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987
3부 105화
– 23 –
우리가 아파치 세력권 중심부로 진격해가는 건 틀림없는 모양이다. 습격이 점점 잦아지고 있다. 하지만 대비를 철저히 한 덕분에 피해는 크지 않다. 적이 접근하면 총과 활을 일제히 퍼부어서 근접전을 벌일 기회를 아예 주지 않는 게 우리 대응 방침이다.
다만 이 전술에서는 포로를 잡기 어려웠다. 잡히는 놈들은 죄다 즉사 아니면 중상이라…. 그래서 첫날 붙잡은 아파치 포로들을 다시 끌어다가 추가 정보를 얻으려고 심문해 보았다. 그런데 이놈들이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포획 직후에는 꽤 쉽게 입을 열었던 놈들이 갑자기 돌부처가 된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혹시 그동안 통역을 맡던 파이우트족과 갈등이 생기기라도 했는가 싶어서 조성칠을 불러서 통역을 시켜보았다. 그랬더니 한참을 어르고 달랜 끝에야 겨우 입을 열었다.
“뭐라고 하느냐?”
“자기 다리를 잘라 모욕한 원한을 잊지 않겠다 하옵니다.”
“뭐?”
망할 놈. 내버려 뒀으면 총 맞은 다리가 곪다 못해 썩어들어가서 패혈증으로 죽었을 걸, 내 전속 의관 이진원이 직접 절단 수술까지 해가며 살려줬더니 그 은혜도 모르고?
“사악한 조선 무당이 이상한 약을 먹여서 자기를 억지로 잠재웠고, 그 틈에 한쪽 다리를 잘라 자기가 이제는 전사가 될 수 없게 만들어 모욕했으니 절대 용서할 수 없답니다. 전하, 도저히 이 야인에게서 쓸만한 진술을 얻어내기는 무리이실 것 같습니다만….”
수술하느라 이진원이 아편 먹여서 재웠더니 그게 악마의 소행으로 느껴졌나 보다. 젠장. 그리고 의사도 이놈들한테는 무당, 주술사겠지. 병 고치는 역할을 담당하는 건 똑같으니까.
“그놈은 그렇다 치고, 다리를 자른 놈은 하나뿐인데 다른 세 놈은 왜 입을 다물고 있나?”
“전사의 다리를 잘라 악령에게 바치는 자들이 제대로 된 사람일 리가 없으니까 자기들도 영혼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입을 다물고 있는 거라고 합니다.”
기가 막혔지만, 기껏 살려낸 놈들을 인제 와서 처형할 수도 없다. 손을 저어 돌려보냈다.
“알겠다. 넷 다 갖다 치워 둬라.”
당장 정보를 뽑아내지는 못해도, 잡아둔 채로 잘 대우해주면 적어도 조선인들이 포로에게 자비롭다는 선전 정도는 할 수 있겠지. 아파치도 언젠가는 포섭해야 할 대상인데, 잔혹하게 굴어서 좋을 건 없지 않은가.
게다가 내가 신경을 써야 할 대상은 아파치들만이 아니다. 본국에서 내 보고서를 받아볼 형황과 조정 중신들의 평가도 고려해야 한다. 아파치 토벌에서 내가 ‘군자의 도리’를 제대로 지키고 저들을 ‘교화’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면, 내 평이 나빠질 게 뻔하다.
“계속 진군한다. 우군과 접촉하고, 아파치 영토 깊숙이까지 진격하여 저들에게 우리 땅을 노략질한다면 어떤 응징을 받게 될지 교훈을 줘야 하니까.”
“예, 전하.”
처음부터 아파치 완전 정복 따위는 기대도 안 했다. 그런 건 철도 깔아서 든든한 보급로 확보하고 연발총을 만들어 병사 전원에게 들려준 후에나 가능한 일이다.
“전하, 파이우투 야인들은 이 앞으로는 길을 잘 모르지 않습니까? 여기부터라도 소인에게 안내를 맡겨 주시면….”
불러들인 사람들을 다 내보내는데 조성칠이 내게 굽실거렸다. 조성칠을 계속 끌고 다니긴 하지만, 여전히 결박한 상태다. 가끔 불러다 인디언들의 정세에 관해 듣거나 통역을 시킬 뿐, 길 안내도 맡기지 않는다.
