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950
3부 068화
“모든 아이를 학교에 보내 공부를 시킬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프랑스에서도 그런 주장이 나온 적은 없습니다. 귀족이라면 모를까, 평민과 농노 계급 아이들까지 학교에 보낸다는 건 너무 비현실적이지 않을까요.”
드 포르토는 내가 제시한 교육 확대론을 다소 비판적으로 보았다. 물론 그에게도 근거는 있었다.
“프랑스에서건 조선에서건, 가난한 평민들은 어린아이에게도 농사일을 도우라고 시킵니다. 아이는 곧 일손이고, 부모를 도와 자신이 먹을 밥을 벌어야 하는 존재입니다. 당장 생계가 급한 이들이 아이를 학교에 보내기 쉽겠습니까? 설령 학비를 받지 않더라도 말입니다.”
“그야 당연히 어렵겠지. 나도 당장에 모든 아이를 학교에 넣자는 건 아닐세. 언젠가 훗날, 그만한 준비가 되었을 때 이야기야. 학교 숫자를 천천히 늘리면서 학생도 늘려가야겠지.”
지금 조선의 초등교육은 서당과 독선생, 두 가지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 독선생은 돈을 주고 고용한 개인 교사일 수도 있고, 아버지나 형 같은 일가친척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건 여유가 있는 집에서나 가능한 선택이다.
서당은 독선생에 비하면 돈이 덜 든다. 하지만 과거에 응시할 생각이 없는 농민들에게는 서당에서 익히는 글공부가 의미가 없다. 게다가 학비도 부담이고, 서당에 가서 앉아 있는 시간도 공짜가 아니다.
“그러니 법으로 강제하지 않는 이상은 학교에 다니게 할 수가 없지. 하지만 다닐 학교가 없으면 국법으로 취학을 강제해 봐야 소용이 없어. 그런데 학교를 세우려면 교사(校舍)를 짓고 교원을 충원해야 하지. 엄청난 비용과 시간이 필요한 일일세.”
“저로서는 조선 백성들이 글을 배워야 할 이유에 관해 설득하시는 일부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만…. 관리 채용시험(과거)에 응시할 일도 없고, 세상 소식은 이웃에게 가서 들으면 족하고, 성경 말씀은 신부가 해설해주면 충분할 이들에게 과연 문자가 필요하겠습니까?”
성서는 벌써 90여 년 전에 마테오 리치에 의해서 한국어로 번역됐다. 리치는 베이징으로 건너가 중국 선교에 종사하다가 내가 죽은 2년 뒤인 경술년(1610)에 죽었다고 했다. 거의 10년을 머무른 셈인데, 그동안 상당한 성과를 거둬 청나라 천주교회의 기반을 다졌다.
리치가 번역한 성서는 지금도 조선 교회에서 널리 사용하고 있다. 마포 대성당에는 교회 측에서 운영하는 인쇄공장이 별도로 있고, 성서와 기도서 등 각종 출판물을 직접 인쇄해서 전국에 있는 신자들에게 판매하고 있다. 꽤 쏠쏠한 수익사업이라고 들었다.
“필요함을 느낄 거네. 조정에서 권하는 예와 도리를 따지는 책만 읽으라는 게 아니니까. 이미 우리 백성들은 이것저것 잡다한 읽을거리들을 읽고 있지.”
수많은 참보, 즉 타블로이드를 읽는 독자들이 누구겠는가. 패담집(悖談集)으로 통칭하는 도색소설은? 은밀하게 유통되는 춘화 역시도 그런 대중적인 취향을 통해서 수요가 유지되고 있지 않은가? 심지어 구주를 통해 밀수한 일본식 춘화까지 시중에서 유통되는 판이다.
물론 일반 소설류도 많이 팔린다. 하지만 현재까지는 전부 스스로 문자를 습득할 수 있는 중산층 이상의 수요다. 내가 희망하는 보통교육 확대는 스스로 문자를 습득할 수 없는 진짜 서민층에게 기회를 주고 싶은데 있다.
“일단은 학교를 차츰 늘려나가며 배우고 싶은 자는 다 배울 수 있게 하고, 학교가 충분히 갖춰졌을 때 취학을 의무로 해야겠지. 백 년, 아니 2백 년이 걸릴 수도 있는 일일세. 그리고 나는 태황이 아니니, 사업을 주도하고 결정할 수도 없지.”
앉은 채로 뒤로 몸을 쭉 젖혀 풀밭 위에 누웠다. 아, 등에 닿는 느낌이 부드럽다.
