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962
3부 080화
– 1 –
덕진성으로 들어가는 포구는 수로가 좀 복잡한 데다, 여름이 아니면 안개가 심하게 끼는 편이다. 그래서 늘 드나드는 이곳 배가 아니면 해도가 있다고 해도 다니기 어렵다. 지금도 덕진성에서 나온 도선(導船)이 동현 앞에서 길을 안내하고 있다.
“소관이 이 배를 타고 이 수로를 들어가는 건 이번이 4번째지만, 그래도 안전은 확실히 챙기는 편이 좋지 않겠습니까.”
“당연한 일이다.”
동현과 안용복은 작년 가을에 본국으로 복귀하지 않았다. 이제 내 손으로 돌아와서 내가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으니, 안 가도 상관없다. 관선으로서 맡은 우편물 운반 같은 임무는 다른 사선(私船)을 임대해서 맡겼다.
겨울에는 지선만에 머무르면서 미주에서 모집한 선원들을 교육하는 훈련함 노릇을 했다. 작년 4월(양력)에 준공했던 조선소에서 건조한 첫 번째 배가 10월 말에 드디어 진수하기는 했는데, 의장(艤裝)에 시간이 걸려서 봄까지는 써먹을 수 없었던 까닭이다.
미주에서 건조한 첫 번째 배는 상춘(常春)이라고 명명했다. 훈련을 마친 선원들과 동현이 오는 길에 본국에서 고용해온 숙련 선원 일부를 함께 태우고 첫 항해에 나섰고, 지금 우리 뒤를 따라오고 있다.
“저 미숙한 놈들이 용케 잘 따라오는구나. 그대와 수하들이 가르치느라 수고가 많았다.”
“할 일을 했을 뿐이옵니다.”
기초훈련을 마쳤다고 해서 바로 태평양을 건너가라고 할 수는 없다. 일단은 지선성에서 북쪽 빙주까지, 미주 연안항로를 운항하면서 숙련도를 끌어올린다. 웬만큼 항해가 익숙해진 뒤에 그때 가서 비로소 바다를 건넌다. 숙련된 항해사를 붙여서.
“그보다는 아예 이 배를 타고 대양을 오가며 배우게 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싶사옵니다. 상춘이야 새로 고용한 배꾼들에게 맡겨 움직이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 방법도 좋기는 하나, 겨우 한 척만 만들고 말 게 아니지 않나. 미주에서도 자체적으로 선원을 양성할 수 있는 체계가 있어야만 앞으로 계속 뽑아낼 배에 태울 선인들을 원활하게 조달할 수 있지 않겠나?”
“그건 그렇겠습니다.”
최초 계획대로, 지선성에서 건조하는 배 중 최초 3척까지는 모두 선원 훈련용으로 쓴다. 미숙련 기술자들이 건조한 탓에 초기 생산품은 품질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크기도 하니, 그냥 내가 쓰련다. 팔았다가 나중에 불량품이라고 항의가 들어오기보다는 그게 낫지.
“지선성과 덕진성을 왕복하면서 짐을 나르면 풋내기 선원들의 교육용으로는 충분할 테지. 나를 짐이 없는 것도 아니고, 두 고을 사이 뱃길도 3천 리나 되니 경험을 쌓기에도 적당한 거리인 데다 육지 가까운 바다로 가면 파선했을 때 피난하기도 쉬울 테고.”
“그거야 좋지만, 기존에 양쪽을 왕래하던 선주들이 항의하지 않겠습니까?”
두 지역이 기후와 풍토가 서로 다른 관계로 산업 형태에 차이가 있고 두 지역 간에 교역 소요도 있다. 덕진성에서 내려오는 짐은 주로 모피, 고래기름, 훈제연어 등이다. 지선성에서 올라가는 상품은 쌀, 술 같은 것들이 많다.
남쪽으로 내려오는 물품은 본국에서 온 교역선들이 덕진성에 들러서 싣고 오기도 하지만, 그 역으로 움직이는 짐은 따로 배를 쓸 수밖에 없다. 거리가 너무 멀어서 미주에서 건조한 소형 한선(韓船)으로 왕래하기는 어렵고, 본국 상단이 소유한 큰 배를 빌리는 게 보통이다.
“공정하게 경쟁하면 되는 거지, 무슨 걱정인가.”
