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try changing the genre RAW novel - Chapter 132
장르를 바꿔보도록 하겠습니다 132화
그랬다. 나는 일부러 프란츠에게 비밀통로를 노출할 생각이었다.
“프란츠가 직접 등장하면 등장하는 대로 빈터발트에 내려진 왕궁 출입 금지령을 어긴 죄를 물을 수 있을 테고, 직접 오지 않고 전령을 잠입시키면 시키는 대로 그자의 뒤를 밟아 프란츠의 행적을 알 수 있겠지. 나쁘지 않아. 오히려 프란츠가 수도를 제멋대로 돌아다니는 쪽이 더 위험해.”
“어째서 프란츠가 왕궁에 들어오려 할 거라고 확신해?”
물론 프란츠가 이대로 계속해서 숨어 지낼지도 몰랐다.
프란츠의 자금 상태가 썩 좋지 않다고는 하지만 뤼디거의 감시망을 피해 달아난 것을 볼 때, 수족 한둘 부릴 여유는 있어 보였다.
하지만 언제까지 숨어 지낼 것인가. 프란츠가 이 상황을 완전히 벗어나려면 결국 조력자가 필요했다.
뤼디거와 상대가 될 만한 조력자…….
“혹시 사무엘 왕자를 만나기 위해서입니까?”
“사무엘?”
뤼디거가 뜬금없이 사무엘을 거론하자 루카의 한쪽 눈썹이 휘었다.
뤼디거의 말은 정답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때마침 잘되었다. 이미 무산된 계획이기는 하지만, 나는 루카와 뤼디거에게 내가 어떻게 프란츠를 처리하려고 했는지 설명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루카와 뤼디거가 나직이 신음을 흘렸다.
“어쩐지……. 그 때문에 며칠 전, 프란츠가 밀회용 고급 술집에서 사무엘 왕자와 만난 것이었군요. 그것이 전부 유디트 씨의 안배였을 줄이야. 제가 큰 뜻을 읽지 못했습니다.”
“아뇨, 큰 뜻까지는 아니었고……. 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뤼디거 씨에게 미리 말씀드리는 건데.”
나는 안타까이 한숨을 뱉었다.
보아하니 뤼디거가 돌연 프란츠를 암살하려고 한 것도 사무엘과 프란츠의 접선에 경각심을 느꼈기 때문인 것 같은데, 만약 내가 미리 말해두었다면 일이 술술 잘 풀렸을 것이다.
뤼디거를 조금만 더 믿을걸…….
하지만 후회해도 이미 버스는 지나간 뒤였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리고 해야 하는 건 차선책을 찾는 것뿐이었다.
“언제 그런 계획을 짠 거야?”
“뭐……. 나름 나도 고심했다고.”
나는 으스대며 어깨를 으쓱였다.
물론 고심이라기엔 찰나의 영감에서 비롯된 계획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족한 계획은 아니었으니까.
잠시 생각하던 루카가 걱정되는 부분을 지적했다
“하지만 이야기만 들어서는 프란츠와 사무엘의 관계가 아직 공고하지 못한 것 같은데……. 사무엘이 프란츠에게 뇌물을 요구하게 했다며. 프란츠는 아직 연료를 빼돌리기 전이라 자금이 부족하고. 그런 상황에서 과연 사무엘을 찾아가려 할까?”
“물론 프란츠의 입장에선 뇌물을 요구하던 사무엘 왕자가 자신의 말을 순순히 들어주리란 보장은 없겠지. 하지만 프란츠가 제시할 수 있는 패가 하나 남아 있어.”
“뭔데?”
“뤼디거 씨의 약점.”
뤼디거의 약점이라는 말에 뤼디거와 루카가 동시에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왜 그렇게 보나 싶을 정도로 빤한 시선이었다.
뒤늦게 그들이 말하는 바를 깨달은 나는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아, 아니. 나 말고.”
