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try changing the genre RAW novel - Chapter 122
장르를 바꿔보도록 하겠습니다 122화
더 잘생긴 남자만 나타나면 마음을 바꿀 거라니……. 도대체 날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게다가 내 이상형은 왜 그렇게 잘 파악하고 있는 건데?
그때 퍼뜩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뤼디거가 청혼하면서 외모 어쩌고 했던 말이었다.
그 때문에 완전히 외모지상주의자로 낙인 찍힌 모양이었다.
이대로 괜찮을 걸까 내 이미지…….
어차피 공개 청혼받으면서 이미지라고 할 만한 게 남아 있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걸 열 살 조카 입에서 듣는 건 파급력이 달랐다.
어처구니가 없었던 내가 할 말을 잃고 있는 사이, 선왕이 손뼉을 치며 루카의 말을 반겼다.
“오호라, 그럴듯하구나.”
그럴듯하긴 뭐가 그럴듯해!
선왕 당신 지난번에 나보고 우리 유디트는 외모를 안 보니 뭐니 하지 않았어?
어쩜 그리 손바닥 뒤집듯 말을 바꾸는지, 입술에 침을 바르는 걸 넘어 혀에 기름칠도 한 모양이었다.
나는 치미는 열불을 속으로 꾹꾹 누르며 최대한 침착하게 그들을 설득하려 애썼다.
“지금 두 사람 다…… 자기가 말이 되는 소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말이 안 될 건 또 무엇이냐?”
“아니, 손녀딸이라면서요! 손녀딸이 약혼자를 두고 바람피워서 파혼하기를 종용하는 할아버지가 어디 있어요?!”
“…….”
참지 못하고 터져 나온 내 노호에 선왕의 입이 딱 다물렸다.
선왕이 양심 없는 인간이기는 하지만, 약혼 후 바람이 너무 나갔다는 걸 판별할 정도의 도덕심은 아직 남아 있는 모양이다.
선왕의 입을 틀어막은 나는 씨근덕거리며 화살을 루카에게로 돌렸다.
“게다가 루카, 너 아무리 뤼디거 씨에 대한 사감이 있다고 해도 그렇지…….”
“지금 내 반대는 아저씨에 대한 사감을 제외한 거야. 이모한테 조건적으로 별로야, 그 남자.”
하지만 역시 루카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루카는 새치름하게 고개를 홱 돌렸다.
이, 이럴 때만 예쁜 척하지!
하지만 그게 먹히는 게 제일 큰 문제였다.
이럴 때 분위기를 타서 루카를 몰아세웠어야 했는데, 루카가 눈을 흘기는 모습을 보니 또 입이 다물렸다.
나는 한숨과 함께 다시 차근히 말했다.
“조건적으로 별로라니. 뤼디거가 눈에 안 차면 난 평생 결혼 못 해, 루카.”
“그거 좋구나!”
사람 속도 모르는 건지, 아니면 알 생각이 없는 건지. 선왕은 불난 집에 부채질하듯 옆에서 희희낙락했다.
답답했던 나는 가슴을 두드리고 싶은 심정을 애써 참았다. 속 터져 죽을 것 같다는 게 무슨 뜻인지 현재 진행형으로 몸소 느끼고 있었다.
“도대체 뤼디거 씨의 뭐가 그리 별로예요? 뤼디거 씨는 객관적인 조건으로는 럼가트 최고의 신랑감이에요. 그에 비해 저는…….”
“유디트 네가 어때서! 유디트 넌 너무 착해서 그런지, 사람을 좋게만 봐주는구나. 내가 봤을 땐 별로인 점이 차고 넘치던데.”
아니, 나는 조건이 까다롭다면 까다로운 편일 텐데…….
도대체 내 배우자에 대한 저 두 사람의 기준은 뭘까?
내 부모님이 살아 있어도 저보다 더 깐깐하지는 않겠다 싶었다.
“게다가 그놈이 럼가트 최고의 신랑감이라니! 럼가트의 결혼적령기 사내들이 씨가 말랐나 보구나! 패트릭, 럼가트가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 건 맞느냐?”
심지어 화살은 현재 국왕인 패트릭에게로 날아갔다.
실제로 뤼디거를 사윗감으로 내심 점찍고 있었던 국왕의 얼굴이 미묘하게 꿈틀거렸다.
