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try changing the genre RAW novel - Chapter 121
장르를 바꿔보도록 하겠습니다 121화
빈대라니, 그 정도는 좀 아니지 않니?
하지만 반박할 수가 없었다. 루카의 입이 꾹 다물리며 분위기가 무거워졌기 때문이다.
은근슬쩍 뤼디거에 대한 로카의 적대를 누그러트리려는 내 시도가 간파당한 것일까.
루카는 단호하게 말했다.
“하여튼, 나는 여전히 반대야.”
“그러면 도대체 죠세핀 왕녀와 처음 만났을 때, 뤼디거 씨와 왕녀가 아무 사이도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말란 말은 도대체 왜 한 거야? 난 네가 나랑 뤼디거 씨의 사이를 어느 정도 짐작해서 한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참 나. 그런 거 아니야. 이모가 엉뚱한 생각을 해서 죠세핀 왕녀 눈치를 볼까 봐 걱정돼서 그랬던 거였지.”
“엉뚱한 생각?”
“왕녀랑 아저씨가 결혼하면 이모는 어떻게 되는 걸까, 왕녀 눈치를 봐야 하는 건 아닐까, 철도 부설권 조건이 성립되면 조카인 나는 어떻게 될까, 이런 쓸데없는 생각 말이야.”
루카는 핀잔주듯 덧붙였다.
실제로, 뤼디거에게 고백받지 않았더라면 했을 법한 생각들이었다.
“하지만 루카…….”
나는 거듭 루카를 설득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하지만 바로 이어지는 루카의 말에 막히고 말았다.
“날 설득하기보다 선왕부터 먼저 설득하지그래? 그 노인네가 지금 뭘 생각하고 있는지 들으면 이모도 놀랄걸.”
“뭐, 뭔데?”
루카의 으름장에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웬만해서는 놀랄 거라느니 하며 겁을 주는 일이 없는데…….
도대체 선왕이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걸까. 나는 불안한 시선으로 루카를 보았다.
하지만 루카는 아무 말도 안 한 채 그저 씩 웃을 뿐이었다. 그러곤 의미심장한 말 한마디만을 툭 던졌다.
“곧 알게 될 거야.”
* * *
곧 알게 된다는 루카의 말이 바로 이걸 뜻하는 거였나.
나는 눈앞에 펼쳐진 상황을 맞이하며 어색하게 눈만을 데굴데굴 굴렸다. 가시방석이 따로 없었다.
방에서 농성하는 척하던 내가 강제로 끌려 나온 곳은 바로 왕궁의 회의실의 커다란 탁자 앞이었다.
그리고 내가 앉아 있는 탁자는 익숙한 얼굴들로 차 있었고.
루카는 물론이거니와 빅토리아, 사무엘, 죠세핀, 말리나, 국왕, 선왕…….
하다못해 샤를로트까지.
한 마디로 모든 왕족의 총출동이었다.
선왕이 엄숙하게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2361번째 왕족 회의를 시작하겠노라.”
선왕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사관으로 참석한 신하가 선왕의 말을 받아 적었다.
국무회의라도 되는 듯 구색을 갖춘 모양새가 웃겼다.
물론 제일 웃긴 건 회의 주제였고.
“유디트에게 청혼한 괘씸한 빈터발트 놈에 대한 처분에 대해 가감 없이 의견을 내놓아라.”
뤼디거의 청혼에 대한 논의도 아니고, 처분이라니.
아니, 이런 쓸데없는 거로 왕족 회의를 여는 게 말이 돼? 무슨 가족회의야?
지금껏 있었던 2360번의 왕족 회의는 과연 어땠는지가 궁금할 정도였다.
나는 이 일이 자신과는 상관없다는 듯 매끈매끈 웃고 있는 루카를 째려봤다.
‘조금은 언급을 줬어도 좋잖아!’
