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939
3부 057화
나이 든 제임스 2세도 태후와 비슷했다. 자식들의 생명을 지키지 못한 데서 오는 고통이 그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서자는 많아도 적자는 끝내 낳지 못한 형 찰스 2세의 급사로 갑작스럽게 왕이 된 지 어느새 3년, 자신에게도 후계자가 없는 불안한 군주의 얼굴이다.
“지금 왕비의 태중에서 자라고 있는 아이, 그 아이가 내 마지막 희망이오. 내 계승자이고 천연두를 피할 수 있을 유일한 아이지. 이젠 늙어서 아이를 더 낳지 못하리라고 생각했는데 신께서 주신 축복이라오. 어떻소, 대공. 짐이 이번에는 아들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소?”
기대와 슬픔으로 가득한 그 얼굴을 보니 차마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다. 억지로 웃으면서 덕담이자 예언을 건넸다.
“…예, 폐하. 이번에는 분명 건강한 아들이 태어나실 겁니다.”
바로 이 아들 때문에 명예혁명이 일어났지. 가톨릭 신자인 국왕과 왕비 사이에서 태어난, 분명히 독실한 가톨릭으로 자라날 게 분명한 차기 국왕에 대한 신하들의 두려움 때문에.
지난 9개월 동안 몇 차례 만날 때마다 느꼈지만, 제임스 2세는 정말 유능한 행정가이면서 군인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정직하고 관대하며 친절했다. 잉글랜드를 가톨릭으로 복귀시키는 데만 관심이 있는 그런 머저리가 아니었다.
다만 형인 찰스 2세처럼 훌륭한 정치가라고 하기에는 곤란했다. 그는 종교적, 정치적으로 극히 혼란스러운 잉글랜드의 현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잉글랜드의 미래를 그리는 제임스 2세의 계획은 현실적인 생각이라기보다 몽상에 가까웠다.
“내 소망은 잉글랜드를 조선처럼 만드는 거요. 이번에 왕자가 태어나면, 철저하게 가르칠 생각이오. 잉글랜드에서 사는 이들이 가톨릭이건, 신교건 상관없이 각자 원하는 바에 따라 신앙하되 모두가 이 잉글랜드의 백성으로 충실하게 살아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제임스 2세는 종교분쟁 없이 유지되는 조선의 체제를 무척 부러워했다. 유교와 가톨릭과 불교, 전혀 다른 세 종교가 강력한 왕권을 중심에 두고 충돌 없이 공존한다. 군주가 가지고 있는 개인적인 신앙은 분명 존재하되 다른 종교를 믿는 신자들에게도 자유를 인정한다.
“우리도 할 수 있소. 우리도 조선처럼….”
“죄송하지만 폐하, 어려울 겁니다. 폐하의 신하인 신교도들은 가톨릭교회와 예수회를 너무 두려워합니다. 신앙의 자유가 있으리라는 약속을 믿지 않습니다. 그동안 탄압받았던 가톨릭 측에서 분명히 복수하리라고 생각하죠.”
“짐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소.”
“신민들이 믿지 않습니다. 그리고 폐하는 믿더라도 폐하의 후계자는 믿지 않을 겁니다. 또 의회가 아닌 국왕이 중심이 되는 체제도 저들은 원하지 않습니다.”
내가 조심스럽게 돌려가며 말했지만, 제임스 2세는 끝내 자기는 자기 신하들을 믿는다고 하면서 듣지 않았다. 자기가 선의를 품고 행동하니까 모두가 알아줄 거라고 믿는 모양인데, 그 기대는 분명히 배반을 당할 텐데 불쌍해서 어떡하나.
제임스가 바라는 것처럼 ‘신앙과 상관없이’ 어울려 사는 방향을 지향하는 나라가 유럽에 이미 있긴 하지. 바로 도버 해협 건너, 네덜란드에.
6.
명예혁명의 주역이 될 윌리엄 3세, 아니 아직 ‘오란예 공작 빌럼’이라고 불리는 제임스의 첫째 사위 빌럼 3세와 만난 건 네덜란드에 머무를 때였다. 암스테르담에 있는 총독관저에서 회견하던 생각이 난다.
빌럼 3세는 겉보기에는 전혀 ‘네덜란드인’ 같지 않은 외모였다. 땅꼬마에다 비쩍 말랐고, 피부도 거무스름한 데다 흑발에 눈동자 색도 검었다. 코도 매부리코에 입술이 두터워서 꼭 지중해 계열 혈통처럼 생겼다. 어릴 때 천식을 심하게 앓아 몸도 약했다.