백성들에게 예와 도리를 가르쳐 교화한다는 명분이 조정 중신들을 설득할 수 있으리라는 예상도 최대한 희망 있게 잡은 거다. 어쩌면 ‘괜히 천한 것들을 가르쳐 봐야 건방져지기만 한다’라는 반대가 더 강할 수도 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기껏 지식인의 상징인 글을 익혔는데도 관리가 될 수도 없다면 불만만 커지지 않을까요.”
“그야 관직에 오를 만큼 충분히 익히지 못한 결과니 어쩔 수 없지. 학교가 해야 할 일은 충분한 자질을 가진 자는 일찌감치 골라내어 잘 가르쳐 사관(仕官)할 수 있게 하고, 그만한 재주가 없는 자들에게는 자신의 역량을 인식하게 하여 헛된 욕심을 품지 않게 하는 걸세.”
학교는 유능한 하층민들이 신분을 올릴 수 있는 사다리다. 하지만 무능한 자들에게는 꼭 지켜야 할 자신의 위치를 자각하게 하면서 헛된 꿈을 꾸지 못하게 하는 훈련장 노릇을 하게 될 수 있다. 신분제가 살아 있는 군주제 국가의 공립학교라면 말이다.
“자, 그만 일어서세. 부사 영감이 열심히 사방을 돌아다니며 힘써 내 편을 만들고 있는데, 우리도 그만큼은 일해야 하지 않겠나.”
미주에 오면서 직책을 못 받은 건 나 혼자만이 아니다. 부사 이형준부터 노비 오돌천까지 누구도 미주에서 별다른 자리를 받지 못했다. 모두 여전히 견서사 부사고 서장관이고 수행 노비다. 마침 지말복과 오돌천이 식사 뒷자리를 치우러 왔다.
“그개들 둘은 면천해주지 못해서 미안하구나. 그대들도 집사장처럼 내 노비였으면 미주에 들어오자마자 바로 면천해주었을 것을.”
미주에서 유일하게 노비 신분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이들처럼 ‘본국에서 부임하는 관리를 따라온’ 노비들이다. 관노비건, 사노비건 ‘윗전의 명에 따라 보내진’ 이들은 자동으로 신분이 풀리지 않는다.
물론 노비도 주인을 따라 귀국하지 않고 미주에 남아 양민이 되겠다고 신청할 수는 있다. 단, 그럴 때는 주인에게 돈을 내고 자신을 속량해야 한다. 주인이 노비를 미주까지 데려온 데 대한 보상이다.
다만 관노비는 원칙적으로 이주가 허용되지 않는다. 고로 현지에서 잔류하더라도 신분은 여전히 관노다. 가족이 같은 관노비라면 역시 데려올 수 없다. 그래도 맡아 하는 관청 일이 있으니, 신분이 노비라 해서 백성들이 함부로 대하지는 못한다.
“당장 데려올 수는 없어도, 일단 가족에게 돈이라도 좀 보내도록 하여라. 내 너희가 나를 모시느라 고생한 공을 높이 사, 금 20냥씩 내리겠노라.”
“아니옵니다, 전하. 그동안 계속해서 소인들을 배불리 먹이시고 좋은 옷을 입히며 이토록 아껴주시지 않았습니까? 굳이 금을 내리지 않으셔도 됩니다. 비록 지금 저희가 예부에 속한 관노라 하나, 마음은 분명 전하께 향하고 있으니 의심치 말아 주소서.”
미주와 조선 사이에는 송금업도 번성하고 있다. 미주에서 금을 캐거나 가축을 키워 돈을 번 자들이, 본국에 있는 가족에게 생활비나 이주비를 원조하려는 수요가 꽤 많기 때문이다. 끝없는 땅을 보았으니 어찌 가족을 부르고 싶지 않겠는가.
송금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지선성에 있는 역에 가서 우편환을 사서 보내는 것, 다른 하나는 은행업을 하는 상단에다 금이나 은을 맡기고 배송을 부탁하는 거다. 우편환은 수수료가 5%, 은행은 보험료 포함 10%다.
우편환은 수수료가 싼 대신 관선(官船)으로만 운행해서 배송이 조금 늦는다. 게다가 누가 돈을 받는지 관아에서 다 들여다보는 만큼 그걸 드러내고 싶지 않은 이들은 이용을 꺼린다. 수수료가 2배이면서도 은행이 송금업을 계속할 수 있는 이유다.
