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955
3부 07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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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한 호수 위에 잔잔한 물결이 일었다. 카자크 4명을 거느리고 정호찬과 함께 호숫가에 서 있으려니 시원한 바람이 폐부를 파고들었다.
이 호수는 이름이 태호(太湖)다. 주변에 사는 인디언들이 원래 부르던 이름은 ‘다와’인가 그렇다는데, 의미는 ‘큰 호수’라고 한다. 뜻으로 하면 그냥 ‘대호(大湖, 타호(Tahoe) 호수)’라고 부르면 되지만, 그건 좀 밋밋해서 ‘태호’라고 한 모양이다. 대한의 ‘4대 호수’ 중 하나로 불린다고 했다.
“좋구나. 정녕 4대 호수라고 불릴 만하다. 동방 변경에도 이토록 아름다운 호수가 있는 줄은 몰랐다.”
지선성에서 관할하는 ‘남미주’의 동쪽 끝은 미억산령, 시에라네바다 산맥까지다. 그 너머 땅은 변경이라고 칭한다. 여기서 미주대령, 로키산맥까지 걸친 땅을 전부 ‘동방 변경’이라고 부른다. 흑룡강 이북 시베리아 땅을 ‘북방 변경’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내 옆에 선 달리는 금빛 말은 호수를 보고 나처럼 낭만적인 태도를 보이지는 않았다. 딱 사무적으로 필요한 말만 했다.
“동쪽으로 도망치는 자들이 주로 택하는 길도 이 길이오.”
달리는 금빛 말이 손을 뻗어 북동쪽을 가리켰다.
“남미주에서 죄를 짓고 동쪽으로 도망치는 자들이 갈 수 있는 가장 쉬운 길이 이 길이오. 큰 호수에서 물을 보충하고 다시 북동쪽으로 가는 거요.”
미억족이 하는 일 중 아파치를 막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 도망자 추적이다. 미주에서 죄를 지은 자들은 대개 노역형을 받는데, 그것도 받기 싫다고 일가를 끌고 도망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도망쳐도 미주 안에서는 숨을 곳이 없다. 짐승 추적하는 일이라면 도가 튼 인디언 사냥꾼들이 끝까지 뒤를 밟아서 잡아내고야 말기 때문이다. 그래서 황야를 건너 동쪽으로들 도망치려고 하는 거다.
“여기보다 남쪽인 올로내 땅에서는 황야를 건너기 어렵소. 죽음의 땅이라 전혀 물을 찾을 수 없지. 죄인이 그리로 도망가면 우리도 쫓지 않소.”
거기, 데스밸리 맞지? 이쪽 세계에서는 그 죽음의 땅이 어떤 이름으로 더 유명해지려나? 남미주 관아가 제작한 지도를 보면 간단히 ‘동부사막’이라고만 적어놓았다. 뭔가 더 시적인 이름을 지었어도 좋았겠는데.
데스밸리는 미억산령을 습격하는 아파치들도 피해서 지나가는 험난한 곳이다. 아파치들은 그 북쪽으로 우회해서 쳐들어온다. 그런데 조선인 도망자 따위가 거기를 건너서 도망갈 수 있을 리가 있나.
“여기서 북쪽으로 가면서 그대들에게 잡히지 않는 자들도 있소?”
“전혀 없지는 않소.”
인디언들이 추격에 실패할 때도 있긴 있나 보군. 내가 질문하자 달리는 금빛 말이 차분히 대답했다.
“날씨가 몹시 나쁘거나, 여러 신령이 도망하는 자들을 돕거나 하면 놓칠 때도 있소. 무슨 일이든 사람의 뜻만으로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동의하오.”
미주대령까지 쫓아가고서도 표적을 붙잡지 못한 경우가 몇 번인가 있기는 있었다고 했다. 북미주 방면, 신욱(쉬눅)족이 맡은 구역에서 도망친 자들은 좀 더 많고. 달리는 금빛 말은 ‘바다에서 물고기나 잡는 신욱족은 별로 뛰어난 전사도 사냥꾼도 아닌 탓’이라고 주장했다.