물론 나라를 다스리는 일에서 외모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빌럼 3세는 지난 15년 동안 성공적으로 네덜란드를 통치해 왔다. 조선과의 관계도 잘 유지했으며, 내게도 무척 친근한 태도로 말을 건넸다.
“우리 두 나라는 공통점이 있소이다. 바로 다양한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가고, 국가에 충성만 한다면 그 신앙을 누구도 억압하지 않는다는 점이지요.”
“귀 총독께서 하시는 말씀에 동의합니다.”
네덜란드를 다스리는 총독, ‘스타트허우더(stadhouder)’는 그 직위가 세습되는 사실상의 왕이나 마찬가지다. 본래는 말 그대로 먼 데서 사는 국왕이 임명하는 대리 행정관이었지만, 16세기 때 독립전쟁 당시 빌럼 1세 이후 오란예 가문이 그 지위를 독점해 왔다.
빌럼 3세는 아버지 빌럼 2세가 천연두로 사망한 지 1주일 뒤에 태어난 유복자였다. 모친 역시 빌럼이 10세 되던 해에 천연두로 죽으면서 빌럼은 고아가 되었다.
어린아이인 빌럼이 총독이 될 수는 없었다. 그리고 강력한 중앙집권을 추구하던 오란예 가문에 대한 반감도 있어서 수상인 공화파 요한 드 비트가 그동안 통치를 맡았다.
요한 드 비트는 몇 차례나 총리를 역임하면서 네덜란드를 잘 이끌어나갔다. 영국과 벌인 전쟁도 이기고, 영국과 프랑스, 네덜란드 각 주 사이의 힘의 균형을 이용해 평화를 이뤘다. 경제도 발전시켰다. 하지만 빌럼 3세가 21세가 되었을 때 위기가 닥쳤다.
빌럼 3세의 외삼촌인 찰스 2세가 루이 14세와 한패가 되어 또 네덜란드를 침공했다. 드 비트는 해군은 강화했지만, 육군은 소홀히 했기 때문에 육지에서 밀려오는 프랑스군을 막을 수 없었다. 공화국 영토의 절반이 적에게 넘어갔다.
패전에 분개한 오란예파 시민들은 폭동을 일으켜 요한 드 비트와 역시 공화파인 그의 형 코넬리스를 참살했고, 빌럼은 총독을 겸해서 육군 총사령관이 되었다. 파죽지세로 진격하는 프랑스군이 며칠 뒤에는 암스테르담에 닿을 상황이었다.
빌럼은 프랑스군을 막기 위해 제방을 무너뜨려 홍수를 일으켜서 시간을 벌고, 외교전으로 동맹을 확보했다. 다음 해 봄이 되자 프랑스는 사방에서 공격을 받게 되었고, 네덜란드군이 보급선을 공격하는 게릴라전을 벌이자 프랑스군은 결국 물러났다.
이 위기를 겪은 뒤, 빌럼은 깨달은 바가 있었다. 루이 14세가 지배하는 프랑스처럼 강한 적을 소국인 네덜란드가 막으려면 종교의 장벽 따위를 넘어서 다른 나라들과 힘을 합쳐야만 하는 건 물론이고, 국내에서도 단결해야 한다고 말이다.
빌럼 자신은 칼뱅파다. 하지만 네덜란드군 내에는 가톨릭 장교 다수가 복무하고, 가톨릭 국가들과도 돈독한 동맹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배후에 위치하는 가장 중요한 나라, 잉글랜드를 동맹으로 확보하기 위해 찰스 2세의 조카이자 자기 외사촌인 메리와 결혼했다.
“하지만 잉글랜드에서는 그게 안 되지. 잉글랜드에서는 종교 사이의 갈등이 너무 심하고, 이를 진정시키려면 포용력 있는 신교도 군주가 필요하오. 나나 내 아내처럼.”
빌럼의 모친은 찰스 1세의 딸 메리 헨리에타다. 찰스 1세의 외손자로서, 빌럼에게도 영국 왕위를 계승할 권리가 있다.
“알고 있습니다. 총독께서는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왕위를 계승할 수 있는 후보자 서열 3위에 해당하시니, 충분한 자격이 있으시지요.”
1위는 제임스의 장녀 메리. 2위는 차녀 앤. 3위가 빌럼이다. 4위는 스페인 왕에게 시집간 오를레앙 공작의 장녀 마리 루이즈, 5위는 프랑스에서 나와 만났던 공작의 차녀 안 마리다.
