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try changing the genre RAW novel - Chapter 111
장르를 바꿔보도록 하겠습니다 111화
어쩐지 이걸 입어야 한다고 부득불 우기더라니!
고맙다, 로라! 너밖에 없구나!
정황을 보니 할머니가 데뷔 때 무슨 드레스를 입었는지 일부러 조사한 모양이었다.
그런 건 내가 신경 썼어야 했는데…….
로라에 대한 감동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나는 감격과 고마움에 겨운 시선으로 로라를 바라보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선왕의 기분이 좋으면 좋을수록 오늘 연회에서 내가 뤼디거에 대한 말을 꺼내기가 좀 더 쉬워진다.
어쩌면 오늘, 두 사람을 인사시켜 볼 수도 있겠다 하는 기대가 부풀었다.
정도 이상으로 기뻐하는 선왕을 보던 이사벨라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이사벨라가 로라에게 속삭이는 소리가 나에게도 작게 들렸다.
“……노린 거예요?”
“당연하죠. 옷차림이며 연회장에 차려지는 요리며. 의미 없는 건 없어요.”
어깨를 으쓱이며 답하는 로라에게선 관록이 느껴졌다.
이사벨라 또한 조금 놀란 기색이었다. 로라와 항상 붙어 있던 나도 놀랐는데, 이사벨라는 어땠을까 싶기도 했다.
선왕의 에스코트를 받아 연회장으로 향하는 도중, 작은 숙녀를 에스코트하는 루카와 마주쳤다.
작은 숙녀, 샤를로트 왕녀가 치마를 살짝 들어 올리며 우아하게 인사했다.
“왕녀 샤를로트, 할바마마와 레이디 마이바움을 뵙습니다.”
짙은 다갈색 머리카락에 연녹색 눈동자가 마치 인형 같았다.
왕을 닮은 빅토리아나 죠세핀과는 달리, 작고한 왕비를 쏙 빼닮은 이 어린 왕녀는 왕실의 아픈 손가락이자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아이였다.
날카로운 선왕도 샤를로트에게는 상당히 유한 편이었다.
적어도 인사를 들어주기는 하고, 대답도 해주니까.
“그래. 오늘이 네 사교계 첫 데뷔라지?”
“예, 할바마마.”
“그래, 그래. 네가 사교계에 데뷔하는데 주인공이 아니라 패트릭이 매우 섭섭해했단다. 하지만 새로운 왕족을 소개하는 경사스러운 날에, 이리 왕가가 모여 화목한 것을 보여주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않더냐.”
“어리고 미숙한 저로서는 할바마마의 선택이 옳을 거라 믿고 있어요. 레이디 마이바움과도 이리 만나 뵙게 되어 기쁘답니다. 언니가 하나 더 생긴 것 같아 설레요.”
샤를로트는 조곤조곤 답하며 나를 보고 사르르 웃었다.
그 웃음과 마주하니 마음이 찡해졌다. 어떤 의미로는 얘도 참 열 살답지 않았다.
하지만…… 이왕 어른스러울 거면 이쪽이 훨씬 낫지!
어쩜 말을 이렇게 예쁘게 할까. 우리 루카도 좀 보고 배워야 할 텐데…….
나는 샤를로트에게 마주 웃어 주고는, 그 옆에서 입술을 삐죽이는 루카를 살짝 째려보았다.
루카는 뭐 어쩌라고, 하는 불순한 시선으로 나를 흘끔 보더니 휙 고개를 돌렸다.
저거저거, 성격하고는. 나는 작게 혀를 찼다.
그래도 원작에서 내가 좋아하던 둘이 이렇게 예쁘게 차려입고 나란히 서 있는 걸 보니 감개무량했다.
처음 뤼디거와 루카가 함께 있는 걸 보았을 때도 약간 이런 마음이었는데…….
그 뒤로 루카가 뤼디거에게 사사건건 툴툴대며 적대적인 태도를 보였고, 둘 다 내가 알고 있던 캐릭터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 탓에 한동안 원작의 순간을 대면하는 감동을 잊고 있었다.