미주 상인들에게는 도리어 기회가 된다. 내 배를 이용하면 본국 상단의 지배를 벗어날 수 있다. 이미 이번 첫 항해부터 물품 운송 의뢰가 줄을 이었다. 이번에 동현과 상춘의 선창에 싣고 온 짐만 해도 상당한 양이다. 내가 세운 공장에서 뽑은 시제품 유리그릇도 실었다.
“내 동변관리사 벼슬을 받는 바람에 배값도 헐하게 받을 수밖에 없게 되었으니 말일세.”
그동안 운송을 독점하던 본국 상단과 사이가 험악해지는 것 정도는 각오했다. 그 정도는 감수해야 조선소 설립 당시 계획대로 미주가 경제적 과실을 누릴 수 있을 테고.
“이제 그대처럼 능력 있는 배꾼들을 계속 고용하여 선단을 확장하는 일만 남았네. 그대는 어찌 수군을 그만두고 이 배를 타게 되었다고 하였었지?”
“수군에 있으면 윗전에서 가라는 곳으로만 가야지, 제가 가고 싶은 대로 바다를 누빌 수 없으니까요.”
안용복이 웃었다. 그는 대대로 수군에 복무해온 수군 집안 출신이라고 했었다. 증조부가 이순신 휘하에서 궁수로 한산도 해전에 참전했었고, 조부는 판옥선 격군에 부친은 주산진에 주재하면서 안남을 오가는 상선단 호송을 자주 맡았다며 그 이야기를 들려주었었다.
“소관도 어릴 적에는 주산에서 꽤 오래 살았습니다. 주산에 첨사진이 들어선 지 수십 년 가까이 지나고 보니, 수군 외에 그 일가붙이들까지 터를 잡아서 거기 사는 우리 백성이 만 명은 족히 되지요.”
“주산에 거주하는 이들의 생업은 주로 무엇이고?”
“수군에서 나오는 녹봉이 있고, 별도로 장사를 하여 보태는 경우가 많습니다. 본국에서야 남는 시간에 고기를 잡거나 농사를 짓지만, 주산에서는 그럴 수가 없으니까요.”
을미동정 이후 왜구는 사라졌다. 하지만 왜구만 없다고 바다가 안전해진 게 아니다. 주산 주변에는 해적과 밀수업자가 넘쳐나고, 어선조차도 저 둘 중에서 하나를 겸업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니 외지인이 고기 몇 마리 잡겠다고 함부로 바다에 나가는 건 바보짓이다.
“아예 정착해서 장사만 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개중에는 중국인 해적 두령들과 결탁해서 장물아비 노릇을 하는 자들도 있고….”
“나라에서 일부러 눈감아주는 상황만 아니라면 죄다 치도곤을 때릴 놈들일세그려.”
“어쩌겠습니까, 사람 사는 구석이 다 그렇게 돌아가는 것을요. 적두도에 있는 정가 놈들도 태연하게 묘노 실은 배를 주산에 보내는 세상 아닙니까.”
대남도 정씨 일가는 여전히 대남도 토호로 위세를 떨치고 있다. 정준석의 차남 정종훈이 ‘신영토 개척’이라는 명분으로 뛰쳐나간 뒤에도 그 세력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토인들과 워낙 가까우니, 혹시 현지에서 반란이라도 일으키면 큰일이라고 그냥 놓아둔 덕분이다.
뛰쳐나가 독립하고 정지룡으로 이름을 바꾼 정종훈은 지금도 해적질로 잘 먹고 잘산다. 그 활동이 얼마나 지독했는지, 서나라 조정에서 ‘대서국 수군대도독’이라는 벼슬까지 내려서 회유했다고 했다. 즉, 정지룡은 지금 서나라 관군이다!
“놈들에게 오죽 시달렸으면 그랬을까 싶군.”
“온갖 패거리가 백가쟁명을 벌이는 것보다야 한 놈이 주도권을 잡고 질서를 유지하는 게 서나라 조정 입장에서도 낫겠지요.”
홍콩에 난공불락의 성채를 구축한 정지룡은 서나라 땅인 광동과 해남도 일대 해안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광서 쪽은 또 다른 해적이 있는 모양인지, 정지룡과 툭하면 싸운다고 한다. 후송 수군과 싸우는 거야 당연한 일이고.
