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try changing the genre RAW novel - Chapter 118
장르를 바꿔보도록 하겠습니다 118화
“루카.”
“했어, 처음 봤을 때, 분명!”
루카는 악을 쓰듯 외치며 기억을 쥐어 짜냈다.
이모 유디트에게서 자신을 데려오며, 뤼디거는 이제 자신이 내 보호자가 되어주겠다고, 친자식처럼 키워주겠다고 맹세했었다…….
그때의 기억은 진실이었다. 루카는 흔들리는 눈길로 뤼디거를 바라보았다.
당장에라도 거짓말이라고 말해 주길. 아니, 굳이 말도 필요 없다.
미안하고 안타까운 눈길이라도 좋으니, 그저 나를 따듯하게 바라봐주기를…….
하지만 루카를 고요히 응시하는 뤼디거의 시선은 루카가 바라는 것과는 동떨어져 있었다.
버석거리는 마른 낙엽처럼 건조함에 루카의 마음마저도 바삭 바스러졌다.
아, 삼촌은 항상 이런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던 걸까.
뤼디거는 마지막 쐐기를 박았다.
“내 자식처럼 널 생각한다고는 했지. 하지만 사랑은 별개의 일이다. 루카 빈터발트. 네 할아버지가 나를 사랑하는 것 같더냐?”
“……!”
“그것이 바로 빈터발트의 부자 관계다. 너도 빈터발트라면 이해할 거라 믿었는데.”
뤼디거는 쯧, 혀를 찼다.
실망했다는 듯한 뤼디거의 통보 앞에서 루카는 벽을 느꼈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해도 뤼디거에게 닿지 않으리라는 것이 느껴졌다.
머리를 망치로 후려치는 듯한 충격에 루카는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마차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댄 루카의 얼굴이 세상이 무너진 듯 일그러졌다.
지금껏 뤼디거가 자신을 사랑한다 믿어 의심치 않았던 모든 시간들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쳐 산산조각이 났다.
루카의 몸이 수치심과 배신감으로 바들바들 떨렸다.
“그, 그래서……. 책임감 때문에 죽는다고? 날 사랑하지도 않는데? 저들이 원하는 건 나잖아. 차라리 내가 죽으면……!”
그때 또다시 총성이 연달아 울렸다.
그새 탄환을 재장전한 암살자들이 마차를 향해 총구를 겨눴다.
탕!
총알이 아슬아슬하게 마차 바퀴를 스쳐 지나갔다. 루카의 작은 몸이 마차 안에서 나동그라질 정도로 마차가 크게 덜컹였다.
뤼디거는 루카의 말에 답하는 대신, 그대로 제 할 말만을 뱉었다.
“이건 내가 한 명의 빈터발트로서, 빈터발트의 후계자를 지키기 위한 정당한 신념이다. 그러니 나를 방해하지 마라, 루카.”
그러고는 마차 문을 열고 몸을 밖으로 기울여 마부에게 말했다.
“한스. 루카를 학교까지 부탁한다.”
“……네. 저만 믿으십시오, 도련님.”
마부 한스가 결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의 시선이 마주하고, 뤼디거는 그대로 마차 밖으로 뛰어내렸다.
“삼촌!”
루카는 뒤늦게 외쳤지만, 달리는 마차는 이미 뤼디거로부터 멀찍이 떨어진 뒤였다.
정말 이대로 끝인 거야?
뤼디거는 최후까지 루카에게 눈조차 제대로 마주쳐 주지 않았고, 따스한 말 한마디조차 해 주지 않았다. 되레 칼날처럼 날카로운 진실만을 남겼을 뿐이다.
루카는 넋이 나간 듯 멍하니, 저 멀리로 사라져 가는 뤼디거의 등만을 바라보았다. 루카의 가슴에 공허한 구멍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 뒤 뤼디거는 암살자 대부분을 처리했지만 결국 죽어버리고 만다. 바로 이 장면이 루카와 뤼디거가 생전에 나누는 마지막 대화였다.
이 장면을 떠올리고 나서야 나는 확연히 깨달을 수 있었다.
