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993
3부 11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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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영역 내에 있는 인디언들은 일단 거의 수습이 된 상태다. 오금족을 필두로 한 남부 캘리포니아나 북부 워싱턴 해안지대 부족들이야 복속된 지 오래고, 아직 우리가 직접 가서 다스리지 않는 북부 캘리포니아나 오리건 쪽 부족들도 우리 종주권을 부정하지 않는다.
현재 조선 조정에서는 이 지역 부족들에게 세금을 걷거나 하지는 않는다. 미주 땅이 너무 넓은지라 일일이 찾아다닐 수도 없고, 이동하면서 사는 부족이 많아서 부락 숫자나 인구를 정확히 파악하기도 어려운 탓이다.
지금은 그런 부족들은 그냥 방치하고 있다. 상인들이 가끔 가서 교역이나 하는 정도인데, 이때 상인들을 통해서 역병이 전염되는 사례가 있다. 그럴 때 ‘병이 퍼졌으니 도와달라’는 호소가 오면 인디언 마을에 의원을 보내는 것도 미주 관아가 맡은 주요 업무 중 하나다.
“하지만 장차 우리 백성들이 늘어나면 그런 자들에게서 땅을 넘겨받기는 해야 합니다.”
성시균은 미주 인구가 매년 수천 명씩 늘고 있음을 지적했다. 아직은 미억족이 두고 떠난 미주대분지와 해안지대에 있는 토지만으로도 충분하지만, 언젠가 땅이 부족해질 날이 분명 온다. 그러면 지금 인디언들이 사는 땅이 필요하게 된다.
“감리사의 말이 옳기는 하오. 과거 북방에서도 그랬으니.”
만주에서는 초창기부터 대놓고 전쟁을 벌여 여진족을 몰아냈다. 그 결과로 지금 만주에는 오도리를 제외하면 독립적인 여진 부족은 사실상 소멸했다. 왜인여진이야 순수한 여진인이 아니니까.
그렇게 수십만 여진인이 살던 땅을 비운 뒤 우리가 들어갔고, 지금은 그 땅에서 500만이 넘는 인구가 살고 있다. 더 효율적인 토지 개발과 농사 기법 덕분이다.
다만 나는 미주에서도 만주에서처럼 원주민들을 싹 쓸어내고 싶지는 않다. 어떻게든 함께 공존하는 방향을 찾고 싶다. 여진족이야 수백 년 동안 쌓인 갈등이 있었지만, 인디언들과는 그런 것도 없지 않은가. 게다가 만주는 우리 고토(古土)지만, 여기는 본래 그들 땅이다.
“아닙니다. 북도에서처럼 몽땅 싹 쓸어내는 편이 후환이 없습니다. 지금 토인 10만 명이 사냥과 낚시를 하며 사는 땅을 개간하면 우리 백성 200만이 농사를 지으며 살 수 있는데, 왜 망설여야 합니까?”
안형운처럼 본국에서 건너온 호부 부장 송영진은 지배 영역을 확대하는 일이라면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장조께서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 배를 보내 점유하신 이 비옥하고 풍요로운 땅에 백성들을 사민하여 여유롭게 살게 하지 않는다면 그건 죄악이라고 주장할 정도다.
“본국에서는 툭하면 날이 가물고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살기 어렵습니다. 작년과 재작년, 두 해는 비가 좀 제대로 왔다 하나 올해는 또 날씨가 심상치 않다니 어찌 백성들이 양식을 걱정하지 않겠습니까? 실로 미주는 우리 조선 백성들에게 하느님께서 내리신 선물입니다.”
“그대가 미주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아직 잘 모르는 모양인데, 미주에 비옥한 땅이 많은 것을 사실이나, 땅이 원체 넓다 보니 비옥한 토지도 많은 것이오. 모든 토지가 그리 비옥한 것은 아니오. 사냥이나 하는 외에는 쓸모가 없는 땅도 많소.”
본국 조정에서 파견한 관리 중에는 미주 현지 실정을 정확히 모르거나, 본국 입장에서만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는 이들이 은근히 있다. 물론 형황이 골라 보낸 이들이니만큼 능력이 부족한 자들은 없다. 사고하는 방향이 문제다.
“그리고 장조께서 분부하시길, 토인들의 땅은 토인들의 것이니 절대 함부로 빼앗아서는 안 된다고도 하셨소. 옛 여진족이야 워낙 우리 땅을 수시로 침범하고 우리 백성을 끌어가니 토벌한 것이지, 땅을 뺏으려 우리가 먼저 친 건 아니잖소?”
