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Take a Bath Together, Duke! RAW novel - Chapter 40
40화
“루핀, 무례하구나. 사람의 말을 그렇게 끊어서는 안 되지. 게다가 이런 식으로 들어오면 안 된다고 몇 번 말했을 텐데.”
“누나의 일이 급한 게 아니었다면 아버지의 말을 끊지도, 이렇게 들어오지도 않았을 거예요.”
단호하기 짝이 없는 대답에 공작이 입을 다물었다. 그 틈을 놓치지 않은 프리지아 골드게이트가 다시 대화의 주제를 언급했다.
“그래서, 그 소문이 사실이야? 루핀, 네가 이렇게 온 걸 보면 뭔가 있다는 것일 텐데?”
공작 부인이 날카롭게 묻자, 루핀은 가볍게 창틀에 제 몸을 기댔다.
“미쳤다는 소문이라면 어느 정도 부풀려진 거라고 말하겠지만, 별난 구석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 전대 카르테인 공작 내외가 급하게 사람을 물색하고 있었으니까요. 목욕에 집착하는 부분이 있었다고 하죠.”
“목욕?”
“하지만 공작은 이번 ‘신의 축복’ 사태 때 그게 신께서 주신 기회이자 축복이었다고 말하며 기존의 소문을 싹 잠재웠습니다. 별난 구석도 특별한 것으로 탈바꿈했고요. 그런데…….”
잠시 말을 끊은 루핀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문제는 나디아 누나의 약혼이 그 ‘신의 축복’과 크게 엮여있다는 거죠. 정확하게 무슨 일이 오갔는지는 모르지만, 누나가 그 공작의 별난 목욕 집착에 어울리고 있다는 것도.”
“뭐! 절대 안 돼!”
대경한 공작 부인이 크게 소리를 질렀다.
“나디아가 목욕이라니!”
희게 질린 얼굴로 아랫입술을 꼭 깨문 그녀가 파르르 손을 떨었다. 데릭이 가만히 프리지아의 손을 붙잡았다.
그는 제 부인이 왜 이렇게 격하게 반응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아니, 그건 루핀도 마찬가지였다.
“루핀.”
담담한 그의 부름에 셋째인 루핀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제가 아르웬 누나와 함께 카르테인 공작가로 가죠.”
“아니, 아니야. 내가 가야겠어. 나디아의 상태를 내가 직접 확인해야…….”
“어머니.”
창가 쪽에서 걸어온 루핀이 공작 부인의 반대편 손을 잡았다. 마법사 특유의 차가움이 서린 금안에 잠시 다양한 감정이 떠올랐다.
분노, 불안, 당황, 놀라움, 걱정.
마법사가 된 이후로 아들에게서 찾아보기 어려웠던 여러 감정의 조각이 모조리 눈앞에 있었다. 공작 부인이 살짝 눈을 감았다.
“저를 믿으세요. 제가 못 미덥다면 아르웬 누나라도.”
“…….”
“나도 누나도 그런 일을 또 겪고 싶은 마음은 없으니까.”
루핀의 뇌리에 창백하게 누워있던 나디아의 모습이 일순 스쳐 지나갔다. 영혼이 비어 껍데기만 남은 채, 누워있던 그때의 모습이.
그건 마법사가 된 이후 감정 변화가 적어진 루핀에게도 상당히 충격적인 일이었다.
‘뭐, 그게 아니라 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남의 집 귀한 딸을 데리고 가서야 쓰나.’
공작 부인은 차분한 루핀의 목소리를 들으며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아들이 창가로 다시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차마 말로 내뱉지 못한 말이 하나 있었다.
‘만약 나디아가 정말 카르테인 공작을 좋아하는 거라면?’
그래서 지금껏 카르테인 공작의 말을 전부 들어주고 있었고, 우리에게 이 상황을 이해해 달라고 한다면?
공작 부인의 입에서 작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제발 그것만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둘째 딸을 위험으로부터 떼어놓기 위해서라면 프리지아는 그 대단한 카르테인 공작가와 전면으로 싸우는 것도 두렵지 않았다. 여론전? 그런 건 더더욱 자신 있었고.