“동쪽으로 가면 소금이 나는 커다란 호수가 있소. 거기까지 쫓아가도 도망한 죄인을 잡지 못한다면 그냥 돌아오고 있소. 다른 부족 영역에 너무 깊이 들어가는 건 위험한 일이니까.”
소금이 나는 커다란 호수…그거 유타에 있는 그레이트 솔트 레이크겠지? 남미주 관아에서 만든 지도에는 이 염호가 나오지 않는다. 역시 아직 부실한 지도였다.
“추장, 그 소금호수는 여기 태호보다 더 크오?”
“크오.”
달리는 금빛 말은 정호찬의 질문에 아주 짧고 간단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그의 태도는 늘 그랬기에 정호찬 역시 별로 개의치 않았다.
“전하, 저자의 말을 들으니 그 소금호수는 우리 대한의 5대 호수로 선정하기에 모자라지 않을 듯합니다. 이번에는 힘들겠지만, 나중에 채비를 차려서 그 소금호수까지 같이 가보면 어떻겠습니까? 그리고 귀국하면 나머지 세 군데도 같이 가시지요, 전하.”
4대 호수 중에 나머지 3개는 백두산 천지, 한라산 백록담, 북정호(바이칼호)다. 옛날부터 숭배의 대상으로 신성하게 여겨져 온 큰 호수들인데, 지난번 생에도 한 번도 못 가봤다.
“그러세, 서장관. 다음번 여행에 꼭 가보세나.”
내가 노린 보물이 소금은 아니다만, 확실히 준비한 뒤 수송대를 조직해서 거기서 소금을 가져다 팔아도 되겠다. 호숫가에 잔뜩 널려 있는 소금을 긁어모으기만 하면 될 테니, 지금 지선성에서 운영하는 염전보다 훨씬 비용이 싸게 먹힐 거다.
“전하, 저녁 진지 드십시오!”
“오, 바실리냐. 알았다, 가지.”
카자크 한 녀석이 달려와 식사가 준비되었다고 알렸다. 카자크들의 목청은 바다를 건너온 뒤에도 작아질 줄 모른다. 여러 의미로 한결같은 놈들이다.
카자크 6형제는 대서양을 건너는 동안은 공포에 떨었었다. 배 타는 일이야 드네프르강과 흑해에서 이미 많이 해봤지만, 아무리 항해해도 육지가 보이지 않는 이런 망망대해는 처음 겪어보는 까닭이었다. 만약 내가 배 타고 혼 곶을 돌았으면 얘들 다 미치지 않았을까.
베라크루스에 도착해서 육지에 내리니 카자크들이 얼마나 좋아 날뛰었는지 모른다. 화물 검사가 끝날 때까지 상륙하지 못하게 하려던 스페인 세관원들을 바다에 집어 던지는 바람에 뒷수습하느라 애먹었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등에 진땀이 흐른다.
“오늘 밥은 뭐냐? 담저랑 연어 말고.”
내 질문을 받은 바실리가 우렁차게 대답했다.
“사슴고기에 오리, 호수에서 낚은 신선한 물고기입니다!”
아까 총성이 몇 발 울리더니, 그게 오리 잡는 소리였나 보다. 사슴은 오는 길에 몇 마리 잡았으니 여기서 잡진 않았겠고.
카자크들은 남자가 요리하는 데 별로 거부감이 없다. 전투나 사냥 등으로 원정을 나가는 일이 워낙 잦다 보니 남자들이 밥을 안 하면 굶는 수밖에 없는 탓이다. 특히 바실리 녀석은 예전 런던에서부터 앙투안의 조수 노릇을 하며 음식 준비에 꽤 솜씨를 보였다.
“낚은 고기로 혹시 회 떴나?”