샤를로트의 어른스러운 태도가 기특한 건 나뿐만이 아닌지, 선왕도 드물게 활짝 웃으며 말했다.
“내 나중에 네가 성인이 될 때까지 살아 있으면, 네 성인식 연회가 화려하게 치러질 수 있도록 전심전력으로 도와주마.”
“성인식 연회가 성대한 것보다, 할아버지께서 제 성인식 연회에 참석해 주시는 게 더 기쁠 거예요.”
“허허. 네가 패트릭보다 더 생각이 깊구나!”
저기요, 아무리 아드님이라곤 하시지만 그래도 지금은 일국의 왕인데 그렇게 말해도 되는 건가요…….
하지만 아무도 선왕의 말에 딴지를 걸지 않았다. 시종들은 아무 말도 못 들었다는 듯 모두 시선을 피했다.
“선왕 전하. 다들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제 슬슬 출발하셔야 합니다.”
때마침 시종이 우리를 재촉하러 왔다.
분위기를 보니 왕을 비롯한 다른 왕족들도 다 도착해 있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도중에 말이 너무 길어진 모양이었다.
“그래. 슬슬 주인공이 등장할 때가 되었지.”
선왕은 그리 말하며 나를 향해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왕가 모두를 들러리로 삼을 생각은 조금도 없었던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여회장까지는 금방이었다. 안 그래도 첫눈이 내린 이후 날씨가 쌀쌀해졌는데, 드레스를 입은 채 마차를 타고 움직이지 않아도 되는 건 편해서 좋았다.
‘제일 좋은 건 애초에 움직이지 않는 거지만…….’
나는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애써 머리를 비웠다.
하지만 연회장으로 다가갈수록 심장이 크게 뛰었다.
선왕의 등장에 연회장 입구에 선 시종이 긴장하여 숨을 들이켰다.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그대로 세상 하직할 것 같은 표정이었다.
나보다 더 긴장하는 사람이 적어도 여기 하나는 있네. 우습게도 그 사실이 내 긴장을 조금이나마 풀어주었다.
다급히 목청을 가다듬은 시종은 사람들을 향해 결연히 외쳤다.
“럼가트의 석양, 유겐 선왕 전하와 샤를로트 왕녀 저하, 레이디 마이바움, 그리고 빈터발트 경께서 입장하십니다.”
지난 데뷔 이후, 루카도 기사의 작위를 받았기에 경으로 불리게 되었다.
나는 내 앞을 의젓이 걸어가는 루카의 자그마한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별것 아닌 호칭일 뿐인데도 괜한 감격이 가슴을 흔들었다.
연회장이 침묵으로 물들었다. 대연회장에 빼곡히 모인 귀족들의 시선이 우리를, 정확히 말해서 나를 향해 꽂혔다.
‘으, 으으. 부담스러워.’
긴장 때문인지 심장 소리가 유난히 시끄러웠다. 심장 박동에 맞춰 몸도 덜덜 떨리는 기분이었다.
“오셨습니까, 아바마마.”
역시나.
미리 도착해 있던 왕이 우리를 반겼다. 기다리게 된 상황이 불쾌할 만도 한데, 딱히 그런 기색은 없었다.
다만 샤를로트를 보는 낯이 안타까울 뿐이었지. 어린 딸이 이런 식으로 데뷔를 치르는 게 아직도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아바마마!”
샤를로트가 살갑게 웃으며 왕에게로 다가갔다.
“할바마마께서 제 성인식에도 참석해 주신다 하셨어요.”
“그러느냐? 아바마마께서 그러셨어?”
왕의 안색이 갑자기 확 풀렸다. 손바닥 뒤집듯 돌변한 태도에 나는 좀 당황했다.
왕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중얼거렸다.
“지금껏 왕손들의 성인식에 한 번도 참석 안 하신 분이…….”
아, 진짜 너무하네……. 그래도 손자들인데.
왜 빅토리아나 죠세핀이 선왕과 데면데면한지 알 것 같았다.
