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try changing the genre RAW novel - Chapter 105
장르를 바꿔보도록 하겠습니다 105화
면회실로 끌려온 이사벨라는 내가 마지막으로 봤을 때와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분칠한 새하얀 얼굴과 발그레했던 뺨은 검댕으로 더러워져 있었고, 화사했던 드레스는 온데간데없다.
누더기나 다름없는 죄수복을 입은 그녀는 무척 초라한 꼴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푸른 눈만큼은 형형히 빛나고 있었다. 포기하지 않은, 꺾이지 않은 눈빛이었다.
이사벨라가 도전적으로 물었다.
“귀하신 분이 이런 누추한 곳에 굳이 절 보러 오신 연유가 무엇인가요? 거짓말쟁이 사기꾼의 최후를 비웃기 위함인가요?”
“죄수 번호 23103. 자중하라.”
이사벨라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간수가 한 소리 했다. 나는 손을 들어 간수를 제지했다.
“이사벨라 앤더슨과 하고 싶은 말이 있네. 잠시 자리를 비워주게.”
“하지만.”
“그녀의 손발은 구속되어 있는 상태지. 게다가 며칠 식사도 제대로 못 한 것 같고 말이야. 혹여나 큰일이 생긴다면 내 바로 도움을 요청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게.”
간수는 못 미더운 듯 보였지만 순순히 내 말을 따랐다.
문이 닫히고 이사벨라와 나 단 둘이 면회실에 남았다.
“용기가 가상하십니다. 제가 아무리 손발이 구속되어 있다 하나 이로 당신 목덜미를 물어뜯기라도 하면 어찌하려고요?”
“당신이야말로 날 생각보다 우습게 보나 본데……. 내가 간수를 물린 게 그저 이야기만 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하나?”
나는 그리 말하며 빙긋 웃었다.
한동안 교양인으로서 체면을 차리느라 얌전히 있었지만, 운동부 출신의 전국체전 주전이라는 건 마냥 호락호락하기만 해서는 버틸 수 없는 자리였다.
게다가 110km를 던지던 한창 시절과 비교해도 그리 뒤떨어지지 않는 몸이다.
나에게 잘못 덤볐다간 이사벨라의 이빨이 남아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임플란트도 없는 시대인데, 치아 건강은 소중하지.’
나는 여차하면 폭력을 쓰겠다는 기색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내가 이렇게 나오리라곤 생각 못 했기 때문일까. 이사벨라가 어이없는 듯 혀를 찼다.
“하!”
그녀의 적대감 어린 눈매가 조금은 누그러졌다.
왜 폭력을 쓰겠다는데 분위기가 온화해진 건지는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사벨라는 우습다는 듯 말했다.
“제가 들은 당신은 뒷담을 들어도 제대로 대처도 못 하는, 순진하고 어수룩한 여자였는데……. 완전 거짓말이었군요. 제가 속았네요.”
“순진하고 어수룩한 게 어때서? 그런 사람을 깔보는 사람이 되레 제 발에 걸려 넘어지곤 하지. 연회장에서의 당신처럼.”
“…….”
이사벨라의 입술이 꽉 다물렸다. 도발이 먹히지 않았기 때문일까. 생각보다 순순히 포기한 그녀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유디트 마이바움 양, 당신은 왜 절 찾아온 거죠?”
“당신도 짐작하고 있을 텐데……. 당신은 똑똑한 여자니까.”
“제 뒷배가 있느냐 물으시는 거라면.”
“프란츠 버켄레이스.”
“……!”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이사벨라는 경악하여 눈을 부릅떴다.
“모르는 이름은 아니야. 그렇지?”
나는 느긋하게 그녀의 기색을 살피며 슬쩍 떠보았다.
모른다 말하고 싶어도 순간 떠오른 동요의 기색이 너무나 확연하여 어쩔 수도 없을 터였다.
“나에 대해 당신에게 알려준 것도 프란츠일 테고.”
