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try changing the genre RAW novel - Chapter 129
장르를 바꿔보도록 하겠습니다 129화
네가 왜 여기서 나와……?
아니, 게다가 그 능숙한 타자 폼은 뭐야?
같이 캐치볼을 했을 때도 재능이 장난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그때만 해도 아마추어 실력이었는데…….
그냥 프로도 아니고, 고액 연봉을 받을 만한 실력의 프로가 되어 나타나다니!
설마 이거 매수된 시합인 건 아니겠지……?
뤼디거를 불신하는 건 아니었다. 다만 다른 종류의 믿음이 있을 뿐.
하지만 승부 조작이라거나 그런 건 아닌지, 다른 선수들은 순수하게 뤼디거의 실력에 감탄하고 있었다.
‘그건 그나마 다행이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분명 사고 치지 말라고 했던 것 같은데…….
그다지 기대하진 않았지만 이렇게까지 바로 일을 칠 건 없잖아?
‘설마 드릴 말씀이 있다던 게 이 이야기였나…….’
나는 선왕이 이상한 짓으로는 럼가트 제일이라는 말을 취소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뤼디거가 선왕보다 한 수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진 않아 보였다.
선왕은 뤼디거를 향해 손가락질하며 고래고래 외쳤다.
“저……. 원귀 같은 놈! 아주 끈질기기 짝이 없구나! 하필 오늘 이렇게 나타나다니, 마치 내가 오늘 크로켓을 보러 오는 걸 알고 있던 것 마냥……. 설마 우연? 아니야. 이건 세작을 심은 게 틀림없어. 감히 태양에게 눈을 심다니!”
선왕의 추측은 가정을 넘어 피해망상에 가까울 정도로 번져갔다. 잔뜩 일그러진 선왕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마냥 피해망상은 아닌 것 같단 말이지…….’
뤼디거라면 정말 세작을 심었을 수도 있었다. 가능성은 충분했다.
거친 숨을 내뱉던 선왕은 간신히 진정한 채 숨을 골랐다. 한참을 씨근덕거리며 경기장을 노려보던 그는 이내 저주하듯 탁 뱉었다.
“좋아, 처음은 우연이었을 게 분명해. 저놈이 얼마나 망신을 당하는지 두고 보자.”
경기에 대해 잘 모르는 선왕은 홈런이 얼마나 대단한 실력인지 모르는 모양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뤼디거는 그 뒤로도 활약에 활약을 거듭했다.
어지간한 프로 선수보다 훨씬 뛰어난 실력에, 점수는 또 어찌나 잘 내는지…….
뤼디거가 점수를 낼 때마다 관객들은 함성을 내질렀고, 그때마다 선왕의 얼굴이 잔뜩 구겨진 종이처럼 일그러졌다.
선왕의 기분이 상하거나 말거나, 나는 뤼디거의 활약을 지켜보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애초에 선왕이 날 경기장에 데려온 것도 선수들 구경하라는 이유였잖아? 나는 선왕의 뜻을 성실히 따르는 거라고.
‘캬……. 맨날 검은 장교복만 입더니……. 흰옷도 잘 어울리네.’
크리켓 복장은 평범하다고도 할 수 있었다. 하얀 셔츠와 바지 위에 보호구를 하는 것이 좀 특이할 뿐.
하지만 그걸 입고 있는 당사자가 뤼디거니, 색다른 매력이 있었다.
어쩐지 몸매가 뤼디거 뺨친다 했다. 본인이니 당연했겠지…….
경기는 뤼디거가 있는 팀의 승리로 끝났다.
뤼디거 홀로 점수를 팡팡 따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였다.
멋들어진 승리의 주역이 된 뤼디거는 선왕과 내가 있는 귀빈석으로 다가왔다.
선왕은 이를 바득바득 갈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는 황급히 자리를 뜨려고 했지만, 뤼디거가 다다르는 게 먼저였다.
