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Take a Bath Together, Duke! RAW novel - Chapter 78
78화
‘어디, 언니와 함께 돈을 펑펑 쓰러 가 볼 테야?’
왜일까. 타냐는 얼마 전 들었던 그 말이 갑자기 떠올랐다. 이유는 간단했다.
나디아가 마탑을 방문했다는 말을 듣고 뒤늦게 따라왔는데, 마탑에서 나오는 고용주의 모습이 여러모로 대단했기 때문이다.
신의 영역에서 보였던 모습과 달리, 화려하고 귀족적인 분위기의 그녀는 쉽게 범접하기 어려운 느낌을 주었다.
시선을 45도로 내린 채 태연하게 걸어 나오는 나디아의 뒤로 이어진 것은 꽤 긴 행렬이었다. 그것도 그저 일반적인 게 아닌, 마도구를 잔뜩 든 사람들의 행렬.
“어, 어라? 나디아 님? 저게……?”
찬란하게 빛나는 마도구를 멍하니 바라보던 타냐가 느릿하게 자신의 눈을 손으로 비볐다. 물론 그렇게 눈을 비비고 있는 건 그녀만이 아니었다.
바깥에서 나디아 골드게이트가 궁금해 기다리던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보고 있는 광경을 믿지 못했다.
“그, 저 뒤에 있는 게 다 뭐야?”
“마도구 아니야?”
“에이, 이 사람이! 설마, 마도구를 어떻게 저렇게 산처럼 사서 오나. 아무리 영애님이 골드게이트 가문이라고 해도 마도구는…….”
그럴 리 없다며 너스레를 떨던 남자는 마저 말을 이을 수 없었다. 그가 말을 마치기도 전, 마탑의 안쪽에서 마법사 하나가 로브를 휘날리며 뛰어나온 탓이다.
“나디아 님!”
마법사답지 않게 아주 환한 표정으로 달려온 남자가 나디아에게 종이 하나를 건네며 입을 열었다. 심지어 양손을 가슴께에 올린 채 꼭 쥔 상태였다.
잔뜩 설레는 표정으로 나디아를 본 그가 화사하게 웃으며 친절하게 말을 이었다.
“아이고, 제가 정리한 목록을 드린다는 걸 깜박 잊었지 뭔가요?”
“아, 그러네요!”
“그래도 마법을 이용하지 않고 돌아가신다고 한 덕에 이렇게 전해드릴 수 있었지 뭔가요? 알고 보면 마법사 아니십니까? 예언이 특기라던가!”
세상에서 자기 자신을 가장 아끼고 고귀하다 여기는 마법사가 누군가를 치켜세워 주며 웃는다고? 그것도 저렇게 공손하게 대접을 해주면서?
이건 정말이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괴이한 현상을 목격한 이들이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기이할 정도의 침묵이 공간을 뒤덮었지만, 나디아는 크게 개의치 않는 듯 보였다.
“이렇게 챙겨줘서 고마워요. 따로 진행하시는 연구도 있고, 또 탑도 관리하신다고 들었는데.”
“에이, 그게 무슨! 괜찮습니다. 그런 연구 따위가 지금 뭐 그리 큰 대수겠어요. 지금껏 창고에 쌓여 있던 것까지 전부 구매하겠다고 나선 귀인이 계신데요!”
“귀인씩이나요?”
“그럼요. 제게는 제일 중요한 분이세요! 탑주님이 저한테 맡기신 일 중에 가장 가치 있는 일이었습니다. 루핀에게 잘 해줘야겠군요. 영애님의 호의를 조금이라도 더 받으려면.”
단호하게 대답한 마법사는 꼼꼼하게 분류된 목록을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다 나디아에게 자신의 개인 연락처까지 쥐여주었다.
“언제든 편하실 때 꼭 연락 주십시오. 제가 언제든 뛰쳐나가겠습니다. 이 밥이랑 마나만 축내는 마탑 놈……. 아니, 아무튼 온도 조절 마도구는 성심성의껏 물량을 준비해 둘 테니, 걱정 마시고 편하게 연락 주시면 된다는 뜻이었습니다.”