분명히 말하지만 내가 선빵을 친 적은 없었다. 매번 먼저 맞은 다음에 반격만 했지. 만약 선제공격에 나서기를 망설이지 않았었다면, 경인왜란 전개도 완전히 달라졌었으리라. 백 년 전 옛날 일, 지금 와서 다시 캐내 봤자 속만 쓰리다만….
더구나 내 ‘미주삼분지계’를 달성하자면, 로키산맥 이동에 펼쳐지는 대평원은 인디언들의 영토로 계속 남아있어야 한다. 그래야 이미 동부에 들어온 유럽인들과의 사이에서 완충지대 노릇도 해줄 수 있다. 지금 부하들에게 이야기해봤자 이해를 못 하겠지만.
“장조께서는 미주 야인들이 신종하고 성현의 도를 따른다면 절대 그 토지나 인신(人身)을 함부로 범해서는 안 된다고 언명하셨고, 그 유지는 지금도 오금족에 대한 후대로 이어지고 있소. 지금 참장 정호찬이 원미탐지사(遠美探地使)를 맡아 떠난 것도 그 때문이잖소.”
안내 겸 통역을 맡은 조성칠을 앞세워 정호찬이 대평원으로 떠난 건 올해 봄이다. 대평원 부족들이 결성하고 있다는 연합의 실체를 파악하고 저들과 교섭하여 우호관계를 맺기 위한 특사였다.
조성칠이 주장한 바에 따르자면 평원에 거주하는 3백 개 부족이 하나로 뭉쳐서 우리에게 맞설 연맹을 조직했다고 했다. 3백 개나 되는 부족이 연합했다는 주장에는 전혀 신뢰가 안 가지만, 일단 여러 부족이 어느 정도 연계를 맺은 건 분명해 보였다.
조성칠이 구체적으로 언급한 부족명만 해도 다 외우지도 못할 지경이다. 다코타, 라코타, 피간, 식시카, 니치타피, 크리, 샤이언, 만단, 아리카라, 아라파호, 카이오와 등등 정말 수가 많기는 했다. 내가 아는 부족도 있지만 생전 처음 들어보는 것들도 허다했다.
이렇게까지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는 걸 보면, 분명 뭔가 존재하긴 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정말로 저들이 하나로 뭉쳤다고 해도 우리로서는 우려할 게 없다. 도리어 환영할 일이다.
내가 조성칠에게 지적한 부분이기도 하지만, 수렵민인 인디언들에게 대규모 원정군 같은 걸 편성할 능력은 없다. 그러니 인디언 연합군의 미주 침공 같은 걸 걱정할 필요도 없다. 교섭 창구가 일원화되면서 생기는 이점이 더 크다.
인디언 연맹 수뇌부와 접촉해서 정식으로 외교 관계를 수립한다면 ? 지금 그놈들이 우리 밑으로 들어와 신하가 될 가능성은 어림 반푼어치도 없으니까 ? 매우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산발적인 약탈을 막고 안정적으로 교역하며 관계를 유지하기 쉬워진다.
평화롭게 지내는 이웃으로 서로를 인정하게 되면, 조선인 이주민 일부를 대평원으로 보내 정착하게 할 수도 있다. 그래야 서진하는 유럽인들을 적어도 미시시피강 선에서 저지할 수 있다. 인디언들만 내버려 두면 역사대로 유럽인들이 로키산맥까지 몰려올 게 뻔하지 않나.
인디언 연방의 국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도, 친조선 중립국으로서의 성향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조선인 인구는 일정 비율 이상으로 올라가야 한다. 내가 저지하려는 건 북아메리카를 통째로 차지하고 본국에 맞서는 조선계 초강대국의 출현이니까, 인디언 연방은 괜찮다.
물론 전쟁으로 이 모든 것을 얻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평원 인디언과 전쟁을 벌이기에는 우리 역량이 아직 부족하다. 전에도 말했잖은가. 철도와 연발총이 필요하다고.
그래서 정호찬에게 현지 사정을 살피면서 교섭할 전권을 주었다. 정호찬이 가진 역량에다 그동안 북도와 유럽과 미주에서 쌓은 경험을 더한다면 충분한 성과를 거두고도 남을 거다. 통역에게 속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정말 인디언 연합이 존재한다면 그 수뇌부와 회견하여 서로의 영역을 범하지 않고 우호를 유지하자는 협약을 맺는다.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면 로키산맥에 이웃한 부족들과 먼저 그런 약조를 맺는다.
그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위협을 막기 위해서 왜인여진 100기, 골응군 150기, 속오군 30기, 미억족 번병 20기를 동반해서 보냈다. 이들 중 다수가 총으로 무장하기까지 했으니, 이만하면 웬만한 위협은 막아낼 수 있는 숫자다.