왜 루카가 뤼디거에게 배신감을 느꼈는지. 그에게 사랑이란 불가능하다 여겼는지.
그런데……. 원작에서 내가 이런 내용을 읽은 적이 있었나?
한스의 존재 또한 생소했다.
내가 빈터발트에 도착했을 때, 우리를 마중 나온 중년 마부가 바로 그였다.
내가 이름 없는 단역일 거라 생각한, 책에서 본 적조차 없다. 여긴 흔하디흔한 이름의 사내.
하지만…… 아무리 별거 아닌 조연이라 해도 이런 장면에서 등장했다면 기억을 했을 텐데.
그가 복부에 총을 맞은 채 루카를 데리고 수도로 향했고, 가까스로 수도에 다다르고 나서야 눈을 감았다는 걸 생각하면 더더욱.
내가 읽었던 소설과 조금 묘사나 분위기가 다른 것 같았다.
내가 소설을 읽었을 땐 뤼디거가 이 정도까지 매몰차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루카 말대로, 루카를 걱정해서 괜히 냉정하게 말하는 느낌 정도였을 뿐이었는데……. 그래서 어긋나는 느낌에 더 안타까웠고.
애초에 원작이 저랬더라면, 루카가 뤼디거에 대해 사랑을 모르는 이라고 확신하는 것에 대해 나 또한 공감했을 터였다.
그런데 잠깐…….
내가 떠올린 것이 문장은 맞나? 왜 마치 있었던 기억처럼 생생하게 느껴지지?
그리 의문을 품은 순간, 턱 하고 숨이 막혔다.
“헉…….”
그러고는 송곳으로 헤집는 듯한 날카로운 통증이 머리를 관통했다.
마치 인지하면 안 되는 세계의 것에 접근한 것 같은, 근본적인 경고…….
고통에 식은땀이 흐르고,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으슬으슬한 한기가 내 몸을 잠식했다.
“이모? 이모.”
갑자기 괴로워하는 내 모습에 루카가 불안한 듯 내 몸을 흔들었다.
별거 아니라고 답하려 입을 벙긋거렸지만, 실제로는 너무 고통스러워 아무런 답도 할 수 없었다.
루카를 끌어안은 채, 나는 숨을 몰아쉬었다. 거친 숨결이 입술을 타고 흘렀다. 눈앞이 어지럽더니 곧 시야가 흐려졌다.
무거운 몸은 이내 내 통제를 벗어난 채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이모!”
* * *
눈을 떴다. 몸이 물먹은 솜처럼 축 늘어졌다.
침대 위에 드리워진 캐노피의 무늬가 흐릿하게 보였다. 나는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몸은 꿈쩍도 안 했다.
“마님? 일어나셨어요?”
로라와 이사벨라가 다급히 내 주위로 모여들었다.
“갑자기 쓰러지셨다면서요. 막내 도련님이 그렇게 놀라신 건 처음 봤어요. 저희도 얼마나 놀랐는지…….”
“아…….”
내가 무어라 말하려 했지만 목이 팍 잠겨 있었다.
그러고 보니 어제 물을 마시지 못했던 기억이 났다. 로라가 눈치 빠르게 물을 따라주었다.
“여기 물이요.”
나는 물을 벌컥벌컥 마셔 입을 축였다. 갈증이 해소되니 살 것 같았다.
“고마워, 로라……. 내가 갑자기 쓰러졌다고?”
“네. 기억 안 나세요?”
“음…….”
나는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루카와 뤼디거의 청혼에 대해 이야기를 했고……….
그래. 원작에서의 내용을 떠올린 순간 미칠 듯한 두통이 엄습해 왔었지.
기억을 더듬어가니 머리가 여전히 지끈거렸다. 두통의 여파가 아직까지도 남은 모양이었다.
갑자기 왜 머리가 아팠는지 모르겠지만, 내 머릿속 기억에 혼선이 있는 건 분명했다.
‘지금껏 내가 원작의 내용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다 이거지…….’
그나마 그 이질감을 자각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는 게 다행이었다.
