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try changing the genre RAW novel - Chapter 113
장르를 바꿔보도록 하겠습니다 113화
이 모든 소란의 원인을 던져놓은 뤼디거가 태연스레 말했다.
“루카 말이 맞습니다. 뭐, 어차피 과거의 관계가 어떠했든 상관없지 않습니까. 정말로 중요한 건 지금부터의 관계이니까요.”
홀로 동떨어진 듯 고요한 모습은 마치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듯, 아니, 기름 붓는 듯 느껴졌다.
하지만 루카는 뤼디거의 말을 완전히 무시하기로 한 모양이었다.
루카는 뤼디거 쪽은 보지도 않은 채, 나를 향해 필사적으로 물었다.
“이모, 이거 받아들일 거 아니지? 내가 그때 그렇게까지 말했잖아. 아저씨는 좋은 신랑감이 안 된다니까?”
“우리 루카 말이 맞다! 빈터발트 놈이 용기도 가상하구나! 이 좋은 날! 감히 내 앞에서!”
잠깐. 언제부터 루카 앞에 우리라는 호칭을 붙이셨나요……?
너무 당황한 나머지, 나는 어처구니없는 심정을 고스란히 노출한 채 루카의 편을 들고 나선 선왕을 바라보았다.
선왕의 얼굴은 물론이거니와 목 끝까지 벌겠다. 이대로는 혈압 때문에 쓰러지겠다 싶을 정도였다.
지금까지 뤼디거에 대한 선왕의 태도가 이유 없는 경계였다면, 이제는 이유 있는 적대가 되었다.
안 그래도 참는 것과 거리가 먼 선왕이 노기를 거침없이 드러냈다.
“감히 주제넘은 짓으로 왕가의 연회를 망치다니! 왕족에게 청혼할 생각이라면 응당 왕가에 미리 기별을 넣어 왕실 어른의 허락을 받고 순서에 맞추어 차근히 진행해야 하는 것을. 이 얼마나 경우 없는 짓이냐!”
아니, 정략혼을 할 것도 아닌데 굳이 그래야 해?
물론 바네사와 막시밀리안의 결혼처럼 철도부설권이니 뭐니 계약서가 잔뜩 얹어진 정치적 결혼도 있기는 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계급이 크게 다르지 않는 범위 내에서 연애 결혼을 하거나 적당히 선을 봐서 결혼하곤 했다.
이런 식으로 크게 프러포즈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고.
물론 궁정 연회에서 관현악단까지 좌지우지해가며 청혼한 건 전례가 없는 일이기는 한데…….
나는 떨떠름히 다른 왕족들의 눈치를 보았다. 하지만 다른 왕족들의 표정 또한 나와 대동소이했다.
빅토리아는 어깨를 으쓱이며 고개를 내저었다. 선왕이 너무 유난 떤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선왕은 뤼디거를 향해 삿대질을 하며 화를 내고 있었다.
“유디트가 얼마나 충격받았겠어! 네놈이 이래 놓으면 유디트 평판이!”
선왕은 마치 뤼디거가 독단으로 청혼한 것처럼 말했다.
내가 아까 루카에게 했던, 뤼디거가 청혼할 걸 알고 있었다는 답을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게 아니면 듣지 못한 것으로 치부할 생각이든가.
아무래도 안 되겠다. 내가 직접 해명하지 않으면 상황이 진정되지 않을 것 같았다.
뤼디거의 청혼에 당황하긴 했지만 동시에 감동하기도 했고…….
저 사교성 없는 남자가 나를 위해 이벤트 하나하나 다 생각하고 사람들을 찾아가 부탁했을 걸 생각하니, 그를 이대로 제멋대로 청혼하는 무뢰한으로 둘 수는 없었다.
나는 나직한 한숨과 함께 선왕을 말렸다.
“할아버지, 죄송해요.”
“아니, 유디트. 네가 죄송할 게 뭐가 있느냐. 다 저놈이…….”
“뤼디거 씨가 상의도 없이 청혼한 건 아녜요. 제가 해도 된다고 했어요.”