“네놈은 못 믿는다. 네놈 말은 너무 허황하다. 길 안내를 따로 맡길 사람도 있다.”
“허황하다고요? 뭐가 말씀이십니까? 제가 전하께 드린 말씀은 다 사실입니다!”
조성칠은 이제껏 내가 부를 때마다 이 이야기, 저 이야기를 두서없이 늘어놓았다. 자기가 인디언 사이에서 무엇을 해서 먹고살았는지에 관한 진술도 계속 바뀌었다. 사냥, 장사, 의원 노릇에 그 문제의 유세객까지 했다고 말이다.
“그건…소인이 정말로 그렇게 먹고살았기에….”
“됐다. 그건 중요한 문제도 아니다.”
조성칠이 어떻게든 자기는 역적 혐의를 덮어쓰지 않으려고 핵심을 피해가며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은 푸념을 종합하면, 대평원에 거주하는 여러 부족은 동진한 조선인들이 평원의 모든 부족을 정복하고 모든 땅을 빼앗는 상황을 막기 위해 연합하기로 뜻을 모았다고 한다.
그 매개가 된 건 인디언 복장을 하고 돌아다니는 탈출한 죄인들. 자기처럼 빚에 쫓기다가 어쩔 수 없이 도망친 이들도 아니고 정말로 심각한 죄를 범한 중죄인들이라는 게 조성칠의 증언이었다.
“예, 예. 그 역도들이 야인들을 규합하여 대군을 편성한 뒤 폐하께서 다스리시는 강역까지 쳐들어오려 꾸민다는 거야말로 정말로 중요한 문제입니다. 소인에게 안내를 맡겨 주신다면, 당장 저들의 본거지로 전하를 모셔 역적들을 토벌하시도록 하겠습니다.”
조성칠을 보고 있으면 장조 때 이순원 생각이 난다. 본래 예허부에 속한 도적 두목이다가 북정 때 투항한 그놈 말이다. 여진 피가 섞인 ¼조선인이라서 처음에는 신뢰가 안 생겼지만, 두고 보면서 일을 시켜보니 나중에는 쓸만한 신하가 되어 공도 많이 세웠지.
미주에 온 뒤에 들은 바로는, 이순원은 연해주에 정착해 살다가 편안히 생을 마감했다고 했다. 그 후손들은 연해주에서 토호가 되어 한 행세 하면서 살고 있다고 했고 말이다. 과연 조성칠이 이순원 2호일지, 그냥 아파치 편에 붙은 역적인지는 아직 두고 봐야 아는 거다.
“바로 그 발언이 허황하다는 거다. 내가 그동안 말하기도 귀찮아서 내버려 뒀다만, 네놈이 지껄인 소리가 왜 말이 안 되는지 간단히 설명해주마.”
평원 지역에 거주하는 인디언들은 기본적으로 수렵민이다. 수렵으로 먹고살려면 여기저기 흩어질 수밖에 없다. ‘대군을 편성’한다는 전제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네놈 말처럼 야인들이 수천, 수만 대군을 모은다고 치자. 그 많은 입을 먹일 군량은 대체 어디서 구한다는 말이냐? 모인 군사 각자 준비해온 건량이 떨어지면 그걸로 끝이다. 그런데 그 부실한 치중을 가지고 미주대령을 넘는다니, 그게 말이 되느냐.”
“하지만 아파치를 도우러….”
“아파치에게 다른 부족 전사 수천, 수만 명을 먹일 능력이 있느냐? 그리고 수천, 수만이나 되는 전사들이 평원을 떠나 아파치의 땅으로 오면, 그놈들 땅은 누가 지키지? 부락에 남은 아녀자들은 누가 지켜주느냔 말이다.”
대답이 궁해진 조성칠이 입을 다물었다. 보리스를 시켜 조성칠을 데리고 나가게 한 다음 잠시 혼자 생각에 잠겼다.
평원 인디언 연합에 대한 조성칠의 증언은 사실일 수도 있다. 인디언 연합군이 아파치를 지원하러 오거나 조선령 미주를 공격한다는 거야 말도 안 되는 망발이지만 말이다.
평원 인디언들이 우리 소식을 접할 건 확실하다. 인디언들 사이에도 교역망이 있고, 온갖 산물이 그 교역망을 타고 움직인다. 지난번 전투에서 사살한 아파치만 해도 조선산 면포로 지은 바지를 입고 있지 않았던가? 교역품인지, 약탈품인지는 모르겠지만.
