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940
3부 05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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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조달 및 편성에 시간이 걸린 관계로, 루이 14세가 약속한 고문단은 내가 프랑스를 떠난 지 2년하고도 4개월이나 지나서 닻을 올렸다. 출범이 늦어진 게 좀 아쉽기는 하지만, 우리 쪽에서 돈을 대는 것도 아니고 저쪽에서 알아서 보내는 거니 그것도 감사할 수밖에.
당시 나는 스웨덴에 있었고, 당연히 고문단 편성 및 파견에 전혀 영향을 미칠 수 없었다. 아라미츠가 소개해준 사람들의 명단을 프랑스에 있을 때 루이 14세에게 제출하기는 했지만, 과연 그들이 최종 명단에 다 들어갔을지도 확신할 수 없었고.
어쨌건 최종적인 사절단 규모는 내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컸다. 편성에 3년 가까이 걸린 이유를 알 수 있을 만큼 말이다.
“배 4척, 인원 800명이라니. 그 정도 대규모일 줄은 정말 상상을 못 했네.”
“폐하께서 기왕 보내는 건 제대로 보내야 한다고 작정하셨으니 말입니다.”
다토스와 드 포르토도 정말 오랜만에 보는구나. 이들 두 사람은 나와 함께 조선으로 갈 예정이라 루이 14세가 직접 보낸 사절단에는 끼지 않았다. 그리고 각자의 자리에서 일하며 내 연락을 기다리다가, 잠시 만나러 온 참이다.
“요즘은 프랑스인으로서 런던 길거리를 돌아다니기가 좀 거북합니다만, 5년 만에 전하께 인사를 드릴 기회가 왔는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요. 겸사겸사 건너왔습니다.”
“고맙네.”
그동안 다토스는 공병연대장으로 승진했고 드 포르토는 파리 고등법원 조사부에서 열심히 경력을 쌓고 있었다. 이들은 루이 14세가 진행하는 사절단 구성에 관해서도 편지를 보내서 내게 알려주었었다.
“조선 주재 대사로 부임한 알렉상드르 슈발리에 드 쇼몽 후작은 본래는 해군 출신으로, 무척 유능하고 근면한 장교였습니다. 폐하께서 굳이 해군 장교 출신자를 대사로 임명하신 건, 이번 고문단이 맡은 주된 임무가 조선 해군을 강화하는 일이라서가 아닐까 합니다.”
“함대사령관은 따로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예, 그렇기는 합니다. 하지만 대사가 해군에 관해 알고 있으면 그 업무가 훨씬 수행하기 쉬워지지 않겠습니까.”
루이 14세가 쇼몽 후작에게 부여한 임무는 크게 세 가지였다고 했다. 첫째는 친서 전달과 두 군주 사이의 유대 강화, 둘째는 영국과 네덜란드를 앞질러서 유럽에서 조선의 제일가는 우호국으로서의 위치 확보, 셋째는 파리 외방전교회의 선교 허용이다.
“첫째와 둘째는 금방 이해가 가는데 셋째는 편지만으로는 이해가 잘 안 가더군. 조금 더 상세한 설명을 들었으면 하네.”
프랑스는 스페인처럼 선교에 목을 매는 나라가 아니다. 제국주의 시대에 선교사들을 침략 명분을 만드는 미끼로 활용하긴 했지만, 말 그대로 미끼로 활용했던 것뿐이다. 선교 자체에 큰 의미를 두지는 않았다고 기억한다.
“사실, 폐하께서는 가능하다면 조선 국왕께서 개종하시기를 바라십니다. 더 견고한 동맹을 체결할 수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그게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도 충분히 이해하시지요. 그래서 차선책으로 파리 외방전교회를 통한 선교 확대라도 허용해달라 청하신 겁니다.”
“그런가? 알겠네. 역시 동맹이 목적이군. 그런데 왜 하필 파리 외방전교회지?”
파리 외방전교회는 프랑스인 예수회원들이 30년쯤 전에 만든 조직이다. 샴(태국)을 주된 거점으로 삼아 아시아 선교에 주력하고, 프랑스인 사제만 회원으로 받는다. 실제 역사에서 가톨릭 전파에 큰 역할을 했고, 19세기 이후에 한국에서도 활발히 활동했었다.
“조선에서 예수회 이외에 다른 수도회는 입국조차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공식적인 사유입니다. 예수회의 분회(分會) 격인 파리 외방전교회라면 조선인들에게 비교적 거부감을 사지 않고 활동을 허락받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럼 비공식적인 목적은?”