“뭐?!”
“왕실 법도가 그런 줄 몰랐어요. 죄송해요.”
“그, 그러니까. 네가 허락한 거라고? 청혼해도 된다고?”
“네.”
“거짓말!”
확답에 확답까지 했는데도 선왕은 믿을 수 없는 것 같았다.
거짓말이라 외치는 선왕의 목에 핏대가 섰고, 지팡이를 짚은 손은 곧이라도 하늘로 치켜들 듯 바르르 떨렸다.
선왕은 나를 설득하려 했다. 그것이 어찌나 간절했는지, 마치 내가 악마에게 유혹이라도 당한 것 같았다.
“유디트, 네가 마음이 여려 저놈의 막무가내에 넘어간 모양인데, 그래선 안 된다! 저런 고집불통에 벽창호, 인생이 모조리 제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자기중심적인 놈과는 얽혀서 좋을 게 없어!”
아, 깜짝이야. 자기 소개하는 줄 알았네.
선왕이 뤼디거에 대해 줄줄이 읊은 것 대부분은 선왕 자신에게도 해당했다.
그리 생각한 건 나뿐만이 아닌지, 일순간 연회장이 조용해졌다.
하지만 당사자인 선왕은 전혀 그리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는 뤼디거를 향해 위협적으로 눈을 부라렸다.
물론 뤼디거는 선왕의 적대적인 태도에도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이 모든 소란에서 유리된 듯, 올곧은 표정으로 나만을 바라보았다. 그의 세상에 오롯이 나만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뤼디거는 의기양양하게 맹세했다.
“유디트 씨, 제 마음을 받아주십시오. 유디트 씨께서 질리는 일이 없도록 더욱 얼굴과 몸을 갈고 닦겠습니다. 평생 행복하게 해드릴 자신 있습니다.”
“마음을 받긴 뭘 받아! 말도 안 되는 소리! 게다가 우리 유디트는 사람의 외모를 보는 아이가 아니야! 마음과 진실을 보는 진중한 아이라고!”
선왕은 할아버지 얼굴을 보고 집 나간 할머니나, 요나스 얼굴을 보고 루카를 가진 라리사와는 내가 다른 사람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랬던 만큼 나에 대한 자신의 캐릭터 해석을 확고부동하게 밀었다.
하지만…… 저 얼굴 보는데요, 엄청.
나는 바싹바싹 타는 입을 다시며, 이걸 어떻게 해명해야 할까 고민했다.
하지만 고민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지금껏 선왕의 도발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온 뤼디거가 돌연 발끈했기 때문이다.
그럴 만도 했다. 선왕의 말은 마치 뤼디거의 마음과 진심이 별 볼일 없다는 것처럼 들렸으니까.
“선왕 전하야말로 유디트 씨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십니다! 유디트 씨는 제 얼굴이 좋다고 해주셨단 말입니다! 유디트 씨가 좋다 말한 제 얼굴의 가치를 폄훼하지 말아주십시오!”
아, 발끈한 포인트가 그게 아니었구나.
나에 대해 하나도 모른다는 선왕의 주장이 억울했는지, 뤼디거는 답지 않게 흥분한 기색을 보였다.
그리도 내가 칭찬한 얼굴에 가치를 두는 것을 감동적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때와 장소를 못 읽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해야 할지…….
아니나 다를까.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
대연회장 2층에서 태피스트리를 들고 있던 사람이 휘파람과 함께 외쳤다.
“뤼디거, 짜식! 지금껏 얼굴 잘난 걸 활용 못 하더니, 이제야 써먹는구나!”
“목소리 낮춰, 페터!”
익숙한 목소리였다. 보아하니 헵스퍼드 중령과 저머밀 소령까지 동원된 모양이었다.
‘친구 아니라고 하더니…….’
내가 그리 말하면 뤼디거는 친구가 아니고, 상사로서 부하들을 동원했을 뿐이라 말하겠지.
그러는 사이에도 사람들은 서로 수군댔다.
내가 유난히 예민해진 건지, 아니면 그들이 원체 큰 목소리로 말하는 건지. 그들의 대화 소리가 나에게까지 들려왔다.
