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try changing the genre RAW novel - Chapter 134
장르를 바꿔보도록 하겠습니다 134화
CHAPTER 14 그렇다고 납치극 주인공이 되고 싶다는 건 아닌데요.
나는 거의 짐짝이나 다름없이 들려 갔다. 팔이 뒤로 포박되었고, 발도 마찬가지였다.
시야가 완전히 차단되었지만, 그 상황에서도 최대한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 나는 청각에 집중했다.
하지만 쉽지만은 않았다.
그들은 계단이라 생각되는 것을 오르더니 이내 사다리를 타고 내려갔다.
미로처럼 꼬불꼬불한 길을 몇 번이고 지났다. 축축한 공기가 피부에 닿아왔다.
이내 악취가 코를 찔렀고, 쥐가 무엇인가를 갉아먹는 소리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렸다.
그리고 또다시 복잡한 길을 지나기를 수차례였다.
내 눈이 가려져 있지 않았더라도 지나온 길을 결코 기억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렇게 얼마나 갔을까, 문이 열리는 듯한 소리가 몇 번이고 울리고 나서야 나는 처음으로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읏!”
딱딱한 바닥에 조금의 낙법도 취하지 못한 채 고스란히 떨어진 몸이 비명을 질렀다.
그나마 돌바닥이 아닌 나무 바닥인 게 다행일까.
나는 온몸이 욱신거리는 고통을 목 너머로 삼키며 이를 악물었다.
그때, 사내들의 구둣발 소리가 일순간 우르르 멀어졌다. 이내 맞지 않는 경첩이 다물리는 소리가 끼이이익, 귀를 긁었다.
문이 닫혔다.
그렇지만 마냥 안도할 수 없는 것은, 이 방 안에 나 말고 또 다른 존재가 남아 있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최대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하려 애썼다.
“이런, 예의 없는 놈들이라 죄송합니다. 다들 못 배운 천한 것들이라 손속이 다소 거칠답니다.”
나와 함께 방에 남은 것은 프란츠였다.
프란츠는 평이한 목소리로 담담히 말을 이었다. 이 상황에서 그러는 것이 되레 날 비웃듯 느 껴졌다.
왜 둘만 남은 걸까. 부하들이 들으면 안 되는 이야기를 해야 해서? 그도 아니면…….
최악의 가정이 머리를 어지럽혔다.
‘아냐, 정신 차려 유디트! 겁먹지 마. 최대한 의연한 척해. 아니, 척이 아니야. 불안할 이유가 없잖아. 왕궁에선 내가 없어진 걸 바로 알았을 거고, 다들 나를 찾으러 올 거야…….’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였다. 하지만 긴장으로 피부의 솜 털이 바싹 섰다.
그런 내 속내를 빤히 읽은 듯, 프란츠가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왕궁에서 당신을 찾을 거란 기대는 접는 게 좋을 겁니다. 이곳은 빈민굴 깊숙이 있는 은신처입니다. 빈민굴이 독자적인 구조로 돌아가고 있다는 걸 유디트 양께서도 알고 계시겠죠.”
나도 모르게 침중한 신음을 흘렸다.
그렇다. 빈민굴은 첨단의 요새였다.
루카 또한 프란츠의 눈을 피해 빈민굴에서 숨어 살지 않았던가.
모두에게 열려 있으나 그만큼 모두에게 닫혀 있는, 타인을 배척하는 동시에 포용하는 온갖 범죄의 온상.
럼가트 왕가에서도 빈민굴의 해결을 제일 골치 아파했다.
근위병을 보내 제압하자니 그로 인해 파생될 혼란이 크게 예상되었다.
그래서 왕가에서도 어지간해서는 건드리지 않는, 치외법권 같은 곳이었다.
게다가 빈민굴은 개미굴처럼 이리저리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설령 근위병을 동원한다 하더라도 이 은신처를 바로 찾기는 쉽지 않을 터였다.
‘암살자들이 프란츠를 놓친 것도 당연하네. 설마 빈민굴에 숨어 있었을 줄이야…….’