‘쯧쯧……. 그러게 누가 크리켓 선수들 몸매 감상하라며 경기장에서 가까운 자리로 잡으래?’
이렇게 실시간으로 업보를 맞이하다니, 인스턴트 카르마라는 말이 아주 딱이었다.
투구를 벗고 다가온 뤼디거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심장이 쿵 떨어졌다.
뤼디거가 선왕과 나에게 정중히 인사했다.
“선왕 전하와 레이디 마이바움을 뵙습니다.”
“……흥.”
선왕은 들은 척 안 하며 턱을 치켜들었다.
나이를 도대체 어디로 먹었는지, 전혀 어른스럽지 못한 태도였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무시할 생각은 아닌 듯, 선왕은 뤼디거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네놈이 이런 식으로 나와도 나는 절대 허락 못 한다.”
“연회장에서의 일이 꽤 입소문을 탔더군요.”
허락 못 한다는 선왕의 말에 뤼디거는 전혀 엉뚱한 답을 했다.
‘이거 영 불안한데……. 선왕에게 뭔가 한 방 먹이려고 준비운동하는 거 아냐?’
아니나 다를까, 곧 이어지는 뤼디거의 천연덕스러운 말 한마디 한마디가 쐐기처럼 선왕의 가슴에 박혔다.
“이 크리켓 경기장은 어떻습니까? 어림잡아도 연회장 이상의 사람들이 몰려 있는 것 같은데……. 아마 소문이 더 잘 돌지 않을까요. 그것이 왕가의 추문이라면 더더욱 말입니다.”
“이, 이, 이 고얀 놈! 지금 왕실의 명예를 갖고 협박을 하는 거냐?”
“협박이라뇨. 이런 거로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으실 분이라는 걸 잘 압니다.”
“그런 놈이 이런 짓을 꾸며! 이런 식으로 내 맘을 돌리려고 해도 아무 소용없어!”
그렇다. 이렇게 자존심 싸움으로 가봐야 선왕의 고집만 더 단단해질 뿐이다.
나는 걱정스레 뤼디거를 보았다. 그의 매끈한 얼굴은 흔들림 없이 견고했고, 그 점이 더더욱 선왕의 심기를 긁었다.
뤼디거는 태연히 답했다.
“선왕 전하 마음을 돌릴 생각은 아니었습니다만.”
그러면?
이해할 수 없는 뤼디거의 발언에 나는 눈을 둥글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선왕 또한 뤼디거의 의중을 전혀 짐작할 수 없는지 미간 사이에 주름을 잔뜩 잡았다.
“유디트 씨가 크리켓을 좋아하는 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크리켓 선수들에게 매력을 느낄 가능성도 있겠지요. 그렇다면 제가 크리켓으로 크리켓 선수들보다도 멋있는 모습을 보여 주면, 유디트 씨 눈에 다른 남자가 차겠습니까? 유디트 씨께서는 결국 저를 선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뤼디거는 자신만만하게 단언했다. 자신이 프로 선수들보다 멋있는 모습을 보여줄 자신도, 내가 그를 선택하리라는 자신도 차고 넘쳤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리되었고.
‘아……. 진심 홈런 쳤을 때 두 번 반했다. 운동 잘하는 남자 최고야.’
“그리고 제가 이리 나섰으니, 왕가에 유디트 씨를 향한 청혼이 들어가는 일은 결코 없을 겁니다. 그러니 물밑으로 귀족 청년들을 물색하고 다니시는 건 포기하는 게 좋을 겁니다.”
“하, 네놈이 아주 자신만만하구나. 오만한 것이 하늘을 찔러. 감히 왕가에서 하는 일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다니!”
선왕은 불같이 화를 냈다.
하지만 내심 한 발짝 주춤하는 것이 느껴졌다. 뤼디거가 원체 뻔뻔하게 나서니, 기세에서 진 모양이었다.