“아파치 토벌을 마치면 동쪽 초원에도 한번 가보긴 해야겠군.”
원정군 전부를 끌고 갈 필요는 없다. 사냥과 낚시로 식량을 조달할 수 있을 정도의 규모, 그러면서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숫자로 기병 3백 기 정도라면 초원까지 안전하게 다녀올 수 있지 않을까.
전에도 다짐했듯, 로키산맥 너머로 직할령을 확대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그쪽에 사는 인디언들이 지금 아파치가 하듯이 우리 영토를 약탈하러 온다면 그것도 골치 아프다. 그런 사태가 발생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그놈들과 제대로 관계를 수립할 필요가 있긴 하다.
– 24 –
“전하! 전하!”
척후장 권훤이 먼지를 일으키면서 급하게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나이가 젊어서 그런지 두 달 동안 황야에서 고생하고서도 아직 원기가 왕성했다.
권훤은 나와 함께 치른 첫 싸움에서 화살을 한 대 맞았었다. 하지만 큰 상처는 아니었고, 그 뒤로도 씩씩하게 황야를 돌아다니며 척후장 노릇을 수행했다. 미억족 말도 조금 익혀서 자기 부하들이 한국어를 할 줄 아는데도 굳이 미억족 말로 지휘하곤 한다.
“뭔가? 좋은 소식인가?”
내 옆에 말을 세운 권훤이 함박웃음을 지었다.
“전하! 찾았습니다! 우군입니다! 두 시진 거리 앞 강가에 있습니다!”
“장 부장이! 드디어 만나는군!”
태호성을 출발하고 63일째, 드디어 우군과 만났다. 그동안 주야를 넘나들며 스무 차례가 넘게 아파치와 싸운 뒤에 드디어 양군이 합류하게 된 거다.
“고생하셨습니다, 전하. 저희는 비교적 편하게 왔습니다.”
콜로라도강을 따라서 진군하는 동안에는 아파치를 볼 수 없었다는 게 장희재의 보고였다. 다만 다른 부족들이 앞길을 막았다.
“신서반아(누에바 에스파냐)에서는 서반아 측의 지배에 반발해서 대대적인 반란이 일어난 상태였습니다. 처음에 우려했듯이 서반아 관헌이 우리를 속여서 반란 진압에 동원하는 일은 없었사오나, 난민(亂民)인 토인들이 먼저 저희를 공격하는 데는 도리가 없었습니다.”
장희재의 말에 따르면, 반란을 일으킨 인디언들은 콜로라도강을 따라 북쪽으로 진군하는 우리 군대를 자기들을 공격하러 온 스페인군으로 착각했다고 했다. 그래서 사방에서 모여든 인디언 전사들과 대규모 전투만 10여 차례에 이르는 치열한 싸움을 치러야 했다.
“그 방해를 모두 뚫고 여기 도착한 뒤에는 아파치가 수시로 공격을 가해왔습니다. 도착한 뒤에만 여섯 차례 더 싸웠고, 그동안 죽거나 심하게 다쳐서 더 싸울 수 없게 된 군사만 3백 명이 넘습니다. 다친 자들은 모두 치중을 싣고 온 배에 실어 하류로 다시 보냈습니다.”
우군이 콜로라도강을 거슬러 올라오는 데 사용한 배들은 전부 누에바 에스파냐 당국에서 빌린 거다. 누에바 에스파냐에서는 아파치 토벌에 병력을 내지 않는 대신에 배를 빌려주고 안내인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협력했다. 조성칠의 안내가 필요 없는 이유가 바로 이거다.
장희재는 선창을 비우고 바다로 돌아가는 이 배들에다 우리 편 부상자들을 실어 보냈다. 스페인인들이 샌디에이고까지 데려다주면, 거기서 기다리고 있는 우리 선단이 지선성까지 데려갈 거다.
“죽은 군사들은 어쩔 수 없이 그 자리에 묻었습니다.”
“그거야 중군에서도 마찬가지였소.”
전장에서 죽은 시신을 고향에 보내 묻어주는 것도 본국에서, 혹은 본국에서 가까운 일본 또는 중국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기왕 바다 건너 새로운 땅에 정착할 생각으로 건너왔다면, 그게 어디든 죽은 그 장소에 묻히는 것도 나쁘지 않다.