정호찬은 2년 여정을 각오하고 동쪽으로 떠났다. 원체 거리가 멀고, 도중의 안전 문제도 있어서 중간보고를 받기는 어려울 듯하다. 부디 성공하고 돌아오기를 바랄 수밖에.
“파이우투족과 유투족은 임금의 이름으로 내린 하사품을 받고 대한의 신하가 되기로 굳게 맹세했소. 미주대령 너머에 있는 자들도 그리되면 좋겠으나, 워낙 멀리 있으니만큼 순순히 따르지는 않을 거요. 그럼 변방의 번국으로라도 대해야 하지 않겠소.”
파이우트족은 아파치보다 먼저 한번 호되게 얻어맞았고, 그 뒤에는 아파치 토벌에 나서는 우리 군대의 위용을 보았다. 그리고 높았던 콧대를 낮추어 확실하게 고개를 숙였다.
유트족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파치 토벌 기간에 내가 유타에 파견한 2천 대군은 유트족이 허리를 숙이게 하기에 충분한 압력이었다. 비록 절반은 속오군이고 나머지 절반은 미억족과 올로내족 번병이었지만, 이들도 전원 말을 타고 다수가 총을 가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정식으로 신종하는 대가로 이들도 말과 총을 받았다. 당장 만족할 만큼 받지는 못했지만, 그건 당연한 일이다. 앞으로 우리에게 충성하는 모습을 보면서 꾸준히 약간씩 내줄 거다.
“하온데 전하, 저들 원미주(遠美州) 야인들이 우리와 우호를 맺으려면 저들의 땅에 몰래 들어가 감히 폐하의 뜻을 거짓되게 전하며 우리와 저들을 이간질하려 한 반역도배들을 모두 잡아 보내도록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당연한 말이오. 원미탐지사에게도 그 점을 주지시켰으니, 염려치 마시오.”
형부 부장 윤영기 역시 본국에서 직접 보낸 사람이다. 그만큼 태황의 권위를 중히 여기며 반역죄를 처벌하는 문제에 민감하다.
내 밑에서 육부를 이끄는 수장 중 정치적으로 가장 중요한 핵심 실무 기관인 예부, 호부, 형부를 사실상 본국에서 통제하는 셈이다.
원래 가장 중요한 자리인 이부 부장은 공석이고, 감리사 성시균이 대행하고 있다. 공부는 미주 출신 인사가 맡았고, 병부는 유일하게 내 진짜 측근인 김종건이 맡고 있다. 그래 봐야 예하에 거느린 병사가 거의 없으니, ‘동변관리사 병부 부장’이라야 허울뿐이다.
“저들이 순순히 죄인을 넘기지 않으면 어쩌시겠습니까?”
“시간을 들여 설득해 보겠소. 미주 야인들이라고 하여 사람의 도리를 모르는 것이 아닌데, 덕과 의리로 잘 이야기하면 어찌 죄인을 내주지 않겠소?”
형황이 보낸 신하들 앞에서는 이렇게 말해둔다만, 인디언들이 조선인 유세객들을 붙잡아 송환해주리라는 기대는 사실 전혀 안 하고 있다. 인디언들한테는 범죄인인도조약 같은 개념 자체가 없을 테고, 그자들의 행동이 범죄인지에 대한 견해도 다를 테니까.
아마 그 유세객들은 대부분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 정도로 끝나버릴 공산이 크다. 우리가 추적대를 보내 쫓아도 넓은 대평원 어딘가에 숨어버리면 찾아낼 재간이 없다. 여차하면 더 멀리, 미시시피강 건너 동부로 도망가면 그만 아닌가. 거기까진 도저히 못 쫓아간다.
조성칠이 주장했듯이 그놈들 중에 우리 조선에 적개심을 품고 앙갚음하려는 자들이 정말 있다면 그놈들은 패거리를 모아 유격전을 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밥이나 공으로 얻어먹을 생각으로 유세객 노릇을 한 놈들은 전문 사기꾼으로 전업해서 새 밥벌이를 찾으리라.
“설마 잉글인이나 불랑국인들을 찾아가 조선에 맞서야 한다고 선동하는 건 아니겠지.”
“그런 사태를 막기 위해서라도 놈들을 철저히 잡아 뿌리를 뽑아야 하옵니다.”
윤영기는 반역자라면 씨를 말려야 한다는 태도를 아주 강렬하게 드러냈다. 의금부에서 꽤 오래 일했다더니, 그 영향인 모양이다. 근래 수십 년 동안 역모가 터진 적도 없다는데 왜 저리 민감한지 원.
