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Take a Bath Together, Duke! RAW novel - Chapter 1
공작님, 우리 목욕합시다!
지은이│녹안
펴낸곳│필연매니지먼트
투고메일│[email protected]
ⓒ 녹안,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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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돌겠다.
“어머, 다이앤 영애! 그게 이번에 새로 한 머리인가요?”
“네, 공작을 형상화한 거랍니다.”
“너무 아름다워요!”
거짓말이 아니라, 진짜로 돌겠다.
“저런, 나디아 영애. 안색이 창백해요. 괜찮으신가요?”
“…아, 아닙니… 우욱!”
“나디아 영애!”
오지 마. 아, 오지 말라고!
내 쪽으로 얼굴을 들이미는 네펠리 영애의 모습에 등허리에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네필리 영애가 무서운 사람이라서가 아니다.
그냥, 내가 똬리 모양의 머리카락에서 하얀 각질을 봤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도 쓰러져서 크게 앓으셨잖아요. 아무래도 아직 몸이 안 좋은 모양인데.”
“여전히 몸이 약하시군요. 가엾어라…….”
하얗게 질렸을 게 뻔한 얼굴 탓일까?
다른 영애들마저 심각하게 표정을 굳힌 채 자리에서 일어나는 게 보였다. 이대로는 안 된다.
나는 절박한 마음을 담아 빠르게 손을 내저었다.
“아니, 정말 괜찮아요!”
“괜찮긴요! 지금 식은땀까지 나고 있잖아요!”
네펠리 영애의 다그침을 들으며 나는 꾹 입술을 깨물었다.
‘그건 너희가 나에게 가까이 오고 있기 때문이야……. 욱!’
순식간에 나를 둘러싼 영애들 사이에서, 네펠리 영애의 옷깃을 잡은 내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치밀어 오르는 토기를 누르기 위한 마지막 발버둥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임시방편이지.
향수와 뒤섞인 지독한 체취가 기어이 내 정신을 아득하게 날렸다.
“의사! 의사를 불러와!”
저런……. 난리가 난 영애들의 모습이 점점 부옇게 흐려져 가는군.
나는 멀어져 가는 의식 속에서 다시 한번 진지하게 회개의 시간을 가졌다.
‘그때 그런 댓글을 쓰는 게 아니었어.’
그런 댓글만 쓰지 않았더라면.
“나디아, 내 딸!”
내가 이렇게 끔찍한 로맨스 판타지 소설을 직접 겪는 일은 없었을 거라고!
* * *
그건 얼마 전의 일이었다. 눈치껏 회사에서 월급 루팡을 하고 있던 나는 여느 때처럼 팀장님 몰래 소설 사이트를 켜 두고 있었다.
소설을 읽고 있던 건 아니고, 그냥 이번 달에 살 작품을 찾아 리뷰란을 확인하던 중이었다.
그때였다.
뭐 괜찮은 거 없나 휙휙 스크롤을 내리던 내 눈에 정성이 가득 담긴 리뷰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끝으로 이 소설이 재미없었다는 건 아니고요. 그냥 이제는 좀 현실적인 글이 보고 싶기도 해요. 서양 중세 ‘판타지’니까 다 고증을 지킬 필요는 없지만…….
현대인이 빙의하면 좀 더러워서 힘들어할 법도 하잖아요. 마법으로 만든 샤워기 같은 거 이제는 좀 식상하다고나 할까요? 여하간 책은 재미있어요.
여주 남주도 달콤하고 여름에 읽기 좋아요.]
그러게. 생각해 보니 그랬다.
평소 소설을 즐겨 보는 탓에 안 읽어 본 로판이 더 적었지만, 여주에 빙의한 애들은 다들 너무 그 시대와 배경에 적응을 잘했다.
거기가 아무리 깨끗하다 한들, 어쨌거나 현대인이 생활하기에는 매우 불편할 텐데도.
‘소설적 허용? 뭐, 그런 거겠지.’
어찌 되었거나 판타지 소설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비위가 약해 재래식 화장실만 가도 구역질을 하는 나로서는 그 리뷰에 어느 정도 공감하는 바가 있었다.
그래서 냅다 그 리뷰를 클릭한 채 아무런 생각 없이 답글을 달았다.
[bath_lover_11: ㅋㅋㅋㅋㅋㅋ그러게요. 할머니 집만 가도 불편할 때가 많은데, 시대랑 인종이 바뀌면ㅋㅋㅋㅋ 그런 거 나오는 소설 있으면 신선하긴 하겠네요. 빙의했는데 막 냄새나서 괴롭고 그런 거ㅋㅋㅋㅋㅋ]
왜 그랬지. 과거의 나 왜 그랬어.
그것만 아니었다면 내가 딴짓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아챈 팀장이 버럭 소리를 지르지 않았을 거고, 그의 고함에 놀란 서 대리가 뜨거운 커피를 날리지도 않았을 것이며…….
“으악! 대리님!”
그 뜨거운 커피를 피하려던 사원과 부딪쳐 의지째 나동그라진 내가, 라디에이터에 머리를 박고 의식을 잃는 일은 없었을 텐데.
그리고 의식을 잃은 그 직후, 이런 괴상한 곳에 떨어질 일도 없었을 거다.
