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try changing the genre RAW novel - Chapter 119
장르를 바꿔보도록 하겠습니다 119화
“뭐? 공작님과 공작 부인께서? 아니, 하긴, 오실 만한 일이긴 하지만……. 정말 오시는 거야? 수도 출입 금지령 때문에?”
예상치 못한 빈터발트 공작 부부의 등장에 나는 허둥지둥했다.
공작 부인 소피아의 건강이 좋지 않아 내 샤프롱도 못했는데, 결국 그녀가 수도에 오게 되다니.
아, 이게 무슨 민폐야.
나는 혀를 찼다. 수도에 간 며느리가 사실 며느리가 아니었다.
는 것도 미치고 팔짝 뛸 일인데, 난데없이 다른 아들에게 청혼을 받았다 하니 아무리 덤덤한 소피아라 할지라도 충분히 뒷목 잡을 만한 일이었다.
게다가 가문 전체에 수도 출입 금지령이 내려질 수도 있는 상황이기까지 하니…….
그러니 전보로 소식을 듣는 것만으로 부족해 수도로 오는 것일 테지.
다른 건 몰라도 수도 출입 금지령은 사안의 중요도가 달랐다.
“단지 그뿐만은 아닐걸요. 일단은 마님께서 도련님 청혼을 받아들인 걸 온 럼가트 귀족들이 다 알고 있으니까요. 청혼을 깨든 추진을 하든 어쨌든 왕실과 논의하셔야 하니 두 분께서 수도에 오셔야만 하는 상황이긴 해요.”
“아……. 그러네. 빈터발트에서 블루옌까지 일주일이니까……. 그럼 일주일 뒤에 오시는 거야?”
“준비하실 것도 있고 하니 한 2주쯤 걸리시지 않을까요?”
“…….”
2주라 해도 짧은 시간은 아니었다. 그사이에 일이 조금이나마 일단락될 수 있을까.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절대 만만치는 않았다.
첩첩산중, 갈 길이 구만리였다.
앞으로 펼쳐질 일들이 지금보다 난장판이면 난장판이었지, 절대 온건하지 않으리라는 걸 확신한 나는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었다.
로라는 그런 내 눈치를 보더니, 넌지시 내 무릎에 덮인 이불 위로 신문 한 부를 슬쩍 찔러 넣었다.
“이건…….”
“오늘 아침 조간이에요. 마님께서도 확인하시는 쪽이 좋을 것 같아서…….”
나는 신문을 향해 손을 뻗었다. 고이 접혀 있는 신문은 가십지로 유명한 그 신문사였다.
떨리는 손으로 신문을 펼쳤다. 제일 먼저 보이는 건 두껍고 커다란 볼드체로 쓰인 타이틀이었다.
『뤼디거 빈터발트 대령, 왕궁 연회에서 청혼하다?!』
제목만 봐도 내용이 짐작이 갔다. 심호흡한 나는 시선을 밑으로 내렸다.
[목석으로 유명한 작센 자작, 빈터발트 대령이 사고를 쳤다.바로 이번 왕궁 연회에서 연회의 주인공, 유디트 마이바움 양에게 청혼한 것이다.
왕실 악단까지 동원하여 연회장을 보랏빛으로 물들인 그의 담대한 사랑의 구애에 모든 귀족이 놀랐다.
대령이 이번 청혼을 준비하는 데 도움을 준 대령의 오랜 지인은 익명으로 ‘대령이 그렇게 눈 돌아간 것은 처음 본다. 아마 대령의 부모도 모르는 모습일 것’이라며 그의 열렬함을 넌지시 드러냈다.
청혼을 받은 유디트 마이바움 양은 갑자기 왕족이 된 일로써 이미 본지에서 행운의 인물로 한 번 다룬 적이 있는 유명인사다.
그랬던 그녀는 빈터발트 대령의 마음마저 사로잡으며 더블 행운의 주인공이 되었다.
마이바움 양과 빈터발트 대령의 첫 만남은 과연 어땠을까?
아쉽게도 두 사람 다 엄중한 경계 아래 두문불출하고 있어 인터뷰를 따는 것에는 실패했다.
