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try changing the genre RAW novel - Chapter 100
장르를 바꿔보도록 하겠습니다 100화
단어 하나하나에 뤼디거에 대한 배신감이 서려 있었다.
하지만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뤼디거는 루카의 가장 가까운 아군이었고, 조력자였다.
루카가 그런 뤼디거를 싫어할 만한 이유가 뭐가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었다.
“왜……. 그렇게 뤼디거 씨를 싫어하는 거야?”
루카는 복잡한 표정으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파란 눈빛에 스쳐 지나간 것은 지독히도 깊은 그리움과 죄책감, 그리고 원망이었다.
뭐라 단언할 수 없는 감정이 이리저리 뒤섞여 소용돌이쳤다. 한참 끝에 루카가 뱉어내듯 말했다.
“아저씨를 싫어하는 건 아니야.”
싫어하는 건 또 아니라고?
그렇게나 거리를 두려고 하면서? 삼촌이란 호칭도 싫어서 아저씨라고 부르는데?
루카의 의미심장한 말에 머리가 더욱 복잡해졌다.
하지만 내가 결론을 내리기 전, 루카가 자리를 뜨는 것이 먼저였다.
“루카! 루카!”
내가 계속 불렀지만, 루카는 들은 척도 않은 채 발을 재촉했다.
어린아이라 보폭이 짧다 보니 냉큼 달려가 잡아 세우면 붙들 수 있겠지만, 그러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였다.
루카의 작은 등에서 느껴지는 거부감에 나는 망연히 제자리에 섰다.
복도로 총총 사라지는 루카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나는 충동적으로 물었다.
“루카, 내가 그래도 너 사랑하는 거 알지? 널 제일 걱정하는 것도?”
처음엔 그저 좋아하던 소설의 안쓰러운 주인공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반년 남짓한 시간을 함께 보내며, 나는 정말로 가족처럼 루카를 느끼고 있었다.
루카가 날 그리 생각해 주지 않더라도, 그래도…….
내 마음을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 또한 이기심이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이 말을 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내 질문이 떨어진 순간, 멈출 것 같지 않던 루카의 발이 멈췄다.
루카는 느릿하게 나를 돌아보았다.
복도의 불빛이 루카의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림자가 일렁이기 때문일까. 반쯤 가려진 루카의 얼굴은 웃는 듯도, 우는 듯도 싶은 무척 기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알지.”
내 귀가 잘못된 걸까?
루카의 목소리가 물에 젖은 듯 먹먹했다. 아니면, 텅 빈 복도에 메아리쳐 그리 들리는 걸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리 생각하기가 무섭게 루카의 목소리가 냉정하게 돌변했다.
“그래서 더 내 일에 신경 쓰지 말라는 거야.”
그리 말한 루카는 매몰차게 다시 등을 돌려 자리를 떴다.
칼로 자르듯 내쳐진 나는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는 루카의 변화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머리가 복잡해진 나는 복도에 혼자 오도카니 서서, 루카가 걸어간 쪽을 한참 동안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CHAPTER11. 로미오와 줄리엣
루카가 그리 떠나고, 나는 텅 빈 방으로 돌아왔다.
탁자 위에는 루카가 보던 신문이 남아 있었다. 깜빡하고 두고 간 모양이었다.
루카가 뭘 그리도 심각하게 보고 있었는지 궁금했던 나는 슬쩍 신문을 펼쳤다. 평범한 경제지였다.
‘애초에 열 살짜리가 경제지를 읽는 게 평범하진 않지만…….’
신문의 메인 기사는 어떤 자작이 어디에 공장을 세웠고, 어느 남작이 어떤 사업체에 지원하는 지에 관한 내용 등이 적혀 있었다.
썩 재밌는 내용은 아니다. 루카는 과연 여기서 무얼 얻고자 한 걸까. 사업에 관심이라도 있나?
역시 그게 제일 타당성이 있었다.
그리 생각한 내가 별것 아닌 듯 넘기려고 할 때, 불현듯 원작 소설에서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버켄레이스 가는 목재 사업을 하기는 하지만 크게 부유한 편은 아니었다. 하물며 가문의 협조를 받지 못하는 프란츠로서는 돈이 곤궁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프란츠가 택한 것은 바로 빈터발트의 연료를 몰래 빼돌리는 것이었다.]
