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948
3부 066화
2.
알렉상드르는 배만 만들 줄 아는 게 아니라 조선소 설계에서도 전문가급이었다. 지선성에 있는 대장장이들에게 필요한 부품을 주문해 가면서 온갖 설비를 다 만들었다. 하늘을 찌를 듯 치솟은 기중기를 보니 절로 찬탄이 나왔다.
“저 기중기 동력원은 뭔가?”
“소를 써서 움직이게 했습니다. 소 10두를 부려서 가동하면 20톤짜리 자재까지 들어 올릴 수 있습니다.”
소 1마리 보고 짐 2톤을 그냥 들어 올리라고 하면 턱도 없겠지. 하지만 도르래를 잘 쓰면 그 정도는 얼마든지 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 이래서 공학자란 귀중한 존재다.
그동안 미주에서 자체적으로 건조한 배는 내가 조금 전에 정자에서 내려다본 것 정도인, 연안을 오가며 고기를 잡고 약간의 화물을 나르는 정도 배들이었다. 그것도 죄다 전통 양식 한선(韓船)이었으니, 백 년에 걸친 개화가 도리어 나라 밖에서 큰 영향을 못 미친 셈이다.
이는 조정 탓이 크다. 양선을 건조할 수 있는 기술인력을 죄다 본국에 모아놓고 미주에는 보내지 않은 결과니까 말이다. 그런데 또 이게 이유가 없는 건 아니었다.
“대총관에게 물으니 양선을 못 만드는 건 자재 조달이 어려운 탓이 크다 하더군.”
목재야 남아돈다. 사냥터가 없어지는 데 따른 인디언들의 반발이 문제기는 하지만, 새로 농지로 개간하는 땅이나 간벌을 통해 얻는 목재만 해도 상당한 양이다. 조선 조정은 나무를 아껴야 한다는 방침을 미주에서도 꼭 지키게 하고 있어서, 민둥산은 절대 만들지 않는다.
“쓸만한 철재는 모두 본국에서 태평양을 건너와야 하니, 한 척에 수 톤씩 써 가면서 배를 건조할 여유가 부족했던 건 사실이지.”
미주에는 부족한 물건 천지다. 차와 커피 등 기호품 외에도 철재, 비단, 포목, 화약, 종이, 문구, 가구처럼 자급하지 못하고 본국에 의존해야만 하는 물품이 수십 가지가 넘는다. 특히 철재는 도구를 제작하는 중간재이면서 그 자체로 아주 중요한 교역품, 하사품이다.
미주에서 철을 직접 생산하려는 시도는 지난 70년 내내 실패로 돌아갔다고 했다. 사철을 약간 찾아내기는 했지만 질이 나빠서 잡철이나 조금 만들어냈을 뿐이고, 제대로 된 철광은 하나도 찾지 못했다.
다행히 우리 조선소는 그 문제를 피할 수 있었다. 공사가 한참 진행되던 작년 가을, 우리 동현이 건너오면서 수십 톤이나 되는 철괴를 한 번에 실어다 준 덕분이다. 덕분에 처음부터 숨통이 확 트였다.
물론 작년까지 동현을 운용하는 주체는 내가 아니라 호부였다. 그러므로 그 철이 전부 내 몫은 아니었다. 하지만 철재 분배권을 쥔 미주대총관 이종덕과 잘 교섭한 덕분에 3천 관(약 11톤)을 먼저 배분받을 수 있었다. 그만하면 배 두 척 정도는 무난하게 건조할 수 있다.
“철을 우리가 자급할 수 있다면 좋긴 하겠지만….”
철재를 비롯한 물자 수급이 어려우니 지금 당장이야 확실히 불편하다. 하지만 북태평양을 조선의 호수로 만들겠다는 내 소망을 유지하려면 이런 경제적 불편은 차라리 감수할 만한 핸디캡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단적으로, 미주가 본국 없이 얼마든지 풍요롭게 살 수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당연히 간섭 안 받고 살겠다며 독립을 선언하겠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미주는 최대한 늦게까지 본국에 주요 물자 공급을 의존해야 한다. 그래야 본국이 필수 물자 공급권을 지렛대로 삼아서 미주의 독립 요구를 제어할 수가 있다. 경제적으로 제어하는 게 무력으로 대놓고 찍어누르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지금도 미주 전역에 수많은 향교를 설치하고 모든 관리와 제관들에게 매일 서쪽을 향해 절하게 하며 출신을 잊지 말라고 강조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게 얼마나 효과가 유지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현재 조선령 미주에 거주하는 인구는 남북 미주 ? 덕진성(시애틀) 일대가 북미주, 지선성(샌프란시스코) 일대가 남미주 ? 를 합쳐 그새 48만가량으로 늘었다. 북미주가 대략 조선인 이주민 7만에 토인 7만, 남미주가 조선인 25만에 토인 9만이다. 혼혈은 조선인으로 친다.
