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try changing the genre RAW novel - Chapter 135
장르를 바꿔보도록 하겠습니다 135화
한참 동안 숨을 몰아쉰 끝에 간신히 진정했는지, 프란츠는 입 꼬리를 잡아 올리며 웃어 보였다.
언제나와 같은 다정해 보이는 미소를 짓기를 바랐을 테지만 실제 그의 얼굴에 떠오른 것은 광인의 광기였다.
“죄송합니다. 모르핀을 맞았는데도 아직도 상처가 욱신거리는군요. 고통 때문에 쉽게 흥분할 뿐입니다. 유디트 씨에게 화를 낸 것이 아니에요.”
“…….”
“그래요. 우리 이야기를 어디까지 했죠?”
나는 숨을 죽였다. 미친놈이라곤 했지만 정말로 미쳤을 줄이야…….
그래도 안도감이 들었다. 프란츠는 뤼디거에게 암살자를 보낼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정확히는 그럴 의지는 충만한데, 여력이 되지 않는 쪽에 가까웠지만.
“뤼디거 씨에게 암살자를 보내는 쪽이 낫지 않겠냐는 말이었는데……. 됐어요. 당신 상태를 보니 힘들 것 같군요.”
“아아, 그랬죠. 그런 대화를 했죠. 이제 기억이 납니다.”
프란츠는 멀쩡한 손으로 제 이마를 툭툭 건드렸다. 히죽히죽 웃는 것이 소름 끼쳤다.
“뤼디거를 암살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걱정 마십시오. 제가 판을 잘 깔아보겠습니다. 당신만 도와준다면, 굳이 암살자를 보낼 필요도 없이 그가 깔끔하게 처리될 수 있게 말입니다.”
프란츠의 말에선 이사벨라의 죽음뿐만 아니라 나를 납치한 것도 모두 뤼디거로 몰려는 의도가 느껴졌다.
나를 아끼는 선왕으로서는 나를 납치한 뤼디거를 어떻게 해서든 처리할 테니까.
‘그리고 뤼디거에게서 나를 구해낸 것이 바로 자기인 양 행세할 생각이겠지.’
만약 내가 협력하지 않아도 프란츠는 상관없을 것이다.
어차피 증인은 없으니까.
그냥 나를 살인멸구 해버리면 이 모든 일이 미궁 속으로 가라앉는다.
게다가 최근 비밀통로로 들락날락한 것은 뤼디거였다.
물론 뤼디거가 오간 걸 아는 것은 로라와 루카뿐으로, 그들은 뤼디거를 용의자로 지목하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프란츠의 추측으로는 그 또한 해볼 만한 배팅이라 여겼을지도 몰랐다.
설령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내가 없다면 뤼디거는 절대 결혼하지 않을 테니, 그를 후계자 자리에서 밀어내는 것만큼은 성공이었다.
입이 바싹 말랐다. 목에 칼이 들어온 듯 등골이 서늘했다.
아무리 증인이 없다고 하나 왕족을 죽이는 건 위험한 일이었다. 특히나 선왕이 아끼는 이라면 더더욱.
나를 죽이는 건 프란츠로서도 최악의 수일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 선택하지 않을 방안이라는 건 아니었다. 그만큼 그는 궁지에 몰린 필사적인 상태였다.
일단은 살고 봐야지.
이 상황에서 내가 내놓을 답은 하나뿐이었다.
“좋아요. 당신에게 협력하겠어요. 제가 뭘 해야 하죠?”
내 대답에 프란츠는 흡족한 미소를 띠었다. 나에게는 너무나도 불길한 미소였다.
“일단 당신에게서 확답을 받아 볼까요.”
“……무슨 확답이요?”
“당신이 제 편이라는 확답 말입니다. 저도 안전을 도모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답해드렸잖아요. 당신에게 협력하겠다고.”
“이런. 그런 말뿐인 답은 의미가 없지요.”
이어지는 선문답 같은 대답에 화가 났지만, 프란츠의 심기를 거슬러 좋을 게 없었다.