처음 눈을 떴을 때의 기억은 익숙하면서도 강렬하기 짝이 없었다.
“세, 세상에. 공작님! 주인님! 나디아 아가씨가… 눈을 뜨셨어요! 정신이 돌아오셨다고요!”
“뭐? 내 딸이 눈을 떴다고!”
“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흐흑, 내 딸이 정신을 차렸어! 어디, 어디 얼굴 좀 보자. 아가!”
정말 난리였지. 아름다운 외모의 사람들이 울며 감격하다 나를 끌어안기를 반복했거든.
흔한 로판의 시작처럼 보이는 이 광경이 괴상하게 느껴진 것은, 나를 끌어안은 누군가의 품에서.
“구…….”
“구?”
“…구려.”
코가 찡할 정도로 구린 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초반에는 내가 환각을 보는 줄 알았다. 아니면 의식을 잃어서 꿈을 꾸거나. 아니, 그럴 만한 게 환각이나 꿈이 아니면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겠어.
‘내가 소설 속에 나오는 그런 여자 주인공도 아니고!’
하지만 늘 기대는 현실을 배신하는 법이다. 꿈인가 싶어 뺨도 때려보고 밤새 울어도 보고, 신전에 기도도 하러 가며 별짓을 다 해도 변하는 것은 없었다.
그렇게 긴긴 방황의 끝, 나는 결국 소설 또는 그런 비스름한 세계의 공작 영애에 빙의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빙의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는 거다.
“파이 위로 왜 털이 잔뜩…….”
“깃털 장식이 예쁘지? 우리 딸이 가장 좋아하던 음식이라 유독 신경 쓴 모양이야.”
“목욕은…….”
“제가 천으로 몸을 닦을 수 있게 준비했어요, 아가씨! 설마 또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겠다고 하시진 않겠죠? 의사 선생님이 그게 쓰러진 원인이라고 하신 거 못 들으셨어요?”
아무래도 이 로판 세계, 내가 쓴 댓글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곳 같거든.
그것도 딱 ‘빙의했는데 막 냄새나서 괴롭고’ 부분 같은 위생 상태만 콕 짚어서 선택적으로.
그도 그럴 것이, 다른 모든 것은 완벽한 판타지였다.
“드디어 안정을 찾았구나, 나디아……. 네 언니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정말 기뻐했을 텐데. 아쉽게도 네가 신전에서 기도를 드릴 때 전하의 시찰에 동행했단다. 아르웬은 기사단장이니 어쩔 수 없지.”
“그러게, 하필 루핀도 없어서. 일전에 연구하던 영혼 관련 마법에 관한 게 성과를 보인 모양이야. 마탑에서 가만히 두지를 않는구나.”
기사단장을 맡다 몇 년 후면 작위를 이어받을 언니와 마법사인 남동생. 모든 걸 지지해 주는 가문과 자유로운 연애관!
‘여기 진짜 유독 위생만 뒤떨어진 완벽한 로맨스 판타지 세계관이구나.’
단 하루만 제대로 보내도 알 수 있는 현실에 나는 양손을 들었다. 그러고는 마음을 먹었다.
소설 속에 나오는 여주인공들처럼 살아보기로.
‘왜, 사랑의 힘이 현대인의 자아를 무찌른 걸지도 모르잖아.’
솔직히 현대인이 맨정신에 새벽 배달 시스템이나 스마트폰,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은 걸 어떻게 포기하나. 다 사랑의 힘인 거다.
누가 로맨스 판타지 세계 아니랄까 봐, 다행스럽게도 여기는 사랑에 빠질 기회가 굉장히 많이 있었다.
‘오늘 몸 상태는 좀 어때요? 잠시 확인해 봐도 괜찮을까요?’
이목구비가 조각상 같은 젊고 멋진 의사 선생님이라든가.
‘너… 기억이 온전하지 않다는 게 사실이야? 네가 날 잊었다고?’
소꿉친구라면서 날 찾아온 상큼한 후작가의 영식.
‘아팠다고 하더니 정말 얼굴이 핼쑥해졌군. 더 쉬어야 하는 게 아닌가?’
로맨스 소설의 처음이자 끝, 알파와 오메가인 황태자까지도.
내 앞에 나타난 남자들은 다들 소설에서 한 끗발 날릴 사람답게 생겼다. 다시 말해 눈이 돌아갈 정도로 잘생겼다는 거지.
그래서 나도 사랑으로 이 척박한 현실을 이겨낼 수 있을 줄 알았다. 흔한 조연에 빙의한 여주처럼 그렇게 언젠가는 해피 엔딩을 맞이할 거라고.
그래, 그럴 수 있을 줄 알았지.
“나디아.”
“아, 잠시만요.”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갑자기 안색이…….”
“잠시 떨어져 주… 아, 우욱!”
꿀이 뚝뚝 떨어지는 눈빛으로 내게 다가오는 남자들의 입과 몸에서 참을 수 없는 냄새가 나지만 않았더라면 말이다.
‘아, 내가 사랑을 너무 쉽게 봤네. 으응.’
그렇게 나는 이곳에서 몸이 너무 병약해 사랑조차 버거운 영애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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