하기야 형황의 성격을 생각해본다면 의금부나 금위사가 늘 쉴 틈 없이 바쁘기는 하겠다. 그동안 ‘터진 역모’가 없었다고 해도, ‘터질 역모’는 언제나 있을 수 있다고 가정하고 조직을 돌릴 테니까 말이다. 하긴 애초에 내가 금위사를 만든 이유가 그거긴 했다만.
“윤 부장의 말도 옳기는 하나, 지금 당장은 더 시급한 문제가 따로 있으니 그건 좀 뒤로 미뤄도 될 듯하오. 본국에서 지난 2년 동안 날씨가 좋아서 이제 기근이 끝나는가 싶었는데, 3년만인 올해 또 날씨가 극도로 좋지 않다고 하니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소?”
회의가 계속되는 동안 본국에 갔던 동현이 돌아왔다. 철재와 종이, 포목을 비롯한 물자를 잔뜩 싣고 온 건 반가웠으나 함께 가져온 소식은 전혀 반갑지 않았다. 올해 봄, 경신대기근 연간을 연상시키는 지독한 기상이변이 본국에서 연이어 일어났다는 거였다.
“4월에는 전국에 비가 전혀 오지 않아 모를 내지 못했고, 경기도와 충청도에까지 밤마다 서리가 내렸고 평안도에는 폭풍과 함께 우박이 쏟아졌다 하오. 5월에도 평안도와 강원도에 서리가 내리고 함경도에는 우박이 쏟아졌다 하니 이 어찌 큰일이 아니겠소.”
5월에 동현이 조선을 떠났기 때문에 6월 이후 상황에 대한 정보는 없다. 하지만 과거의 내 경험과 여기 있는 신하들의 경험에 비추어보아도, 6월부터 날씨가 확 좋아져서 풍년으로 바뀌지는 않을 터였다. 참, 이 날짜는 음력 기준이다.
조정에서는 4월과 5월에만 십여 차례나 기우제를 지냈다고 했다. 하지만 그 효과는 내가 익히 아는 바다. 아무리 기우제를 올려도 안 내릴 비는 안 내린다. 하늘에서 사는 그놈들이 내 눈앞에서 인정하지 않았는가.
“본국에서 8월에 출발하는 관선이 와야 정확한 소식을 알 수 있을 겁니다. 날씨가 조금만 호전되어도 본국 백성들이 겪는 고난이 그렇게 크지는 않을 테니, 차분히 기다려 보시지요. 혹시 장마 때 비가 좀 왔을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김종건이 내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하지만 본국에서 온 세 명은 입을 모아 그 의견에 반대했다.
“본국에서는 군량미까지 털어 환곡 대신 지급함으로써 백성들을 구휼하고 있다 했습니다. 이는 실로 심각한 상황이니, 미주에서도 식량을 보낼 준비를 해야 합니다. 미주 총관부에서 마땅히 맡아 할 일이지만, 우리도 외면할 수는 없습니다.”
지난 2년 동안은 본국에서 작황이 괜찮았기 때문에 본국으로 보내는 식량 운반에 그다지 주의하지 않았다. 품목을 보면 가격이 비싼 기름을 주로 보냈고 술과 고기가 좀 건너갔다. 쌀은 본국에서 가까운 일본이나 유구, 강남에서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올해 본국에 경술년과 신해년 같은 기근이 또 닥친다면, 여기 미주에 있는 창고 전부를 비워 가져간다고 해도 모자랄 것입니다. 이 총관과 논의하여 대책을 수립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안형운에 이어 송영진이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다만 동변에서는 생산하는 식량이 없고, 아직은 세도 넉넉하게 걷히지 않습니다. 우리가 본국의 기근을 해소하기 위해 직접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으니, 전하께서는 대총관에게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판단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도록 권하는 데 주력하소서.”
“말로만 본국을 도우라는 말인가.”
“저희 동변관리사로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옵니다.”
호부를 책임진, 즉 재정을 담당하는 사람인 송영진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하면 없는 거다. 본국에 직접 돈과 식량을 보내고 싶어도 내가 관리하는 금고에 돈이 없다면, 그리고 세금을 걷을 백성도 없다면 도리가 없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나한테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아니, 그건 정말 상황이 크게 심각할 때 쓰도록 하자. 지금 당장 나설 필요는 없겠지.
그나저나 요세미티로 가는 겨울 가족여행은 일단 출발을 미뤄야겠다. 올해 농사가 확실히 어떻게 됐는지, 본국에서 연락이 온 다음에 가는 쪽으로 말이다. 본국에서 기근으로 난리가 났다는데 내가 눈 속에 파묻혀 유유자적하며 겨울을 보낼 수는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