아무리 사람이 죽을 위기에 닥치면 물불 안 가린다지만, 프란츠가 여기까지 추락할 것을 예상해서 대비책을 세워둔 건 의외였다.
하지만 나는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생각해 보면 그는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내였다.
잠시 빈민가에 몸을 숨기는 일 정도야, 치욕스러울지언정 택하지 못할 선택지는 아니었다.
‘그나저나…… 성에 사람들이 왜 그렇게 없었던 걸까?’
프란츠와 맞닥트린 곳이 사람이 드문 곳이었다고는 해도, 무뢰한 폭도들이 대놓고 걸어 다닐 만한 정도는 아니었다.
나는 넌지시 돌려서 말했다.
“운이…… 좋았네요. 때마침 복도에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요.”
“운이 좋은 건 당신을 바로 만난 것이었죠. 사람이 없던 건……. 당신을 데려오기 위해 제가 꽤 공을 들였기 때문이고요.”
“무슨…….”
“왕궁은 지금 정신없을 겁니다. 왕궁의 반대쪽을 다른 부하들을 시켜 공격하게 했으니까요.”
“공격, 이요?”
“네. 아껴두었던 폭약이 있었거든요.”
폭약이라니, 네가 무슨 테러범이냐?!
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프란츠는 나를 납치하는 일에 사활을 걸었다.
그 이야기인즉슨 나를 납치해야만 하는 필사적인 이유가 있다는 뜻이고, 나를 절대 호락호락 놔주지 않을 것이다.
“뭐……. 폭약이라 해봐야 무척 조금이라 성벽을 조금 허무는 정도에서 끝이었지만, 왕궁의 이목을 돌리기에는 충분했죠. 실제로 당신이 이렇게 제 손에 들어오지 않았습니까.”
“…….”
“하하, 너무 그렇게 불안해하지 마십시오, 마이바움 양. 당신을 해치진 않을 겁니다.”
“왕궁을 공격해서까지 절 납치해서 뭘 하려고 하는 거죠? 선왕 전하께서 알게 되시면 당신을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절 가만두시게 해야겠죠.”
어떻게?
그런 내 의문이 얼굴에 드러난 모양인지, 프란츠가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당신이 절 비호해 주셔야 할 겁니다, 마이바움 양.”
“제가 당신을요? 왜요? 오히려 납치범이니 왕국법 이상의 처벌이 필요하다 강력하게 주장하는 쪽이 더 그럴듯하지 않나요?”
흥분했는지 나도 모르게 적대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당신은 이사벨라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보고서도 그리 목소리를 높이는군요.”
“절 협박할 생각인가요?”
“아뇨, 그저…… 놀랐을 뿐입니다. 그래요. 제가 당신을 잘못 판단했습니다. 생각만큼 순해 빠진 여자가 아닌데 말입니다.”
프란츠의 목소리에는 즐거움이 넘쳤다. 도대체 뭐가 그리도 즐거운지 알 수 없었다.
차단된 시야가 나를 불안함으로 몰아넣었다.
의사소통은 시각에 생각보다 많이 의존하고 있다. 제한된 정보 속에서 내 속내까지 드러내는 것은 프란츠에게 먹어 잡수라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정보가 더 필요하다.
표정을 갈무리한 나는 프란츠가 뭘 원하는지, 그리고 어떤 상황인지 파악하기 위해 그의 목소리가 들려온 쪽을 향해 말을 걸었다.
“제가 당신의 꼭두각시가 될 거라 기대하셨나 보군요.”
“꼭두각시라뇨. 협력자죠.”
“협력자요? 당신과 손을 잡아 저에게 좋을 게 없어 보이는데요.”
“제가 당신을 뤼디거의 마수에서 꺼내드린다면요?”
“…….”
프란츠의 말로 미루어 보아, 이사벨라가 한 거짓말을 고스란히 믿고 있는 듯싶었다.
내가 뤼디거에게서 벗어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그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제가 뤼디거 빈터발트와 엮이지 말라고 충고했던 말을 기억하십니까?”
“……물론이요.”