하지만 골드게이트 가문의 사람들이 유일하게 꺾을 수 없는 이가 있다면 그건 나디아였다. 다시 눈을 뜬 이후로 방에 박혀 그 무엇도 바라지 않던 나디아에게 반대를 말할 자신은 정말 없었다.
‘왜 하필 소문도 찾기 힘들고 소식도 느린 북부여서…….’
프리지아가 제 엄지손톱을 살짝 물었다.
아르웬에게서는 왜 아무런 말도 없었는지, 북부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어떤 것도 확실하지가 않았다.
늘 정보의 최전선에 서 있던 프리지아는 이런 불투명한 상황을 다루는 게 제법 힘들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가 무엇을 할 수 있겠나.
참담함과 걱정을 한가득 안은 채 그녀는 남편의 손을 꽉 마주 잡았다. 지금 믿을 건 그들의 아이들뿐이었다.
‘그리고 부디 나디아가 카르테인 공작에게 빠진 게 아니기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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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클로드 카르테인 너무 좋아!’
나는 내 전용 욕실을 보고는 크게 소리를 질렀다. 전용 욕실은 내가 언제든 사용할 수 있도록 침실과 연결된 작은 방에 꾸려져 있었다.
매끈한 나무 욕조와 깔끔하고도 아름다운 병풍, 책이나 음식 등을 올려놓을 수 있는 판까지.
나는 언뜻 눈이 부시기까지 한 눈앞의 광경에 양손을 꼭 그러쥐었다.
“어떻게, 마음에는 드십니까?”
“마음에 드냐고요?”
마음에 드냐고? 그걸 지금 질문이라고 한 거야?
나는 잔뜩 흥분한 표정으로 휙 클로드를 바라보았다. 지척에서 내게 질문을 던진 그가 나지막하게 소리를 내 웃는 모습이 보였다.
“표정만 봐도 알 것 같군요. 꾸며놓은 개인 욕실이 마음에 차 다행입니다.”
“아니, 아니 대체 언제…….”
“영애가 온천을 즐기는 법을 알려줘야겠다고 신의 영역 근처 마을로 나가셨을 때요.”
아, 그때.
나는 신이 나서 달려갔던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려다 잠시 생각을 멈췄다. 거기에서도 가슴 벅찬 일이 많이 일어났지만, 지금 집중해야 하는 게 뭔지는 너무나도 자명하니까.
“아무래도 매번 나디아 그대가 양해를 구하며 집무실의 욕실로 찾아오는 게 마음에 걸려서, 이참에 자리를 마련…….”
“대체 어디에서.”
“나디아?”
“대체 어디에서 이렇게 완벽한 사람이 뚝 떨어진 거야!”
클로드의 주황색 눈동자에 잠시 당황이 서린 것이 보였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그런 그의 눈동자마저 오늘은 반짝이는 보석 같았거든.
부푼 마음을 참을 수 없게 된 내가 양손으로 그의 볼을 부여잡고 발꿈치를 들려던 순간이었다.
“나디아 님! 제가 욕실에 어울릴 만한… 아, 아니, 그, 죄송합니다!”
아기자기한 물품들을 가지고 들어오다 화들짝 놀라 몸을 돌리는 줄리엔이 보였다.
언제나 차분했던 그녀가 각목처럼 삐걱거리며 방을 나서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바깥에서 뭔가 굴러가는 소리가 들리는 걸 보면, 품에 안고 있던 물건을 떨구기까지 한 모양이다.
“아이고…….”
뭐, 그렇고 그런 흑심을 품은 건 아니었는데. 그냥 기쁨이 주체가 안 되어서 손으로 그의 뺨을 잔뜩 문지를 생각이었다.
이대로는 줄리엔의 심장이 남아나지 않겠다 싶어 나는 클로드의 얼굴을 붙잡았던 손에서 힘을 풀었다. 잠시 바깥으로 나가 그녀에게 별거 아니었다고 말할 요량이었다.
“나디아.”
“억!”
클로드 카르테인이 내 손을 붙잡아 내리지 못하게 하지만 않았다면 분명 그랬을 것이다.
순간적으로 튀어나온 굵은 목소리에도 클로드는 꿈쩍하지 않았다. 그는 대신 잡은 손에 부드럽게 힘을 준 채 가볍게 장난을 걸었다.