“어떻게……? 분명 그의 존재는 확실히 숨겨졌을 텐데요.”
“나는 생각보다 많은 걸 알고 있어. 당신의 아이……. 프란츠의 아이지?”
이사벨라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아이가 역린인 듯, 그녀의 눈빛이 날카롭게 살아났다.
그녀는 뾰족이 대꾸했다.
“거기까지 알고 계신다면, 굳이 저한테서 얻어내실 정보가 없으실 텐데요.”
“아니, 내가 원하는 건 정보가 아니야. 증거지. 프란츠가 당신을 이용해 빈터발트 가를 흔들려 했단 증거 말이야.”
나는 빤히 이사벨라를 응시했다. 지금껏 날 마주 쏘아보던 이사벨라가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기가 한풀 꺾인 그녀는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 작자는 생긴 것과 달리 교묘하고 약삭빠르고 음험해요.”
“알고 있어. 그래서 당신의 도움이 필요해.”
“제가 그의 애를 낳긴 했지만 그게 그의 신뢰를 샀단 뜻은 아니에요. 그는 저에게도 많은 걸 숨겼어요. 안타깝게도 당신이 원하는 증거를 주진 못하겠네요.”
자조적인 이사벨라의 반응에 입이 바싹 말랐다.
이사벨라가 생각했던 것만큼 프란츠의 편을 들지 않는 것은 긍정적이었지만, 결국은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이사벨라는 한숨과 함께 나름 선의의 충고를 덧붙였다.
“……제가 아는 건 저에게 준 회중시계, 그걸 빼돌린 이가 연회장에서 당신을 공격했던 그린할텐 경이라는 것 정도예요. 그린할텐 경을 찾아가는 쪽이 좀 더 유의미할 거예요.”
“그린할텐 경은 죽었어. 프란츠에게 암살당한 것 같아.”
“이런…….”
이사벨라의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그녀 또한 프란츠라면 능히 그럴 만하다고 짐작한 듯, 금방 수긍했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죠. 차라리 좀 더 기다려 보는 게 어때요? 그는 이대로 물러서지 않을 테니까. 빈터발트에 대한 그의 집착은 소름 끼칠 정도예요. 분명 기회를 호시탐탐 노릴 거예요.”
“잘 생각해 봐. 사소한 것 하나라도 좋아. 난 당장 당신을 이곳에서 내보내줄 수도 있어.”
“글쎄요…….”
이사벨라는 미묘하게 웃으며 말끝을 흐렸다. 나는 의외인 그녀의 반응에 놀라 물었다.
“……당신은 별로 감옥에서 나가고 싶지 않나 봐?”
감옥의 환경이 결코 편할 리 없는데도, 그녀는 무척이나 평온해 보였다.
감옥을 나가고자 하는 필사적임과는 백만 광년 떨어져 있는 것 같았다.
이사벨라는 담담히 답했다.
“제가 나가봐야 프란츠가 또 절 이용하려고 하던가, 아니면 그린할텐 경처럼 처리되겠죠. 하지만 제가 감옥에서 입만 다물고 있으면, 그동안 프란츠가 아이를 돌봐주기로 했어요.”
“이런…….”
나는 나직이 탄식했다.
이사벨라가 진심으로 그리 믿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순진한 쪽은 당신이었네.”
“……무슨 소리죠?”
이사벨라는 눈살을 찌푸렸다. 내가 비아냥거린다 생각했는지, 그녀는 무어라 반박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하지만 내가 운을 떼는 게 먼저였다.
“프란츠가 당신 아이를 돌봐준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기가 차다.
나는 너무 노골적으로 어이없음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표정 관리를 했다.
‘원래라면 그녀와 거래할 때 패로 사용할 생각이었는데…….’
안 되겠다. 그냥 바로 사실을 밝히는 수밖에.
이사벨라가 예민해질 수도 있는 주제이니만큼, 그녀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말했다.
“아이는 내가 데리고 있어. 정확히는 빈터발트 가에서.”