하지만 마이바움 양이 고 뷜로 백작의 연인으로 가장하여 빈터발트에 입성했으며, 그녀를 에스코트해 데려온 것이 빈터발트 대령인 것을 생각하면 빈터발트에서부터 그들의 관계가 깊어지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추측이라고는 하지만 제법 정확했다.
기사의 밑에는 연회장의 그 난장판을 정확하게 묘사해 낸 세밀화도 실려 있었다.
화병을 머리 위로 번쩍 치켜든 선왕과 나를 쫓아오는 뤼디거, 근위병들에게 끌려가는 나, 성을 내듯 발을 구르는 루카까지.
마치 그 꼴을 본 사람이 직접 그린 것처럼 생생했다.
‘와, 타인의 눈으로 보니 정말 난장판이다……. 완전 개판 오 분 전인데.’
나는 못이라도 박힌 듯 한참 동안 그 그림을 바라보았다.
로라가 덧붙였다.
“블루옌뿐 아니라 럼가트 전역에 불티나게 팔렸다고 해요. 지난번 마님께서 왕족인 게 밝혀졌을 때도 판매 부수 신기록 갱신이었는데, 이번에 또 갱신했으니……. 아마 마님 기사를 판 것만으로도 신문사 건물을 바꿨을 걸요?”
한마디로 럼가트의 모두가 내가 청혼받은 걸 알게 되어버렸다, 이 말이었다.
뤼디거에게 신문에 광고를 싣는 건 어떠냐 했는데, 굳이 그럴 필요 없게 되어 다행이네…….
그것이 지금 이 상황의 유일한 장점이라는 것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지, 뭐…….”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이 상황을 짐작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내가 신문사였어도 이건 기사로 냈다. 기사로 안 내는 쪽이 멍청할 정도다.
그렇게 로라와 내가 이야기를 하는 동안, 이사벨라는 옆에서 주저하며 눈치를 보고 있었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 입술을 달싹이는 것이, 언제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갈등하는 것 같았다.
이사벨라답지 않았다. 짧은 시간이나마 내가 본 그녀는 어떤 상황에서도 당당했고 직설적이었다.
궁금했던 내가 먼저 물었다.
“혹시 할 말 있니, 이사벨라?”
이사벨라는 잠깐 고민하더니, 어렵사리 운을 뗐다.
“말씀드릴 게 있는데…….”
그러고는 로라 쪽을 흘끔거렸다. 로라가 있는 자리에서는 선뜻 말을 꺼내기 힘든 듯한 눈치였다.
“로라는 괜찮아.”
나는 단호했다.
로라에게 모든 사정을 공유한 것은 아니지만, 내 사정에 대해 뤼디거와 루카를 제외하고 제일 많이 알고 있었다.
내가 믿고 일을 맡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족인 만큼, 그녀에게 굳이 숨길 필요가 없었다.
‘빙의나 그런 비밀과 관련된 문제라면 좀 곤란하겠지만……. 이사벨라가 그런 것에 대해 말할 리도 없으니까.’
나는 별생각 없이 말했지만, 로라의 얼굴이 일순 감격으로 활짝 피었다.
생각해 보면 내 입으로 로라는 내 사람이라 확언한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로라는 이내 뽐내듯 거들먹거리는 눈길로 이사벨라를 보았다. 마치 내가 이만큼이나 그녀를 믿어준다며 자랑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사벨라는 로라가 그러든 말든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애초에 나에게 신뢰받기를 갈구하는 성격도 아니었다.
이사벨라는 그저 내가 괜찮다고 하니 상관 안 하겠다는 듯 담담한 눈빛으로 로라를 스쳐보고는 신중히 말을 이었다.
“마님께서 쓰러지신 날, 저한테 심부름시키신 거 기억나세요? 물 가져와 달라고.”
“어? 아아……. 그랬지. 그래, 기억났다. 그러고 보니 그때 왜 그렇게 안 왔던 거니? 엄청 기다렸다고.”
입이 타서 바싹거렸던 기억이 떠올랐다.
루카와 이야기하는 도중에도 몇 번이고 이사벨라를 기다렸던 것도.
“물이 떨어져서 식당으로 가는 길에 복도에서 프란츠를 만났어요.”