이들 5명이 찰스 1세의 피를 받은 적손(嫡孫) 전부다. 하지만 신교도는 앞의 3명뿐이고 프랑스 공녀 두 사람은 다 가톨릭이다.
귀여운 아가씨였던 안 마리는 내가 러시아에 있던 1684년에 결혼해 사보이아 공작부인이 되었다. 그때는 그럴 생각도 안 들었지만, 만약 내가 안 마리와 연분을 맺었다면 잉글랜드 왕관을 노려볼 수 있었던 셈이다. 물론 성공할 가능성은 거의 없고, 받아도 내가 아니라 내 아들이 받는 거지만.
“가톨릭과의 공존은 신교도 군주가 가톨릭 신하를 허용하는 형태로만 가능하오. 가톨릭을 신봉하는 군주는 신교도 신하를 인정하지 않소. 프랑스가 그 좋은 사례 아니오?”
내가 스웨덴에 있는 동안 낭트 칙령이 마침내 폐기됐다. 프랑스에서 실질적으로 신교도가 탄압받기 시작한 지 한참 지났지만, 이제 개신교 신앙 자체가 형식상으로도 완전히 불법이 되고 만 거다.
지금 네덜란드는 프랑스에서 도망쳐 온 수천 명이나 되는 위그노 망명객들을 받아들이면서 환호하는 중이다. 대부분 상공업에 종사하는 고급인력이라, 네덜란드로서는 어부지리를 아주 톡톡히 누리는 셈이다.
“제임스 2세께서는 유능하고 공정한 군주라고 들었습니다만.”
“그건 사실이오. 나도 외숙부이자 장인이신 그분을 싫어하지는 않소. 하지만 그분은 분명 가톨릭 신자며, 만약 같은 가톨릭 신자인 루이 왕과 동맹을 맺어 우리를 공격한다면 끔찍한 상황이 닥칠 거요. 내 아내가 그 뒤를 이을 예정인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소.”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무래도 이쪽 세계에서도 명예혁명은 피할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막을 수도 없고, 막을 필요도 없고….
제임스 2세한테 딸들이 반역할 테니 상속권을 박탈하라고 말해 봐야 듣지도 않을 테고, 내가 개입한 사실이 알려지면 조선과 네덜란드 사이 관계만 확 나빠질 거다. 게다가 조선에 안전하게 돌아가기도 어려울 수도 있다.
형황이 나를 나무라진 않을 거다. 다른 나라 내정에 개입하지 않는 게 옳지만, 만에 하나 편을 든다면 부왕 편을 드는 게 반기를 든 공주 편을 드는 것보다 사리에 맞으니까. 하지만 메리를 지지하는 신교도들이 내게 앙심을 품을 텐데, 과연 날 무사히 돌아가게 해줄까?
안 그래도 영국인들은 내가 가톨릭 신자라고 의심하는 참이다. 당연히 측근으로 데리고 다니는 아라미츠 때문이다. 지금이야 동방에서 온 손님이라고 그냥 두는 거지만, 노골적인 정치적 개입을 한다면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제임스 2세는 이미 55세다. 이제 곧 태어날 아들이 충분히 성장하기 전에 죽을 공산이 크다. 그 점을 생각하면, 제임스 2세가 죽자마자 반란이 일어나서 왕자는 쫓겨나고 큰누나인 메리, 혹시 메리가 죽었다면 작은누나 앤이 즉위할 가능성이 99%다.
“지금 막아봤자 반란이 10년 뒤로 미뤄질 뿐이라면, 안 막는 게 맞지.”
그 10년으로 뭔가 조선에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면 혹시 모르겠다. 하지만 영국 국왕 자리가 바뀌는 게 10년 미뤄진다고 해서 딱히 조선이 득을 볼 것도 없다.
그래서 잉글랜드와 제임스 2세에 관한 이야기는 그 정도로 그쳤다. 네덜란드와 조선, 두 나라 사이 관계를 주제로 한 이야기가 훨씬 더 길었다.
“보고를 들으니 대공께서는 들르는 곳마다 모든 것을 무척 열심히 익히신다지요. 여기서 배운 것들을 귀국하신 뒤에 잘 활용하실 수 있으면 좋겠소.”
“총독께서 베풀어주신 배려 덕분입니다.”
빌럼은 표트르에게는 본인의 원에 따라 동인도회사 조선소에서 일하면서 조선술을 익히게 해주었다. 내게는 동인도회사 본사나 네덜란드 은행 등 여러 경제 기관을 견학할 수 있도록 신경을 써 주었고.