“안 떴습니다!”
“잘했다.”
잡담을 나누며 야영지에 들어가니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한창이다. 주변에 별다른 위험이 없는 것을 확인했기에 다들 식사 준비가 한창이다. 사람만 배를 채우는 게 아니라, 수레를 끌던 소와 말들도 마구를 풀고 마초를 씹고 있다.
여기 있는 인원은 나까지 총 103명이다. 유럽에서부터 함께 건너온 11명 ? 의관 이진원, 정호찬 등 수행 무관 3명, 카자크 6명, 앙투안 ? 말고도 스웨덴인 광산기사 2명과 미억족 안내인 9명에 이종덕이 속오군 80명을 딸려주었다.
속오군은 유사시에만 소집하는 게 원칙이다. 하지만 미주에서는 상비군이 없다 보니 일부 속오군을 평소에도 돌아가면서 소집, 관아에서 번을 서게 한다. 이래서야 말이 속오군이지, 본국에서 옛날에 운용하던 번상병 제도와 별로 다를 게 없는 셈이다.
“다들 잘 먹고 있군. 내일도 움직여야 하니 얼른 먹고 자도록 하라.”
사냥한 짐승과 새 외에도 덕진성 원씨 일가가 특별히 바친 훈제연어, 출발하면서 가져온 감자와 고구마 등으로 식탁은 풍성했다. 술도 넉넉하다. 그런데 몇몇 군사들이 내가 하지 말랬는데도 호수에서 낚은 송어로 회를 떠 놓은 모습을 보니 절로 잔소리가 나왔다.
“허어, 자네들 민물고기를 회로 먹으면 안 좋다니까? 물고기 살 속에 조그만 벌레가 숨어 있어서, 생으로 먹으면 그놈들이 뱃속에 들어가서 둥지를 튼단 말일세. 그리고 창자 안에서 피를 빤다고!”
“눈 씻고 봐도 벌레 같은 건 없는데, 무슨 말씀이십니까, 전하?”
“소주가 있으니 괜찮습니다! 혹시 전하 말씀대로 벌레가 있어도 이 소주 한 잔이면 죄다 죽어 버릴 겁니다.”
“닥치고 당장 솥에 처넣어!”
산을 넘어오는 동안 개울에서 잡은 고기들은 죄다 손바닥만 했다. 모처럼 사람 다리통만 한 큰 고기를 낚아서 그런지, 이종덕이 딸려준 부하들은 영 내 말을 들어 처먹지 않았다. 하기야 음식을 통해서 기생충에 감염된다는 개념 자체가 없으니 당연하긴 하겠지만….
김인황이 현미경, 아니 세치경을 제작해서 퍼뜨린 이후 세치경으로 별의별 것을 관찰하는 게 유행이 되기는 했다. 사람 몸 안에 여러 가지 기생충이 살고 있다는 사실도 해부를 통해 확실하게 밝혀졌다. 대한의보와 조보에 그림과 함께 실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종덕이 내게 내준 군사들은 태반이 까막눈이라 그런 최신 지식을 알지 못했다. 어서 보통교육이 실시되어야 할 필요성을 깨닫게 한다.
불평을 무시하고 뺏어온 송어회 한 접시는 내 어깨에 얹고 다니는 애완용 새끼독수리에게 먹였다. 이 여정에 나서기 직전에 올로내 대추장 큰 금빛 소나무에게 받은 선물이다.
“게다가 기생충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사람 몸으로 들어가는지도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요. 더구나 저들은 평소에 아무 제약 없이 바닷고기를 낚아서 회를 치던 자들입니다. 그런데 어찌 민물고기는 회로 먹지 말라고 설득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독수리에게 송어회를 먹이는 옆에서 찐쌀을 씹던 이진원이 무덤덤하게 답했다. 그도 미주에 와서 거의 10년 만에 제대로 조리한 조선 음식을 먹으니, 기운이 확 나는 사람 중 하나다.
