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97
1부 09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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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에 깃발이 휘날렸다. 말을 탄 군사들이 분주하게 오가고, 사냥감을 몰아내는 개들이 짖어대는 소리가 사방을 울렸다.
“오늘은 사냥감이 충분히 잡힐까?”
“직접 짐승을 거두고자 해서 여신 사냥이 아니시지 않습니까. 오늘은 산척과 백정들의 무재를 구경하시는 날이니, 마음을 편히 먹으소서.”
유자광이 조심스레 고개를 조아렸다. 나와 마찬가지로 철릭을 입고, 허리춤에는 띠를 둘러 활과 화살을 차고 있었다. 평소였다면 내 손에는 애용하는 장총이 들려 있었겠지만, 아쉽게도 오늘은 직접 사냥을 할 게 아니고 심판 자격으로 나온지라 의례적인 차림으로 활을 찼다.
“백정과 산척들은 말 타고 활 쏘는 재주가 무척 뛰어납니다. 허나 평시에는 그 재주로 다른 백성들의 가축을 훔치고 도적질을 하며 놀고먹기에만 힘쓰니 도무지 쓸모가 없는 자들입니다. 누대로 골칫거리였던 그 자들을 유용하게 사용하시다니 전하께서는 정녕 슬기로우십니다.”
유자광 이 양반이 이렇게 내 옆에서 사냥터 바라지나 하고, 아첨이나 하면서 지내기는 참 능력이 아까운 사람인데…. 옆에 세워는 두지만 기분이 별로 좋지는 않다.
능력으로만 보면 전선에 사령관으로 보내도 될 사람이다. 하지만 원체 인망이 좋지 않은데다 상하를 불문하고 인맥도 없으니, 제대로 지휘를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내 곁에 붙어서 보좌를 시키기에는 좋다. 원체 군무에 밝은데다가 북방 현지 사정에도 밝으니 말이다.
“무관들 중에도 백정들과 어울리며 활과 말을 배우는 이들이 간혹 있습니다. 물론 급제할 때가 되면 연을 끊고 가능한 접하지 않습니다만…자칫 도둑떼와 얽히기 십상이니 말입니다.”
“벼슬에 오르려면 주변을 깨끗이 해야 함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이 시대보다는 조금 후대였지, 아마? 백정 출신인 임꺽정이 황해도를 휩쓴 일을 생각하면 백정 도적단이란 게 가볍게 볼 물건은 절대로 아니다. 임꺽정이 단순히 힘이 세어서 도적질을 했겠는가? 무기 다루는 법도 알고 무리를 이끄는 법도 아니 패거리를 이끌었을 것이다.
“오늘 동원한 백정이 몇 명이라 하였는가.”
“4백 명입니다. 지금 여기는 절반뿐인데, 나머지는 자기들끼리 패를 나누어 몰이를 하겠다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습니다.”
보통 사냥에서는 몰이꾼으로 쓸 군사들이 최소한 수백 명은 동원된다. 게다가 농사철에는 경작지를 짓밟기 일쑤다. 당연히 신하들이 입을 모아 사냥을 나가지 말라고 반대한다.
그래서 오늘 사냥터도 일부러 산으로 잡았고, 사냥 명분도 내가 사냥을 즐기려는 게 아니고 백정들이 솜씨를 선보이게 하려는 자리고 해서 일부러 군사들을 몰이꾼으로 동원하지 않았다. 겸사복과 내금위에서 동원한 군사들은 그저 날 경호하러 나온 거고 말이다.
“오늘 사냥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자들은 상을 주고, 장차 원정에서 중히 쓰리라. 그럼 시작 신호를 울리도록 하라.”
“예, 전하.”
유자광이 신호를 보내자 저만치 떨어져서 서 있던 나팔수가 힘껏 고둥을 불었다. 뚜 하는 고둥소리가 주변으로 퍼져나가면서 개 짖는 소리가 한층 더 커지고, 대기하고 있던 백정들이 지르는 함성 소리가 들렸다. 두 발로 걷거나 말을 탄 백정들이 일제히 앞으로 달려 나갔다.