“우리 군사 3백 명을 잃으면서 올린 전과는 얼마나 되오?”
“토인 3천 명은 족히 쏘아 쓰러트린 듯합니다. 적도 수백이 진을 친 진영을 포로 쏘아서 부수고 남은 적에게 총격을 가해 제압한 뒤에 돌진하여 점령하기를 열 차례가 넘게 하였고, 아군 진영을 공격하는 아파치도 매번 수백 명은 되었습니다.”
“고생이 많았소. 서반아인들에게 통과세를 비싸게 치렀구려.”
“서반아인들이 ‘콜로라도’라 하는 그 강을 따라 올라오면서 엄청난 시신을 길바닥에 깔고 왔으니, ‘골로강(骨路江)’이라고 불러도 될 것 같습니다.”
우리가 필요해서였다고는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본의 아니게 스페인을 도와주고 말았다. 장희재가 쳐부순 그놈들, 결국은 스페인의 지배에 반기를 든 놈들이었으니까 말이지. 이번 원정에서 우리가 준 도움에 대한 대가는 나중에 톡톡히 받아낼 테다.
어쨌건 여기부터는 본격적인 아파치 토벌이 진행된다. 보병과 포병이 지키는 본진을 두고 기병이 주변을 돌며 적을 소탕해 나가는 형식이 될 거다.
“앞으로 두 달 동안 토벌을 진행한 뒤에 지선성으로 돌아갑시다. 그동안 아파치에게 우리 대한의 땅과 백성을 건드린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톡톡히 깨닫게 해줄 테요.”
생각 같아서야 아파치 영토 한복판에 요새를 박고 이놈들을 통제하고 싶지만, 지금 가진 능력으로는 어려운 일이다. 우리가 가능한 거라고 하면, 아파치 영토를 한번 휩쓸고 돌아가 저놈들이 조선이라면 아주 그냥 치를 떨게 만드는 거다.
“그리고 변경에 성을 쌓아 놈들이 보복하러 오는 길을 확실하게 막아야겠지요.”
“물론이요.”
콜로라도강을 따라 군데군데 성을 쌓고 거기 수비대를 배치하면 아파치의 네바다 침입을 막기에는 충분하다. 그러면 내 은광은 물론이고 그동안 수시로 약탈당한 미억족 거주지역도 보호할 수 있다.
유타 쪽은 콜로라도강으로 보호가 안 되지만, 여기 남쪽에 있는 아파치들이 일부러 북쪽 유타까지 우회하면서 우리 영토를 노략질하겠다고 나설 것 같지는 않다. 그 수고를 하느니 남쪽에 있는 멕시코를 터는 편이 훨씬 빠르고 편할 테니까.
“전하, 올로내와 미억족에게는 대추장이 있어 수장 노릇을 맡으며 부족의 모든 대소사를 관장하던데, 아파치에게는 그런 우두머리가 없습니까? 결전을 벌여 우리가 아파치 대추장을 죽이거나 협정을 맺는다면 저들의 망동을 끝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순변사, 지선성에서 이미 이야기했잖소? 아파치 대추장 같은 건 없소. 그리고 미억이나 올로내도 원래 대추장이 없었소.”
5부족에 부족 전체를 다스리는 대추장이 생긴 건 조선인들이 건너오고 난 뒤다. 예전에도 언급했지만, 전염병으로 인구가 격감한 5부족의 사회구조를 조선인들이 의도적으로 개입해 바꿔놓은 게 부족 대회의에서 뽑히는 지금의 대추장 제도다.
“아파치는 7개나 되는 파로 나뉘어 수백 개가 넘는 마을에 흩어져 살고 있소. 옛 여진이 해서 4부, 건주 3위 등으로 나뉘고 그 밑에 또 수백 개나 되는 마을이 포함돼 있었던 것과 매한가지요. 아파치 전체를 점하려면, 그 마을 하나하나를 모두 소탕해야 하오.”
“알겠습니다.”
남은 전쟁은 지루한 대게릴라전이 될 가능성이 크다. 콜로라도강에 건설한 진영을 원정군 본진으로 삼고, 주변 지역을 최대한 잘 정리해 보자. 그러면 적어도 미주를 약탈하러 오는, ‘가까운 아파치’들은 다 혼을 내줄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