“그동안 발행한 대한의보를 지선성에 있는 의원에게 빌려다 죽 훑으니, 뱃속에 기생충을 품고 있으면 그 변에 알이 섞여 나온다는 사실은 확인이 되었더군요. 하지만 그 알이 어떤 과정을 거쳐 사람 몸으로 돌아오는지는 아직 확실하게 모릅니다.”
기생충의 존재 자체는 조선에서도 예전부터 알고 있다. 가끔 항문으로 기어 나오곤 하니 말이다. 다만 그 상세한 생태에 관해서는 아직 잘 알지 못한다. 동의보감 편찬 때 상희가 무척 애를 썼지만, 내보일 증거가 부족한 상태로 내용을 고치게 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뱃속에 사는 벌레도 여러 종류가 있으니, 속단은 무리요. 어느 알이 어느 벌레의 것인지 더 연구하고 밝힐 필요가 있소.”
내가 걔들 생활 주기를 대충 알긴 하지만 그걸 어디서 배웠는지 그 출처를 댈 수 없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회충, 십이지장충, 요충, 촌충 같은 건 이름으로만 알지 직접 보고 모양을 구분하지 못하니 이것도 참 쓸모없는 지식이로구나.
이진원과 나 사이에 가장 활발하게 오가는 화제는 이처럼 의학에 관련된 주제다. 우리 둘 말고 다른 사람들은 끼어들 수가 없다는 게 문제라서 아쉽다. 하지만 다른 화제에는 도무지 이진원이 응하지를 않는다. 살짝 사적인 문제로 돌려 보았다.
“그러고 보니 그대도 가족이 보고 싶을 텐데…원한다면 본국에 다녀와도 좋소.”
“전하를 따르는 게 제 일입니다. 전하께서 귀국하시면 그때 돌아가겠습니다.”
이진원은 묵묵히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다시 권해 보았다.
“그래도 10년이나 집에서 떠나 있었는데….”
미주에 도착했을 때, 형황에게 도착 보고를 보내면서 ? 동현이 오기 전, 다른 배로 보냈다 ? 그동안 충실히 나를 수행한 수행원들만이라도 먼저 귀국할 수 있게 해주실 수 없겠느냐는 청을 보내보았다. 그랬더니 올해 봄에 온 관선 편으로 허락한다는 답이 왔다. 의외였다. 안 된다고 할 줄 알았는데.
다른 수하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차피 다들 같은 처지다.
“이 의관만이 아닐세. 자네들도 귀가하고 싶으면 말만 하게, 보내줄 터이니.”
내가 각성한 뒤로만 따져도 9년째 함께 있던 이들이다. 정호찬 같은 경우에는 이형준과 더불어서 각성 전부터 따지면 15년은 내 곁에 있던 사람이다. 이들이야말로 진정 내 심복, 수족이다. 이들을 떠나보낸다고 생각하면 심장이 찢어질 듯 아쉽다.
하지만 이들은 타의로 인해 10년 이상 가족과 떨어져 있다. 그 심경을 생각해 보면, 보낼 수만 있다면 보내주는 편이 좋다. 혹시 미주에 있는 내게 돌아오지 않더라도, 나름 나한테 도움이 될 수 있다, 본국에서 나를 위해 긍정적인 소문을 퍼뜨려줄 수도 있으니까.
“나야 본국에 처자식이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아니고, 폐하와 태후마마밖에는 안 계시지만…그대들은 부모처자와 헤어진 지 벌써 10여 년 아닌가. 만나고 싶지 않은가?”
시간이 지날수록 형황이 날 크게 미워하지 않는 건 분명해 보인다. 속이 좀 좁기는 해도 말이다. 정말 죽도록 미워했으면 유럽에 보내면서 아예 돈줄도 끊었겠지. 아니면 금위사를 시켜 그냥 제거해 버리는 간단한 해법을 택하거나.
