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try changing the genre RAW novel - Chapter 138
장르를 바꿔보도록 하겠습니다 138화
사내는 당장 문을 닫고 나섰고, 나는 루카를 번쩍 잡아 밧줄의 위쪽에 올렸다.
루카는 몇 번의 도움닫기 끝에 창문으로 훌쩍 넘어갔고, 나를 도와주려는 듯 날 향해 자그마한 손을 뻗었다.
뒤이어 나도 밧줄을 잡았다.
그러는 사이, 문밖에서 소란이 일었다.
“저, 두목. 잠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나중에 이야기해. 일단 지금은 유디트가 먼저야. 빈민가 쪽에 근위병들이 들이닥쳤다고.”
“근위병들이…… 말입니까?”
“그래! 이렇게 시간 낭비하고 있을 틈이 없어. 잠깐. 막스, 너 이 자식……. 무슨 개수작이야?”
“큭!”
막스라 불린 사내가 비명을 내질렀다.
심상치 않은 사태에 심장이 크게 뛰었다. 나는 빨리 방을 빠져나가려 노력했고, 루카도 내 손을 잡아당겼다.
하지만 문이 벌컥 열리는 것이 먼저였다.
내 몸이 창문 너머로 채 빠져나가지 못한 사이, 프란츠가 방에 들어섰다.
“어쩐지.”
이죽거리는 프란츠의 목소리가 등 너머로 들렸다.
“막스 저 새끼가 이상하게 군다 했더니 이런 꿍꿍이를 갖고 있었군요? 저놈은 언제 꼬신 겁니까?”
그의 말투에 욕설이 섞였다.
보지 않아도 그의 낯이 스산하리라는 건 불 보듯 뻔했다.
허공에 떠 있는 발목이 잡혔다. 나는 그의 손에서 벗어나려 버둥거렸지만, 프란츠의 손아귀 힘이 더 셌다.
루카가 내 손을 잡았지만 소용 없었다. 나는 그대로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꺄악!”
“이모!”
“하……. 이게 누구야. 요나스의 쥐새끼 같은 자식놈이잖아?”
프란츠는 창문 위에서 망연히 나를 바라보는 루카를 향해 한쪽 눈을 희번덕였다. 당장에라도 루카를 향해 총을 쏠 것만 같았다.
루카 또한 지지 않았다. 루카는 프란츠를 마주 노려보며 으름장을 놨다
“포기하시지, 프란츠. 뤼디거 삼촌이 곧 이 주변을 둘러쌀 거야. 넌 이제 끝이야.”
“하……! 어린놈이 말하는 것이 건방지구나!”
루카와 프란츠가 첨예하게 대립했다.
혹여나 큰일이라도 날까 걱정되었던 나는 욱신거리는 몸을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거의 내 키만 한 곳에서 떨어지지 않았던가. 바닥에 머리가 부딪친 탓일까. 머리가 멍했다.
그렇게 내가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하고 있을 때, 프란츠의 멀쩡한 왼손이 갈퀴처럼 내 머리카락을 휘어잡았다.
“큿!”
“뭐, 그놈이 왔다면 내가 호락호락 물러설 것 같아?”
“이모를 놔, 프란츠!”
“그러고 보니 그 녀석이 마이바움 양을 그토록 좋아한다지? 결혼 따위 생각도 않던 놈이 남들 보는 앞에서 청혼했을 정도니까. 좋아.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적어도 뤼디거 그 새끼 엿이라도 먹이지 않으면 죽어서도 눈을 못 감겠어!”
그렇게 말하며 프란츠는 나를 바닥으로 다시 내팽개쳤다.
다시 한 번 몸에 쏟아지는 충격에 나는 숨을 허덕거렸다.
귓가에 루카의 외침, 그리고 피스톨의 격철이 당겨지는 소리가 뒤섞여 윙윙거렸다.
시야가 빙글빙글 돌아서 어떻게 상황이 돌아가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내 목전에 사신의 낫이 드리웠다는 것만큼은 똑똑히 알 것 같았다.