빤한 대답이 나올 것 같았지만 그래도 확인은 해두고 싶었다. 역시나 드 포르토가 미소를 지으며 내놓은 답은 내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프랑스인이니까요.”
이제껏 조선에 찾아온 예수회 선교사들은 대개 스페인 출신이었고, 포르투갈과 이탈리아 출신이 약간 섞여 있었다. 다만 예수회가 세속 권력으로부터는 완전히 독립된 존재다 보니 딱히 친스페인 성향을 띠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친프랑스일 리도 없다.
“프랑스인 사제들이 조선으로 건너와 사목한다면, 적어도 조선인 신자들이 반프랑스적인 성향으로 기울어지지는 않을 겁니다. 국왕 폐하께서는 조선과 계속 우호적으로 지내고 싶어 하십니다.”
“그런 속셈을 그대가 내게 이렇게 까발려도 되겠는가?”
내 질문을 받은 드 포르토가 웃었다.
“국왕 폐하께서 품고 계신 진심을 더 많은 분이 알아주실수록 그 심정이 더 잘 전해지지 않겠습니까?”
“그도 그렇군. 세상에는 눈앞에다 대놓고 들이밀지 않으면 도무지 이쪽 뜻을 알아먹지를 못하는 자들이 한둘이 아니니까.”
게다가 사절단은 이미 조선에 도착했다. 그리고 나는 언제쯤 귀국할지 아직 기약이 없는 상황이다. 그러니 내가 프랑스 측 속셈을 파악한다 해도 본국에 알려 대책을 강구할 수단도 없는 셈이다.
“지금쯤은 다들 열심히 일하고 있을 겁니다. 쇼몽 후작은 조선 국왕께 프랑스와 동맹을 맺으면 어떤 유리한 점이 있는지 설명하고 있겠고, 후작을 따라간 기술자와 상인들은 조선 사회에 새로운 문물을 전파하고 또 가져올 것을 구하느라 노력하고 있겠지요.”
“함대사령관은 조선 함대를 거느리고 전술훈련을 벌이고 말인가?”
“아마도요.”
루이 14세가 보낸 함대는 함포 64문을 탑재한 2급 전열함 1척, 40문을 탑재한 4급함 1척, 16문을 탑재한 소형선 2척이다. 이만한 규모라면 프랑스 배들만으로도 전술을 시연하기 충분하고, 조선 함대를 동원하면 기함 노릇을 할 수 있다.
“함대사령관 겸 군사고문단장, 클로드 드 포르뱅 백작은 나이는 젊으나 총사대 출신에다, 해군 장교로 여러 차례 전선에 나서 용명을 떨친 지휘관입니다. 조선 해군을 육성하는 데도 큰 공헌을 할 수 있을 겁니다.”
포르뱅 백작은 아메리카와 알제리에서 해적 소탕에 종사한 전적이 있다고 했다. 영국이나 네덜란드 같은 해상의 강적들과 싸운 경험은 아직 없지만, 전술적인 지식은 충분하고 배를 움직이는 기술도 능숙했다.
“실전 경험에서는 내가 고용한 장 바르 쪽이 더 나을 것 같군. 네덜란드 해군에서 전투를 배운 데다, 사략선장으로 수없이 배를 나포하기도 했으니.”
장 바르가 털고 다닌 배는 한자 동맹, 스페인, 바르바리 해적 등 다양했다. 심지어 자신이 한때 복무했던 네덜란드 상선단도 서슴없이 털었다. 그런데도 내가 장 바르를 고용했으니, 빌럼 3세가 기분이 상했던 것도 무리는 아니다.
다만 장 바르는 배라면 무조건 털고 다니는 해적은 아니다. 사략선은 국가의 허가를 받고 전쟁 상태에 있는 상대국의 배만 공격하는 합법적인 교전권자니까 말이다. 장 바르는 자기 나라인 프랑스가 전쟁을 벌일 때, 교전 중인 적국의 배만 턴 사람이다.
내가 일반 상선 선장이 아니라 사략선장을 고용한 이유는 간단했다. 여차하면 전함으로 사용해야 하는데, 전투 경험이 없는 선장을 기용할 수는 없지 않은가. 게다가 조선에 가는 항로에서는 해적이 바글거리는 말라카와 남중국해를 지나야 한다.
정말이지, 정호찬에게 그 동네 상황에 관해서 처음 들었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떠올리면 지금도 등골이 선뜻하다. 세상에, 정일한 후손들이 해적 두령이 되었을 줄이야!