“아, 네. 잘 알겠습니다.”
“넵! 그럼 들어가세요!”
타냐는 나디아의 뒤쪽에서 싱글벙글 웃으며 마탑으로 돌아가는 마법사를 보았다.
마법사는 혼자 어깨를 들썩이며 한동안은 연구비 요청에 머리 싸맬 필요 없다는 식의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희귀한 장면을 본 사람처럼 입을 벌린 채 마법사를 바라보던 타냐가 다시 고개를 돌려 나디아를 응시했다.
나디아 골드게이트는 큰돈을 쓴 사람답지 않게 덤덤해 보였다. 이런 모습이 지금까지의 행보 중에서 가장 그녀의 재력을 돋보이게 했지만, 타냐는 조금 생각이 달랐다.
‘뭔가 고민하시는 것 같은데……. 알고 보니 너무 무리하셨던 게 아닐까?’
갑작스럽게 떠오른 생각에 타냐의 심장이 덜컥거렸다.
어쩐지 자신이 등을 떠민 것 같은 느낌이 든 탓이다. 특히나 투자를 해주는 만큼 빠르고 좋은 성과를 내놓겠다고 농담한 전적이 있어서 더 그랬다.
콩닥콩닥 뛰는 심장을 손으로 꼭 누른 채 타냐가 나디아를 조심스럽게 불렀다.
“나, 나디아 님!”
“…왜 그런 말을? 뭔가… 빙… 아는 게 있나? 아닌데. 그게 그런 뜻인 건 맞나?”
그런 말? 그런 뜻?
아리송한 나디아의 말을 생각하며 눈을 깜박이던 타냐가 재차 나디아를 불렀다.
“나디아 님!”
“아.”
짤막한 탄성과 함께 속눈썹 아래의 푸른 눈동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두어 번 눈을 깜박인 그녀가 살짝 입꼬리를 당기며 입을 열었다.
“타냐! 여기는 어쩐 일로 온 거야? 아, 아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잘되었어.”
“아, 그. 마탑에 가셨다고 하길래 궁금해서 온 건데…….”
잠시 말을 흐린 타냐가 흘깃 나디아의 뒤를 확인하고는 입술을 달싹였다. 반짝거리는 보석 형식의 마도구들이 그녀의 마음을 무겁게 눌렀다.
“저, 죄송하지만 이 마도구들은 다 어떻게 된 걸까요?”
“아, 산 거야!”
아주 간단하게 말을 마친 그녀가 아무렇지 않게 방긋 웃음을 지으며 타냐에게 말했다.
“일단 있으면 좋을 것 같은 건 다 쓸어 왔어. 그렇지 않아도 온도 조절 마도구 구매가 예상보다 좋은 단가로 계약되었거든.”
“다… 다 쓸어 오셨다고요?”
“응! 아, 그리고 곧 마법사들도 올 거야. 여러 연구를 진행하고 있어서 기술 협력을 문의했더니 생각보다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더라고? 그러니까 에이포드랑 상의해서 필요한 건 다 뽑아 먹어.”
나디아의 말을 듣는 내내 타냐의 입이 벌어졌다. 들은 말이 너무 많아서 도무지 머릿속에서 정리가 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 마도구를 잔뜩 샀는데 마법사들이 올 거고… 뽑아 먹어? 누구를? 마법사를? 어, 내가?’
방금 들은 말을 곱씹느라 혼란스러운 타냐의 눈빛을 확인하지 못한 나디아가 그녀에게 목록을 내밀었다.
“오, 목록도 잘 정리되어 있네! 여기에서 필요한 거 없어?”
“아, 음. 어, 그러니까.”
“하긴 지금 막 골라보라고 해도 당황스럽긴 하겠다. 마탑주와 이야기가 잘되어서 언제든 마탑과 긴밀한 연락을 취할 수 있으니, 돌아가서 편하게 봐.”