정지룡은 자기 구역을 지나가는 상선에게는 통과세를 받고, 해안 지역 마을에서는 대놓고 세금을 걷는다. 말이 해적이지 사실상 해상을 지배하는 군벌이다.
“정말 정가가 조선 배는 건드리지 않는가?”
“명색이 서나라 수군 제독이다 보니 그렇게 공언하지는 않았습니다만, 확실하게 당했다는 소식은 없긴 합니다.”
조선과 서나라는 후송과 그런 것만큼 사이가 나쁘진 않다. 후송은 자기들이 명을 계승한 진짜 천자라고 주장하면서 조선을 참칭자로 간주하고 있지만, 서나라는 자기들이 중원과는 무관한 옛 파촉과 대리국을 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고로 정치적으로 대립할 이유가 없다.
사정이 그렇게 되다 보니 조선 조정에서도 정지룡을 토벌하거나 대남도에 남아있는 정씨 본가를 탄압하는 것 같은 조치는 취하지 않았다. 만약 정씨 본가를 잘못 건드려서 정지룡이 확실하게 적대적으로 돌아서 버리면 도리어 상황이 나빠질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허나 굳이 적극적으로 통교할 필요도 없어서 사신이 오가거나 하지는 않지요. 장삿배만 가끔 오갈 뿐입니다. 그것도 대개는 정가의 배가 이쪽으로 오지, 우리 배가 가진 않습니다. 워낙 위험해서 말이지요.”
남중국해에는 정지룡 패거리 말고도 많은 해적이 판을 치는지라, 우리 일반 상선이 그쪽 바다로 들어가는 건 현명한 행동이 못 된다. 어차피 그쪽에서 주산으로 찾아오니까 일부러 찾아갈 필요도 없고.
“이제 덕진성에 도착했사옵니까?”
뒤에서 반가운 목소리가 들린다. 아직 추운 날씨 탓인지 따뜻한 초콜릿 음료가 든 도자기 잔을 손에 든 상희다. 눈이 마주치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아직 조금 남은 모양이오, 왕비. 유주부인은 어찌하고 있소?”
“멀미가 낫지 않아서 선실에서 쉬고 있습니다.”
상희가 나타나자 안용복은 조용히 자리를 비켰다. 상희를 수행하던 시녀들도 약간 뒤쪽에 떨어져서 거리를 유지했다. 조용히 다가온 상희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 나란히 뱃전에 서자 마침 안개가 걷히면서 부두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덕진성이었다.
– 2 –
상희와 다시 만나고 나서 4개월이 지났다. 내게는 9년, 상희에게는 25년이라는 긴 이별이 중간에 있었던지라 쌓이고 쌓인 이야깃거리는 끝이 없었다.
내가 가장 재미있게 들었던 주제는 물론 내가 죽은 뒤에 있었던 사건들이다. 사실 그거야 이형준이나 정호찬에게도 들을 수 있지만, 두 사람이 아는 지식은 딱딱하기 짝이 없는 공식 기록이다. 하지만 상희는 정말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다.
“세자는 네가 벌인 일들 뒷수습만 하다가 시간 다 보냈지. 재위기간 18년이 그렇게 짧은 편은 아니었지만, 워낙 할 일이 많았거든.”
“성이는 내가 살아있을 때도 그런 다짐을 했었지. 정말 그렇게 될 줄은 몰랐지만.”
선왕 치하에서 대규모 전쟁을 다섯 차례나 겪은 수십만 정예군을 손에 쥐었다. 그러면 그 군대를 바탕으로 새로 정복에 나서고 싶을 만도 한데, 성이는 그 욕망을 끝까지 참고 오직 내정에 집중했다. 내가 키운 아들이지만 정말 대단한 녀석이었다.
“정치 이야기는 다른 데서도 많이 들었어. 너나 진안군이 살았던 이야기가 더 듣고 싶어.”
반말로 나누는 대화는 대개 침실에서였다. 상희 방에 드는 날이 이틀, 올렝카 방에 드는 날이 하루꼴이었는데 상희와 자는 날이면 늘 옛날이야기로 밤을 새웠다. 임금일 때와 달리, 밤새 문 앞에서 엿듣는 사람 따위가 없으니 정말 좋았다.