“대남도의 정씨 일가가 해적이 되었다고?!”
“오는 길에 보시지 않았습니까?”
성친왕이나 봤겠지, 나는 하나도 못 봤다. 머릿속을 오만가지 잡생각이 뱅뱅 돌고 제대로 된 답은 나오지도 않는데, 정호찬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고 하던 말을 계속했다.
“선조께서 정씨 일가를 억눌러 그 세력을 줄이시고 대중성주 직책을 회수하시니, 연로한 전 성주 정준석과 그 후계자인 장자 정영훈은 군말 없이 어명에 따라 성주의 인수(印綬)를 바치고 성문을 열었습니다. 하지만 그 차자 정종훈은 크게 반발하여 명을 거부하였습니다.”
연이는 대남도에 관리와 백성을 계속 보내면서 본격적인 개척에 나섰다. 상품작물인 차와 커피, 사탕수수를 더 많이 재배하고 본국에서 일어나는 기근을 해결할 벼 생산을 늘리려면 꼭 필요한 일이었다. 그러자면 반 독립적인 호족 세력을 타파해야 했다.
다만 성주 직위를 반납한 뒤에도 토지와 노비 같은 재산은 인정을 받았으므로, 정준석과 정영훈은 그대로 대중성에 남아 대한의 충실한 신하가 되기로 했다. 하지만 정종훈은 이를 거부했고, 신천지를 개척한다는 명목으로 자기를 따르는 부하들과 함께 대남도를 떠났다.
정종훈이 이끌고 나간 세력은 배만 11척, 사람 수는 조선인과 토인, 왜인을 합쳐서 2천여 명에 달했다. 태반이 숙련된 뱃사람과 전사들이었다.
“그게 30년 전 일이고, 지금 정씨 일가가 거느린 부하 수는 만여 명이 넘습니다. 저들이 진을 친 본거지는 적두도(赤頭島)라 하는데, 침입하려는 자는 모두 칼로 머리를 찍어 붉은 피로 머리를 붉게 물들인다고 하여 적두도라 합니다”
적두도가 도대체 어디인가 했는데…알고 보니 ‘홍콩’이었다! 어떤 놈인지 몰라도 홍콩이라 하는 원래 이름에서 ‘붉은 콩’을 연상해서 ‘적두도(赤豆島)’라고 이름을 붙였다가, 한국어로 적은 발음은 같으나 한자는 다른 적두도(赤頭島)로 바뀐 모양이었다.
지금 정종훈은 정지룡으로 이름을 바꿨고, 홍콩을 본거지로 하되 인도네시아 쪽에 멀티도 두엇 확보한 대해적이 되어있었다. 여전히 대남도에 사는 자기 본가를 생각해서 조선 배는 건드리지 않는다지만, 모를 일이다. 소식이 끊어진 상선들이 어찌 되었는지 알 게 뭔가.
해적 두목이 되었다고 하는 정지룡을 생각할 때마다 그때 꾼 꿈이 떠올랐다. 정씨 일가의 후예가 된 내가 전함 천 척에 10만 대군을 싣고 한양을 들이치던 그 꿈 말이다. 정종훈 그 자식, 하필이면 자기 예명을 정지룡이라고 짓다니….
그런 험한 바다를 지나려면 내 배를 지휘하는 선장도 깡이 두둑하고 싸움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런 자가 필요하다. 프랑스에서 수소문한 결과, 지금 고용할 수 있는 선장 중에 가장 적합한 후보가 장 바르였다.
더구나 조선에서도 사략은 가능하다. 주산진을 거점으로 하는 조선 수군과 다국적 해적이 존속하는 비결이 바로 중국 해안선 일대를 노략질하는 것 아니던가? 장 바르가 지휘하는 내 배도 그 일대에서 얼마든지 부수입을 얻을 수 있다.
해적을 털어 얻는 수입이 얼마나 짭짤한지 증명하는 사례는 과거 이기빈의 원정이 있다. 과연 이기빈이 정말로 해적만 털었는지는 그 누구도 모르지만 말이다.
“사략선 활동과 정규 해군의 작전이 같을 수는 없지요. 전하께서 원하시는 건 동남아시아 방면에서 북상하는 영국이나 네덜란드 함대와 교전할 수 있는 전력을 구축하는 게 아니셨습니까? 그러자면 포르뱅 백작과 그가 데려간 해군 관료들 쪽이 훨씬 필요하실 겁니다.”