“이제 당신도 뤼디거가 얼마나 잔악한 놈인지 아셨을 겁니다. 그러니 선왕에게 부탁해 결혼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것일 테지요. 하지만 뤼디거 그놈에게서 벗어나는 건 쉽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
“제가 그 문제를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뤼디거를 해결하는 일이 나에게 큰 도움이라도 되는 양 거들먹거리는 것이 우스웠다.
하지만 그리 착각하고 있는 것이 나에게 있어선 긍정적이다.
최대한 말을 아끼던 나는 일단 프란츠의 장단에 맞추는 쪽이 좋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미친놈의 심기를 거슬러서 좋을 건 없으니까.
“일단……. 안대부터 풀어주시는 게 좋겠네요. 그런 이야기를 눈도 안 보고 할 순 없으니까.”
“그렇군요. 눈은 마음의 거울이라는 말도 있지요. 당신도 제 눈을 마주하면 제 진심을 이해해 주실 겁니다.”
오래지 않아 내 앞에 사람의 기색이 느껴졌다.
내 귀 옆으로 손이 지나가더니, 이내 눈을 가리고 있던 천이 스르륵 떨어졌다.
나는 눈을 몇 번 깜빡여 초점을 맞췄다. 흐릿했던 시야가 점점 또렷해졌다.
방 안은 내가 짐작한 그대로였다. 구석에는 곰팡이가 피어 있고, 나무로 덧댄 바닥은 군데군데 썩어 있어 조금만 발을 헛디디면 그대로 무너질 것만 같았다.
오래 방치된 창고 같은 곳이었다.
실제로 오랫동안 쓰지 않았는지, 가느다란 빛줄기 아래 뿌옇게 쌓인 먼지가 보였다.
프란츠의 멀쩡한 한쪽 눈이 번들거리며 나를 응시했다.
“자, 이제 좀 더 긴밀히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겠군요. 어떻습니까, 유디트 씨. 제가 뤼디거로부터 당신을 구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저에게 전적으로 협조해 주시는 겁니다.”
“……단지 그런 협상을 위해서라면 저를 굳이 이렇게 험하게 데려올 필요가 없었을 텐데요. 좀 더…… 서로의 신뢰를 위해 좋은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요?”
“그 또한 다 이유가 있답니다.”
“왕궁에서 총격전이 벌어졌어요. 분명 왕궁에서는 그 책임을 물을 테고, 아무리 저라 해도…….”
“책임을 뤼디거에게 묻겠죠. 그 비밀통로를 아는 건 뤼디거, 그니까. 당신은 그리 대답하는 겁니다.”
어쩐지.
그래서 일부러 이사벨라를 쏘았고, 그녀의 시체를 거기에 두고 온 것이다.
더욱 소란이 일어나야 하니까. 그 죄를 전부 뤼디거에게 뒤집 어씌워야 하니까.
‘단지 그 때문에 이사벨라를 죽인 거란 말이야?’
이렇게 이기적이고 냉혈한 자가 뤼디거를 보고 잔악하다느니 뭐라느니 말하는 것에 복장이 뒤집혔다.
하지만 그런 티를 내면 안 된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 위에 프란츠가 내 본심을 착각하게 하기 위한 기대를 덮어씌웠다.
“정말로 그렇게 죄를 뒤집어씌우는 것으로 뤼디거 씨를 처리할 수 있나요? 차라리 뤼디거 씨에게 암살자들을 보내는 건…….”
“뤼디거를 죽이라, 이 말이로군요. 물론 저도 그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그놈을 죽여서 시체를 난도질하고 싶어요! 이 눈도, 팔도, 다리도! 다 그놈 때문이니까요! 뤼디거 빈터발트! 그 개자식 때문에!”
암살자란 단어에 버튼이 눌렸는지, 프란츠는 흥분해서 소리를 높였다.
갑자기 얼굴을 일그러트리고 발작하듯 외치는 모습이 정상적인 사람 같지만은 않았다.
게다가 뤼디거가 암살자를 보낸 것 정도로 성을 내다니.
암살자를 먼저 보낸 건 프란츠가 아니던가. 자기가 죽이려고 한 건 생각도 않는 이기심에 기가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