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try changing the genre RAW novel - Chapter 120
장르를 바꿔보도록 하겠습니다 120화
“아니, 마님을 꼬여내서 뭘 어쩌려고요!”
옆에서 듣고 있던 로라가 씩씩거리며 분통을 터트렸다.
“빈터발트에서 마님에게 치근덕거릴 때부터 프란츠 도련님 인성은 알아봤지만…….”
로라의 눈이 세모꼴로 변했다.
“프란츠 도련님은 왜 마님에게 그리도 치근덕거리는 거예요? 이사벨라와 프란츠 도련님은 무슨 사이고요?”
나는 로라에게 지금까지의 사정에 대해 간략히 설명했다.
로라에게 이사벨라에 대해 대충 설명하긴 했지만, 프란츠와 얽힌 일에 관해서는 미처 말하지 못했다.
어차피 본격적으로 프란츠에 대한 대비도 해야 하니, 이번 기회에 설명하고 넘어가는 것도 좋을 터였다.
이야기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로라의 눈이 점점 더 날카로워졌다.
평소의 순박하고 둥근 눈매는 온데간데없이 날카로운 눈매를 희번덕이는 로라는 소피아처럼 예민해 보였다.
“아니, 그러면 요나스 도련님의 또 다른 애라고 주장했던 애가 사실 프란츠 도련님의 아이였어요? 게다가 자기 애한테 그런 짓까지 했다고요? 와……. 지금껏 둘째 도련님 성격이 제일 나쁘다고 생각했는데, 적어도 인성이 없는 건 아니었네요.”
프란츠를 까는 도중에도 깨알 같이 뤼디거를 비방하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이쯤 되니 뤼디거가 로라에게 무슨 짓을 한 건 아닌지 심히 우려가 되었다.
‘로라가 이불보를 세탁할 때마다 바닥으로 내동댕이쳤다든가 그랬던 건 아니겠지, 설마.’
나는 진지하게 고민했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로라가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이 이사벨라는 한숨과 함께 말을 이었다.
“그 멍청한 남자는 내가 아직도 그에게 속아 넘어간 채라고 믿어 의심치 않더라고요. 저를 스파이로 쓸 생각인 것 같아요.”
“흐음…….”
“일단 연락책을 알려줘서 알아오긴 했는데……. 이다음부터는 마님의 허락이 필요한 일이니까요. 어떻게 할까요, 마님?”
이사벨라의 푸른 눈이 나를 곧게 직시했다. 프란츠를 엿 먹일 기회를 눈앞에 둔 그녀의 눈빛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스파이라……. 나는 턱을 매만졌다.
내가 필요한 정보는 프란츠가 몰락할 수 있는 핵심적인 증거다. 현장 발각이 되면 더 좋고.
지금까지는 고양이가 화장실 모래 덮듯 잘 숨겨왔겠지만, 그가 이사벨라를 이용하고자 한 것이 그의 패착이 될 것이다.
어떻게 이 기회를 이용할지는 차차 생각해 봐야겠지만, 프란츠를 몰락시켜 내 인생에서 아주 완벽히 치워버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것만큼은 분명했다.
“일단 연락을 유지해 보자. 그 쪽에서 도대체 무슨 정보를 원하나 궁금하기도 하고.”
“알겠습니다.”
“저…… 둘째 도련님께 말씀드리지 않아도 될까요?”
로라가 걱정스레 물었다.
뤼디거에 대해 사감이 있는 것과 별개로, 이런 일에 있어선 그가 믿음직하다는 것에는 로라 또한 동감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미간을 잠깐 찌푸린 채 손에 들린 신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세밀화 속 뤼디거의 모습이 유난히도 눈에 남았다.
나에게 있어 뤼디거는 양날의 검이었다.
무척 믿음직스러웠지만, 동시에 어디로 튈 줄 모르는 공과도 같았다. 이번 청혼만 해도 그러했다.