사냥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천천히 먹고 마시면서 시간을 보냈다. 술잔을 기울이며 준비해온 돼지고기를 구워 안주로 삼고, 점심으로는 내관들이 준비한 상추쌈을 먹었다. 쌈장으로는 쇠고기와 버섯을 넣고 끓인 된장을 얹었다. 역시 공기가 좋은 야외에서 즐기는 식사가 즐겁다.
“전하, 사냥을 마칠 시간이 다 되었사옵니다.”
겸사복 한 사람이 와서 묵직하게 고개를 숙였다. 하늘을 보니 해가 어느새 꽤 기울어 있었다. 선선히 술잔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주변을 둘러보니 이미 꽤 많은 백정들이 붙잡은 짐승들을 손으로 끌거나 말, 소나 나귀 등에 실은 채로 모여들고 있었다.
“신호를 울려라. 저들을 모아 수확을 확인해야 하지 않겠느냐.”
이제까지 내가 백정들에게 대해서 들은 바대로라면, 끝까지 안 나타나는 자들도 있겠지 싶긴 하다. 잡은 게 없어서 부끄럽다고 그냥 도망갔거나, 짐승 쫓기에 열중해서 시간이 간줄 모르고 있거나. 어쨌든 그런 이들에게도 시간 종료를 알려야 할 시각이다. 올 놈은 오겠지.
사냥이 끝났으니 어서 돌아오라는 나팔 신호가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무리지어 선 백정들은 잡아온 짐승들을 각자 앞에 쌓아올렸다. 창으로 급소를 찔러서 잡은 멧돼지, 화살에 맞아 숨이 끊어진 노루나 꿩 따위가 즐비하게 놓였다.
“저들은 쓰는 활이 무척 크구나. 활을 잘 쏠 뿐 아니라 힘도 무척 센 것인가?”
사냥에 참가한 백정들은 대부분 활로 무장하고 있었다. 헌데 그 크기가 무척 컸다. 정규군 군사들이 사용하는 흑각궁(黑角弓)보다 눈에 띄게 클 정도였다.
“저들이 쓰는 활은 목궁(木弓)이라 그렇습니다. 크기가 같으면 흑각궁보다 당기는 힘이 약하므로, 강한 힘을 얻으려고 더 크게 만드는 것입니다.”
유자광이 소곤거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남들 앞에서 내가 무식해 보여서 좋을 건 없으니, 이런 자리에서 내게 뭔가 전할 때는 늘 귀엣말로 고하라고 일러두었다.
“하긴 수우각은 귀하니 저들이 구하기 힘들겠구나.”
다 아는 이야기지만 수우각(물소뿔)은 조선에서 생산되지 않는다. 물소는 덥고 습윤한 동남아시아에만 서식하는 동물이니까 말이다. 조선은 활을 만드는데 필요한 물소뿔을 전량 중국과 일본을 통해서 수입해왔고, 당연히 저들은 가능한 물소뿔을 팔지 않으려 했다.
심지어 중국에 가는 사행길이 얼마나 성공적인지 판단하는 척도 중 하나가 수입해온 물소뿔 양일 정도다. 이렇게 구하기 어려운 물건을 백정들이 흔하게 쓸 수 있을 리가 없긴 하겠다.
“과거 선왕께서 물소를 들여다 우리 땅에서 키우려고 하셨다지. 그게 잘 되었으면 계속해서 비싼 돈을 들여 수입할 필요가 없었을 터이건만.”
“풍토가 안 맞으니 어쩌겠사옵니까. 성종께서도 노력하신 결과이니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맞는 말이다. 아열대 동물인 물소가 한반도에서 제대로 살 수 있을 리가 없다. 고개를 끄덕이며 놓여 있는 짐승들 사이를 도는데 어깻죽지에 큼지막한 창이 박힌 집채만 한 멧돼지 한 마리가 눈에 띄었다. 창이 박힌 자리 외에는 상처 하나 없었다.