“그래도 내 마음이 편하지 않다. 그래, 그대들도 집사장처럼 혼인하여 살림을 꾸리면 좋지 않겠느냐? 여기서라도 정 붙일 상대를 두어야 하지 않겠느냐. 그 비용을 내 치러 주리라.”
오돌천의 처는 우리가 유럽에 있는 동안 죽었고, 지말복은 혼인해본 적이 없다. 물론 둘 다 유럽에서부터 색주가는 자주 드나들었다. 정식으로 혼인한 상대가 없을 뿐이다.
다른 수행원들 역시 가족이 그리워 죽을 지경인 건 안다. 하지만 지금 바로 귀국이 힘든 상황에서 당장 조치해줄 수 있는 건 노비들 정도다. 문무관 출신 수행원들이 함부로 가족을 여기로 부르면 가문의 기반을 미주로 옮긴다는 말이 된다. 내가 멋대로 권할 일이 못 된다.
“감사합니다, 전하!”
“금은 괜찮다면서 혼인은 사양하지 않는 걸 보면 너희 둘 다 눈여겨 둔 상대는 이미 있는 모양이구나? 좋다.”
피식 웃고 말에 올랐다. 식사를 마친 다른 수행원들이 어느새 출발 준비를 마치고 명령이 떨어지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자, 가자!”
무관 세 명과 의관, 카자크 셋에 총관이 딸려준 하인과 안내인에다 통변까지 총 13명으로 이루어진 대열이 말을 달렸다. 내 전속 통변인 이홍석은 인디언 말은 전혀 못 해서, 미주에 온 뒤에는 사무실에서 유럽 서적 번역에만 전념하고 있다.
5.
이진원이 부지런히 환자를 살폈다. 이곳 부족 치료사도 제법 솜씨가 있었지만, 조선에서 유래된 병에는 아무래도 조선 의사만 못했다. 이제껏 들른 다른 마을에서도 매번 그랬다.
“의원을 데려와 주신 전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곤란하던 참이었습니다.”
환영의 담배를 쿨룩거리며 내려놓고 겨우 답했다. 역시 필터 없는 생담배는 너무 맵다.
“커험!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도리요. 그대들은 우리 황실의 신하고, 신하를 돌보는 것은 통치자로서 수행해야 하는 책무요.”
인디언 마을에 의원을 보내 환자를 돌보는 건 미주총관부에서 일상적으로 수행하는 주요 임무 중 하나다. 조선에서 전해진 전염병 피해가 워낙 크다 보니 그 책임을 지는 차원이다.
종두는 인디언들도 열심히 맞는다. 하지만 전에도 말했듯이 원주민에게 치명적인 질병이 천연두 하나밖에 없는 게 아니다. 질병으로 인한 피해가 클 수밖에 없다.
“제 할아버지께서는 큰 바다 건너 서쪽 땅에 있는 큰 나무집에서 사시는 위대한 아버지를 만나 뵙고 돌아오셨습니다. 그 후 거의 백 년 만에 제가 다시 위대한 아버지의 가족을 뵙게 되었습니다.”
올로내는 내가 장조 시절 충성 맹세를 받은 5부족 중 하나다. 올로내 대추장이 언급한 ‘위대한 아버지’도 당연히 조선 임금을 뜻한다. 인디언들은 자기들 방식으로 임금을 부르는 버릇을 아무래도 완전히 버리지 못했다.
“그대의 조부가 내 고조부께 영원한 충성을 맹세했음은 나도 익히 알고 있네. 또한, 여기 미주를 다스리는 데 있어 그대들의 협력이 매우 중요함도 잘 알고 있고. 그렇기에 황실에서 그대들에게 은혜를 베풀고 계시는 게 아니겠는가.”
올로내 부족은 샌프란시스코 일대 해안 지방에서 주로 살던 부족이다. 조선인들이 여기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접촉한 부족이기도 하다. 지선성 역시 올로내 부족 땅을 사서 세웠다. 내가 설립한 조선소도 올로내 땅을 빌려 지었다.
조선인들에게 땅을 내주고 질병에 걸려 많은 인명도 잃었으니 올로내 쪽에서 손해가 너무 큰 게 아닌가 싶겠지만, 지금 올로내는 도리어 그 세가 옛날보다 커졌다. 비결은 간단하다. 조선에서 넘겨받은 무기다.
조선 조정에서는 충성을 맹세한 5부족에게 사냥에 쓰라고 쇠로 된 화살촉과 창촉, 도끼와 단검을 주었다. 활과 조총까지 주었다. 농사에 쓰라고 소와 말과 농기구도 나눠주었다.