이주민이 남미주에 몰린 건 금이 쏟아져나올 뿐만 아니라 농사에 더 적합한 기후 탓이다. 북미주는 농사보다는 어업과 포경업이 더 중심이 되고 있다. 아무래도 그쪽으로 가는 사람 숫자가 남미주로 가는 사람보다 더 적을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아직은 조선에서 직접 이주한 1세대 인구가 더 많다. 경신대기근 시기 대량이주가 이루어진 이후에 시간이 많이 지나지 않아서다. 이들은 본국에 대한 향수도, 애정도, 임금에 대한 충성심도 아직 강하다.
하지만 미주 출생자가 인구 중 다수를 점하는 때가 오면 달라지겠지. 태평양 건너에 있는 임금을 낯선 존재로 여기고, 본국으로부터 독립을 원하는 목소리도 차츰 생겨날 거다. 그게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 일어날지, 내 다음번 생이거나 그 중간 시기일지는 모르겠다.
과연 내 후계자들은 어떤 길을 택할까. 각 지역 백성들에게 권한과 책임을 나눠주고 마치 영국처럼 대한연방을 건설할까? 아니면, 하나의 태황 아래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거대한 대한제국을 유지할까?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단 하나 바라는 게 있다면, 동포들끼리 패가 갈려 내란을 벌이는 것만은 피했으면 좋겠다. 서로가 경제적으로 밀접할수록 싸움이 벌어질 위험성은 낮아질 테고, 그러려면 꼭 필요한 게 더 많은 배다.
“우리 조선소에서 한 번에 건조 가능한 선박 수량은 얼마나 되는가?”
“3백 톤급 범선 3척을 동시에 건조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일에 능숙한 배목수를 충분하게 확보하지 못한지라, 완성하려면 4개월까지 각오해야 할 듯합니다. 물론 모든 자재가 원활히 공급된다는 전제가 필요합니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그보다 큰 5백 톤급 배를 건조하는 데 5주면 충분하다고 했던 걸 생각하면 한숨이 난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동인도회사는 숙련된 인력과 수백 년에 걸친 조선소 운영 노하우를 갖추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둘 다 가지고 있지 않다.
“첫 시작이 그 정도라면 그래도 괜찮군. 일단은 한 척씩만 건조해보면서 선장(船匠)들의 숙련도를 올리고, 조선소 운영이 제대로 궤도에 오르거들랑 건조 규모를 차츰 늘려나가도록 하세.”
동현 같은 대형선이 아니라 3백 톤짜리 ‘작은’ 배를 만드는 건, 그게 요즘 시대에는 가장 실용적인 상선 크기라서 그렇다. 배 크기에 따른 건조비, 건조에 걸리는 시간, 승조원 수에 따른 인건비, 화물 운송량에 따른 수익 등등을 따졌을 때 그 정도면 가장 수지가 맞는다.
애초에 동현은 내가 여차하면 전함으로 전용할 생각으로 작정하고 만든 배였다. 전적으로 상선 용도로만 쓸 배들과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하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원활한 철재 공급만 이뤄진다면 장차 1년에 12척까지 건조할 수 있을 겁니다. 인원을 더 보충하고 설비를 증설하면 더 만들 수 있고 말이지요.”
조선소에서 일할 인력을 구하고 목재 공급원을 확인하느라 알렉상드르도 그동안 바빴다. 조선소 공사를 진행하는 틈틈이 나와 함께 나가 북쪽에 있는 덕진성 일대까지 돌아다녔다. 물론 나는 그것 외에도 조사하고 파악할 게 많았지만 말이다.
“좋네. 우리가 직접 움직일 배는 너댓 척이면 충분해. 나머지는 전부 팔아서 미주 전체의 선박 보유량을 늘리는 거야. 그러면 본국과 미주 사이의 왕래도 더 원활해지고 짐과 사람이 오가는 것도 더 편리해질 걸세.”
미주를 개척하자면 더 많은 이주민이 필요하다. 본국에서 기근을 해소하자면 미주에서 더 많은 식량을 운송할 필요가 있다. 고로 더 많은 배가 필요하다. 이미 말했듯이 이는 본국과 미주를 더 긴밀하게 연결하는 데도 도움이 될 거다.
“저는 한 가지 면에서 좀 걱정이 됩니다. 과연 우리가 만드는 배를 다 팔 수 있을까요? 조선 본국에 있는 조선소들과 경쟁할 수 있겠습니까?”
