되지 않을까…?
그러는 사이 표트르가 돌아왔다. 곧 해군 조직에 관한 강의가 다시 시작됐다.
5.
나와 표트르가 술 마신 이야기, 그리고 피프스에게 해군 조직 구성과 운영에 관한 강의를 들은 이야기를 들은 제임스 2세가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젊은이들은 참 열심히들 사는군.”
“저보다는 알렉세이예프 경이 더 열심이지요. 역시 젊어서 그런 게 아닌가 싶습니다.”
“러시아 차르는 열여섯이지만 대공도 이제 겨우 스물세 살이잖소? 그대도 차르 못지않게 젊은데, 젊음을 이야기하니 뭔가 웃음이 나는구려.”
제임스 2세가 인자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를 다스리는 국왕 제임스 2세도 피프스와 같은 55세, 나와 표트르가 모두 늦둥이 아들처럼 보일 나이다. 내 ‘진짜 나이’와 비교하자면 내가 큰형님뻘이겠지만.
“나도 그대들과 같은 아들이 있었다면, 지금 그대들이 그러하듯 아들과 마주 앉아 술잔을 나눌 수 있을 텐데.”
제임스 2세에게는 자식이 13명이나 있었다. 왕위에 오르기 전 죽은 첫 아내 앤 하이드가 낳았던 4남 4녀, 왕비인 모데나 공녀 메리가 낳은 1남 4녀 ? 메리는 유산과 사산도 5회나 했다 ? 까지 합쳐서다.
하지만 여기서 남은 자녀는 첫 아내가 낳은 메리와 앤 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요절했다.
“대신 폐하께는 훌륭한 사위들이 있지 않습니까.”
씁쓸한 표정을 짓는 제임스 2세를 보니 안타까운 생각이 들어 위로를 건넸다. 하지만 별 위로는 되지 않는 듯, 제임스 2세는 허무한 눈빛으로 한숨을 쉬었다.
“감사하오. 하지만 내 첫 번째 사위인 네덜란드 총독은 자기 나라를 통치하느라 내 곁에 올 틈이 없고, 두 번째 사위인 덴마크의 조지 왕자는 깊은 슬픔에 빠진 내 딸을 위로하느라 여념이 없소. 그러니 역시 나와 술잔을 나눌 여유 따위는 없다오.”
“아, 그렇지요. 죄송합니다.”
나도 들은 이야긴데 깜박 잊었었다. 제임스의 둘째 딸인 앤 공주도 정말 지지리도 자식 복이 없었다. 내가 잉글랜드에 오기 전에 이미 사산과 유산을 1회씩 겪었고, 건강히 자라던 두 딸은 작년 초에 천연두에 걸려 둘 다 죽었다.
새로 가진 아들은 내가 잉글랜드에 건너온 뒤인 작년 10월에 또 사산했다. 그 뒤에 바로 또 임신했는데, 그 아이는 바로 한 달 전인 4월 16일…내가 표트르랑 술을 퍼마시고 머리가 지끈거리는 채 피프스에게 강의를 듣던 이틀 뒤 유산했다. 정말 안쓰러울 지경이다.
“짐이 그렇게 권하는데도 종두도 맞히지 않고…종두라도 맞혔으면 적어도 천연두로 죽은 메리와 앤 소피아, 두 아이는 살았을 텐데 말이오.”
영국 ?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이제 사실상 하나라고 할 수 있으니, 영국이라고 불러도 되겠지 ? 에도 조선식 종두법은 들어와 있다. 하지만 종두를 실제 접종한 사람은 제임스 2세와 왕비를 비롯한 극소수 인사들뿐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예수회가 보급한 의술이라 그렇다고 하셨지요?”
제임스 2세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비합리적인 일이오. 의술은 의술일 뿐인데, 잉글랜드에서는 예수회에 대한 거부감만 가지고 만사를 재단하니. 기나나무 껍질을 기피하던 크롬웰도 그렇고.”
잉글랜드에서 예수회는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악의 조직으로 낙인찍힌 지 오래다. 의회를 폭파해서 제임스 1세를 암살하려던 가이 포크스 사건, 헛소문으로 판명되긴 했으나 찰스 2세 때 일어난 타이터스 오츠 사건 등으로 세간의 의심은 더 커졌다.
타이터스 오츠는 분명한 사기꾼이었다. 하지만 그 사기꾼의 거짓 폭로 때문에 예수회원만 21명이 죽었다. 그리고 그 헛소리가 먹힐 만큼 가톨릭과 예수회에 대한 강한 적대감이 여기 잉글랜드 조야에 만연해 있는 건 사실이었다.
예수회에 대한 적대감 때문에 목숨을 내버리는 사람은 두 공주 이전에도 있었다. 올리버 크롬웰이 그랬었다. 크롬웰은 말라리아에 걸려서 열이 올라 신음하면서도 예수회가 가져온 키니네를 먹지 않았다고 했다. 다만 그때 죽진 않고 나중에 독감으로 죽었지만.
“네덜란드 총독부인과 덴마크 왕자비가 열렬한 신교도로 자란 데 대해서는 불만이 없소. 예수회라고 하면 무조건 의심하고 경계하는 그 태도가 안타까울 뿐이지. 자기들도 종두를 거부했을 뿐 아니라, 자기네 아이들도 종두를 맞게 하지 않았으니.”