“네? 당신이요? 어째서?”
흥분한 이사벨라가 바로 목청을 높였다.
자식에 관련된 일이다 보니 그녀의 푸른 눈동자에 불꽃이 치솟았다.
“혹시……. 애를 이용해 절 협박할 생각인가요? 그게 귀족 나으리들이 말하는 잘난 자비와 관용인가요?”
나는 이사벨라가 쏟아내는 폭언을 가만히 들었다.
그녀가 숨을 씨근덕거리며 어느 정도 진정되었을 때, 나는 차분히 운을 뗐다.
“당신은 정말로 프란츠가 그 애를 제대로 돌봐줄 거로 생각했어?”
“……설마.”
“애가 굶고 있었어. 당신이 잡혀 들어가고 한동안은 집 안의 음식으로 버틴 모양이지만……. 그 아이를 찾으러 갔을 땐 이미 사흘 이상 굶은 상태였어.”
“맙소사, 다비!”
이사벨라는 새된 비명을 질렀다.
그녀의 흰 피부가 더욱 새하얗게 질렸다. 그녀의 얼굴에 가득 찬 절망에 입맛이 썼다.
데이비드 앤더슨. 루카의 또래인 이사벨라 앤더슨의 아이.
간신히 선왕의 허락을 받고 빈터발트 가에 갔을 때, 로이텐의 죽음을 알게 된 나는 바로 노선 변경을 해서 이사벨라를 포섭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이사벨라와 프란츠가 얼마나 긴밀한 사이인지 모르는 만큼 이사벨라를 움직일 만한 패가 필요했다.
그래서 뤼디거에게 데이비드를 확보해 달라 부탁했다.
‘하지만 그 꼴로 있을 줄은 나도 몰랐지…….’
뤼디거에게 전해 들은 데이비드의 상태는 심각했다. 말 그대로 방치 그 자체였다.
“만약 조금만 늦었더라면……. 좋은 소식을 전해주진 못했을 거야.”
“다비는, 다비는 지금 괜찮아요?”
이사벨라는 다급했다. 나는 그녀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침착하게 답했다.
“걱정 마. 의원에게 진찰도 맡겼고, 빈터발트에서 애 입 하나 늘었다고 문제되는 것도 아니니까. 다만 데이비드……. 다비라 했나? 다비가 당신을 많이 찾아.”
뒤에는 거짓말이었다.
나도 왕궁에 감금되어 있다시피 한지라, 실제로 데이비드가 이사벨라를 찾는지 찾지 않는지까지는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마를 찾는다는 말이 가슴에 꽉 박혔는지,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이사벨라는 안절부절못하며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당장에라도 이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가고 싶은 모습이었다.
“제가…… 어떻게 하면 절 내보내 주실 수 있나요?”
“여기서 나가면 프란츠가 당신을 죽일지도 모른다며. 그런데도 나가고 싶어?”
이사벨라가 벌떡 의자에서 일어섰다.
손발이 묶인 탓인지, 그녀는 곧 바닥에 고꾸라져 넘어졌다.
깜짝 놀란 내가 일어서 그녀를 세워주려 다가갔지만, 그녀가 무릎으로 기어 내 앞으로 다가오는 게 먼저였다.
그녀는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간절히 나를 바라보았다.
“절 지켜주세요, 제발. 당신은 그럴 힘이 있잖아요. 당신의 도움이 되기 위해 노력할게요. 제 아이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요.”
“…….”
“절 못 믿으시겠죠? 한때나마 프란츠와 손을 잡고 당신 인생을 망치려고 했으니까요.”
“이사벨라. 일단 일어나서.”
“하지만 저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프란츠는 자신의 명대로 하지 않으면 저와 다비를 죽는 걸 바랄 정도로 처참한 꼴로 만들겠다 협박했는걸요. 하지만 그의 말대로만 하면, 잘하면 다비는 공작가 후계자가 되죠. 너무나 달콤했어요. 그 손을 어찌 잡지 않을 수 있었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