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try changing the genre RAW novel - Chapter 139
장르를 바꿔보도록 하겠습니다 139화
하지만 안타깝게도 신은 내 편이 아니었다.
파직!
문이 완전히 부서지고 프란츠가 다른 부하들과 함께 방에 들 이닥쳤다.
항상 빙긋이 미소 짓고 있던 프란츠의 얼굴은 악귀처럼 흉측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극한까지 몰렸는지, 씨근덕거리는 숨결은 먹이를 빼앗긴 승냥이의 것처럼 거칠었다.
“순순히 협력해 주신다면 험한 짓은 하지 않겠습니다, 유디트 씨.”
나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태연한 척,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프란츠를 당돌히 마주 보았다.
“좋아요. 대신 루카의 안전은 확보해 줘요.”
“이모!”
루카가 반발하듯 버럭 외쳤다.
어떻게든 프란츠의 접근을 막아보려는 듯, 루카는 허리춤의 단검으로 손을 뻗었다.
하지만 몇 번 허리를 매만지던 루카는 이내 망연자실한 낯을 지었다. 단검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도망치는 사이 어딘가 떨어트린 건 아닐까. 루카는 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는 듯 이를 악물었다.
“나도 사촌 조카에게 험한 짓을 하고 싶진 않아. 좋아. 내 약속하지.”
거짓말. 사기꾼 새끼.
제 자식에게도 아무렇지도 않게 험한 짓을 해놓고는 입에 발린 말을 잘도 한다.
하지만 지금은 그에 대놓고 반발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프란츠에게 다가갔다.
“이모!”
루카가 내 치마를 붙들었지만, 난 일부러 매몰차게 루카의 손을 뿌리쳤다. 마음이 좋지 않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다가가는 나를 바라보는 프란츠의 비죽이는 미소가 역겨웠다. 나는 구역질을 애써 삼키며 아무렇지도 않은 척 표정 관리를 했다.
프란츠는 순종적인 내 태도를 기꺼워하며 멀쩡한 한쪽 손으로 나를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그의 손길이 치근대는 듯 달라 붙었지만, 실상은 나를 방패막이로 삼으려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게 프란츠와 딱 달라붙은 순간, 나는 치맛단에 숨겨두었던 단검을 조심스레 꺼냈다.
문짝이 떨어져 나가는 걸 보며 루카를 끌어안고 있던 사이 몰래 빼돌린 루카의 단검이었다.
나는 단숨에 프란츠의 옆구리를 향해 단검을 쑤셔 넣었다.
“크윽! 무, 무슨……!”
‘영화에서 이럴 땐 꼭 칼을 비틀더라고.’
나는 이를 악물고 힘을 주어 단검을 비틀었다.
손에 난 상처가 욱신거렸고, 손끝에서 저항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대로 프란츠를 처리하지 못하면 루카와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없던 힘이 솟아났다.
“빌어먹을……!”
“큿!”
프란츠가 나를 바닥으로 내동댕이쳤다.
그러고는 비틀거리며 옆구리를 틀어잡았다. 제대로 찔렀는지 그의 옆구리에서는 쉼 없이 피가 흘렀고, 그의 손은 벌건 피로 물들었다.
프란츠의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그의 유일한 한쪽 눈은 분노와 경악, 불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 개 같은…….”
머리끝까지 화가 났는지, 프란츠가 피스톨을 꺼내 들었다. 피스톨을 쥔 손에서 피가 뚝뚝 떨어져 바닥을 적셨다.
“그래, 좋아. 우리 다 같이 죽고 끝내자고.”
총구가 나를 겨눴다. 모든 기력을 다 쓴 나는 꿈쩍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눈만 부릅뜬 채 프란츠를 노려볼 뿐.
그때 루카가 프란츠를 향해 돌격했다.
“죽고 싶으면 너나 뒤져!”
“큭!”
루카의 작은 몸이 프란츠의 종아리를 들이받았다.
프란츠가 방아쇠를 당기다 말고 피스톨을 놓쳤다.
탕!
