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989
3부 1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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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에 걸친 토벌을 마무리한 뒤, 원정군은 귀로에 올랐다. 왔던 길 그대로 중군과 후군 병력은 네바다 방면 육로로, 우군은 콜로라도강을 따라 바다까지 내려간 다음 샌디에이고를 거쳐 귀환하기로 했다.
콜로라도강 중류에 건설한 보루 세 곳에는 각각 보병 120, 기병 50, 포병 30명으로 혼성 편성한 1개 중대씩을 남겼다. 이 병력은 당연히 전원 본국에서 온 정규군들이고, 보루마다 군의관 1명과 아파치 말을 할 줄 아는 파이우트족 안내인 2명도 배치했다.
이 보루들을 건축하는 일을 맡은 다토스는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자재만 가지고도 아주 훌륭한 성채를 구축했다. 역시 경력 있는 공병 전문가가 있으니 좋구나.
“본국에서 온 군사들은 이곳 풍토가 낯설어 적응이 힘들 겁니다만….”
“그렇다고 속오군을 둘 수는 없지 않소. 미주 본역에서 멀어도 너무 머니.”
옛날에야 경상도에서 소집한 군사를 압록강에 수자리 살러 보내기도 하고 그랬지. 전라도 해남에서 징집한 군사가 함경도까지 올라가서 경비 근무도 서고. 하지만 지금이 어디 그런 세상인가?
조선 본국에서도 군대가 모병제를 축으로 돌아간 지 오래다. 징병한 군사들은 거주지역인 도나 주를 벗어난 곳에 배치하지 않는다. 본국에서도 그런데, 본국보다도 훨씬 널널한 미주 상황에서 캘리포니아 속오군을 애리조나에 보내면 과연 그 명령을 순순히 따를까?
“허나 본국에서 온 군사들은 애초에 고립병이라, 나라의 명에 따라 수시로 임지를 옮기며 복무하는 데 익숙하니 풍토가 낯설다고 해서 명령을 거부하지는 않을 거요. 녹봉을 넉넉히 주고, 되도록 자주 교대시키면서 견디도록 해봅시다.”
징병한 군사들은 집 근처에서 복무하지만, 5년 기한으로 복무하는 고립병들은 출신지와는 무관한 원지(遠地)에 보내지는 일이 드물지 않다. 흑룡강변에 배치받은 경상도 출신 군사가 초모에 응한 자기 손모가지를 자르고 싶다고 후회하는 사례 정도는 흔하다고 할 정도니까.
어쨌건 콜로라도강 방어선에 배치할 병력은 본국에서 온 군사들을 두기로 했다. 자유로운 영혼들인 미주 속오군에게 여기 머무르라고 했다가는 몽땅 탈영하고 말 테니까.
“골로강(콜로라도강) 하구에 두기로 한 성채도 똑같이 해야겠지요, 전하?”
“물론이오. 다만 그쪽으로는 다토스 공과 보병 3백 명을 함께 보내서 축성을 돕게 하고, 축성이 끝나는 대로 그 3백은 산대고(산 디에고, 샌디에이고)를 통해서 지선성으로 귀환하도록 하면 좋을 듯하오. 순변사의 생각은 어떻소?”
“소장도 전하의 판단이 옳다고 생각하옵니다.”
군사적인 문제는 장희재와 주로 논해서 결정한다. 아무래도 본국에서 온 원군은 장희재의 군사니까 말이다. 다행히 장희재가 나를 존중해주는 사람이었기에 망정이지, 조영균 같은 성품이었으면 토벌전 수행이 심히 곤란해질 뻔했다.
“포로는…그동안 논한 대로, 일부만 미주로 데려가도록 합시다. 감리사, 역시 그렇게 함이 옳겠지요?”
“물론입니다, 전하.”
성시균이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정치적인 문제에서는 성시균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아무래도 형황의 뜻을 직접 받아 건너온 사람이니, 그 뜻을 크게 고려할 수밖에 없다.
토벌을 종료할 때까지 우리가 잡은 아파치 포로는 총 242명이다. 푸에블로족이나 호피족 포로는 화해하기 위해서 전부 석방했다. 애초에 그 녀석들은 우리 적도 아니었고, 그놈들을 계속 잡아두었다가는 귀로에도 계속 전투를 치러야 할 테니까.
아파치 포로도 처음에는 사내 27명, 아녀자 219명을 잡아 246명이었다. 그런데 남자 중 4명은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서 귀신같이 도망가 버렸다. 정말 대단한 놈들이다.