“지금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을 찾으러 가는 겁니까?”
“아니…….”
“방금까지 완벽한 사람이라고 제게 그러더니, 대우가 박하시군요.”
나는 어째 날이 갈수록 꼬리가 하나씩 더 늘어나는 듯한 클로드의 모습에 꾹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는 눈을 가늘게 뜬 채 그를 응시했다.
‘이 요망한 사람 같으니라고.’
클로드는 내가 그를 어색해한다는 걸 알아낸 이후로 이렇게 종종 나를 놀리고는 했다.
“지금 저 놀리죠.”
“제가요? 아닙니다. 전 그저 상을 받고 싶을 뿐인데요.”
“상이요?”
눈짓으로 욕실을 가리킨 그가 은근히 입꼬리를 당겼다. 수려한 그림 같은 미소가 잔잔하게 그의 얼굴에 퍼져나갔다.
“마음에 드신 것 아닙니까, 여기. 그럼 응당 제게 상을 주셔야지요.”
자기가 선물로 줘놓고는 무슨 상을 달래. 나는 작게 콧김을 뿜고는 슬쩍 눈썹을 밀어 올렸다. 아, 이럴 때는 방법이 또 있지. 나는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45도 각도로 꺾었다.
“공작님, 제 눈을 봐요.”
“음?”
“보이세요? 제 눈에 가득 담긴 기쁨과 행복? 약혼자가 이토록 행복해하는 모습이 공작님에게는 최고의 상이 아닐까요?”
진짜 말 같지도 않은 대답이지만, 괜찮다. 시작은 그가 먼저 했으니까.
나는 내 초롱초롱한 눈을 더 자세히 보라고, 빠르게 속눈썹을 팔랑거리기까지 했다. 만약 내가 속눈썹 광고 모델이었으면 광고주가 아주 흡족해했을 거다. 돋보일 줄 안다고 말이야.
더 자세히 보라는 듯 초롱초롱한 눈을 빠르게 깜박이자, 그가 기어이 소리 내어 웃음을 터트렸다.
“이제는 꽤 익숙해지신 것 같습니다.”
“누구 덕분에 말이죠. 아, 그리고 제가 이번 외출로 배운 게 좀 많거든요.”
“이번 외출이라면… 온천에 다녀왔던 것 말입니까?”
나는 잡힌 손을 빼내며 의아함이 담긴 그의 물음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가 여간 인기쟁이가 아니라서 말이죠.”
아니, 물가에 모이면 말이 많아지는 건 만국 공통의 일인가 보더라고.
나는 잠시 그때의 일을 떠올렸다. 처음에는 내가 나타난 것 자체에도 화들짝 놀라 엎드리던 사람들이 얼마 뒤에는 집에서 미리 우려 온 차라며 달콤한 음료도 가져다줬지.
별 의심도 없이 건네받아 마시는 걸 보고 헤르잔이 귀에 피가 나게 잔소리를 했었다. 아무튼,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다시 말을 이었다.
“사실 온천은 공작님이랑 가려고 했었거든요? 뒤풀이도 할 겸 해서요.”
“같이 온천이라…….”
클로드의 끝말이 미묘하게 늘어졌다. 나는 그제야 내가 한 말이 어떻게 들렸을지 깨달았다. 얼굴에 일순 열이 확 몰렸다.
“아, 아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예요! 그런, 그런 게 아니고요! 뒤풀이같이 가려고 한 거라니까요!”
“뒤풀이?”
“어……. 전투 끝나면 모여서 파티 열고 그런 거 안 하나요? 그런 뜻인데.”
“아.”
클로드는 대강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고갯짓을 했다.
“칼을 들지 않았을 뿐이지, ‘신의 축복’은 솔직히 대승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이런저런 일로 아직 축배도 못 든 것 같아서요.”
“전부 영애의 공입니다. 그 점은 제가 먼저 챙겼어야 했는데 미처 신경을 쓰지 못했군요.”
“어, 음. 그건 참 기쁜 말인데요…….”
“아직 배후가 제대로 잡히지 않은 게 마음에 걸리십니까?”
그렇다. 신의 분노를 일으킨 진짜 배후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상황이 마음에 걸렸다.
‘얼마 안 걸릴 줄 알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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