애써 화를 다스린 나는 최대한 사근사근 말하려 노력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지 않겠어요? 저로선 당신이 원하는 게 뭔지 잘 모르겠어요.”
“이 꼴이 되어 드릴 말씀이 아니라는 걸 알고는 있습니다만……. 유디트 씨. 저는 지금 당신에게 청혼하고 있는 것입니다.”
뭐? 청혼?
지금 이 상황에서?
말도 안 된다며, 개수작 부리지 말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뛰쳐나올 뻔했다. 나는 간신히 그 말을 목 너머로 삼켰다.
지금껏 뤼디거를 보고 분위기 못 읽는다고 구박한 게 우스울 정도로 엉망인 청혼 제안이었다.
‘그래. 나한테는 어처구니없는 제안이지만, 프란츠에게 이보다 더 좋은 선택지는 없겠지.’
뤼디거를 처리하고, 루카 또한 처리한다 해서 프란츠가 빈터발트를 완전히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철도 부설권.
빈터발트에 드리운 럼가트의 목줄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프란츠가 빈터발트를 잇기 위해선 왕족과의 결혼이 필요하다.
‘하지만…… 저 몸으로는 왕족과의 결혼은 꿈도 꿀 수 없겠지.’
거의 반신불수나 다름없는 상태가 아닌가. 왕가에서 그런 이를 왕녀의 남편감으로 선택할 리가 없었다.
한마디로 나와 결혼하는 것이 철도 부설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프란츠의 유일한 돌파구였다.
뤼디거가 자기를 엿 먹여서 홧김에 납치를 저지른 건 아닐까 싶었는데, 나름 머리를 많이 굴린 모양이었다.
‘그러면…… 내가 승낙하지 않더라도 섣불리 죽이지 않을 수도 있어. 일단 날 살려둔 채 설득하려 하지 않을까?’
물론 설득이 마냥 입으로만 흘러가진 않을 것이다.
폭력이든, 다른 수단이든…….
나로선 여전히 안도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말을 이었다.
“그래서, 제가 당신에게 드려야 하는 대가가 바로 청혼의 승낙이라는 건가요?”
“대가라니요.”
프란츠가 쓰게 웃었다. 그마저도 가식적으로 보였다.
“당신에게 마냥 나쁜 제안은 아닐 겁니다. 저는 그처럼 당신을 속박하는 일은 없을 테니까요. 당신에게 자유를 보장하지요.”
“…….”
내가 쉽사리 답하지 않은 채 갈등하는 모습을 보이자 프란츠는 초조한 듯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루카 또한 지켜드리겠습니다.”
티를 안 내려 했지만, 파들 떨리는 뺨의 움직임을 완전히 감추진 못했다.
“루카는 왜요?”
“겉으로는 신사인 척 굴어놓고는 뒤로는 온갖 잔인한 짓을 서슴지 않는 것이 뤼디거 그 녀석입니다. 그리고 그에게는 자기 자식도 태연자약하게 죽이는 냉혈한의 피가 흐르고 있지요.”
“자식을…… 죽이다니요?”
“요나스가 왜 죽었는지 아십니까? 그의 부친인 빈터발트 공작에게 제거된 것입니다.”
심장이 크게 떨어졌다. 뒤로 단단히 묶인 손에 피가 돌지 않음에도 식은땀이 배어 나왔다.
말리나에게서 한 번 들었던 이야기였다. 그때는 뜬소문, 혹은 일종의 음모론처럼 느껴졌었는데…….
그것이 그 누구도 아닌 프란츠의 입에서 다시 거론될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
정말로 진실일까? 하지만 프란츠의 말을 마냥 믿기는 어려웠다.
좀 더 정보가 필요하다. 나는 믿을 수 없다는 듯 프란츠를 부추겼다.
“어째서…… 공작님이 요나스를 죽였다고 믿는 거죠?”