‘내가 왜 이걸 놓쳤을까?’
나는 나직이 탄식했다.
원작의 후반부에나 나오는 정보였다 보니 까맣게 잊고 있었다.
연료를 불법 유통하는 것은 큰 문제였다.
빈터발트에서도 단죄가 들어가고, 왕국 법도 어기게 되는 것이다.
빈터발트에서는 철도 부설권을 획득하면서 왕가에게 유리한 하나의 조건을 내어주었다. 그것이 바로 연료 유통권을 전부 왕가에 맡기는 것이었다.
왕가는 왕권 강화에 연료 분배를 이용했다. 그래서 왕가에서는 빈터발트를 마냥 홀대할 수 없었다.
선왕이 그 성질머리로 뤼디거에게 왕궁 출입 금지령 정도를 내리고 끝낸 것도 그 때문이었다. 왕가로서는 빈터발트와 대척하는 것이 불이익이었다.
‘하긴, 지금이 어떻게 연료를 불법 유통할까 간 보고 있을 때쯤이긴 하겠네…….’
하지만 커넥션 자체는 벌써 완성되어 있을 것이다.
좀 더 일이 확실시되면 신문에 버켄레이스 가에서 투자라는 식으로 기사가 올라오겠지.
‘설마 루카가 그걸 알고 미리 움직이려 한 걸까?’
설마 싶지만, 지금껏 루카가 한 행동을 보면 충분히 가능성 있었다.
확실히 이 증거만 잡아내면 프란츠를 몰락시킬 수 있다.
일단 뤼디거에게 프란츠 감시를 시켰으니, 이상한 흔적이 보이면 바로 뒤를 캘 것이다.
‘그래서 뤼디거에게 프란츠의 감시를 부탁한 걸까. 바로 증거를 잡을 수 있으니까…….’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그나마 루카가 일선에서 움직이지 않는 쪽을 택한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는 걸까.
루카가 정말로 누구고, 무엇이든 나에게는 열 살짜리 조카일 뿐이었다.
아무리 속내가 어른스럽다 하더라도 겉이 어린아이인만큼 보호가 필요했다.
어차피 장기전이 될 테니, 일단 당분간은 모르는 척하자.
나는 그리 생각하며 신문을 덮었다.
하지만 모르는 척하고 싶어도 기회가 없었다.
그날 이후, 루카가 은연중에 자꾸 나를 피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그날의 대화에 대해 계속해서 캐물을까 봐 경계하는 것 같았다.
‘안 물어봐! 이제 안 물어본다고!’
나는 속으로 소리를 쳤다.
괜히 루카에게 물었나 뒤늦은 후회가 몰려왔다.
내 마음을 어지럽히는 건 그뿐이 아니었다. 빈터발트 가에 홀로 두고 온 뤼디거의 생각도 계속해서 났다.
그리도 헤어지기 싫다 그랬는데……. 마치 집에 개를 두고 여행 온 기분이라고 할까.
엄청 찝찝했다.
‘그나저나 왜 자꾸 뤼디거를 생각할 때 개가 생각나나 모르겠단 말이지……. 의사소통이 안 되는데 나를 좋아하는 건 확실히 알 것 같아서 그런가.’
그럴싸한 생각이라고 나는 홀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뤼디거와 미처 못한 대화도 신경 쓰였다. 뤼디거가 하고 싶은 말이 있었던 것처럼 보였는데…….
루카는 뤼디거에게 마음 주지 말라고 했지만, 그의 절절한 고백을 들은 입장으로서는 차마 그럴 수 없었다.
루카가 뭔가 오해를 하는 게 아닐까.
물론 뤼디거가 사람에게 정 주는 법을 잘 모른다는 것에 동감이었다.
다만 받지 못해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모를 뿐이지, 정이 없는 남자는 아니었다.
‘부친인 막시밀리안에 비하면 훨씬 인간적이지…….’