내가 곁에 있으며 고삐를 쥘 수 있으면 차라리 나을 텐데, 지금은 그것도 아니니…….
프란츠 감시를 부탁해 둔 것만으로도 충분하겠지. 그리 생각한 나는 로라의 걱정을 덜어주려 덧붙였다.
“음……. 좀 두고 보는 게 나을 것 같아. 괜히 일찍 말해뒀다가 뤼디거가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니까. 계획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세우고 말하도록 하자.”
“그건 그렇지만…….”
하지만 로라는 못내 불안한 기색이었다.
왜 이렇게 불안해하는 거지? 나는 의아히 로라를 바라보았다.
한참을 고민하던 로라는 심각한 얼굴로 어렵사리 입을 뗐다.
“혹여나 직접 움직이실 생각은 마세요. 그러면 저, 루카 도련님에게 말씀드릴 거예요.”
……루카한테 말해서 뭘 하려고? 걔가 내 보호자니?
참나. 뭣 때문에 그리도 심각한가 했더니 내가 허튼 짓이라도 할까 봐 걱정스러운 모양이었다.
내가 언제 사고를 쳤다고…….
아무리 봐도 루카한테 세뇌당한 게 분명했다.
맨날 루카가 사고 치지 말라 사고 치지 말라 염불을 외니, 저도 모르게 내가 사고 칠 걸 걱정하게 되는 것이다.
하여튼 루카 이 녀석……. 자리에 없어도 영향력은 여전했다.
나는 혀를 차며 로라를 다독였다.
“직접 움직일 생각은 없어. 그리고 안 그래도 루카에게 상의할 생각이었고.”
물론 여차하면 직접 움직이는 것 또한 감내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순순히 속내를 털어놓았다가는 로라가 그 사실을 뤼디거나 루카에게 전할 게 분명했다.
그러면 일이 벌어지기도 전에 방 안에 감금당해 옴짝달싹도 못 하겠지. 나도 그 정도 학습능력은 있었다.
물론 루카와 상의한다는 말은 진심이었다.
뤼디거야 굳이 그에게 말하지 않더라도 이해해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다지만, 루카에게 말 안 했다가 들키면…….
으으. 후환이 두려웠다.
“루카 도련님과 상의하신다면 안심이에요.”
“……로라, 걔 열 살인 건 알고 있지?”
진심으로 다행이라는 듯 가슴을 쓸어내리는 로라를 보며, 나는 당황스레 물었다.
아니, 나야 루카가 회귀했을지도 모르는 가능성에 대해 알고 있으니 루카를 어른 취급해 주는 거지만…….
회귀의 가능성도 모를 로라가 자연스레 루카를 어른 취급하는 게 신기했다.
“나이가 능력이나 가치를 대변하지는 않아요. 제가 바로 그 증인이잖아요.”
로라는 뿌듯하고 당당하게 가슴을 내밀었다. 순박한 얼굴은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건…… 그렇지.”
반박의 여지가 없었다. 열여덟인 로라가 내가 아는 그 어떤 하녀들보다도 유능했기 때문이다.
기절했다 일어났는데 바로 너무 많은 일을 처리했기 때문일까,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당이 떨어졌는지 손도 떨렸다.
“이런, 빨리 식사하실 걸 준비해 올게요.”
“그래. 그럼……. 이사벨라, 프란츠와의 연락을 부탁할게.”
“네. 믿어주시고 맡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실망하시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어요.”
이사벨라는 결연히 다짐했다.
물론 내가 마냥 이사벨라를 믿어 허락한 것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그녀를 감시하는 시선이 있으니 과감히 배팅한 것이지.
내가 그녀를 믿어준다 생각하며 의욕을 불태우는 이사벨라를 보니 조금 양심의 가책이 느껴졌지만, 차라리 가책을 좀 느끼고 안전을 도모하는 쪽이 나았다.
그렇게 이사벨라와 로라가 간단한 식사 준비를 하기 위해 나서고, 방에 나 혼자만이 남았다.
“으아아.”
