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try changing the genre RAW novel - Chapter 133
장르를 바꿔보도록 하겠습니다 133화
자, 잠깐.
네가 왜 여기서 나와?!
생각도 못 한 존재의 등장에 나는 당황하여 뒷걸음질 쳤다.
내 앞에 서 있는 온순한 외모로 일견 다정한 듯한 웃음을 짓고 있는 사내는 뤼디거가 사람을 풀었음에도 행방이 묘연한, 내가 찾아 마지않던 프란츠였다.
물론 내가 알던 그의 모습과는 많은 게 달랐다.
왼쪽 눈은 검은 안대로 가렸고, 망토를 드리운 오른팔은 부자연스럽게 움직였다.
뤼디거가 보낸 암살자들이 프란츠를 죽이진 못했지만, 아주 소득이 없진 않은 모양이었다.
나는 황급히 복도를 살폈다. 하필이면 사람이 없고 적막한 시기다. 심지어 복도에는 그늘마 저 드리워 있었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작게 심호흡하여 마음을 진정시킨 나는 태연한 척하며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네요, 버켄레이스 경. 빈터발트 가에 왕궁 출입 금지령이 떨어진 걸로 알고 있는데, 제가 모르는 사이에 금지령이 거둬졌나 봐요?”
“우리 모르는 척하지 맙시다. 제가 어디로 들어왔는지 다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순간 심장이 철렁였지만, 나는 최대한 얼굴에 그런 기색을 비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설마 비밀통로? 하지만 어떻게……. 어제 뤼디거의 뒤를 밟았던 걸까? 그래. 그렇게 알게 되었을 확률이 제일 높겠네.’
나와 마주친 순간 프란츠의 얼굴에 번진 미소…….
그 미소와 마주한 나는 프란츠의 목표가 나라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차라리 사무엘을 찾아가는 쪽이 나았을 것이다.
뤼디거에 대한 복수 때문일까? 프란츠의 결정은 비이성적인 것처럼 보였다.
나를 죽일 생각인 걸까, 아니면…….
머릿속이 복잡했다. 입천장과 혀가 들러붙을 것처럼 입안이 바싹 탔다.
일단 시간을 끌자.
다른 사람들이 지나가면 프란츠도 섣불리 행동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 판단한 나는 모르는 척 오리발을 내밀었다.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네요.”
“뭐, 좋습니다. 굳이 사실을 털어놓을 필요는 없으니까요. 마이바움 양과 수수께끼 놀이를 하는 것 같아 즐겁군요.”
프란츠가 절뚝이며 나에게로 다가왔다. 잘 보니 다리도 멀쩡하진 않은 듯싶었다.
몸 성한 곳이 없는 사내다. 당장 뿌리치고 도망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순 없었다. 혹시라도 프란츠에게 총이 있다면 큰일 나기 때문이었다.
도망치다 등에 총을 맞고 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진 내 모습이 훤히 그려졌다.
‘어떻게 복도에 사람은커녕 개미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을 수가 있어?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더니…….’
프란츠가 지척까지 다가왔다.
내 등을 타고 식은땀이 또르르 흘렀다. 머릿속에서 빨간 경고음이 시끄럽게 울렸다.
그때, 내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마님, 혼자 다니시면 안 된다고 로라가…….”
“오, 이게 누구야. 이사벨라 앤더슨 양이 아니신가.”
“……프란츠.”
프란츠는 과장되게 이사벨라를 반겼지만, 프란츠를 마주 본 이사벨라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차갑게 가라앉은 이사벨라의 낯이 생소하게 느껴졌다. 이질적이고, 낯선…….
그녀가 왕성에 오고 나선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거리감이 부지불식간에 치솟았다.
그 때문일까. 사람이 오기를 그토록 바랐지만, 이사벨라의 등장이 마냥 반갑지는 않았다. 오히려 불안감을 부채질할 뿐이었다.
이사벨라가 냉정하고 뾰족한 말투로 말했다.
“어떻게 왕궁에 들어온 거죠?”
“네가 말하지 않아도 다 아는 수가 있지.”
“이렇게 불쑥 등장하면 곤란하다 했잖아요. 제가 분명 유디트 마이바움과 만날 기회를 따로 마련해 드린다고 했을 텐데요.”
뭐?
생각지 못한 이사벨라의 말에 나는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냥 던지는 말일까, 아니면…….
이사벨라를 믿었기에 프란츠와의 접선을 맡긴 것이지만, 막상 이런 상황이 되니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사벨라는 나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있는 프란츠만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사벨라, 아무리 생각해 봐도 널 믿을 수가 없었어. 너로선 나와 마이바움 양을 이어주고 싶지 않을 테니까. 안 그래?”
“…….”
프란츠의 말에 이사벨라의 푸른 두 눈이 질투하듯 타올랐다.
“하지만 프란츠, 당신을 제일 잘 이해하는 건 나예요. 그리고 난 당신을 위해 열심히 노력했어요……! 저 여자의 비위까지 맞춰가면서!”
“그따위 이유가 내 일을 방해할 이유는 되지 않지.”
프란츠는 냉정하게 이사벨라를 내쳤다.
이사벨라는 배신당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사랑하던 연인에게서 버려진 듯, 그녀의 일그러진 얼굴엔 진심이 뚝뚝 묻어났다.
마냥 연기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이사벨라는…….
정말 내 편일까?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마음속에 의심의 불꽃이 활활 피어올랐다.
‘혹시 이사벨라가 지금껏 날 속이고 있던 건 아닐까? 프란츠를 증오하는 것처럼 굴었지만 계속해서 그를 좋아하고 있었다거나……. 내 곁에서 숨죽인 채 프란츠에게 도움이 될 기회만을 엿보고 있던 걸지도…….’