“네…….”
끌어안은 종이 뭉치로 잠시 시선을 내린 타냐가 급하게 다시 고개를 들었다. 마도구의 이름 옆, 적힌 금액이 어마어마했던 탓이다. 자신도 모르게 말라오는 입술을 겨우 축인 타냐가 꿀꺽 침을 삼키고는 나디아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나디아는 마도구를 배치하는 줄리엔의 곁에서 이것저것 말을 하고 있었다.
“그 마도구는 이쪽 마차로 옮겨주세요. 이건 뭐였더라. 아, 맞다. 타냐. 급하게 온 것 같은데, 저녁은 먹었어? 괜찮다면 같이 식사라도…….”
“그, 나디아 님!”
“응?”
어딘가 비장해 보이는 그녀의 표정에 나디아가 눈을 재차 깜박일 때쯤 타냐가 흡, 하고 숨을 들이마셨다. 그녀의 가슴이 풍선처럼 부풀었다가 가라앉았다.
“저는 오늘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으음?”
“해야 할 것도 그렇고, 뭔가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아서요! 그럼 그, 감사합니다!”
고개를 숙여 냅다 인사한 타냐는 나디아의 대답을 들을 생각조차 못 한 채 그대로 몸을 돌려 미친 듯이 달음박질쳤다.
지금 자신이 한 말이 평소와 다르게 고르지 못하다는 것도, 이런 행동이 무례하게 보일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렇지만…….
‘지금 그게 대수야?’
지금도 주위를 지나치는 사람들이 경악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정말 저걸 다 샀다고? 방금 또 마법사들도 고용했다고 하지 않았어?”
“뭐? 마법사들을? 골드게이트 가문의 힘이 이 정도였단 말이야? 그런 가문의 영애님이 각하와 약혼을 한 거고? 아니, 그런데 보통 귀족가의 영애가 이렇게 재산을 써도 괜찮던가?”
“본래 황금 열쇠는 골드게이트 가문의 후계자에게만 허락된 건데, 영애님이 가문에서 귀애하는 딸인 모양이야. 후계자인 아르웬 경이 직접 황금 열쇠를 사용할 권리를 주었다지 뭔가.”
“뭐? 직접? 아무리 아끼는 동생이라지만……!”
“하지만 골드게이트이지 않나. 손을 대는 사업은 모조리 성공시켰다는 골드게이트. 이렇게 거침없이 움직이는 걸 보면, 영애님도 특별한 눈을 가지고 계시는 것이겠지.”
조용히 상황에 대해 논하는 사람들의 말들이 타냐의 가슴에 콕콕 박혔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그녀의 마음에 와닿은 말은 이것이었다.
“그, 영애님의 이름이 어떻게 되시더라? 그리고 그분이 하신다는 그 사업은 또 뭐야?”
“나디아, 나디아 골드게이트. 그리고 사업은……. 글쎄, 아직 잘 모르겠군. 곧 윤곽이 드러날 것 같은데.”
나디아 골드게이트라는 이름과 그녀의 이름이 걸린 사업.
갑작스럽게 체감되는 부담감에 가슴이 꼭 조여왔지만, 이상하게도 타냐는 지금의 이 감정이 싫지만은 않았다.
‘믿고 맡겨주신 거잖아.’
대체 뭘까, 이 두근거리는 기분은? 헤링본 자작의 아래에서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그런 기분이었다. 그 어떤 좋은 향을 만들었을 때보다도 더한 짜릿함. 타냐가 단단한 눈빛으로 꼭 종이 뭉치를 끌어안았다.
‘어떻게든 성공시켜야 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 중에 가장 좋은 것을 나디아의 이름으로 내어놓고 싶었다. 기대에 걸맞게 부족함이 없는, 그런 획기적인 물건을.
아랫입술을 꼭 문 타냐는 자신이 뛸 수 있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에이포드를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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