“얼굴이 좋대.”
“물론 빈터발트 대령이 잘생기긴 했지만…….”
“빈터발트 대령은 많고 많은 장점을 모두 상쇄할 만큼의 성격상의 단점이 큰데……. 그걸 감내하겠단 말이야?”
“정말로 얼굴이 취향인가 봐요.”
아니, 뤼디거 성격이 좀 이상하긴 하지만, 그 정도까지는 아니거든?
뤼디거의 욕을 들어서 그런가, 나도 모르게 발끈해 버렸다.
하지만 내 발끈함은 선왕의 발끈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 이 교활한 늑대 같은 놈이 세 치 혀로 유디트와 왕가를 농락하는구나!”
조금도 굽힘없이 따박따박 목소리를 높이는 뤼디거의 태도를 참지 못한 선왕이 기어코 지팡이를 치켜들었다.
“서, 선왕 전하!”
“아바마마!”
“이 못된 놈! 제 애비랑 똑같이 생겨서는! 바네사를 데려가서 세상을 뜨게 한 것처럼 유디트를 데려갈 셈이냐? 내 두 눈 뜨고 그 꼴은 못 본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안 돼! 차라리 내가 내 발로 무덤에 걸어 들어가겠다!”
하지만 그런 소리에 눈 하나 까딱할 뤼디거가 아니다.
그렇게 말하면 뤼디거는 정말 눈에 흙 뿌려주는 걸 넘어 무덤까지 파줄 인간이었다.
곁에 있던 왕이 선왕을 말려서 그나마 선왕의 지팡이가 뤼디거에게 닿지 못하고 허공을 휘저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뤼디거는 그 모든 소란을 깔끔히 무시한 채 나에게 반지를 내밀었다.
“유디트 씨, 반지를 받아주십시오.”
나를 향한 청회색 눈동자를 볼 때마다 겨울 하늘을 보는 것처럼 눈가가 시리고 가슴이 먹먹해져 왔다.
귓가를 메우던 소음도 어느새 자취를 감추었다.
소란은 여전했지만 내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세상에 오로지 뤼디거와 나, 단둘만이 남겨진 것만 같았다.
나는 뤼디거의 손에 들린 반지를 향해 조심스레 손을 뻗었다.
반지가 마치 나를 부르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내 손이 반지에 닿기 바로 직전, 무언가 날쌘 것이 반지를 채갔다.
처음엔 눈치도 못 했을 정도로 재빠른 움직임이었다.
뒤늦게서야 깨달은 내가 깜짝 놀라 주위를 둘러보고 나서야 반지를 낚아채간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루카였다.
“하, 반지는 무슨! 내가 그 꼴을 가만히 보고 있을 줄 알았어?”
십 년 경력 소매치기라도 되는 것 같은 깔끔하고도 완벽한 쓰리였다.
카드 다루는 손길이 예사롭지 않았을 때 짐작했었어야 했는데…….
입을 떡 벌린 채 경악한 나는 잠시 뒤에야 정신을 차리고 외쳤다.
“루카! 그거 돌려줘!”
“이게 이모 거야? 돌려주긴 무슨!”
“당연히 내 거지! 내가 받을 거였다고!”
“이를 어쩌나! 난 절대 돌려줄 생각 없는데! 반지가 없으면 청혼도 무효화인 건 알지?”
루카가 약 올리듯 말했다.
이럴 땐 정말 얄미운 열 살이 따로 없었다.
나와 루카가 반지를 두고 실랑이를 하는 사이, 뤼디거가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생각 외로 태연한 그 모습에 나는 의아한 듯 그를 보았다.
청혼 반지를 내가 받아야 청혼의 승낙이었다. 말로만 승낙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었다.
당장 루카에게서 반지를 빼앗아도 모자랄 판에, 그는 그 자리에서 미동도 없었다.
뤼디거는 또다시 품을 뒤적였다. 그런 그의 손에 들린 것은…….
“이럴 줄 알고 예비로 더 준비해 왔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