새로운 도구를 얻은 5부족은 이것들을 농사와 사냥에만 쓰지 않고 사람 잡는 데 써먹기 시작했다. 궁기병에 총기병까지 양성한 5부족이 세력 확장을 시작하자, 여태껏 석기시대에 머무르고 있던 주변 군소부족들은 버티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캘리포니아 일대에 거주하는 전체 인디언 인구는 숫자가 줄었다. 하지만 이들 5부족은 조선과 접촉이 늦었던 소부족들을 흡수하면서 도리어 세력을 늘렸다. 지금 올로내 영토는 현대로 치면 캘리포니아 해안선을 따라 로스앤젤레스까지 닿고 있다.
“신서반아의 서반아인들과는 어찌 지내고 있소?”
“저들이 함부로 우리 땅에 들어오지 않는 한 평화를 누리고 있습니다.”
조선령 미주에서 엘도라도가 발견됐다는 소문이 퍼지긴 한 모양이었다. 누에바 에스파냐 당국은 움직이지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조직한 몇몇 탐험대가 황금을 찾아 국경을 넘었다. 그리고 올로내 전사들에게 일거에 박살이 났다.
미주총관부에서 내게 내놓은 지도를 살펴보면 올로내 영토는 현대 기준으로 로스앤젤레스 북쪽 산악지대까지 뻗어나간 것으로 되어있었다. 올로내는 조선에 속하니, 조선령 남미주 남쪽 경계가 로스앤젤레스 북쪽이라는 이야기다.
다만 로스앤젤레스 자체는 아직 세워지지 않았다. 스페인인들이 태평양 연안에다 건설한 현재 최북단 거점은 샌디에이고다. 우리 미주와 누에바 에스파냐 사이에서 벌어지는 교역도 샌디에이고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로스앤젤레스 일대는 스페인 측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완충지대로 되어있다. 아직 그리 빡빡하지 않은 세상이라, 대충 이쯤이 경계선이라고 서로 양해하고 있다. 울타리 치고 푯말 박아서 칼로 자르듯 규정하지는 않았다.
이 교역에서 벌어들이는 멕시코 은화가 미주에서는 표준 화폐로 통용되고 있다. 본국에서 오는 교역선은 홍삼이나 비단 같은 사치품을 싣고 오지만, 미주에서는 목재와 모피, 짐승 기름과 곡물 같은 생필품을 주로 수출한다.
본국에 식량을 잔뜩 실어 보내고도 남아서 멕시코에 수출할 수 있다는 것만 봐도 미주가 얼마나 풍요로운 땅인지 알 수 있다. 이 풍요로운 영토를 잃지 않으려면 정말 잘 관리해야 한다.
“역대 태황들께서 베푸신 은총 덕분으로 그대들이 오늘의 번영을 누리고 있소. 그 사실을 부디 잊지 말기를 바라오.”
“물론입니다. 한없는 은총을 보내 우리를 보살피신 위대한 아버지께서, 아들을 보내 직접 살펴보기까지 하셨는데 어찌 그 은혜를 잊겠습니까.”
얼굴에 주름살이 가득한 올로내 대추장 ‘세상에서 가장 큰 금빛 소나무’ – 조선명 김대송 ? 는 바닥에 앉은 채로 고개를 조아렸다. 딱히 위세를 부리고 싶지는 않아서, 나도 의자를 놓거나 하지 않고 바닥에 곰가죽만 깔고 마주 앉은 상태다.
“본국에 계시는 내 형님 태황께서는 그대들의 충성을 굳게 믿고 계시오. 그대들의 조부가 장조께 맹세한 대를 이은 충성을 잊지 마시오.”
“물론입니다.”
여러 토인 마을을 방문하면서 민심을 도닥이고 충성을 확보하는 건 작년 가을부터 해오는 일이다. 이를 알면서도 별다른 말이 없는 건, 내 행동을 형황이 인정한다는 이야기일 거다. 애초에 칙명이 ‘황실의 은전을 백성들에게 널리 알리라’는 거였으니까 말이다.
내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손바닥 들여다보듯 하고 있을 형황도 내가 인디언들을 만나러 다니는 데 관해서 어떤 제동도 걸지 않고 있다. 이형준이 이곳의 사대부들 사이에서 내 이미지를 올리는 동안, 나는 인디언들과 친해지면서 다른 일을 병행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