종두는 예수회가 중심이 되어 유럽에 전했다. 예수회가 거의 활동하지 못하는 잉글랜드는 1670년대 말이 되어서야 종두 접종이 시작될 수 있었다.
종두가 잉글랜드에 조금만 더 일찍 전해졌으면 제임스 2세는 자기 딸들에게 억지로라도 종두를 맞게 했을 거다. 하지만 제임스가 종두를 접했을 때 메리와 앤 두 딸은 이미 확고한 신교도로 자란 뒤였고, 완강하게 종두를 거부했다.
“내 자녀들, 손자녀들의 목숨을 구할 수만 있다면 나는 무슨 일이든 할 거요. 설사 이교도 의사에게 치료를 맡겨야 하더라도 말이오. 대공은 아직 자녀가 없어 모르겠지만, 조선에서 귀공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모후께서도 마찬가지이시리라 생각하오.”
내가 그 기분을 모를 거라니, 씁쓸하다. 황이랑 헤어지고 나서 내가 얼마나 슬퍼했던지. 그 시기는 내 지난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을 때 중 하나였다. 그리고 후궁 소생 자녀 중에 일찍 죽은 아이들도 몇 있었다. 나도 그 감정을 전혀 모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내 기억은 이미 여러 해 전 일, 바로 지금 그 상황을 겪고 있는 제임스 2세보다야 당연히 덜 아프기는 하다. 제임스 2세가 말했듯, 지금 그와 기분이 비슷할 사람은 나보다는 본국에 있는 황태후가 맞다.
『…멋대로 그런 위험한 짓을 하다니! 너는 어찌 이 어미의 가슴을 이토록 헤집어 놓을 수가 있느냐? 내가 네게 바란 건 품행을 바르게 하고 학업에 매진하여 형황의 진노를 일단 가라앉히라는 의도였건만, 너는 본국에 있는 부형과 처자의 심경은 생각지도 않고…!』
태후의 편지를 받은 건 네덜란드에 머무르고 있던 작년 6월이었다. 빈 전투에 관해 보낸 보고서가 본국에 도착하고 나서 이쪽으로 보낸 첫 편지라, 잔뜩 걱정하면서 펼쳤더니 정말 애절하게 걱정하는 말들이 잔뜩 적혀 있었다.
『…나뿐만 아니라 형황도 네가 무공을 세우고 돌아오기를 바라지 않았다. 장조께서 당한 모욕을 갚는 일이 매우 중요하기는 하나, 필마단기로 그 일을 하려고 나서다니 될 말이냐? 다시는, 다시는 그런 무모한 짓을 하지 말아라….』
내가 이 사고를 치기 전에 태후가 보낸 편지들은 격식을 차리고 감정을 절제하면서 어서 기특한 일을 하라고 다그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나는 태후가 아직 내게 화가 나 있고, 나를 용서하지 않는 형황 편에 서 있는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빈 전투에 관해 알린 뒤에는 태후가 보낸 편지에서 격식 따위는 사라졌다. 이제 태후의 편지는 자식의 안위를 따지는 평범한 어머니의 편지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 편지를 받으니, 나도 모르게 손이 떨리고 눈물이 났다. 꾸밈 따위 없이 진심으로 내 안위를 걱정해주는 모습에서 엄마가 떠올랐다. 대한의 황태후에 이순신의 증손녀라고 해도, 자식이 위기를 겪었다는 소식에 놀라는 모습은 평범한 엄마와 다를 게 없었다.
더불어서 그동안 내가 쓴 편지 방향이 틀리지 않았다는 안도감도 들었다. 하지만 태후가 편지에 적은 내용 중 하나는 내 심장을 너무 아프게 찔렀다. 왕비가 내가 선물한 목걸이를 손에 쥐고 죽었다는 대목을 읽었을 때는 정말 미안한 감정을 지울 수가 없었다.
성친왕이 아닌 ‘내’가 성친왕비에게 잘못한 게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왕비의 불쌍한 죽음을 보고도 인간적인 연민을 느끼지 못한다면 내가 사람이 아니란 소리다. 설사 그녀가 상희가 아니었다고 해도, 내가 왕비를 위해 애도하는 건 당연했다.
네덜란드에는 아직 미사를 드릴 수 있는 성당이 있었다. 그래서 미사 예물로 백 두카트를 내고 죽은 왕비를 위해서 위령미사를 부탁했다. 그리고 석 달 동안은 올렝카와 따로 잤다. 얼굴도 못 본 왕비지만, 그 정도는 하는 게 도리라고 생각했으니까.
모후에게는 그 뒤로도 전에 쓰던 것처럼 편지를 썼다. 모후가 보내는 편지도 예전과 달리 감정에 충실한, 내 안위만 생각하는 잔잔한 내용으로 완전히 바뀌었다.
다만 형황이 나를 어떻게 처분하기로 정했는지는 모후도 알려주지 않았다. 10개월이나 더 지났지만, 여전히 형황은 나를 어떻게 할 건지 결정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내가 초조해한들 달라질 건 없으니, 최대한 마음을 느긋하게 먹고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태후가 나를 아들로 여기고 여전히 사랑을 퍼부어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안도감과 기대감이 생긴다. 형황이 아직 나를 용서하지 않았어도, 모후가 나를 지켜주리라 믿는 기대다. 혹시 귀국이 기대보다 늦어질 수는 있어도 목숨까지 위험하지는 않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