“믿기진 않겠지만, 전 요나스와 꽤 친했습니다. 술 친구였죠. 로이텐 그린할텐 경을 기억하십니까? 그와도 그런 술자리에서 친해진 사이였습니다.”
프란츠와 요나스가 어울리다니, 참으로 끼리끼리도 놀았네 싶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건 그런 시답잖은 친분과 같은 곁가지가 아니었다. 나는 바싹 마른 입을 혀로 축이며 이어질 프란츠의 말을 기다렸다.
“요나스가 죽기 전날에도 저희는 술을 마셨습니다. 모두가 술에 취해 곯아떨어졌죠. 제가 정신을 차린 건 새벽녘이었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요나스가 없더군요. 전 그때만 하더라도 요나스가 다른 여자를 끼고 몰래 빠져나간 줄 알았습니다.”
“…….”
“그래서 별생각 없이 창가를 보았죠. 그때, 저는 검은 인영 한 무리가 저택을 빠져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단지…… 그것만으로 공작님이 요나스를 죽였다고 확언하시는 건가요? 다른 세력에게 사주 받은 암살자일 수도…….”
“다른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빈터발트의 혈족이라면 그들을 모를 수가 없죠. 새 부리 같은 역병 의사의 가면을 뒤집어쓴 이들. 그건 빈터발트의 집행자였습니다. 가주의 수족이자 그림자, 온갖 더러운 일을 해결해 주는 청소부 말입니다.”
그런 이들이 있다는 걸 모르는 나로서는 프란츠의 말을 고스란히 믿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가문의 청소부라니……. 하지만 충분히 가능성 있었다.
뤼디거나 프란츠 또한 암살자를 자유자재로 부리는데, 가문의 수장인 그가 그런 일을 전담할 사람을 두는 것도 당연했다.
“그 뒤로는 더 말할 것도 없지요. 요나스가 낙마로 죽었고, 세상에는 그것이 술에 취해 벌어진 불행한 사고로 알려졌습니다……. 유디트 씨, 뤼디거가 지금은 루카에게 잘해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글쎄요. 그가 어찌 돌변할지는 모르는 법이지요. 그놈은 제 부친을 똑 닮았어요.”
결론은 뤼디거에 대한 위험성으로 치달았다. 어지간히도 뤼디거가 위협적이었구나 싶었다.
이렇게까지 프란츠를 두려움에 떨게 하는 뤼디거가 어지간하다고 해야 할지,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바득바득 빈터발트를 먹으려고 하는 프란츠의 오기가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그렇게 빈터발트 사람들이 위협적인데, 당신은 왜 그들에게 대적하려고 하는 건가요? 버켄레이스 백작님은 이 사실을 아세요?”
“아버님은 모르십니다. 아마 알고 싶지조차 않겠죠. 빈터발트의 순종적인 애완견인 분이니까요!”
“…….”
“빈터발트 그놈들이 얼마나 사람을 치욕스럽게 만드는지 당신은 모릅니다……. 그리고 한 번 그들에게 반기를 든 이를 절대 살려두는 법이 없지요. 뤼디거 빈터발트가 저에게 암살자를 보낸 시점부터, 이미 결정 난 일입니다.”
뭐라는 거야.
암살자를 보낸 건 네가 먼저였잖아?
사태가 이렇게까지 흘러가게 된 것은 전적으로 프란츠, 본인의 잘못이었지만 그는 결코 그리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뿐이랴?
없던 죄는 물론이거니와 자신이 저지른 짓도 태연자약하게 뤼디거에게 뒤집어씌웠다.
“그린할텐 경의 부고는 들으셨나요? 그 또한 뤼디거에게 처리되었습니다. 물론 그가 당신에게 무례했다는 건 압니다. 당신으로선 속이 시원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뤼디거는 그렇게 쉽게 사람을 죽이는 사내입니다. 그 사실을 당신은 아셔야 합니다. 그 칼끝이 머지않아 루카를 향할 테니까요. 루카의 목숨을 생각하십시오.”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하네. 오리발이 아주 수준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