아니면, 막시밀리안도 단지 정을 표출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그대로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 버려 그렇게 겨울나무를 고스란히 옮긴 것 같은 사람이 되어버린 걸지도.
하여튼 정을 표현하는 방법 및 사회화에 대해 차근차근 알려주면 금세 따라 할 것이다.
벌써 남들 시선을 신경 쓰기도 하고, 루카에게 어떻게든 삼촌 소리를 들어보려고 머리를 쓰기도 했으니까.
예전이었다면 루카가 삼촌 소리를 하든 말든 별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원래 내가 이렇게 하나하나 가르치면서 사귀는 사람 아닌데…….’
뤼디거는 그쯤은 충분히 감내할 가치가 있었다.
단지 잘생기고 내 취향의 남자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일단 배울 의지가 충만한 것이 큰 가산점이었다.
소귀에 경 읽기라고, 들을 의지 없는 상대면 아무리 내가 입이 부르트도록 설명해도 아무 의미 없었다.
처음엔 뤼디거가 조금이라도 상냥해지면 죽 쒀서 개 주는 게 아닐까 싶었는데…….
뤼디거의 고백을 들으며 그의 삶이 얼마나 팍팍했는지 알게 된 입장에서, 그를 저대로 내버려 두는 것은 양심이 무척 찔렸다.
더군다나 뤼디거가 보는 내가 세상에 더할 나위 없는 성자나 다름없는 것도 양심의 가책에 한몫하긴 했다.
그렇게 내가 뤼디거와 루카로 골머리를 썩이고 있을 때, 로라가 황급히 내 방에 들어섰다.
“아, 로라. 감옥 면회 신청권에 대한 답은 받아왔니?”
아무리 왕족이라 할지라도 감옥은 가고 싶다 해서 마음대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원래라면 썩 가고 싶은 곳도 아니고.
하지만 이사벨라를 만나야 하는 만큼 어쩔 수가 없었다.
다행히 신청권만 넣으면 바로 허가가 내려오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감옥이 왕궁에 있지 않다 보니 외출하기 위해 선왕을 또 엄청나게 졸라야만 했었던 것이다.
‘고생이었지, 고생이었어…….’
외출 한 번 할 때마다 이게 뭔 꼴이니……. 그래도 선왕에게 허락을 받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마님, 저…….”
“응?”
로라는 문서를 내미는 대신, 은근히 주위의 눈치를 보며 말 했다.
“산책하실 시간이에요.”
“산책?”
“네. 정원 산책이요. 오늘 이맘 때쯤 산책하신다 했잖아요. 너무 늦으면 해가 떨어져 추울 거예요.”
로라는 말끝에 힘을 주었다.
내가 마치 그런 말을 정말로 한 것 같은 무척 단정적인 어투였다.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나는 로라에게 장단 맞추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네. 깜빡 잊고 있었다.”
“서둘러야 해요. 오늘 날씨가 부쩍 춥네요.”
로라는 황급히 내 외투를 어깨에 걸쳐주었다.
손끝에서 서두르는 게 느껴졌다. 그러고는 잰걸음으로 빠르게 복도를 걸어 나갔다.
로라를 따라가며 사람들이 없어졌다 싶었을 때, 나는 나직이 로라에게 물었다.
“갑자기 무슨 일이야?”
“지금은 듣는 귀가 많아서, 일단 가보시면 알 거예요.”
그리 말하며 주변을 살피는 로라의 눈빛이 초조했다. 의아했지만 나는 순순히 로라를 따랐다.
로라가 나를 데려간 곳은 왕궁에서도 무척 으슥한 곳에 있는 정원이었다.
“여기는…….”
외진 곳에 있어 왕궁의 정원 중 상대적으로 발길이 잘 닿지 않는 곳이었다.
여전히 영문을 알 수 없었던 내가 로라를 돌아보려 했을 때, 사람 키만 한 정원수들 사이가 바스락거리며 움직였다.
갑작스런 상황에 깜짝 놀란 나는 고양이 앞의 쥐처럼 경직되었다.
나뭇잎이 빽빽이 들어차 있다 보니 상대가 누군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바스락거리던 나뭇가지들 너머에서 불쑥 튀어나온 것은 전혀 예상치 못한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