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try changing the genre RAW novel - Chapter 1
장르를 바꿔보도록 하겠습니다 1화
CHAPTER1. 왜 하필 복수물이죠?
불투명한 창문 밖으로 짙은 어둠이 내려앉았다.
달은 머리 위에 떴고, 멀찍이서 소쩍새 우는 소리가 이따금 들렸다.
나는 일렁이는 램프의 불빛에 의지해 물수건을 있는 힘껏 짰다.
후드득. 물이 대야에 떨어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나는 물수건을 어린 조카, 루카의 머리 위에 얹었다.
열이 어찌나 심한지 물수건에서 물이 증발하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한 번도 제대로 된 병간호를 받아본 적 없는 루카는 이 상황이 어색하기 그지없는 모양이었다.
루카는 안절부절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그런 루카를 강제로 눕혀 도닥이기를 몇 시간째.
루카는 색색, 작은 숨만 내쉬었다.
기도가 부어올라 꽉 막혔는지 목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했다.
가늘게 뜬 눈으로 힘겹게 나를 바라보는 것이 퍽 안타깝다.
마음만 같아선 바로 둘러업고 24시간 병원에라도 가고 싶지만, 이곳은 24시간은커녕 병원조차 없다.
계속해서 물수건을 갈아주며 달래는 것이 최선일 뿐. 나는 타는 속을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하며 루카를 달랬다.
“루카. 조금만 참아. 해 뜨자마자 약 지어올게.”
“콜록, 괜찮아. 약은 무슨. 돈도 없잖아.”
“꿍쳐둔 거 있어. 애는 돈 걱정하는 거 아니랬지.”
쥐방울만 한 게 끙끙 앓으면서도 집안 살림 걱정하는 모습을 보니 속이 좋지 않았다.
더 맘이 좋지 않은 것은, 루카의 걱정대로 집에 돈이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약값을 전부 낼 수는 없으니 내일 해가 뜨자마자 숲에 가서 캘 수 있는 약초를 캐 가서 사정사정하면 어떻게 값을 맞출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게 내가 머릿속으로 주판을 열심히 튕기고 있는 사이, 내 심각한 기색을 어떻게 착각한 건지 루카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오월제 가서 놀다 와도 돼. 많이 기대했잖아.”
그러면서도 눈을 데구루루 굴리며 내 안색을 살핀다.
정말로 내가 오월제에 가면 잔뜩 실망할 거면서.
떠보긴 뭘 떠봐.
나는 피식 웃으며 말도 안 된다는 듯 덧붙였다.
“오월제는 무슨 오월제야? 헛소리하지 말고 빨리 낫기나 하시지.”
루카는 믿기 힘든 듯 몇 번이나 자긴 괜찮다 덧붙였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 새 잠이 들었는지 루카의 숨소리가 일정하게 잦아들었다.
꾸벅꾸벅 조는 루카의 입술을 타고 작은 신음 섞인 잠꼬대가 흘러나왔다.
“……엄마.”
그래. 엄마가 그리울 만도 하지.
나는 안타까움에 이불 밖으로 빠져나온 루카의 작은 손을 토닥거렸다.
루카의 손가락이 꿈틀거리더니 내 손가락을 덥석 잡았다.
그러고는 필사적으로, 놓지 않을 것처럼 꽉 잡고 놔주질 않았다.
물수건을 갈아줘야 하는데.
나는 곤혹스레 웃었다.
하지만 손을 빼고 싶진 않았다.
좋아. 잠깐만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두자.
그렇게 나는 루카의 곁에서 밤새 병간호를 하며 졸다 깨기를 반복했다.
잠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쪽잠으로 버틴 나는 아침 햇살이 비치기도 전 새벽 이른 시간 슬그머니 자리를 떴다.
눈이 퀭하고 잠 부족으로 머리가 몽롱했지만 애써 도리질 쳐 정신을 차렸다.
‘커피 엄청 당기네.’
분명 이 몸뚱이는 카페인 중독과는 상관이 없는 몸뚱이일 텐데, 아침만 되면 유난히도 커피가 눈에 아른아른했다.
나는 쩝 입맛을 다시며 집을 나섰다.
약재상이 열기 전에 숲에 후다닥 다녀오려면 발걸음을 재촉해야 했다.
이 몸의 기억이 어느 정도 있어 약초 구분 정도는 할 수 있는 게 다행이었다.
만약 기억이 없었더라면 이 세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정말 아무것도 없었을 테니까.
이쯤 되면 다들 대충 짐작했겠지만, 나는 이 ‘유디트 마이바움’ 이라는 여자의 껍데기를 뒤집어 쓰고 있는 빙의자다.
술 마시고 교통사고 나서 기절한 뒤 깨보니 다른 세계였다는 흔하디흔한 이야기의 당사자.
하지만 좀 억울한 건, 나를 쳤던 차는 골목을 꺾으며 잔뜩 감속한 마X즈였다!
제대로 죽은 기억도 없이 난데없이 낯선 몸뚱이에 들어와 있으니 얼마나 당황했는지…….
처음엔 꿈인 줄 알았다.
색이 빠진 엷은 금발에 호리호리한 체구.
마찬가지로 색이 엷은 연보라색 눈동자의 서늘한 미인이 된 꿈이라니!
조금 성격이 만만찮아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꿈에서나마 미인이 된 줄 알고 얼마나 좋아했는데…….
이대로 평생 살아야 할 줄이야.
당시의 나는 울면서 주렁주렁 어깨 밑으로 내려온 색 바랜 금색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이왕이면 귀족 집안 아가씨한테 빙의했으면 좀 좋아. 하인도 없는 집이라니.’
게다가 딸린 입까지…….
이 몸의 주인, 유디트는 시골 마을에서 조카인 루카와 단둘이 살고 있었다.
다른 가족들은 모두 불의의 사고, 혹은 전염병으로 죽었다.
루카와 나는 별로 살가운 이모, 조카 사이는 아니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유디트가 일방적으로 루카를 싫어하고 구박하고 학대했다.
도대체 어린 조카를 왜 그렇게까지 싫어해야 했던 걸까?
그렇게 몸의 기억을 되짚어가던 찰나, 나는 불현듯 깨닫게 되었다.
내가 뚝 떨어진 이 세계가 바로 소설 속 세계라는 것을.
그것도 복수물.
꿈과 희망이 넘치는 복수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적어도 나는 없다.
끔찍한 일을 겪은 주인공이 복수에 성공하고 화려한 인생을 사는 스토리는 그나마 양반이었다.
복수에는 성공하지만 그 때문에 제 인생도 피폐해지거나, 자신이 뿌린 씨로 인해 또 다른 복수의 상대가 되거나 하는 끔찍한 결과도 있다.
적어도 내가 빙의한 소설은 전자였다.
꿈과 희망이 있으니 그나마 좀 긍정적인 결과였다.
하지만 소설 속 유디트 마이바움의 위치를 생각하면 절대 긍정적일 수가 없었다.
나는 그러니까, 주인공이 악당에게 복수하는 계기 중 하나였다.
한마디로 네, 저 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