“아니, 이리 큰 멧돼지를 창 한 번으로 잡았단 말이냐?”
내가 멈춰 서서 놀라워하자 털이 그대로 달린 멧돼지 가죽옷을 입고 건장한 체격을 한 백정 하나가 앞으로 나섰다. 나이는 마흔 정도? 아주 험악한 인상이었다.
“짐승이 나오게 마련인 길이 있습니다. 그 길을 찾아서, 급소가 찔리게 마련인 자리에 창을 갖다 대고 기다립니다. 그러면 짐승이 잡히게 마련입니다. 죽기만 기다리면 됩니다.”
“확실히 네 말대로만 하면 사냥이 성공하게 마련이겠구나. 쫓는 상대가 짐승이건, 사람이건 네게는 그 길이 보이느냐? 그 산이 생전 처음 가본 산이라고 해도 말이다.”
“보입니다. 어느 산이든 사람이 다닐 길과 짐승이 다닐 길은 다르게 마련이고, 짐승도 큰 놈과 작은 놈이 다니는 길이 다 다르게 마련입니다. 그게 다 지세(地勢)에 달려 있고, 처음 가본 산이라고 해도 그 지세는 숨겨지지 않게 마련입니다. 제게는 다 보입니다.”
“훌륭하다.”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런 자들을 선봉으로 내세운다면 대마도에서도 충분히 전투를 치를 수 있으리라. 기해동정 당시 조선군은 산속으로 숨은 적들을 추적하다가 매복에 걸려 큰 피해를 입었었는데, 산에 도가 튼 이런 이들이 있으면 아마 다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이건 또 뭐란 말이냐?”
단창에 큰 멧돼지를 잡은 창꾼에게 상을 주라 이르고 더 둘러보다 보니 신기한 게 또 하나 있었다. 십여 마리 정도 되는 노루, 토끼, 여우 위에 마무리로 삵 한 마리가 얹어져 있는데, 이 모든 녀석들이 눈에 화살을 맞고 죽어 있었다. 역시 다른 부위에는 상처 하나 없었다.
“이 짐승들을 잡은 명궁은 누구냐?”
주위를 둘러보며 묻자 무리지어 있던 백정들 중에서 키는 크지만 호리호리한 젊은이 하나가 나섰다. 그리 크지 않은 쇠뇌를 든 것이 특이하다고 생각하는데…여자였다! 근력이 약한 여자라면 쇠뇌를 주무기로 쓰는 것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놀라웠다.
그제야 생각이 났다. 백정들이 마적질을 하고 돌아다닐 때, 그 안에 여자들도 드물지 않게 끼어있었다던 이야기가 말이다. 요즘은 그래도 그런 일이 거의 없어서 잊고 지냈는데, 지금 눈앞에 선 여자 사냥꾼을 보는 순간 그 생각이 나버렸다. 그제야 둘러보니 여럿 더 보였다.
“가죽에 상처가 나면 값을 덜 받습니다. 눈을 쏴야 가죽이 상하지 않고 짐승을 잡습니다.”
아까 그 창꾼과 마찬가지로 딱딱한 말투지만 젊은 여자임은 알 수 있었다. 얼굴에는 위장크림 대신인지 짐승 기름을 발랐고, 행색은 남루해도 본바탕이 그렇게 떨어져 보이지도 않았다. 게다가 일상적으로 산과 들을 누벼서인지 몸매도 늘씬했다.
“이름이 무엇이냐? 성은?”
“다지라 합니다. 성은 없습니다.”
하긴, 백정에게 성이 있으면 그게 도리어 이상한 일이겠지. 하여튼 좋다. 개전 시에 동원할 백정과 산척의 총수는 정해놓았고, 그 안에 이 여백정이 들어있다면 그걸로 됐다. 이 정도로 명사수라면 분명히 써먹을 가치가 있을 테니까.
“너에게도 상을 주어야겠다. 이 정도로 뛰어난 사수는 본 적이 없구나.”