“뭐?”
이사벨라는 담담히 말했지만, 나로서는 화들짝 놀랄 만한 일이었다.
듣고 있던 로라도 깜짝 놀라 눈을 휘둥그레 떴다.
생각지도 못한 일에 심장이 쿵쾅거렸다.
시험 종료 3분 전, 답안지를 점검하던 중 실수한 걸 발견했을 때와 같은 조급증이 손까지 퍼졌다.
나는 애써 진정하려 노력하며 침착하게 물었다.
“어쩌다가?”
“연회장에서 빠져 나와 복도를 맴돌고 있었던 모양이에요. 그러다가 저와 마주쳤고요.”
이사벨라는 거기까지 말하고는 잠시 미간을 찡그렸다.
“혹시나 해 말씀드리지만, 정말 우연이었어요. 믿어주세요.”
이사벨라는 혹여나 내가 그녀와 프란츠가 짜고 만나는 척하는 건 아닐까 오해할까 걱정스레 덧붙였다.
딱히 의심한 건 아닌데…….
이사벨라가 왕궁에 온 뒤 하는 행동은 모두 감시당하고 있었고, 누구와 연락을 하는지도 마찬가지였다.
이사벨라는 시녀가 된 이후 한 번도 누군가를 따로 만나거나 바깥에 연락하는 일이 없었다.
그랬던 만큼, 애초에 우연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안다, 알아. 그런 것으로 널 의심하진 않아. 그럼 프란츠가 네가 감옥에서 나온 걸 알고, 일부러 접근한 거니?”
“아뇨. 제가 감옥에서 나온 건 모르고 있던 것 같았어요. 저를 발견하곤 어떻게 감옥을 나온 거냐며 깜짝 놀랐거든요. 딱히 연기로 보이진 않았어요.”
“프란츠가 도대체 왜 연회장이 아닌 왕궁 복도 으슥한 곳을 돌아다니고 있던 거지? 네가 물을 뜨러 가는 곳은 사용인들이 주로 쓰는 외진 곳이잖니.”
“마님 방을 찾고 있는 것 같았어요.”
“내 방을?”
순간 소름이 오싹 돋았다. 도대체 내 방을 찾아서 뭘 하려고?!
이사벨라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말을 한 건 아니지만, 느껴지는 기색이…….”
“프란츠가 뭐라고 했어?”
“어떻게 제가 왕궁의 시녀가 됐는지, 언제 감옥에서 나온 것인지, 다비와는 만나봤는지……. 하지만 역시 제일 궁금한 건 저와 마님과의 관계가 어떤지 같았어요.”
“……그래서 어떻게 했니?”
“근위병을 불러 그를 내쫓을까 하다가……. 혹시나 해서 그에게 장단을 맞췄어요. 무슨 꿍꿍이인지 좀 더 자세히 아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역시 이사벨라다.
내가 굳이 시키지 않아도 현명한 판단을 했다. 나는 안도하며 이사벨라의 말을 재촉했다.
“잘했어. 도대체 어떻게?”
“마님에게 울며불며 사정해서 마님께서 자비를 베풀어주셨다. 지금은 마님의 측근이다. 당신 말대로 마님께선 심약하신 분이라 이리저리 흔들린다……. 뭐, 이런 말들이요.”
“음……. 다른 건 그렇다 치지만, 내가 심약하다는 말을 정말 믿었어?”
내가 연회장에서 대놓고 이사벨라를 퇴치하는 걸 보았으니, 심약하다는 말을 쉽게 믿었을 것 같지는 않은데…….
이사벨라의 입꼬리가 이죽거리듯 올라갔다. 프란츠를 비웃는 기색이 역력했다.
“원래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남자니까요. 제가 마님 측근이라는 것에 기회를 잡았다 생각해서 눈이 돌아갔을 테니, 제 말을 의심하고 싶지 않았을걸요.”
그도 그럴싸했다.
확실히, 나보다 프란츠에 대해 더 오래 알아온 이다웠다.
“아니나 다를까, 제가 마님 곁에 있다고 하니 바로 마님을 몰래 꼬여낼 수 있는지 물어보던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