나는 좌불안석이 되어 눈치를 보았다. 모두가 입을 다물고 있어 침묵이 더욱 무겁게 느껴졌다.
선왕은 닦달하듯 탁자를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왜 이리 답이 없어? 다들 제 일 아니라고 나 몰라라 하는 거냐? 왕족으로서의 인성이 덜 되어먹었구나!”
라고 이 자리에서 제일 인성이 부족한 것으로 추측되는 선왕이 말했다.
선왕은 원래부터 저랬던 걸까, 아니면 나이를 먹어서 자기 자신에 대한 객관성이 떨어진 걸까…….
양심의 가책이 느껴질 만할 말을 아무런 죄책감 없이 꺼내는 것이 놀라울 정도였다.
“정말로 그 빈터발트 놈에게 유디트를 넘길 셈이냐? 청혼을 취소할 만한 마땅한 명분을 생각해 보란 말이다!”
물론 선왕이 뤼디거를 싫어한다는 건 지금껏 노골적으로 드러내 왔지만…….
적어도 이런 토론은 내가 없는 곳에서 해야 하는 거 아냐? 나는 어디까지나 청혼 찬성파인, 뤼디거 편인데?
혹시 이건 선왕의 시위인가? 이렇게까지 뤼디거를 반대한다는 시위의 뜻이야?
내가 어처구니없어 하는 사이, 빅토리아와 죠세핀에게 옆구리를 찔려 떠밀린 사무엘이 총대를 메고 나섰다.
“……방도가 없습니다. 증인이 너무 많아요. 청혼과 빈터발트 대령에 대한 여론도 호의적이고요.”
“호의? 내가 아는 호의의 뜻이 그새 바뀌었느냐?”
“그건 아니옵고…….”
“그런 놈에게 호의적이라니, 세상이 말세로구나!”
선왕은 진심으로 탄식했다. 사무엘은 쩔쩔매며 선왕의 노기를 가라앉히려 노력했다.
“……지금 여론 속의 대령은 악룡에게 납치당한 공주를 구하려는 기사나 다름없습니다. 막무가내로 청혼을 파투내어봐야 왕가의 위신만…….”
“그놈이 기사면, 뭐, 내가 악룡이라도 된단 말이냐?”
“…….”
사무엘의 입이 다물렸다.
사무엘은 자신을 사자 입으로 떠민 채 한 발짝 뒤에서 지켜보고 있는 두 여동생을 원망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사무엘과 빅토리아가 왕권을 두고 경쟁하고 있다 들었는데, 생각보다 남매 사이가 나쁘지 않아 보였다.
하긴, 그러니까 남매가 왕권을 두고 투덕거리는데도 왕이 그냥 놔두는 거겠지…….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내 육촌들의 사이가 좋냐 마냐가 아니었다.
중요한 건 바로 반지까지 오간, 확정된 내 청혼의 행방이었다.
“어떻게든 수를 내보아라! 그게 아니면, 정말 빈터발트와 전쟁이라도 해야지 속 시원할 참이냐?”
“선왕 전하!”
“그랬다가는 럼가트가 큰일 납니다. 진정하시옵소서.”
전쟁이라는 말에 화들짝 놀란 사무엘과 빅토리아가 선왕을 말렸다.
차기 왕국의 후계자로서, 타국도 아니고 왕국 내의 전쟁이 결코 반가울 리가 없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왕실 회의가 가족 회의 같다고 해도 그렇지, 루카와 열 살 난 꼬마 왕녀 샤를로트까지 있는 자리에서 이런 말이 오가다니…….
루카야 이 소란에 일조하고 있는 주체니 그러려니 하지만, 샤를로트 보기가 참으로 부끄러웠다.
마냥 두 손 놓고 지켜볼 수 없었던 나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저……. 이미 청혼에 대한 답을 했는데요. 굳이 그걸 취소해야 하는 이유가…….”