“할 수 있네. 본국에서는 미주에 배를 팔지 않거든.”
이미 태평양을 왕래하는 기존 상선단은 분명히 많이 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전부 본국 상단이 운영하는 배들이다. 그동안 알아본 바에 따르면 본국에 있는 조선소들은 배를 모두 본국 사람들한테만 팔았다. 수군, 호부, 외수사 등등.
애초에 연해주와 원산에 있는 양선 전문 대형 조선소는 모두 국영이다. 군산에 하나 있는 내달 상단 소유 조선소도 자기네와 연관이 있는 상단에만 팔고 있다.
“경쟁자를 키우지 않겠다는 의도겠지요. 담합이라고 봐야 할 겁니다.”
네덜란드에서 고용한 회계사, 헨드릭 피터슨이 옆에서 끼어들었다. 견서사로 돌아다니던 시절의 돈 관리 정도는 정호찬에게 ? 일단은 서장관이니 ? 맡겨도 됐지만, 본격적으로 뭔가 사업을 벌이려면 전문가가 필요해서 네덜란드에서 새로 고용한 사람이다.
“미주에서 자체적으로 상선단을 보유하면 본국에 있는 상인들이 물품에 마음대로 가격을 매길 수 없게 됩니다. 더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해, 미주에서 사겠다는데도 그동안 배를 팔지 않았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습니다.”
“나도 같은 생각일세.”
조선과 미주 사이를 오가는 항로는 돈이 쏟아지는 항로다. 물품 운반 이외에도, 조선에서 건너가는 이주민들에게 이주비도 받는다. 게다가 북태평양은 해적도 없는 깨끗한 항로니까 무장에다가 돈을 낭비할 필요도 없다.
말라카나 오만처럼 해적이 들끓는 바다라면 상선이라 해도 자위를 위해 중무장해야 한다. 당연히 그만큼 상품을 덜 실어야 하고 이윤도 줄어든다. 하지만 본국과 미주를 오가는 조선 상선은 과도하게 무장할 필요가 없다. 정말 땅 짚고 헤엄치는 돈벌이다.
“미주 사람들도 그 사정을 빤히 알지만, 배를 구할 수 없어서 끼어들 수 없었지. 여기에서 우리가 만든 배를 합당한 가격에 팔면 얼마든지 살 걸세.”
혼자서 배 한 척을 살 자본이 없는 자들에게는 지분을 나눠 파는 방법도 있고, 세를 받고 빌려주는 방법도 있다. 다테 집안이 일본 막부를 상대로 하고 있듯이 말이다.
미주가 자체적으로 상선단을 보유하면 본국에 있는 상선단과 경쟁 관계가 성립한다. 그럼 양쪽 모두 운임을 내릴 수밖에 없을 것이고, 고객들은 그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미주를 영원히 조선의 일부로 둔다는 내 계획과 모순되지 않느냐고 할 수도 있다. 상선단 때문에 미주가 더 부유해진다면, 더욱 빨리 독립을 추구할지도 모르지 않냐고 말이다. 허나 그건 틀린 생각이다.
애초에 그 번영과 부는 본국과 미주 사이에 평화가 있을 때나 가능한 거다. 상선이 오갈 수 없게 된다면 교역도 없고 부도 없다. 미주가 반기를 들면 교역은 끊어지고 상선은 모두 격침되거나 나포된다. 해군력에서 본국과 상대가 되지 않으니까.
‘평화가 번영의 길을 이끈다는 걸 서로가 알아야지.’
그러기 위해서 식민지에도 어느 정도는 과실을 나눠주어야 한다. 본국에서 식민지를 그저 착취하기만 한다면 뒷일이야 어찌 되건 반발해서 들고 일어날 수도 있으니까. 그러기 전에 적절한 몫을 줘서 현상을 유지하고 싶어지게 만들어줘야 한다.
“제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당장이라도 배를 사겠다는 주문이 적어도 7척 분량은 들어와 있습니다. 선원 조달은 조금 어렵겠습니다만.”
“선원은 본국에서 빼 올 수 있네. 그리고 여차하면 서반아 쪽에서도 구할 수 있고.”
자메이카, 멕시코를 거치는 동안 항구에서 노는 많은 선원을 봤다. 돈만 주면 세상 어느 바다든 달려가서 일할 놈들이다. 물론 그중에 어떤 불량품이 섞여 있을지 모르지만, 그거야 최대한 검증을 거쳐 가며 선발해야겠지.
그리고 조선에도 선원은 많다. 양선을 운용한 세월이 근 80년이 되어가는 만큼 당장 배를 타지 않더라도 쉬는 인원을 얼마든지 모을 수 있다. 배는 본국에서 독점하더라도 사람까지 독점할 수는 없으니까.