발사된 총알이 어디론가 날아가고, 피스톨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루카가 피스톨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루카의 손끝이 피스톨에 닿기 전, 프란츠의 부하가 피스톨을 발로 차서 멀찍이 보내는 게 먼저였다.
“젠장!”
“빌어먹을, 뭔 놈의 꼬마가 이렇게 약삭빨라? 빈민가 출신도 이렇진 않겠다!”
부하가 욕설과 함께 루카의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안 돼!”
나는 바락 외쳤다. 있는 힘껏 외치다 보니 숨을 들이켰다.
말 한마디라도 잘못하면 루카가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머리가 새하얗게 변했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그들에게 협상 제안을 건넸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됐는데 꼭 프란츠 편을 들어야겠어? 차라리 프란츠를 근위병에게 던져주고 감면받을 수 있도록 협상하는 쪽이 더 낫지 않겠어?”
프란츠의 부하들은 내 말에 잠시 흔들리는 기색을 보였다.
그리고 반대로 프란츠의 노기가 하늘을 찔렀다.
“이……. 유디트 마이바움!”
그때, 멀리서부터 들려왔던 발소리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며 우렁찬 사내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모두 꼼짝 마!”
“프란츠 버켄레이스! 너를 왕족 납치죄 및 왕궁 무단 침입죄, 폭발물 소지죄, 반역죄로 체포한다! 순순히 투항하지 않으면 즉살이다. 다시 한 번 말한다. 순순히 투항하지 않으면 즉살이다!”
모든 것이 끝이다.
프란츠의 부하들이 재빨리 시선을 주고받았다. 루카의 머리카락을 휘어잡고 있던 이가 손을 풀고, 우리를 등진 채 프란츠 감싸기 시작했다.
형세가 역전되었다.
“큭……. 이 은혜도 모르는 개 같은 놈들이……!”
프란츠는 분노로 이글거리는 눈으로 주변을 훑어보더니, 돌연 미친놈처럼 웃기 시작했다.
“하, 하하!”
그는 불쑥 손을 들었다. 그의 왼손에는 총이 들려 있었다.
아까 분명 총은 바닥에 떨어졌을 텐데.
하지만 바로 상황을 깨달았다. 외팔이라 탄창을 갈기 힘들기 때문에 총을 여분으로 하나 더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내가 나 혼자 죽진 않는다고 했지!”
프란츠는 총구를 우리를 향해 들이밀었다.
나? 루카?
프란츠의 총구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시야가 느릿해지고, 프란츠의 손이 방아쇠를 당기는 모습이 천천히 보였다. 등골을 타고 오른 소름이 내 온몸을 지배했다.
탕!
총성이 방 안을 울렸다.
“크흑!”
그런데 정작 피를 왈칵 토해낸 것은 프란츠였다. 경악으로 눈을 부릅뜬 그의 가슴팍이 서서히 붉은 피로 물들었다.
프란츠의 몸이 그대로 바닥으로 허물어져 내렸다. 그 뒤로 멀찍이서 총을 들고 있는 뤼디거의 모습이 보였다.
그의 총에서는 화약 연기가 뿌옇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딱딱하게 다물린 입매와 굳은 턱에서 그가 나를 얼마나 걱정하고 있었는지가 느껴졌다.
뤼디거와 눈을 마주친 나는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는 안도감에 활짝 웃어 보였다.
하지만 뤼디거는 눈을 크게 부릅떴다. 창백하게 질린 그의 낯은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왜?
“유디트 씨!”
뤼디거가 내 이름을 외치며 뛰어왔다. 뭐가 저리도 다급할까. 나는 의아하게 뤼디거를 바라보다, 천천히 고개를 내렸다.
“어…….”
먼지로 더러워진 드레스 자락에 붉은 핏물이 번져 있었다.
아까 프란츠의 옆구리를 찔렀을 때 묻은 피인가 싶어 나도 모르게 옆구리로 손을 옮겼다.
옆구리가 시큰했다.
프란츠가 쓰러지기 직전 쏘았던 총알에 맞은 모양이었다.