“그건 무효다! 착한 네가 그 양아치 같은 놈의 수작에 걸려 넘어간 것일 뿐이지. 강제로 손가락에 반지를 끼운 그 난폭한 행위를 어찌 청혼을 받아들인 거라 인정할 수 있겠느냐?”
선왕은 여전히 내가 뤼디거에게 휘둘려 억지로 청혼을 수락했다 믿어 의심치 않고 있었다.
그 확고한 믿음에는 자신이 인정한 것만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아집 또한 섞여 있었다.
순간 나를 바라보는 죠세핀의 시선과 마주쳤다. 무적 동정적인 눈길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죠세핀에게서 받은 최초의 호의적인 반응이었다.
‘그저 눈길뿐인 동정을 호의라 말하기도 참 민망하지만…….’
그때, 루카가 입을 열었다.
“이렇게 된 거 청혼은 어쩔 수 없죠. 약혼시켜 버려요.”
생각지도 못한 말에 나는 깜짝 놀랐다.
자기는 뤼디거를 절대 반대한다며 강하게 주장하던 모습이 바로 며칠 전이었다.
혹시 나에게 설득된 것일까?
내가 구구절절 읍소한 말 중 한 구절이 루카의 마음을 흔들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적어도 루카만이라도 내 편을 들어준다면 천군만마를 얻은 것이나 다름없을 텐데.
나는 기대 어린 눈으로 루카를 바라보았다.
반면, 배신 어린 시선 또한 루카를 향했다.
“루카 네가 어떻게 그런 말을! 너만은 내 편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거늘!”
선왕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같이 싸우던 전우가 하룻밤 새 적군에 매수되어 자신에게 총구를 들이밀기라도 한 것 같았다.
선왕이 루카를 내 편이라 지칭하는 것도 무척 어색했다. 둘이 언제 그런 사이가 되었나 몰라.
연회장에서 선왕과 함께 흥분해서 길길이 날뛰었던 것이 거짓말처럼, 루카는 침착함을 유지한 채 조용히 선왕의 말을 받았다.
“약혼을 시키는 거지, 결혼시키는 건 아니니까요.”
“……!”
선왕이 깨달음을 얻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반대로 나는 배신당한 심정이었다.
정말 나에게 설득된 건 아닐까 조금이나마 기대했는데…….
돌아가는 상황을 보아하니 전혀 아니었다.
선왕은 떨리는 목소리로 자세한 내용을 캐물었다.
“그, 그렇다는 이야기는 빈터발트 대령이 포기할 때까지 결혼을 방치하자는 이야기냐?”
“아뇨, 그런 거로 포기 같은 걸 할 사람이 아니에요. 끈질기기가 아주 늑대 뺨치니까. 약혼 허락은 그저 지금 소란을 잠재우기 위한 수단일 뿐이에요. 원래 사랑이라는 게 반대하면 반대할수록 더 불타오르는 거잖아요?”
여러분은 열 살짜리 꼬마가 말하는 사랑의 일반론에 대해 듣고 계십니다…….
조숙하고 어른스럽다는 표현을 붙이기엔 화법이 지나치게 자연스럽고 익숙했다.
내 앞에서야 서로 이상한 점을 대충 눈치챘으니 열 살 어린애라고는 생각지 못할 이상한 점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거로 생각했는데…….
그냥 애초에 자기가 평범한 열 살 꼬마가 아니라는 걸 숨길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선왕은 그런 점을 전혀 개의치 않았고.
아주 쿵짝이 잘 맞는다, 잘 맞아.
“그러면?”
“우리가 노리는 건 이모예요.”
“유디트를?”
“세상은 넓고 잘생긴 남자는 많잖아요. 아저씨보다 더 잘생기고, 몸 좋고, 목소리도 좋은 남자가 어딘가에는 한 명쯤 있지 않겠어요?”
저기요, 저 지금 듣고 있는데요……. 적어도 본인 앞에서 할 만한 이야기는 아니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