그러고 보니 로라에게 연회장 상황을 알아보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기억과 현실을 비교, 대조하는 일은 잠시 미뤄두고, 일단은 당장 코앞에 닥쳐온 일부터 해결해야겠다. 나는 이마를 짚은 채 말했다.
“일단 어제 상황부터 듣자.”
“어제요? 마님이 쓰러지시고 이틀이 지났어요.”
“그 정도나?”
나는 놀랐다. 그 정도면 기절한 거나 다름없는 거 아냐?
“선왕 전하는? 혹시 내가 쓰러진 걸 알고 계셔?”
선왕이라면 내가 쓰러진 것을 뤼디거의 탓으로 돌려도 이상하지 않았다.
뤼디거의 청혼으로 충격받아서라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할 수도.
초조해진 나는 걱정스레 로라의 답을 기다렸다.
“아뇨. 루카 도련님이 입단속 시키셨어요.”
“루카가?”
“네. 선왕 전하께서는 마님이 연회에서의 일로 농성하고 계시는 줄 알고 계세요.”
“그거 다행이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루카가 이런 식으로 도움이 될 거라곤 생각지 못했는데…….
어쩌면 자기와 이야기하는 도중 돌연 쓰러졌으니 충격 받았을지도 모른다. 자기가 스트레스를 줬다고 생각한다거나…….
‘루카가 그렇게까지 섬세한 타입은 아닌 것 같지만.’
하여튼 크게 일이 퍼지지 않아 다행이었다.
물론 그렇다 하여 이미 벌어진 일이 큰일이 아니라는 건 아니었다.
“연회는 바로 파투가 났어요. 선왕 전하께서 너무 길길이 날뛰셔서……. 둘째 도련님 멱살을 잡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뤼디거 씨는? 괜찮아?”
“뭐, 도련님이야……. 옆에서 선왕 전하를 진정시키면 불씨를 넣고, 진정시키면 불씨를 넣고 그러셨죠. 절대 청혼 무를 생각 없다고. 정말 정원에서 흙 가져와서 선왕 전하 눈에 뿌릴 기세였어요.”
“아…….”
그래. 뤼디거라면 그랬겠지. 실제로 가져다 뿌리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그래도 총부림은 없던 모양이네. 나는 작게 안도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로라의 말에, 잠시나마 들었던 안도는 금세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하도 난동을 피우시는 바람에 잠깐 감옥에 갇혔지만…….”
“뭐? 감옥?”
나는 화들짝 놀랐다.
하지만 말을 전하는 로라의 표정은 마치 어젯밤 잠깐 비가 내렸다는 듯 담담하기 짝이 없었다.
“잠깐이에요. 다음 날 풀려나셨어요. 지금은 근신령이 내려진 채 타운하우스로 돌아가셨구요.”
“아니, 그래도…….”
감옥에 갇힐 정도면 큰일 아냐? 도대체 뭘 어떻게 한 거야, 뤼디거?!
“솔직히 국왕 전하의 앙심도 있는 것 같고……. 정말 어제 도련님께서 전하의 말씀을 귓등으로도 안 들었거든요.”
물론 그것은 동감이었다.
연회에서 제일 불쌍한 건 난데 없이 청혼 당해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 나였지만, 그다음으로 불쌍한 건 일국의 왕인데도 철저하게 무시당하던 국왕이었다.
선왕도, 뤼디거도, 루카도 다 제 할 말만 할 뿐 아무도 국왕의 외침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나마 근위병들이 있어서 다행이었지. 만약 아니었으면 선왕 보다도 먼저 국왕이 화병으로 쓰러졌을지도 몰랐다.
“결국 다시 빈터발트 가에 출입 금지령이 떨어졌어요. 근데 아무래도 이번엔 왕궁 출입 금지령만으로 끝날 것 같지가 않아요.”
“그, 그러면?”
“자칫하다가 빈터발트가 전체가 수도 밖으로 쫓겨날 수도…….”
“아니, 타운하우스가 블루옌에 있는데 수도 밖으로 쫓겨나는 게 말이 돼? 그건 사유지잖아!”
“그래서 주인님과 주인마님께서 수도로 오신다는 이야기가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