하지만 형황은 내게 숫자는 적어도 신뢰할 수 있는 신하들을 붙여 주고, 돈도 모자람 없이 쓰게 해주었다. 그런 걸 보면 악의는 없는 게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당장 가서 형황을 만나고 싶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태후에게는 무척 감사하고 고맙게 여기고 있다. 하지만 당장 달려가고 싶을 정도로 보고 싶냐고 하면 아직은 좀 망설여진다. 멀리서 지낼 때는 그냥 내 어머니처럼 편하게 여길 수 있었는데, 가까운 곳에 오니까 도리어 두려움이 생긴다.
올렝카에 대해서는 드디어 알렸다. 왕비 강씨가 죽은 지도 이미 여러 해인데 외롭게 살지 말고 귀국하면 새로 혼사를 해야 하지 않겠냐고 완곡하게 말하기에, 지금 내가 혼자 지내는 건 아니라고 밝히려고 말이다. 아직 그 편지를 받은 태후한테 답장이 오지는 않았다.
“나는 폴희와 지내고 있지만, 자네들은 다 독수공방 신세 아닌가. 원하면 귀향해도 좋네.”
진지하게 던진 제안이었지만 먹히지는 않았다. 정호찬이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여기 없는 부사 영감부터 ‘자식들은 다 혼인해서 알아서 살고 있고 처는 아들이 돌보고 있으니, 굳이 돌아가 살필 필요가 없습니다. 서한을 받아 안부를 확인하면 족하옵고, 지금은 전하를 모시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소관들도 그와 같습니다.”
정호찬만 이러는 게 아니었다. 빈 전투에서 내가 목숨을 구해준 이후로 절대 충성 모드인 김종건도, 어딘가 둔하지만 자기 역할은 늘 충실히 수행하는 홍상훈도 내 옆에 계속 붙어 있겠다는 태도는 똑같았다.
“지난 10년 동안 보낸 세월이 억울해서라도 혼자 초라한 몰골로는 못 돌아갑니다. 반드시 전하를 모시고 개선장군처럼 당당하게 남대문을 들어가겠습니다!”
특히 홍상훈은 아주 결의가 대단했다. 지난 10여 년 동안 나를 따르면서 내 상황이 점점 호전되는 모습을 본 만큼, 절대 중도에 이탈하지 않고 기필코 끝까지 함께 가서 그 과실을 실컷 누리겠다는 태도였다.
“전하께서는 절대 이런 미주 촌구석에서 생을 마치실 분이 아닙니다. 분명 황상께서 중히 쓰시기 위해 불러들이실 테니, 그때까지 몇 년이 걸리건 전하 옆에 붙어서 그 영광의 날이 오기를 기다리겠습니다!”
여차하면 10년을 더 기다릴 수도 있다는 호언장담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내가 웃으면서 한마디 하려고 했더니 정호찬이 선수를 쳤다.
“홍 군관, 벌써 쉰을 바라보는 양반이 욕심이 과하시지 않소? 그만 자식들 보러 가시지?”
“서장관 나리, 기운이라면 아직 제가 나리께 뒤떨어지지 않을 텐데요? 이참에 한 번 붙어 보시렵니까?”
“좋지. 밥 다 먹거든 오랜만에 한판 해 봅시다.”
이쯤 되면 내가 끼어들지 않을 수 없다.
“됐으니 얼른 밥 먹고 잠이나 자게. 내일 또 북쪽으로 움직여야 하니까.”
“알겠습니다, 전하.”
일찌감치 좀 자두려고 일어서는데, 아직도 여기저기서 주거니 받거니 하며 술잔을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역시 조선인들은 술 참 좋아하는구나 싶다.
그나저나 무관 세 사람은 내게 충성하게 되어 귀국을 사양한다고 봐도 되겠지만, 이진원 이 양반은 왜 귀국을 거절할까? 아직도 자기 속내를 통 털어놓지 않으니 알 수가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