‘기 싸움은 뤼디거의 승인가……. 이겨서 뭘 얻을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기 싸움에서 졌다고는 하나, 선왕은 여전히 뤼디거에 대한 적의를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그런 선왕의 적의를 말없이 묵묵히 감내하던 뤼디거는 옆의 종자처럼 보이는 이를 향해 손짓했다.
하도 시키는 게 자연스러워 종자라고 생각했는데, 잘 보니 다른 선수였다. 선수는 후다닥 선왕에게 곱게 접힌 신문을 건넸다.
“……이게 무엇이냐?”
“직접 보시는 게 편할 겁니다.”
뤼디거의 답에 선왕의 한쪽 눈썹이 못마땅하게 치켜 들렸다.
선왕은 뤼디거가 건넨 신문이 독배라도 되는 듯 진저리를 쳤다.
하지만 궁금증을 이기지는 못한 모양이다. 선왕은 한참 끝에 뤼디거에게 화풀이하듯 신문을 거칠게 빼앗아 들었다. 그러고는 부스럭거리며 신문을 펼쳤다.
신문의 제일 앞면, 흰 여백에 내 주먹만 한 글씨가 쾅쾅 박혀 있었다.
『유디트 마이바움 양에게 청혼하는 이에게는 럼가트 왕국군 중앙사령부 육군 대령이자 작센 자작, 뤼디거 빈터발트가 결투를 신청함을 선고하노라.』
신문의 한 페이지를 통으로 쓴 전면광고였다. 여백에서 느껴지는 패기가 강렬했다.
더 프레이즈. 이 세계 상식이 다소 부족한 나도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신문사였다.
그런 곳에 1면 전면광고를 싣다니…….
내가 신문에 광고하지 그러하느냐 빈정거린 적이 있긴 했지만, 정말로 실천할 줄이야. 금액보다도 그렇게 할 수 있는 실행력이 놀라웠다.
‘아주 소문과 방송 매체를 이용하는 데 거리낌이 없단 말이지……. 선동과 협박……. 뤼디거의 또 다른 재능이 아닐까?’
이쯤 되니 순수하게 감탄만 나왔다.
신문에 내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에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아, 뤼디거가 또 저질렀구나 싶을 뿐.
정작 내 일임에도 내가 한 발짝 떨어진 위치에서 관조하듯 바라보는 것과 달리, 선왕은 모욕이라도 당한 듯 부들부들 떨었다.
“고작 이런 것으로 왕가를 쥐고 흔들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더 프레이즈! 언론이라는 놈들이 자본에 매수되어 이 모양 이 꼴이라니, 내 이놈들을 당장……!”
선왕은 더 프레이즈에게 공정성 위반이라는 죄를 뒤집어 씌울 생각 만만인 낯으로 외쳤다.
선왕이 그러거나 말거나, 뤼디거는 옆에서 멋쩍게 서 있는 선 수에게 손짓했다.
선수는 선왕의 눈치를 보며 주저주저하더니, 이내 한가득 쌓인 신문 뭉치를 선왕에게 건넸다.
“더 프레이즈, 제너럴, 블루옌 일보, 디 제이트……. 그 밖의 수십 종의 타블로이드지 또한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모든 곳을 공정성 위반으로 죄를 물으시면 제법 시끌시끌하겠군요.”
보니까 더 프레이즈뿐만 아니라 럼가트에 있는 모든 신문에 전면광고를 건 것이었다.
아무리 막 나가는 선왕이라 해도 이 대책 없는 상황을 예상하지는 못한 모양이다.
그저 입을 떡 벌린 채 아무 말도 못 하고 뤼디거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뤼디거는 태연자약하게 말을 이었다.
“결혼식이 얼마든지 늦어져도 상관없습니다. 저는 끈질긴 편이고, 인내심에서는 누구에게도 져 본 적이 없으니까요. 원래 끝까지 버티는 놈이 승자라 하지 않습니까. 제가 선왕 전하보다 오래 버티면 되는 일이니 단순하지요. 아무래도 선왕 전하보다야 제가 더 오래 살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