붙잡은 이들 중 우리 산하인 미억족이나 파이우트족에서 붙잡혀온 여자들이 29명, 누에바 에스파냐에서 끌려온 멕시코인 ? 내가 멕시코인이라고 하면 그건 스페인인-인디언 혼혈인 메스티소를 말하는 거다 ? 과 인디언이 87명, 스페인인도 1명 있었다. 이들이 낳은 아이들 숫자도 42명이나 되었다. 진짜 아파치 여자와 아이들은 60명밖에 되지 않았다.
“신서반아에서 잡혀 온 주민들은 우군이 귀환하는 길에 서반아 관헌에게 넘기도록 하세.”
“꼭 옛날 선왕들께서 여진 부락을 토벌한 뒤에 붙잡혀 있던 한인(漢人)들을 찾아 중국에 돌려주던 일 같사옵니다, 전하.”
이젠 중국을 대국(大國)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거의 없다. 그냥 다 중국이라고만 부른다. 현재의 청나라나 후송은 물론이고, 과거의 중국을 지칭할 때도 대국이라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는다. 특정 국가를 확실히 지칭할 때는 대송, 대원, 대명 등으로 부르기는 한다.
“이웃의 정으로 하는 일이야. 서반아를 상국으로 모셔서는 아니지.”
미억족, 파이우트족 등은 본대 편으로 데려가서 고향에 돌려보낸다. 아파치 포로는 남자 일부만 석방하고 나머지는 미주로 끌고 간다.
“풀어주는 자들을 통해 저들에게 강력하게 경고를 전한다. 우리 땅을 또 건드린다면 우리 군사들이 다시 돌아와서 쑥대밭을 만들 거라고 말이다. 우리가 직접 찾아다녀 봐야 그 망할 도둑놈들을 찾을 수도 없을 테니, 한패인 놈들을 사자로 삼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건 그렇습니다.”
작정하고 피해 다니는 아파치를 쫓아가 잡기는 어렵다. 지난 두 달 동안 전개한 본격적인 토벌전에서 확실하게 깨달았다.
“데려가는 자들은 교화시킨 뒤 돌려보낸다. 아파치가 비록 흉폭한 야인이라 하나, 일단은 회개할 기회는 주어야 할 것이니까.”
싹 죽여버리거나 노비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는데 교화라니, 예전보다 내가 무척 착해지긴 착해졌나 보다. 북방에서 잡은 여진족이나 왜란 때 잡은 왜병 포로를 내가 이렇게 부드럽게 대한 적은 없었지 싶은데.
사실, 아예 풀어주고 가 버릴까 하는 생각도 잠깐 했었다. 포로를 끌고 가면, 행군 속도도 늦어질뿐더러 아파치 놈들이 포로를 되찾겠다고 쫓아오면서 그로 인한 원한이 더 커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어떻게 잡은 놈들인데.
어쩌면 인디언이라는 인종에 대한 막연한 호감 탓에 내가 관대해졌을 수도 있겠다. 예전 현대 시대에 접한 수많은 매체를 통해 형성한 아메리카 원주민 집단에 대한 긍정적인 인상 때문에, 지금 아파치에게도 본국의 눈치를 핑계 삼아 너그럽게 대하는 게 아닐까.
“나도 잘 모르겠군.”
잠시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지시를 내렸다.
“자, 철군이다. 지선성으로 귀환하여 이번 원정을 마무리하도록 하자.”
“예, 전하.”
오늘은 갑술년 9월 2일, 양력으로 1694년 10월 20일이다. 내…아니, 성친왕의 20대는 그 끝을 아파치 토벌로 마무리하게 됐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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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두고 가는 3개 보루를 통합해서 관리할 책임자로는 홍상훈을 앉혔다. 아파치 토벌에 종군하면서 세운 공만으로도 태호은광에서 기습당한 과오는 충분히 씻었지만, 단순한 편인 인디언들을 상대하는 데는 역시 교활하지 않고 단순한 성품인 홍상훈이 적절해 보였다.
물론 인디언을 토벌해서 쫓아버릴 거라면 잔머리 잘 굴리는 김종건이 더 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이쪽 방면에서 원하는 건 현상 유지니까, 상대를 솔직하게 성의껏 대해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 쪽이 나을 수도 있다.