“욱이는 지독한 얼빠였지. 그 중국인 첩에 홀딱 빠져서 본처는 팽개치다시피 했었으니까. 그래도 정월, 4월, 8월, 11월에는 도성에 돌아오긴 했어. 설날이랑 추석에 차례 지내고, 4월 한식에 성묘하고, 11월에는 네 제삿날이 있으니까. 합치면 석 달쯤 됐고.”
“그놈 참, 누굴 닮아서….”
“글쎄? 그 피가 과연 어디서 왔을까?”
“어험, 험.”
나란히 누워있던 상희가 웃으면서 내 뺨을 꼬집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상희와 올렝카를 양쪽에 끼고 있다. 상황이 이러니 상희한테 핀잔을 받고서도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래도 본가에 와 있는 동안은 내 눈치를 보는지, 며늘아기 방에 들기는 하더라. 그래서 아들 하나지만 후계자도 얻기는 했고. 지금 회령후 이홍진이 걔가 낳은 우리 손자야.”
첩도 몇 명 더 들였고 서자도 더 있었지만, 상희는 정확한 숫자는 모른다고 했다. 그래도 진안군은 재산은 전부 나중에 성도공으로 봉작된 적자 이창에게 몰아주었다. 서자들은 각자 알아서 출세하라면서 그냥 키워만 주었다. 이건 내가 상희에게 들려준 부분이다.
“그놈 참 묘하게 입체적인 성격이네. 본처는 소중하게 여기지 않으면서 적자는 챙기다니.”
“가문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고 배운 조선 남자니까 그랬겠지.”
내 말에 상희가 웃었다. 다소 맥 풀린 웃음이었다.
“그나마 욱이는 정기적으로 얼굴이라도 볼 수 있었지만, 원이랑 연이는 거의 만날 수도 없었어. 거기 비하면 나은 편이지.”
건주에 시집간 우리 딸들은 딱 한 번 돌아왔었다고 했다. 내가 죽었을 때, 두 아이 모두 남편인 다이샨과 홍타이지와 함께 초상을 치르러 왔다고 말이다. 그때까진 누르하치가 아직 살아서 대칸 자리에 앉아 있을 때라, 둘 다 본국을 비울 수 있었다.
그 10년 뒤인 무오년(1618)에는 상희가 직접 요동에 한 번 갔다고 했다. 그리고 그게 두 딸을 만나본 마지막이었다.
“내가 제 누이들 보고 싶어 하는 거 보고 욱이가 세자한테 청해서 허락받은 다음 데리고 갔지. 심양에 가서 건주 궁정도 보고, 누르하치한테 사돈 대우도 받았어. 외손자랑 외손녀들 모두 만나고….”
“정말 좋았겠다. 그런데 귀국한 다음에 괜찮았어? 시끄러워지지 않았어?”
“당연히 조정에서 난리가 났지.”
상희는 후궁이었다. 아무리 선왕의 총희였다고 해도, 외국에 가서 마치 중전이라도 되는 것처럼 대우받고 왔다면 난리가 안 날 수가 없다.
“세자가 다 막아줬어. 출국을 허락한 건 부모·자식 간의 천륜을 잇는 일이니 당연했다고 하고, 건주에서 극진한 대우를 받은 건 건주가 워낙 근본이 없는 야인이라서 예를 모르니까 멋대로 그런 거라면서 말이야. 정말 고마웠지.”
“하긴. 내 무덤에 절하러 온 원이랑 연이 맏이들이 너한테 외할머니라고 불렀던 사건도, 성이가 다 수습해줬다고 했었지?”
진안군도 유유자적 살게 해주고, 영창대군이나 혜산군(혜빈 강씨가 낳은 경성군의 아들) 역시 편히 살도록 잘 보살펴줬다는 걸 보면 확실히 성이는 형제들에게 애정을 크게 품었던 모양이다. 나와 중전이 세자를 잘못 가르치지는 않았다.
“덕분에 죽기 전에 한은 풀었지. 하지만 그런 경험 또 하고 싶지는 않아. 연산, 이번에는 우리 그런 일 안 해도 되는 거지?”
“물론이야. 그럴 생각도 없고 필요도 없어. 우리 이번에는 임금 아니잖아.”