그런 만큼 선왕에게 거리낌 없이 생글생글 웃어 보이는 샤를로트가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어린 나이인데도 처세술이 끝내줬다.
그러니 원작에서 어린 나이였는데도 불구하고 다방면으로 루카를 도울 수 있던 게 아닐까?
확실히 그리 생각하니 납득이 갔다.
“이제 슬슬 연회를 시작하는 게 어떨까요? 귀족들이 모두 기다리고 있어요.”
빅토리아가 분위기를 정리하고 나섰다. 그러기가 무섭게 한 사내가 빅토리아의 말을 받아쳤다.
“아바마마와 할바마마께서 대화를 하시는데 그 누가 불평을 하겠느냐, 빅토리아. 다들 기꺼이 기다리고 있는데 굳이 급할 이유가 있느냐.”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빅토리아에게 이렇게까지 대놓고 적대적으로 행동하는 이는 뻔했다.
그가 바로 럼가트의 1왕자, 사무엘이었다.
사무엘 왕자와 마주한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짙은 금발, 호박색 눈동자. 죠세핀까지 포함하여 세 남매가 아주 왕을 빼다 박았다.
그러니 홀로 왕비를 닮은 샤를로트가 더욱 신경 쓰였을 것이다.
“되었다. 너희는 얼굴만 마주하면 매일 싸우는구나. 이제 자리에 앉자꾸나.”
왕이 빅토리아와 사무엘 사이를 중재했다.
둘 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였지만, 왕이 자리에 앉자 하니 더 이상 말을 덧붙이지는 않았다.
대연회장에는 왕좌를 비롯하여 왕족이 앉을 수 있는 의자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왕가의 직계만이 앉을 수 있는 자리였기에 원래대로라면 나나 루카는 그 자리에 앉을 수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예외적으로 허용되어 나와 루카의 자리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자리로 향하는 도중, 사무엘과 눈이 마주쳤다.
사무엘은 건조한 표정으로 고개만 까닥 숙여 보였다. 딱히 거부감이 느껴지는 태도는 아니었다.
자리에 왕족들이 모두 착석하고, 귀족들은 왕의 개회사를 기다렸다.
왕은 목을 가다듬고는 엄숙히 운을 떼었다.
“오늘은 유디트 마이바움을 마가렛 럼가트 왕녀의 혈육이자 왕가의 일원으로 소개하는 연회이니라. 내 이 자리에 참석해 준 그대들의 노고를 치하하며, 그대들의 충심을 잊지 않도록 하겠노라.”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 꽂혔다.
나는 필사적으로 태연한 척하며 시선을 비스듬히 천장으로 빗겨 흘렸다.
바닥을 보고 있는 것보다야 그게 나으리라는 판단에서였다.
하지만 꽂히는 시선 때문일까. 묘하게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등줄기가 근질근질한 것 같기도 하고…….
마치 무슨 사건이 벌어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상하다. 오늘은 아무 일도 없을 텐데. 프란츠도 나대지 못할 테고.’
그런데도 불안감은 좀처럼 가시질 않았다.
영문을 알 수 없었던 나는 빳빳이 긴장한 채 혹시라도 무슨 일이 벌어질까 촉각을 곤두세웠다.
‘혹시 뤼디거가 오늘 오지 않은 건……. 아니구나. 저기 있네.’
연회장을 둘러보던 나는 금방 뤼디거를 찾을 수 있었다. 사람은 정말 많았지만 그리 어렵진 않았다.
뤼디거의 반경 1m 정도가 텅 비어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미스테리 서클처럼.
‘이렇게 인구 밀도가 높은 와중에 아무도 저기에 접근하지 않을 수가…….’
설마 뤼디거가 사람들을 일부러 치워낸 건 아니겠지? 거슬린다고…….
하지만 뤼디거 얼굴을 보니 사람들이 알아서 피한 것 같았다. 안 그래도 무뚝뚝한 얼굴이 오늘따라 더욱 살벌해 보였기 때문이다.
‘절대 엮이고 싶지 않은 분위기다, 정말…….’
애인 콩깍지를 껴도 그래 보였다. 나는 안타까움에 혀를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