“저들이 무도하게 굴지 않는다면 자비를 베풀게. 호피족과 꽤 친분을 쌓았으니, 그 이웃인 아파치가 흉계를 꾸민다 해도 미리 파악하기 쉬울 걸세.”
“명심하겠습니다, 전하. 하오나 청이 있습니다.”
“청? 말해 보게.”
“변성(邊城)에 홀로 머무르기 쓸쓸하니, 지선성에 두고 온 첩을 데려오게 해주소서.”
“바라는 바를 그렇게 곧바로 요청할 줄은 몰랐네. 홍 정령은 참으로 솔직한 사람일세.”
김종건과 홍상훈 모두 이번 원정을 시작하기 전에 본국에서 정식으로 정령 진급 첩지를 받았다. 10년 넘게 나를 수행하며 세상을 돌았고, 공도 꽤 세웠으니 그 정도 포상은 당연히 받을 만했다. 장군까지는 좀 무리겠지만 말이다. 참, 정호찬은 참장이다.
“그래서 허락하셨습니까?”
내 옆에서 말을 몰던 부하들이 왁자지껄하게 웃었다. 김종건이 씩 웃으면서 수락 여부를 묻기에 씁쓸하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내 2백 명이 우글거리는 곳에 어찌 소중한 첩을 들여보내겠는가? 무슨 사고가 터질지 모르는 일인데 말일세. 대신 가끔 휴가를 주어 돌아올 수 있게 해주기로 약속하였네.”
첩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이형준과 이진원을 빼고서 나머지 무관 세 사람은 그새 알음알음 첩 하나씩은 다 마련해 놓고 있었다. 물론 모두 지선성에서는 꽤 행세하는 집안 딸들이다.
나는 지금 미주 전체를 통틀어 가장 신분이 높은 사람이다. 하지만 나는 미주에 도착했을 때 이미 올렝카를 데리고 있었고, 얼마 안 가서 본국에서 상희도 건너왔다. 그리고 여색을 밝히지 않는 태도를 분명히 보였으니 여자를 미끼로 내게 접근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내 측근들은 상황이 다르다. 본국에 가족들을 두고 혈혈단신으로 와 있다. 그러니 어떻게든 내 권위를 등에 업고 위세를 부려 보려는 현지 유력자들이 자기 딸을 무기로 해서 그쪽에 달라붙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이들은 모두 내가 당당하게 본국에 귀환하면 같이 금의환향하겠다며 귀국을 미룬 상태다. 하지만 미주 생활도 벌써 5년째에 접어들었고, 외로움도 쌓였다. 거기에다 여기는 유럽과는 달리 어쨌거나 말이 통하는 땅이다. 그러니 약간 한눈을 파는 것 정도는 인지상정이다.
“그리고 예쁜 첩이 곁에 있으니 굳이 귀국하지 않고 싶어질 수도 있겠지.”
“전하, 선후 관계를 바꾸지 말아 주시옵소서. 귀국을 미루다 보니까 소인들에게 첩이 생긴 것이지, 첩이 생겨서 귀국하지 않는 게 아니옵니다.”
정호찬은 내 옆에서 말을 몰면서 아주 태연하고 당당하게 언명했다. 정호찬의 첩은 조선 상품을 사들여 누에바 에스파냐에 수출하는 스페인계 상인의 딸로, 검은 머리에 갈색 눈을 한 미인이다. 올해 19살, 유럽인이니만큼 첩이라기보다는 정부라는 편이 더 적절하겠다.
“헌데 아파치들도 혈통을 딱히 중요하게 따지지는 않는 모양이구먼. 별일 없이 다음 대로 내려갔으면, 그 특이들도 아파치 전사라고 활을 들고 날뛰었을 게 아닌가.”
특이(特異)는 동물의 잡종 새끼를 가리킨다. 장조 시기까지만 해도 사람한테는 쓰지 않는 표현이었는데, 이번에 눈을 뜨고 보니 혼혈인을 가리키는 비하 호칭으로 정착해 있었다. 이 단어가 아마 나중에 쓰는 ‘트기’, ‘튀기’의 어원 아닐까 싶다.