자신의 선택도 같이 폄훼 당해 심기 불편해하는 것이 훤히 드러났다.
그러고 보니 또 주제가 벗어났다.
뤼디거의 장점에 대해 말하려고만 하면 미꾸라지처럼 이리저리 빠져나가네. 나는 혀를 찼다.
“뤼디거 씨 정도면 나쁘지 않다니까요. 빈터발트 가는 럼가트에 몇 없는 공작가고, 본인도 무척 성실하고 부지런해요. 적당히 융통성도 있고…….”
“융통성? 달리는 사륜 전차 같은 그 고집쟁이가?”
물론 나도 처음에는 뤼디거가 융통성이라고는 쥐뿔도 없는, FM 중의 FM, 극단적 원리원칙주의자인 줄 알았다.
하지만 계속 곱씹어보니 그게 아니라는 것만큼은 알겠다.
원리원칙주의자가 상관이나 다름없는 국왕의 말을 무시하고, 왕궁에 비밀통로로 거리낌 없이 들락날락할 리가 없으니까.
뤼디거는 그냥 자기가 원하는 걸 쟁취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는 축이었다.
돌아가는 법도 없고.
원리원칙주의자처럼 보였던 것은 그저 야전교범 자체가 극단의 효율을 위해 작성되었다 보니 그런 점에서 맞아 보였던 것일 뿐이다.
뤼디거가 융통성이 없는 건 방법론적 이야기가 아니라 결과론적 이야기였다.
그는 자신이 정한 신념이나 결과에 있어서만큼은 조금도 타협하지 않으니까.
“게다가 루카가 빈터발트 후계자인 걸 생각했을 때, 아무리 생각해도 뤼디거 씨와 결혼하는 게 최선의 방법 같아요. 그만큼 저도 루카에게 집중할 수도 있고. 다른 가문 사람과 결혼하면 그게 불가능하다고요.”
루카가 내 애도 아니거니와 때때로는 나보다 더 어른스러울 때도 있다지만, 나는 루카를 내 애나 다름없다고 여겼다.
책임져야 하는, 그런 존재로.
물론 내가 뤼디거의 청혼을 승락한 건, 전적으로 그를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나라 해도 루카를 잘 보살필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는 뤼디거와 결혼을 결심하지 않는다.
‘겸사겸사라는 거지.’
하지만 내가 뤼디거를 좋아해서 청혼을 받았다고 입이 닳도록 읊어봤자 선왕도, 루카도 귓등으로도 안 들어줄 것이 분명했다. 되레 성격만 긁고 말겠지.
나는 그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자기 이름이 거론되기가 무섭게 루카가 눈을 치켜뜨며 말했다.
“내 핑계 대지 말고.”
“네 핑계가 아니야. 그냥 내가 바라는 여러 조건 중 너도 껴 있고, 뤼디거 씨는 그 조건을 모두 충족한 것뿐이지. 그리고 그 조건을 충족할 사람은 뤼디거 씨밖에 없고.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선택 같은데…….”
나는 차근차근 말했다.
내가 뤼디거를 이렇게까지 두둔할 줄은 몰랐는지, 선왕은 충격받아 할 말을 잃은 표정이었다.
생각해 보면 내가 선왕의 앞에서 대놓고 뤼디거를 두둔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지금까지는 좋게좋게 일을 처리하려고 애써 눈치를 보고 있었는데, 이대로는 끝이 없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다.
이 고착 상황이 길어지는 근본적인 이유는 선왕과 루카의 뤼디거에 대한 반발이 감정적일 뿐이라는 것이었다.
특히나 선왕이 뤼디거를 싫어하는 것은 막무가내에 가까웠다. 안 된다며 주장하는 이유 자체가 지나치게 주관적이었다.
문득, 예전에 과외 알바를 했을 때가 생각났다.
과외 당시 힘들었던 건 학생의 의욕을 고취하는 문제도 있지만, 학부모의 기대를 낮추는 것 또한 만만치 않았다.
학생의 상태와 현실 간의 격차에 대해 제대로 인지를 못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선왕도 딱 그랬다.
아무리 고슴도치도 자식새끼가 함함하다지만…….
나는 한숨과 함께 뤼디거와 결혼해야만 하는 논리적인 이유를 이으려 했다.
그때 누군가가 끼어들었다. 이 희극에 참여할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상대였다.