“나도 아네. 드 포르토 자네 말이 옳아.”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이 일어나려면 아직 12년 남았다. 그만한 기간이면 우리도 충분한 함대를 건설할 수 있다. 형황이 해군력 증강에 동의한다면 말이지만. 제대로 전쟁에 한 몫 끼려면, 적어도 전열함 10척 정도는 만들어놓아야 할 거다.
해군력을 증강할 명분 자체는 있다. 기존 전함인 갈레온이 전함으로서는 뒤떨어진 성능인 건 분명하다. 그리고 후송이나 서가 우리를 뛰어넘기 위해 유럽에서 최신예 전함을 사들일 위험성이 전혀 없다고도 할 수 없다.
“장조께서 경인왜란을 치르실 때도 왜적이 유럽 해적을 고용하여 자기네 편에서 싸우도록 하지 않았던가?”
“옳습니다. 돈만 주면 기꺼이 배도 팔고 사람도 팔 자들은 지금도 사방에 널렸지요.”
어떻게든 형황이 해군력을 증강하겠다고 결정하면, 다음 차례는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에 뛰어들어서 필리핀을 획득하게 하는 거다. 내가 그때까지 충분한 정치적 입지를 확보하기만 하면, 형황을 설득할 자신은 있는데….
‘하지만 예왕은 분명히 내 의견에 반대하고 나서겠지.’
이제껏 파악한 대로라면, 조정 중신이나 종친 중에 내 편은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할 거다. 본국에 있을 때 뭐 예쁜 구석을 보인 게 있다고 그 양반들이 내 지지자가 되겠는가.
하지만 예왕은 국내에 있고, 지금도 열심히 사방으로 손을 뻗치며 자기 세력을 구축하고 있을 거다. 둘째 조카 경친왕이 이미 홍역으로 죽었다니, 황태자만 죽으면 자기가 황태제가 되어 제위를 물려받을 수 있으리라고 여기겠지.
‘나는 귀국하다가 김종건에게 죽으리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김종건이 내 편으로 돌아선 줄은 모를 테니까, 내가 말짱하게 귀국하면 얼마나 놀랄까? 그리고 정치적으로 어떻게든 자기를 돋보이고 날 깎아내리느라 기를 쓰겠지. 나한테 나라를 다스릴 능력이 없다고 보여야 하니까 말이다.
“그나저나, 전하께서는 네덜란드에 1년이 넘게 계셨으면서 왜 프랑스에는 안 오셨습니까? 지금은 우리와 네덜란드가 전쟁을 치르는 중도 아니니까 얼마든지 오실 수 있었는데요.”
드 포르토가 열심히 설명하는 동안에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던 다토스가 한 마디 던졌다. 나름 나와 친구가 되었다고 생각하던 이들로서는 충분히 서운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나도 파리에 가서 자네들을 만나고 싶기는 했네. 하지만 네덜란드에서 이것저것 처리할 일이 좀 많았거든.”
암스테르담에서 파리를 왕복하면 적어도 한 달은 까먹게 된다. 왕복에 필요한 일정에다, 도착한 뒤에 최소한 1주일에서 열흘쯤은 베르사유에 머물러야 할 게 아닌가. 그렇게 시간을 쓸 만큼 프랑스에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더구나 베르사유에 가면 시도 때도 없이 설사를 싸고 지독한 입내를 풍기는 루이 14세를 봐야 한다. 5년 전, 1683년에 내가 프랑스를 떠날 때만 해도 그렇게까지 심하진 않았는데.
소문에 따르면, 루이 14세는 지금 이빨을 몽땅 뽑아버렸고 수시로 관장약을 먹어 위장을 비운다고 한다. 그 결과가 소화불량으로 인한 심한 입내와 시도 때도 없는 설사인 거고.
5년 전 프랑스 방문에서 루이 14세한테 딱히 악감정이 쌓인 건 없다. 하지만 그때 쌓은 좋은 추억을 망가뜨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똥 냄새를 풍기는 루이 14세를 굳이 다시 찾아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옛날의 깔끔한 모습으로 기억하자.
“음, 그러고 보니 네덜란드에 머무는 동안에 수집한 물건들을 그대들에게 좀 보여주도록 할까. 서재로 가세.”
서재에는 네덜란드에서 사들인 갖가지 책 3천여 권과 그림 백여 점이 쌓여 있다. 그림도, 책도 제대로 늘어놓을 형편이 아니라서 유감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