이런 표현이 생겨난 건, 그만큼 조선 사회에서 혼혈이 늘어난 탓이라고 봐도 될 것 같다. 그동안 거의 볼 수 없던 혼혈이 한두 세대 사이에 확 늘어났다면, 법적인 차별과는 별개로 사회적인 거부감이 전혀 안 나타날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물론 권현의 부인이나 장희재 같은 사람을 면전에서 특이라고 부를 정신 나간 놈은 없다. 멸시받으면서 특이로 불리는 건 사회적으로 하층에 있는 남만인이나 여진인, 왜노나 묘노 피가 섞인 혼혈아들이다. 외금위 소속 하급 병졸들이나 그 후예들도 여기에 걸리긴 한다.
“그래도 포로 중에 진짜 아파치 부녀보다 붙잡아온 이들이 많았던 걸 보면, 진짜 자기네 처자는 모두 데리고 숨어버린 게 아니겠습니까? 아무래도 비첩과 얼자보다는 본처와 적자를 더 소중히 간수하는 게 사람이니 말이지요.”
“서장관, 자네도 그러한가? 김 정령도?”
“허허, 처는 처고 첩은 첩이지요.”
두 사람 모두 첩이 본국에 있는 본처를 넘어설 수는 없다고 못을 박았다. 여기서만 그냥 하는 소리인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하기야 나도 올렝카를 무척 소중히 여기기는 하지만, 상희보다 윗줄에다 놓을 수는 없다. 그러니 정호찬 보고 거짓말하지 말라고 다그칠 수는 없는 처지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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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바다를 가로지르고 다시 캘리포니아를 횡단하면서, 전군이 지선성으로 귀환하는 데 약 두 달 가까이 걸렸다. 철수로는 내가 처음 진군한 길과 같았지만, 민지상이 후군을 인솔해 따라오면서 중계소가 될 보루 7개를 설치하고 병력을 배치해 두어서 한결 움직이기 쉬웠다.
앞으로 이 철수로는 콜로라도강 방어선을 지원하는 핵심 보급로가 될 거다. 서부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마차로 구성한 수송대가 정기적으로 왕래하며 물자를 보급하고 교대병력을 전선으로 실어나르게 된다. 만약 이 호송대를 덮치는 놈이 있다면…또 전쟁이지, 뭐.
지선성으로 돌아온 뒤에는 원정군의 귀환을 축하하면서 원정에서 거둔 전과를 백성들에게 과시하기 위한 간소한 개선식이 열렸다. 비록 간소하다고는 해도, 미주에서는 처음 열리는 개선식이다. 10월 29일, 양력 1694년 12월 15일이었다.
“개선식을 열 만한 공적을 세우셨으니 당연한 결과입니다.”
“감사하오, 총관.”
귀환한 병사들이 시가를 행진하고, 밧줄로 묶은 포로들이 그 뒤를 따라왔다. 노획한 말이 끄는 수레에는 전리품으로 거둔 아파치들의 무기가 실려 있고, 그 위에 전투를 치른 횟수와 사살한 아파치 숫자를 적은 깃발이 나부끼고 있다.
그게 1588년 무자년이었던가…? 북방에서 해서부를 격파하고, 해서 4부 추장들의 머리를 베어 그 수급을 수레 네 귀퉁이에 걸고 개선식을 벌였던 해가 말이다. 노획한 갑옷을 수레 위에 산더미처럼 쌓고, 그 위에 내 보좌를 놓았었지.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악취미였구나 싶다. 처음 치른 전쟁이라서 흥분한 탓도 있었겠지만, 왜 그렇게 야단스러운 방법으로 전과를 과시했을까? 품위 있고 점잖게 전공을 드러낼 수도 있었는데.
이번에는 수급 같은 끔찍한 물건 없이도 아주 훌륭한 개선식이 되었다. 내 뒤를 따라오는 군사들을 거느리고, 주변에서 쏟아지는 환호와 갈채를 즐기는 것도 좋다. 군사들도 으쓱한 기분으로 손을 흔들어 환호에 답하고 있다.
내 저택 앞을 지나니 상희와 은이, 올렝카가 시종들을 거느리고 대문 앞에 나와 있었다. 뿌듯한 기분으로 손을 흔들며 그 앞을 지났다. 이제 총관부 관아 앞에 도착하면 기념 연설 한 번 하고, 원정을 완전히 끝내면 되겠다.
내가 원정을 나가 자리를 비운 동안 쌓인 일들도 있다. 하와이 일, 미주 현지 일, 태평양 건너 본국과의 사이에서 다뤄야 할 일, 은광과 조선소 같은 내 사업들…이제 그것들도 죄다 처리해야지. 한참 떨어져 있던 우리 식구들부터 일단 좀 챙긴 다음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