그리 생각하니 얼음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머리가 멍했다. 손끝이 동상이라도 입은 것처럼 뻣뻣이 굳었다.
나는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야, 유디트. 멍청한 생각 하지 말자. 지금은 일단 이 상황을 벗어나는 것만 생각하는 걸로도 벅차. 어떻게 프란츠를 뿌리칠지에 집중해야 해…….’
보아하니 프란츠가 모든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이사벨라와도 의견 불일치한 모습을 보이고.
그렇다면 찰나의 기회가 있을 것이다.
나는 그 틈을 노려야 한다. 내 감각이 예민하게 곤두섰다.
“프란츠, 제발 그렇게 말하지 마요. 당신의 일을 방해하다니, 내 사랑을 의심하는 거예요? 나는 정말 당신을 사랑해요. 당신의 아내가 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나는…….”
이사벨라는 처절할 정도로 자신을 낮추며 프란츠에게 빌었다.
프란츠가 혹여나 자신을 버릴까 잔뜩 두려워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는 사이 이사벨라는 어느새 프란츠의 지척에 다다라 있었다.
나는 이사벨라가 잠시만 프란츠의 정신을 흩트려 놓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때, 돌연 이사벨라가 프란츠를 와락 끌어안았다. 거의 온몸을 내던지다시피 한 채였다.
때 아닌 기회에 먼저 반응한 것은 내 머리가 아닌 내 발이었다. 구두 굽이 바로 바닥을 박찼다.
그들의 반대 방향으로 뜀박질하는 내 뒤로 이사벨라의 외침이 처절하게 들려왔다.
“도망가세요, 마님!”
“이 개년이!”
정중한 신사인 척하던 프란츠가 순식간에 돌변하여 욕설을 내뱉었다.
둔탁한 타격음이 뒤의 상황을 짐작하게 했다.
아.
이사벨라의 행동은 모두 연기였던 것이다. 프란츠의 주의를 빼앗고 그의 행동을 가로막기 위한 연기.
그러고 보니 애초에 연기에 재능이 있던 여자였다. 연회장에서 요나스의 애인인 척했을 때도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속아 넘어갈 뻔하지 않았던가.
아무리 적을 속이려면 아군도 속여야 한다지만, 나까지 깜빡 속아 넘어가 버렸다.
‘당신의 도움이 되기 위해 노력할게요.’
울음이 치밀었다. 이사벨라를 의심했던 것에 대한 죄책감이 나를 뒤흔들었다.
탕!
총소리가 들렸다. 화들짝 놀라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쓰러진 이사벨라는 미동도 없었다.
대리석 바닥에는 붉은 피가 흥건했다. 나는 경악에 질린 외침을 토해냈다.
“이사벨라!”
“후……. 성가시게. 우리 어렵게 가지 맙시다, 마이바움 양.”
나는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이 끝에 핏물이 고였다.
이사벨라는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어지럽혔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사벨라가 벌어준 이 기회를 허투루 날려버릴 수 없다는 것이었다.
마음을 다잡은 나는 이를 악물고 다시 몸을 돌렸다.
프란츠는 현재 다리와 팔, 그리고 눈이 불편하다. 이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으면 총의 명중률은 현저하게 떨어질 것이다.
그때, 내 반대쪽에서 한 무리의 사내가 다가왔다.
다행이다. 저 사람들이 프란츠를 사로잡고, 그의 행태를 재판에 올리기만 하면 이 모든 것이 끝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런 내 기대를 비웃듯 흘러갔다.
다가오는 사내들의 의복은 시종의 것도, 근위병의 것도 아니었다. 이죽거리는 그들의 낯은 저열함을 띠고 있었다.
그들 중 하나의 손이 나를 향해 뻗어왔다. 도망치고 싶었지만 불가능했다.
“큭!”
낯선 사내의 손에 목이 틀어 잡혔다. 나는 발버둥 쳤지만 사내의 손은 더욱 세게 내 목을 조일 뿐이었다.
“번거롭게 하는군요.”
절뚝거리며 프란츠가 나를 향해 다가왔다.
그의 얼굴은 언제나처럼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일견 순해 보이는 인상. 그것이 오히려 더욱 소름 돋았다.
“내가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는데, 혼자 왔을 리가 있겠습니까?”
프란츠는 망토에 감춰져 있던 오른팔을 흔들어 보였다. 팔뚝 중간에서 셔츠가 바닥으로 축 처져 있었다.
뤼디거가 보낸 암살자와의 접전에서 손을 잃은 듯싶었다.
“컥, 크윽…….”
목이 졸린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머리에 산소가 차단돼서 그런지 냉정한 상황 분석 같은 건 불가능했다. 그저 당장에라도 넘어갈 듯한 숨을 간신히 붙들고 있는 수밖에.
내 목을 조르고 있는 사내가 말했다.
“이제 가야 합니다, 두목. 총소리를 듣고 근위병들이 몰려올 겁니다.”
“그래. 좋아.”
프란츠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내 뺨을 가볍게 툭툭 쳤다.
무척 무례한 손짓이었지만, 그에 반발하기엔 내 상태가 여의치 않았다.
정신이 혼미해지는 상황에서, 프란츠의 목소리가 똑똑히 귀청을 때렸다.
“생각보다 일찍 공주님을 찾았군. 이제 거점으로 돌아가자.”
날 죽일 생각은 아닌 것 같아 다행이었지만, 그것만으로 안도하기엔 상황이 좋지 않았다.
프란츠는 뤼디거를 엿 먹였다는 만족감에 실실 웃고 있었고, 나는 그 비열한 낯짝을 있는 힘껏 노려보았다.
그런 내 눈 위로 눈가리개가 드리워졌다. 암전 속에서, 나는 혼미해져 가는 정신을 단단히 붙들기 위해 노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