“가을에 동현이 올 때 숙련된 선원 50명을 데리고 오기로 했다. 그만하면 여기서 건조한 배를 사용해서 새 선원을 교육하기에 충분할 거다.”
작년까지는 동현을 호부에서 운영했다. 분명 선주는 나지만, 내가 본국에 없으니 징발해 대리로 운영한다는 명분이었다. 작년 10월에 지선성에서 만났을 때, 다음 항해부터는 내게 반환한다는 확약을 받았다. 더불어서 씁쓸한 소식도 있었다.
“내 배를 4년 반 만에 처음으로 보다니.”
동현이 완성되었을 때 나는 네덜란드에 막 도착한 참이었다. 출범 전에 브레스트에 보러 가려면 갈 수도 있었지만 그럼 루이 14세도 만나러 가야 했던지라….
그때 동현은 매년 1회씩 수행하는 본국과 미주 사이를 왕복하는 임무를 맡아 두 번째로 건너온 참이었다. 선창(船倉)에는 바닥짐을 겸해서 싣고 온 철괴와 벽돌, 기와가 가득했다. 미주에서 아직 생산하지 못하는 귀한 물품인 화약과 종이, 면포도 잔뜩 싣고 있었다.
배가 선창(船艙)에 닿자 선장이 내려서 내게 허리를 굽혔다.
“전하, 처음 뵙겠습니다. 선장 장 바르입니다.”
나는 장 바르하고 직접 만나서 계약하지 않았다. 대리인을 통해 계약을 체결한지라 나는 장 바르를 만난 적이 없었다. 이때가 첫 만남이었다.
“지난 4년 동안 고생이 많았소.”
“감사합니다. 직접 뵌 김에 말씀드릴 사안이 있습니다.”
“뭐요?”
“이번 항해를 마치고 조선으로 귀항하면, 그만두고 프랑스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뜬금없는 소리였다. 비싼 봉급 주고 고용했는데, 고용주랑 처음 대면하는 자리에서 일을 그만두겠다고 선언하는 직원이라니. 이유를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저희 폐하께서 유럽에서 전쟁을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세상 반대편에서 상선이나 지휘하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명예혁명이 일어난 1688년, 루이 14세는 팔츠 선제후령을 공격해 아우크스부르크 동맹과 전쟁을 시작했다. 다음 해에 내가 영국을 떠난 직후에 윌리엄 3세가 아우크스부르크 동맹에 합세했고, 한 해 뒤에는 스페인과 사보이도 반프랑스 진영에 합세했다.
“제 본업은 사략선입니다. 유럽으로 돌아가서 싸우고 싶으니, 전하의 배를 모는 일은 이만 그만두게 해주십시오.”
장 바르가 내 배를 몰면서 한 ‘사략선다운’ 일은 처음 조선을 향해 가던 도중에 인도양과 말라카에서 몇 건 올린 것뿐이다. 보고를 들으니, 아랍 상선 3척과 인도 방면 해적선 2척, 말라카 쪽 해적선 1척과 중국 해적선 2척을 잡아 11만 냥쯤 벌었다고 했다.
“그 뒤로는 그나마 먹이가 있는 인도양 쪽으로는 가지도 못했습니다. 조선 정부의 명령을 듣느라 아메리카 항로만 왕래해야 했으니까요. 이러느니 귀국하고 싶습니다.”
“알겠네. 할 수 없지….”
기껏 고용해놓고 제대로 써먹지 못한 건 아쉽지만, 억지로 붙잡아놨다가는 아예 내 배를 몰고 탈주해버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느니 그냥 보내주는 게 나았다. 그래도 장 바르와 함께 건너온 프랑스인 선원 절반은 남겠다고 했으니 배를 움직이는 데 지장은 없다.
게다가 장 바르는 내가 부여한 두 번째 임무에 따라 그동안 조선 선원들을 부하로 받아서 열심히 가르치기도 했다. 그것만 해도 봉급으로 받은 돈값은 한 셈이다. 여기 더해서, 그중 30명쯤 프랑스에 데리고 가서 실전 경험을 쌓게 하기로 했다.
떠나면서 추천한 자기 후임은 안용복이라는 수군 정위 출신 사관이었다. 전투 경험도 꽤 있고 선원들 다루는 능력도 좋다. 나이는 올해 33세, 과연 역사 속 그 안용복인지 이름만 같은 동명이인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나저나 내가 짧은 평화기에 유럽에 정말 잘 다녀온 것 같다. 지금 유럽은 서쪽 끝에서 동쪽 끝까지 죄다 전쟁을 치르는 중이니 말이다. 내 친구 표트르까지도 그 구렁텅이에 빠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