하도 긴장으로 팽팽했다 보니 총에 맞은 고통조차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것 같았다.
뒤늦게 고통이 밀려왔다. 기차에서 총알에 스쳤을 때와 차원이 달랐다.
“으읏…….”
“이모!”
옆에 있던 루카도 그제야 사태를 깨달았는지 안색이 시퍼레졌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나는 털썩 주저앉았고, 나를 향해 루카와 뤼디거가 달려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누군가가 나를 안아 들었지만, 가물가물 흐려진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괜찮아? 정신 차려!”
“도대체……. 유디트 씨, 제 목소리가 들리십니까? 유디트 씨!”
루카와 뤼디거가 거듭 날 부르는 것 같았지만, 그 모든 것이 피안 너머에서 들려오는 듯 멍하게 느껴졌다.
이걸로 정말 끝이다.
그래도 좀 마음 편히 기절할 수 있겠네.
총상을 입은 상황이었지만 개운함에 나는 빙긋 웃었다.
“이 바보가, 웃긴 뭘 웃어!”
“유디트 씨? 정신 차리십시오. 기절하면 안 됩니다. 유디트 씨!”
두 사람은 어떻게든 내 정신을 차리게 하려고 노력했지만, 오늘 종일 긴장해서인지 피로가 물밀듯이 쏟아졌다.
나는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그대로 정신을 놓았다.
* * *
나를 느릿하게 덮쳐오던 자동차의 후방 라이트.
갑자기 골목길에서 튀어나온 차를 발견했을 때는, 이미 발을 내디디던 순간이었다.
가까스로 감속한 마X즈는 내 코앞에서 멈췄다. 하지만 깜짝 놀란 나는 뒷걸음질 치다 결국 그대로 도로에 털썩 넘어지고 말았다.
“아, 거 아가씨 앞 좀 제대로 보고 다니지!”
“죄, 죄송합니다!”
아무리 신호 없는 건널목이라고는 해도 미처 보지 못한 내 잘못도 있었다.
같이 3차를 가던 친구들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괜찮아?”
“어어. 와, 술이 다 깬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오늘 상태가 영 별로인데. 나 3차는 패스.”
“그래. 들어가서 좀 쉬어.”
“응. 나중에 보자. 주말 잘 보내고.”
친구들에게 인사를 건넨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술이 깼다고 생각했지만, 다음 날 숙취는 여전했다.
엄마는 금요일만 됐다 하면 술 마시고 늦게 들어오는 딸을 탐탁지 않아 하면서도 해장국을 끓여주셨다.
그 뒤로는 출근하고, 상사한테 혼나고, 차가 막혀서 발을 동동 구르고, 영화관에서 보고 후회할 만큼 지겨웠던 영화,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지나갔던 내 생일, 부모님의 환갑, 난생처음 해외여행…….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촤라락 지나갔다.
그렇게 기억을 되짚어 보는 사이, 나는 내가 한 번도 「겨울 숲의 주인」이라는 소설을 읽은 적이 없었다는 걸 눈치챘다.
그 뒤 나는 평범한 죽음을 맞이했다. 남들이 으레 죽음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그런 죽음이었다.
병실에 누워 호흡기에 의존해 삶을 지탱하던 나의 심장박동이 멎었다.
그렇게 생을 마친 내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다시 태어난 뒤였다.
갓난아기의 시야가 초점을 제대로 잡기까지는 한참이 걸렸지만, 기억 속을 부유하는 나로서는 빨리 감기를 한 것처럼 금방 지나갔다.
아기의 눈에 비친 집은 빈말로라도 좋다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낡은 처마. 대들보에 앉은 먼지.
그리고 허름한 집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외모의 아빠와 엄마. 그리고 언니.
처음 보는 이들일 텐데, 그들은 내 기억에 또렷이 새겨져 있었다.
‘아…….’
이것이 내 환생이라면.
그렇다면.
모든 것을 깨달은 나는 나직이 탄식했다.
빙의가 아니었다.
내가 바로 유디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