내 머리 위로 이죽거리는 프란츠의 목소리가 사형 선고처럼 떨어졌다.
“나는 내가 갖지 못하면 다 부숴버리는 주의라서요. 일이 이렇게 된 건 미안합니다, 유디트 씨. 저는 정말 당신을 좋아했는데 말입니다.”
개 소리.
항상 생각하는 건데, 얘는 자기합리화인지 세뇌인지 모를 것을 참으로 그럴듯하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나는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헛구역질이 나며 팔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렇게 끝나는 걸까?
부정적인 생각이 내 머리를 지배한 그 순간, 뒤에서 무언가 검은 물체가 프란츠를 덮쳤다.
“젠장, 막스 이 빌어먹을 놈!”
“큭!”
프란츠와 막스가 뒤섞여 뒹굴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걸까?
솔직히 막스가 이렇게까지 해줄 줄은 생각지 못했던지라 어안이 벙벙했다.
“이모, 정신 차려!”
어느새 방으로 들어온 루카가 내 팔을 작은 어깨에 걸치며 재 촉했다.
도망치지 않고 오히려 수라장으로 걸어 들어오다니. 정말 얘도 참 어지간했다.
그래. 여기서 넋 빼놓고 있을 때가 아니다.
나는 이를 악물고 다리에 힘을 주었다. 루카의 부축을 받아 자리에서 일어나 비틀비틀 발을 옮겼다.
뒤에서 탕, 탕! 총성이 두 발 울렸다.
가까이서 들린 총성에 깜짝 놀란 나는 반사적으로 루카를 몸으로 감쌌다.
뒤를 돌아볼 여유도 없었다. 다행히도 간신히 방을 나설 수 있었다.
복도에는 이어지는 방이 많았다. 어디로 가야 할지 전혀 짐작 가지 않아 초조하게 두리번거리고 있는 찰나, 뒤에서 누군가가 내 팔을 강하게 잡아끌었다.
“허억, 허억……. 일단 이쪽으로.”
막스였다.
어떻게 프란츠를 뿌리치고 빠져나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나는 다급히 물었다.
“프란츠는?”
“곧 쫓아올 거야.”
막스는 딱딱하게 말하며 발걸음을 서둘렀다.
아니나 다를까, 뒤에서 총성을 듣고 달려온 다른 이들과 프란츠의 목소리가 저 멀찍이서 들려왔다.
“두목!”
“저놈, 저놈을 잡아!”
우리는 서둘렀다. 몇 번이고 방을 지나며 정체 모를 곳으로 향하던 막스는 복도 끝에 있는 방문을 열었다.
“들어가.”
그는 거칠게 숨을 내쉬며 방 안으로 나와 루카의 등을 떠밀었다. 그러고는 문에 선 채 루카에게 물었다.
“근위병이 언제쯤 들이닥치기로 되어 있지?”
“내가 잠입하고 십분 동안 아무런 반응이 없으면 공격하기로 되어있어. 시간이 지났으니……. 5분 정도 뒤일 거야.”
루카가 답한 그 찰나의 순간, 막스의 두 눈이 빛났다. 마치 무언가 큰 것을 각오한 듯이…….
막스는 담담히 말을 이었다.
“이 방은 유일하게 안에서 문을 잠글 수 있어. 그리 오래 버티진 못할 테지만, 5분 정도만 버티면 될 테니 충분하겠지.”
“……막스, 당신은?”
“…….”
막스는 답하지 않았다. 그는 함께 방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뜻이 그 짧은 침묵에서 느껴졌다.
그러는 사이 시선이 나도 모르게 그가 붙들고 있는 허리춤으로 향했다.
그의 허리춤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프란츠와 몸싸움하는 도중 총을 맞은 것 같았다.
‘어쩐지, 숨 쉬는 것이 괴로운 것 같더니……. 설마 문밖에서 프란츠를 막고 있을 생각인 걸까?’
설마 했지만 설마가 아니었다. 막스는 나와 루카를 방 안에 둔 채 문을 닫으려 했다.