“맞아요. 빈터발트 대령 정도면 훌륭한 신랑감이죠. 아바마마도 항상 그러셨는걸요. 럼가트에서 제일간다고.”
그리 말한 죠세핀은 싱긋 웃었다.
나긋한 목소리는 죠세핀 본인을 향하는 적대감을 모조리 흩어버릴 만한 위력이 있었다.
그리고 흩어진 적대감은 다시 뭉쳐, 고스란히 국왕에게로 향했다.
“뭐? 패트릭, 럼가트의 태양인 네 판단력이 그 모양이라니, 럼가트의 미래에 암운이 가득하구나!”
“아니, 아바마마……. 실질적으로 빈터발트 대령의 결혼 점수는 상당히 높습니다.”
“그 점수는 누가 낸 게냐? 빈터발트에서 뒷돈을 받아먹었을 게 분명하구나! 패트릭, 당장 그 점수를 낸 자를 잡아 와서……!”
“그냥 사교계에 암암리로 돌아다니는 점수일 뿐입니다!”
국왕은 땀을 뻘뻘 흘리며 해명하려 했지만, 선왕은 마치 먹잇감이라도 발견한 하이에나처럼 국왕을 씹고 뜯었다.
‘제 아들이 제일 만만하다 이거지…….’
나는 안타까이 혀를 찼다.
말리나는 제 오빠가 선왕에게 탈탈 털리고 있는데도 침묵한 채였다. 선왕과는 그 어떤 말도 섞고 싶지 않은 기색이었다.
그나저나 죠세핀이 나를 거들 거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 했는데.
나는 죠세핀 쪽을 흘끗 보았다. 눈이 마주쳤다. 죠세핀은 아까 생긋 웃은 것이 거짓말처럼 무뚝뚝한 낯으로 돌아와 있었다.
하지만 이전만큼 나를 거부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묘하게 뤼디거와 나를 이어주려고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이전에 빅토리아더니, 이번엔 나인가……. 어떻게든 뤼디거를 치워 없애려는 사람 같았다.
도대체 죠세핀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지금까지는 그녀와 부딪히지만 않으면 된다 생각했지만, 한 번 쯤은 그녀와 흉금을 털어놓을 필요가 있어 보였다.
그러는 새 국왕을 한참 갈구던 선왕이 씩씩거리며 다시 화살을 나에게로 돌렸다.
“됐다! 결국 유디트 너는 뤼디거가 좋은 이유가 루카를 홀로 빈터발트에 보내기 싫어서라는 말 아니냐!”
“아니, 단지 그것만은 아니고…….”
“그런 이유라면 간단하지. 루카를 계속해서 왕궁에서 키우면 되는 일 아니냐.”
“저……. 루카는 빈터발트 후계자거든요. 언젠가는 빈터발트 가로 돌아가야 해요.”
“흥! 빈터발트에서 교육해 봤자 요나스 같은 망나니 놈 아니면 뤼디거 같은 쇠고집 놈이나 되겠지. 그에 비하면 내 손자 손녀들은 훨씬 의젓하지 않으냐. 이것은 바로 왕족의 교육이 훨씬 낫다는 증거란다.”
왕족의 교육에 한 번도 간섭한 적 없을 선왕이 그리 말하니 기가 찼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있던 왕족들 또한 나와 같은 마음인지, 모두가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선왕을 바라보았다.
“마냥 왕궁에서 루카를 붙들고 있을 명분이…….”
“명분? 이 아이 또한 럼가트의 피를 잇지 않았느냐. 왕궁에 머물 조건은 충분하지. 그럼, 그렇고말고.”
“하지만 루카는 따지고 보면 방계입니다. 방계 아이를 왕궁에서 왕족들이 받는 교육을 받게 한다니……. 방계 아이를 입양한 것도 아니고, 전례가 없는 일입니다.”
국왕이 심각하게 반박했다. 사무엘과 빅토리아의 눈빛도 순간 날카롭게 빛났다.
왕족 교육은 제왕학이나 다름없었다.
방계인 루카가 그런 교육을 받는다는 건 생각만큼 가벼운 사안이 아니었다.
어쭙잖게 방계라서 더 위험했다.
하지만 선왕은 별거 아니라는 기색이었다. 되레 손뼉을 짝 치며 가볍게 말했다.
“그래. 좋은 생각이 있다. 샤를로트! 샤를로트와 루카를 약혼시키는 게다.”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