얘한테 총을 가르치면 얼마나 뛰어난 스나이퍼가 될까? 쇠뇌는 사격 방법도 총이랑 비슷해서 쇠뇌 사수는 총병으로 전환시키기도 쉽다. 얘가 전쟁터에 갔다가 돌아오면 한번 데려다 키워봐야겠다.
– 6 –
정예 전투요원을 선발한다고 백정 사냥대회를 열고 어쩌고 하는 사이 5월이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대마도주가 왜구 문제 및 비전과의 통상 방해 문제를 따지는 우리 서신에 답장을 보내왔다. 조정 중신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도승지가 서신 내용을 읽어나갔다.
『…저희 섬이 노략질을 하는 패거리를 잡아서 벰이 헤아릴 수 없고 그 노략품을 되찾았음이 역시 그 양을 헤아릴 수 없습니다. 또한 비전이건 어느 고을에서건 보낸 모든 배는 대마도가 세운 법규를 준수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항구에 머물러 쉬고 원할 때 출발할 수 있습니다….』
도승지가 끝까지 읽기도 전에 내가 책상을 후려쳤다. 자연히 낭독이 멈췄다.
“이 무슨 망언인가? 결국 대마도주는 자신들이 맡은 바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음을 아예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 아닌가?”
예조를 통해 온 서신이 내용 검토도 거치기 전에 조정으로 나갈 리 없다. 이 서신은 이미 승정원과 예조에서 철저히 검토되었고 나 역시 승지들과 함께 한 구절, 한 구절을 새겨가며 살폈다. 그리고 지금 내가 화를 낸 지점은 승지들과 사전에 계획한 바로 그 위치였다.
“과인은 엄연히 죄인을 잡아 보내라 요구하였는데 그 말을 듣지 않고 굳이 스스로 베었다 함도 이해하기 어렵고, 분명 비전에서 불편함을 호소하고 있는데도 전적으로 잡아떼는 행태도 그대로 넘기기 힘들다. 아무래도 대마도를 정벌하여 그 방자함을 바로잡아야 하겠다!”
아마 대마도주는 적당히 말장난으로 넘기면 우리가 적당히 떠들다가 제풀에 멈추리라고 판단한 듯하다. 확실히 조선이 무역을 중시하지 않던 예전이라면, 어쩌면 정말로 대마도와 교류를 단절하고 나섰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그러지 못함을 그들도 알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저들도 나를 다 알지 못하고 있다. 자기들이 좀 개겨도 통상을 끊지 못하리라는 부분까지는 맞게 예상했지만, 그 이상 나갈 수 있는, 아니 나갈 기회만 노리고 있음은 몰랐다.
물론 무지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이다. 이제 대마도는 쓴맛을 단단히 보게 되리라.
“과인은 이미 대마도인들이 그 간교한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있음을 눈치 채고, 군사를 내어 징치하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이번 서한을 통해 저들이 뉘우칠 마음이 없음을 확실히 알았으니, 계획대로 군사를 내어 치도록 하겠다!”
야인 토벌과는 다르다. 배도 준비해야 하고, 대마도뿐만 아니라 규슈를 포함한 일본 전체와 부딪힐 수 있음을 각오해야 한다. 물론 지금 일본이 전국시대임을 감안하면 실제로 그런 일이 발생할 가능성이야 0%에 수렴하겠지만 말이다.
“전하. 군사를 내려면 우리도 많은 수고를 들여야 합니다. 한 번 더 준엄히 문책하는 국서를 보내 저들에게 행동을 고칠 기회를 주면 어떻겠사옵니까.”
영의정 한치형이 조심스럽게 진언했다. 지난번 비변사 회의 때는 아무 말 않더니, 아무래도 내가 말은 강경하게 해도 정말로 군사를 내서 대마도를 치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영상이 우려하는 바를 알지 못하는 바는 아니오. 허나 그동안 저들에게 서한을 보내 질책한 횟수만 해도 몇 차례요? 그만하면 기회를 충분히 주었소. 이제 군사를 낼 때가 되었으니, 비변사에서 논의하여 출병 규모 및 시기를 모두 정하도록 하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