나는 황급히 문을 붙들었다.
도움을 바랐지 희생을 바랐던 게 아니었다. 더군다나 막스는 나와 제대로 통성명도 안 한 사이였다.
그런 그가 나 때문에 죽을지도 모른다니. 죄책감이 나를 뒤흔들었다.
그런 속내가 고스란히 얼굴에 내비쳐진 걸까. 막스는 픽 웃으며 다소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 때문이 아니야. 내 선택이니까. 프란츠 그놈한테 덤벼들 때부터 어차피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어.”
“하지만!”
“나도 당신에게 뭔가 호감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야. 그저 프란츠 그 자식이 너무 재수 없었고……. 당신이 돈 준다고 했잖아.”
“죽으면 모두 의미 없다고요……!”
“어차피 나는 글러먹었어. 그럴 거면 시간이라도 끄는 게 나아.”
“…….”
“나한테는 딸이 있어. 오랫동안 병을 앓느라 침대에만 있어서, 언제 밖에서 뛰놀았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한 딸이야.”
딸을 떠올린 막스는 활짝 웃었다.
곧이라도 죽을 듯 얼굴색이 파리했지만, 그 순간만큼은 알 수 없는 기대로 벅차오른 낯이었다.
그는 주머니에 넣어둔 내 귀걸이 한 쌍을 다시 나에게 건넸다.
“당신이 살아 나가면 이 이상으로 준다고 그랬지? 어떻게든 버텨서 살아 나가고……. 이 귀걸이 포함해서, 내 목숨 값은 내 딸에게 줘. 왕족이시라니 값은 제대로 쳐줄 거라 믿겠어.”
나는 손에 떨궈진 내 귀걸이 한 쌍을 물끄러미 보았다. 북받치는 감정에 목이 막혔다.
하지만 감정에 취해 있을 틈이 없다. 나는 막스가 안심할 수 있도록 똑똑히 답했다.
“……걱정 마요. 당신 딸이 완치될 때까지 내가 책임질게요. 당신 이름은?”
“막스 해터. 내 딸은 클로이. 크라벳가 27번지. 기억해 둬.”
“클로이. 크라벳가 27번지.”
“좋아.”
막스는 흡족하게 미소 지었다.
이제야 딸을 낫게 해줄 수 있다는 듯, 모든 걸 내려놓은 그는 무척이나 홀가분한 낯이었다.
* * *
나는 문을 가로지른 빗장에 의지한 채, 방 안에서 루카를 꽉 끌어안고 있었다.
루카는 내 품 안에서 문만을 노려보고 있었다. 언제 튀어 나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모습에, 나는 루카를 끌어안은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욕설과 한차례의 총성, 그리고 칼 소리가 들렸다.
닫힌 문틈 사이로 피가 흘러들어 왔다. 그것이 누구의 피인지는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쾅, 쾅!
나무문이 들썩였다. 철 빗장이 걸려 있기는 하지만, 정작 문짝이 부서져야 의미가 없었다.
5분. 짧은 시간이 길고도 길게 느껴졌다.
“루카.”
“……왜.”
“나서지 않겠다고, 약속해.”
“…….”
루카는 묵묵부답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절대 입에 발린 말을 안 하는 고집이 루카답다고 해야 할지.
심각한 상황인데도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래. 씨알도 안 먹힐 소릴 한 내 잘못이지.’
그렇게 실없는 생각을 하는 사이 나무판자가 쪼개지는 소리가 유난히도 날카롭게 들렸다.
“막스, 이 자식. 왜 배신을 해서 사람 성가시게……!”
“젠장, 근위병들이 몰려들고 있다고요, 두목! 그 계집을 붙들면 협상 여지가 있는 거 맞습니까?”
“그래! 그러니 서두르라고!”
문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근위병이 코앞까지 들이닥쳤는지 무척 초조한 것 같았다.
문이 부서지고 프란츠가 들이닥치는 것이 먼저일까, 아니면 근위병들이 저들을 제압하는 게 먼저일까.
초읽기나 다름없을 정도로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