상희를 만나고 보니 얼른 귀국하고 싶다는 생각도 사라졌다. 그전에야 상희가 아무래도 조선에 있을 것 같고, 외국에 있는 게 형황에게 미움받고 있다는 증거 같아서 얼른 본국에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는 두 가지 문제 다 해결되지 않았는가.
지금 생각 같아서는 그냥 미주에서 눌러사는 것도 괜찮겠지 싶다. 상희랑 올렝카 데리고, 조선소랑 은광에 유리공장만 경영하면서 속 편하게 살아도 되지 않을까.
“아, 배고프다.”
내 팔을 베고 누워있던 상희가 일어나더니 탁자로 갔다. 그리고 야식으로 미리 가져다 둔 칠면조를 곁들인 고구마 피자 ? ‘유주전(遺洲煎)’, 또는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는다고 ‘披蔗(피자)’라고 내가 이름을 붙였다 ? 한 조각을 들어 맛있게 씹었다.
“어떻게 이런 걸 만들었어? 이탈리아는 안 들렀잖아?”
“피자 굽는 화덕이야 특별할 거 없으니까. 미주에 들어온 뒤에 만들게 해봤어.”
유럽에 있을 때는 거의 프랑스식으로 먹고살았던지라 피자 같은 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초대를 받아 밖에서 식사를 해결할 때도 많았고.
그런데 미주로 건너와서 느긋하게 지내게 되니 좀 다양한 음식이 먹고 싶어졌다. 그래서 주방에 있는 앙투안과 다른 조선인 숙수들에게 이런저런 주문을 넣었고, 여러 가지 토핑을 얹은 피자도 그 결과물 중 하나다. 토마토소스는 아직 없고, 꿀과 치즈가 기본이다.
“멕시코에서는 유럽보다 파인애플이 훨씬 싸길래, 피자에도 한 번 얹어봤는데 내 입에는 좀 안 맞더라. 역시 고구마 베이스에 고기류 토핑 얹은 게 좋아.”
“그러게. 피자는 오랜만이라 정말 맛있다. 여기에 콜라만 있으면 더 바랄 게 없겠는데.”
“나도 마시고 싶지만, 탄산음료는 아직 무리라서. 대신 샴페인은 어때?”
종을 울려 하인을 부른 뒤, 지하실에다 고이 보관해 둔 샴페인을 한 병 가져오라고 했다. 부글부글 거품이 이는 샴페인은 지금 구할 수 있는 유일한 탄산음료니까 말이다.
샴페인은 개발된 지 얼마 안 된 탓에 프랑스에서도 구하기 힘든 술이라, 혼인 잔치 때도 쓰지 않고 잘 보관해놓았었다. 하지만 상희가 탄산이 마시고 싶다잖은가. 당연히 꺼내야지.
이제 곧 항구다. 주변에 아무도 다가오지 못하게 하고 계속 편히 이야기를 나누었다.
“1차 신혼여행이 요세미티고 이번에 시애틀은 2차 신혼여행이야. 지나간 두 번 생에서 못 해 본 신혼여행 빚은 다 때웠으니까, 이거 마치면 이번 생 몫으로 3번째 신혼여행 가야지?”
순전히 여행을 즐기려고 함께 다니는 건 아니다. 사실상 부부동반으로 각지를 순행하러 다니는 셈이다. 예전에 올렝카는 공식적인 지위가 없어서 못 따라갔지만, 이젠 두 사람 다 공식적으로 나와 함께 다닐 수 있다.
“3번째 신혼여행으로는 정말 하와이에 갈 거야?”
“응. 진주만에 가서 전혀 개발 안 된 자연 그대로의 하와이를 보자고.”
형황에게 동변관리사로서 움직일 권한을 받았으니, 내 손으로 하와이 원정을 직접 시도할 수 있게 되었다. 광산은 어차피 채광 시작하려면 준비할 시간이 충분히 필요하니까, 그동안 하와이에 다녀올 여유는 충분히 있다.
“병력 모집이 잘되어야 하는데….”
미주에는 정규군이 없으니, 하와이 원정은 의용군으로 시도할 수밖에 없다. 의용군이면 충분할 원정이긴 하지만…일단 병력이 모이긴 해야 하니 말이다.
※작가의 말:2장 10화에서 상희가 딸들을 “다시 만나지 못했다”고 수행원들의 입으로 언급하기는 했습니다만, 상희한테 너무 안된 일인 것 같아서 설정을 조금 수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