그제야 두 사람은 시선을 거뒀다. 어딘지 안도한 기색이었다.
어처구니가 없었던 나는 두 사람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정말이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둘 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저를 노려서 프란츠에게 이득이 될 게 없잖아요.”
“미친놈의 생각을 전부 알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
뤼디거의 말은 정론이지만, 그 말을 하는 주체가 뤼디거다 보니 어딘지 모를 반발심이 솟아 올랐다.
그런 내 심정을 모르는 뤼디거는 천연덕스레 말을 이었다.
“프란츠가 노리는 게 유디트 씨가 아니라면……. 제가 암살자를 이용한 일을 빌미로 공격할 생각이로군요.”
“맞아요. 군인의 신분임에도 암살자를 고용하여 혈족을 살해하려 했다며 뤼디거 씨를 규탄하고, 그와 함께 빅토리아 왕녀님까지 함께 끌어내리자고 사무엘 왕자에게 속삭일 거예요.”
“비록 제가 프란츠를 죽이는 데 실패하긴 했지만, 그에 관여했다는 증거를 남길 만큼 어수룩하진 않았습니다.”
“프란츠도 당장의 증거가 있어서 그런 주장을 하진 않을 거예요. 증거는…… 원하는 주장에 맞춰 뒤늦게 준비해도 충분하니까.”
나 또한 그러지 않았던가. 프란츠의 속셈은 훤히 보였다.
하여튼 프란츠는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사무엘을 만나야 했다. 다만 문제는 사무엘이 왕자이며, 왕궁에 있다는 것이다.
며칠 전 사무엘과 접선할 때만 하더라도 사무엘을 왕궁 밖으로 불러내었겠지만, 이제는 그럴 수가 없다.
뤼디거가 그를 쥐 잡듯 샅샅이 찾고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뤼디거의 감시를 피해 사무엘을 만날 길이 있다면 프란츠는 절대 무시하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든 도전하겠지.
“이사벨라를 통해 이 비밀통로를 넌지시 흘리면, 그는 이곳을 찾을 수밖에 없어.”
“……나중에 기반을 되찾고 나서 물밑으로 접근할 수도 있잖아? 지금 당장이 아닐 수도 있지.”
“하지만 프란츠로서는 시간을 오래 끌어서 좋을 게 없어. 뤼디거 씨와 손을 잡은 빅토리아 왕녀가 후계자 싸움에서 점점 득세할 테고, 그러면 사무엘 왕자의 세력은 점점 몰락할 테니까. 그때가 되어 사무엘 왕자와 손을 잡아봤자, 뤼디거 씨를 견제할 수 없잖아? 아무 의미 없지.”
나는 입이 닳도록 그들을 설득했다. 목이 말라 물 한 잔이 간절할 정도였다.
내 열렬한 설득에 루카와 뤼디거는 입을 다물고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 먼저 입을 뗀 건 루카였다.
“좋은 생각이라는 건 인정해.”
좋은 생각이라는 건 인정하는데……. 말이 좀 모호하다?
아니나 다를까, 루카의 고개가 단호하게 가로저어졌다.
“하지만 안 돼. 너무 위험해. 왕궁에 프란츠를 들이다니. 왕궁엔 이모도 있잖아.”
“나……? 내가 무슨 상관이야?”
나는 깜짝 놀라 되물었다.
화살이 왜 나에게로 향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무슨 상관이긴. 프란츠와 마주칠 수도 있잖아.”
“나는 이 근처에 얼씬도 안 할 거거든? 프란츠는 사무엘만 만나고 떠날 거고 말이야. 전혀 부딪힐 일 없어.”
“혹시 모르는 일이잖아. 안전은 만전에 만전을 기해도 부족해.”
“하지만……!”
그 만약의 일 때문에 꼭꼭 숨어 있는 프란츠를 끄집어내는 일을 포기하다니,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근다는 말이 딱이었다.
이 상황이 답답했던 나는 뤼디거에게 루카를 설득해 보라는 듯 눈짓했다.