물론 1년 4개월 만에 뭔가 엄청난 지식과 경험을 쌓을 수야 없었다. 하지만 내가 모르는 분야인 경제나 금융에 관한 지식을 좀 더 얻은 것만 해도 충분한 이득이었다. 더불어서 꽤 많은 책도 사들였다. 네덜란드는 지금 유럽의 출판 중심지 중 하나니까 말이다.
“알렉세이예프 경 몫의 책도 꽤 샀다면서요? 부담이 되지 않소?”
책 사러 다닐 때는 종종 표트르가 같이 다녔다. 표트르는 최신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서적 구입에도 관심이 컸다.
“형제에게 돈 몇 푼 빌려주는 정도가 뭐 중요하겠습니까.”
표트르 일행이 가져온 모피도 적은 양은 아니었다. 하지만 표트르가 러시아에 가져간다며 책과 잡동사니를 마구 사들이다 보니, 6개월에 한 번씩 교대할 수행원이 올 때마다 추가로 오는 모피로는 감당이 안 됐다. 그러면 표트르는 당연하다는 듯 내게 손을 벌렸다.
“동양 고전에서 말하기를, 밥은 굶어도 책은 사라고 했습니다. 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라고 하는 말도 있지요. 그렇게 중요한 책을 사겠다는데, 어찌 도움을 아끼겠습니까.”
현대에 있을 때는 나도 밥을 굶어 가면서 책값을 모으곤 했다. 아르바이트 안 해도 용돈 타서 살 수 있긴 했지만, 갑자기 쓸 돈이 늘어나면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내가 지금 쓰는 금화 몇 개가 장차 러시아와 훨씬 더 깊은 교분으로 돌아오리라는 생각을 하면 별로 아깝지도 않다. 러시아 차르를 겨우 책 몇 권 값으로 매수할 수 있다면, 그게 얼마나 싼 값인가 말이다.
“하지만 기왕 배를 주문하시면서 프랑스에서 건조한 건 유감이오. 우리 동인도회사에서도 훌륭한 상선을 많이 건조하는데 말이오. 배 한 척 건조에 5주면 충분하고, 적당한 가격으로 아주 훌륭한 배를 제공했을 텐데.”
“하하, 그만 제가 유럽에 막 도착한 상태에서 멋도 모르고 그쪽에서 꼬드기는 데 넘어가 계약을 덜컥 체결해버린 바람에 말입니다. 지금이었다면 당연히 프랑스가 아니라 네덜란드 조선소에서 배를 샀을 겁니다.”
빌럼은 딱 한 가지, 내가 프랑스에 배를 주문한 데 대해서는 서운한 감정을 드러냈다. 돈 때문만은 아니다. 지금 프랑스가 네덜란드의 최대 적국이라는 점이 크다.
하지만 네덜란드는 이제 슬슬 지는 해가 되어가는 참이고, 프랑스는 유럽 최강국으로서의 위치를 다져가고 있다. 루이 14세가 조선에 대규모 고문단도 보내주기도 했으니까 나로서는 딱 1척, 그것도 유사시에 전함으로까지 쓸 배를 원한다면 프랑스를 선택하는 게 나았다.
내가 주문한 배는 사실 상선치고는 좀 많이 크다. 무게 1,200톤에 화포는 40문을 싣는다. 승무원 숫자는 200명, 필요하면 전투원을 포함해 200명 이상 더 태울 수 있다. 지금 조선 수군이 보유한 가장 큰 전함보다 대포 숫자는 적어도 선체는 더 크다.
크기가 있다 보니 배를 건조하고 대포를 비롯한 장비를 사들이고 선장과 선원을 고용하는데 4만 두카트나 들어갔다. 출범 준비를 마친 내 배 동현(東賢)은 조선에 가서 팔 상품과 내가 보내는 선물을 가득 싣고 거의 2년 전, 1686년 7월에 프랑스를 떠났다.
지금이 1688년 5월이니, 지금쯤이면 이미 조선에 도착했을 거다. 내가 시킨 대로 바닥에 동판은 잘 붙이겠지.
게다가 내가 고용한 선장도 네덜란드에서 싫어할 만한 사람이다. 선장의 이름은 장 바르, 덩케르크 태생으로 36세 된 젊은 사략선 선장이었다.
조선에 가는 프랑스 고문단은 내 배보다 한참 앞서서, 내가 스웨덴에 있을 때인 1685년 7월에 프랑스를 떠났다. 지금은 이미 조선에 도착했을 터, 과연 형황을 만나서 내 이야기를 어떻게 전했으려나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