나는 신음과 함께 다시 몸을 침대로 내던졌다. 푹신한 매트리스가 내 몸을 받아냈다.
나는 내 손에 쥐여 꾸깃꾸깃해진 신문을 조심스레 폈다.
내 손끝이 뤼디거의 그림에 닿았다.
다시 생각해 보아도 정말 소란스러운 연회였고, 정신없는 청혼이었다.
이미 벌어진 일이니, 어쩔 수 없지. 뒤처리라도 제대로 하는 수밖에.
아, 근데 정말 내가 바라는 장르가 아니다, 이거.
루카 앞에 있는 고난을 치우려고 했더니 내 앞에 고난이 펼쳐지지를 않나, 루카 성장물이 되기를 바랐는데 알고 보니 얘는 이미 완성형 캐릭터였지를 않나…….
시간이 갈수록 장르 바뀌는 속도와 난이도가 적응하기 힘들어지는 건 내 착각일까?
애초에 그냥 간단한 사교계 암투 정도만 생각했을 뿐, 이렇게 공사다망하게 적극적으로 움직이며 정치와 모략에 익숙해질 생각이 아니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루빨리 일이 해결되고 잔잔한 로맨스로 무사히 장르 변환이 되었으면.
그게 아니면 힐링물이라도 좋다, 제발.
나는 신문을 부여잡은 채 간절히 바랐다.
CHAPTER13 원하는 장르로 가는 길은 순탄치만은 않다
내가 식사를 끝마치고 차로 입가심을 하는 새, 내가 일어났다는 소리를 몰래 전해 들은 루카가 내 방을 찾아왔다.
“……몸은 좀 어때?”
그냥 툭 하고 내뱉는 듯한 말이지만 내심 걱정을 많이 했는지 슬쩍 나를 살피는 눈매가 살짝 떨렸다.
“괜찮아. 내가 기절한 새 선왕을 잘 막아줬다며? 큰 소란이 날 뻔했는데 고마웠어.”
“별거 아냐. 나도 괜한 소란은 원치 않으니까.”
나는 루카의 눈치를 봤다. 화가 나거나 꿍한 기색은 아니다. 분위기를 살핀 나는 조심스레 운을 뗐다.
“그러고 보니 말이야…….”
나는 로라에게 말했던 대로 프란츠가 나를 찾아 왕궁을 헤맸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는 루카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뭔 말도 안 되는 소리냐며, 위험하다 역정을 내진 않을까 조마조마했다.
한참 끝에 이야기를 전부 들은 루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확실히……. 조금 위험하기는 하지만 충분히 감내할 만하지.”
앗, 감내할 만한 거야?
루카가 이런저런 반대를 하면 설득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호쾌하게 허락이 떨어졌다. 나는 얼떨떨해하며 눈만 굴렸다.
“어차피 프란츠 그 자식은 이모랑 아저씨가 결혼하는 걸 결사반대할 게 틀림없어. 갖은 수를 다 쓰려 할걸……. 잠깐. 왜 그렇게 봐?”
“아, 아니. 그냥.”
나는 떨떠름히 루카를 바라보았다.
지금 누구보다도 뤼디거와 내 결혼을 결사반대하고 있는 이 중 하나면서, 마치 자긴 아닌 듯 프란츠의 욕을 하는 것이 기가 찼다.
선왕도 그러더니, 루카도 참 타인을 욕할 때 자기소개 하듯 하는 재주가 있단 말이야…….
하여튼 프란츠의 속셈을 생각할 때, 나와 뤼디거의 결혼은 추진하는 것이 이득이었다.
좋아. 이건 좀 어필할 만한 것 같아.
나는 루카를 설득하기 위해 넌지시 운을 뗐다.
“역시 나랑 뤼디거 씨랑 결혼하는 쪽이 좋지 않아? 그럼 프란츠 엿도 먹이고. 일거양득이지.”
“그 무슨 빈대 잡으려고 집에 불 지르는 소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