하지만 내가 누구에게 무엇을 기대한 것일까.
뤼디거의 반응 또한 루카와 별반 다를 바 없었다.
“위험한 일이라는 루카의 말에 저 또한 동의합니다. 차라리 제가 더 열심히 프란츠를 찾아보겠습니다. 럼가트를 아주 샅샅이 뒤지죠. 그리고 이 비밀통로는……. 루카의 말대로 폐쇄하는 쪽이 좋겠습니다. 혹시라도 프란츠가 잠입할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하니 소름 돋는군요.”
뤼디거가 비밀통로를 폐쇄하는 것이 좋겠다 말하기가 무섭게 루카의 눈이 크게 뜨였다.
뤼디거가 그런 식으로 반응할 줄은 생각도 못 한 반응이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당황한 나는 설득의 대상을 루카에서 뤼디거로 변경했다.
“구, 굳이 비밀통로를 막아야 해요? 그냥 프란츠에게 비밀통로에 대해 말해주지만 않으면 되잖아요.”
“음……. 혹시 모르는 일이니까요.”
혹시는 무슨 혹시야. 그냥 솔직히 날 못 믿겠다고 말하시지!
뤼디거와 루카의 반응은 마치 내가 그들 몰래 또 무슨 일을 칠지 모르겠다는 것처럼 느껴졌다.
‘참 나, 그건 내가 할 말이 거든! 정작 사고 친 게 누군데!’
억울해 죽을 것 같은 한편, 이 비밀통로가 없어질 걸 생각하니 괜스레 막막했다.
선왕은 아직 마음을 바꾸지 않았고, 언제 뤼디거와 마음 편히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루카에게 걸려서 이 비밀통로를 쓰지 못한다고는 하나, 그래도 만약을 위한 대비책으로 남겨놓는 것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그’ 뤼디거가 나를 볼 수 있는 비밀통로를 강경하게 없애자 주장하다니. 그 정도로 걱정되나 싶기도 했다.
결국 나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면…… 어쩔 수 없죠. 이쪽은 폐쇄할 수 있도록 해볼게요. 프란츠 문제도 좀 더 생각해 보고요. 대신 루카, 당분간은 내가 뤼디거 씨와 연락하는 걸 방해하면 안 돼. 알았지?”
“……생각해 보고.”
루카는 입을 삐죽 내밀었다.
자존심 때문에 말은 저렇게 하지만, 승낙이나 다름없는 표현이었다.
프란츠의 도주와 루카의 등장이라는 깜짝 이벤트가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직 수습 가능한 정도다.
어떻게 프란츠 문제를 해결할지에 대해서는 좀 더 차분하게 생각하면 답이 나올 것이다.
나는 그리 생각하며 복잡한 심경을 애써 가라앉혔다.
* * *
뤼디거는 프란츠를 찾기 위한 인력을 늘리겠다고 말하곤 비밀통로 너머로 사라졌다.
나는 이제 앞으로 열릴 일 없는 통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음 날, 나는 뤼디거와의 연락을 위해 잠시 로라를 빈터발트 가의 타운하우스로 보냈다.
한동안은 번거롭겠지만 로라가 연락책 역할을 해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비밀통로를 막기 위해 빅토리아를 찾아갔다.
물론 선왕에게 말하면 단번에 비밀통로를 막아줄 테지만, 그곳에 비밀통로가 있는 줄은 어떻게 알았느냐부터 시작해서 비밀통로를 이용해 뤼디거를 만나온 거냐 잔뜩 시끄럽게 굴 게 손바닥 들여다보듯 뻔했다.
그래서 뤼디거에게 비밀통로를 알려준 빅토리아에게 말하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겸사겸사 프란츠에 대한 상황도 전하고.’
그렇게 생각하며 복도를 걷고 있는 찰나, 누군가가 불쑥 내 앞을 가로막았다.
“오랜만입니다, 마이바움 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