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try changing the genre RAW novel - Chapter 14
장르를 바꿔보도록 하겠습니다 14화
표지에 흰 코끼리가 인상적이었다.
무슨 내용인진 몰라도 교훈적인 느낌이 팍팍 났다.
“루카 너는……. 이런 걸 읽으렴.”
나에게 동화책을 건네받기가 무섭게 루카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하……. 동화책은 재미없다 이거지.
이래서 애들한테 자극적인 매체를 보여주면 안 돼. 자극에 익숙해진다니까?
나는 못마땅한 눈으로 동화책을 바라보는 루카에게 짐짓 엄하게 일렀다.
“조금 있다가 잘 읽었나 검사할 거야.”
“알았어, 알았어.”
루카는 불퉁한 목소리로 대답을 질질 끌었다. 그렇게 가십 신문에 관한 대화는 일단락이 되었다.
……고 생각했으나.
가십거리가 눈앞에 있으면 궁금한 것이 또 사람인지라, 내가 잔뜩 구겨둔 신문으로 흘끔흘끔 눈이 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나는 뤼디거와 요나스가 각자 읽을 것들에 몰입한 것을 흘끗 확인한 뒤, 구깃구깃해진 신문을 슬쩍 펼쳐보았다.
신문을 빼곡하게 수놓은 빈터발트의 이름에 혀를 내두르며 감탄했다.
‘정말 인기가……. 많네.’
이걸 과연 인기가 많다는 긍정적인 표현으로 나타내도 좋을까는 의문이었지만.
빈터발트나 되는 가문은 언제나 이런 일을 겪는 걸까?
그렇다면 아무리 부자일지라도 마냥 부럽기만 한 인생은 아닐 것 같았다.
‘SNS가 없으니 이 세계에서 흑역사 박제될 일은 없다 생각했는데……. 귀족들은 이런 식으로 박제가 되는구나.’
그것도 자의가 아니라 타의로.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쳤다.
‘루카도 고생이겠네……. 루카가 빈터발트에 입적하면 또 이런 신문이 쏟아져 나오는 거 아냐?’
나는 쯧쯧 혀를 찼다.
‘그래도 나는 다행……. 다행이려나? 잠깐, 나는 안전한 거 맞나?’
순간 내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설마……. 나는 빈터발트 사람도 아니고,
그냥…… 민간인인데?
하지만 내가 신문사라 해도 날 가만둘 것 같진 않았다.
소재가 물어뜯기에 너무 좋았다.
내 이름이 신문에 등판한 순간, 천만 부는 우습게 팔아먹을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들 정도였다.
과연 신문은 나에 대해 뭐라고 떠들까. 보지 않아도 눈에 훤했다.
『하룻밤의 기적, 몰락 귀족의 신분 역전』
『요나스 빈터발트의 여자, 라리사 마이바움과 그녀의 동생 유디트 마이바움. 그녀는 과연 누구일까? 사기꾼? 아니면 희대의 행운녀?』
『잘 둔 조카가 열 아들 안 부럽다? 유디트 마이바움의 신데렐라 이야기』
기사 열댓 개의 제목이 주르륵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나는 비명을 지르고 싶은 욕구를 꾹꾹 눌러 참으며 심호흡했다.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갔는지, 손아귀 아래 신문이 와락 구겨져 있었다.
안 그래도 구깃구깃했던 신문이 완전 넝마가 되었다. 나는 한숨과 함께 신문을 폈다.
그때, 시선이 ‘물거품이 된 빈터발트 안주인의 꿈’이라는 제목의 기사에 닿았다.
내 기사가 뜨는 상상이 끔찍한 건 끔찍한 거고, 기사 내용이 궁금한 건 또 별개였다.
나는 슬쩍 기사 내용을 읽었다.
『지금껏 사교계 영애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아왔던 빈터발트 가의 장자 요나스 뷜로 백작. 모든 영애는 그와 결혼하여 빈터발트의 안주인이 되기만을 꿈꿔왔다.
하지만 요나스 빈터발트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뜨고, 이제 그 동생인 뤼디거 작센 자작이 그 뒤를 잇게 되었다.
작센 자작 또한 미혼이나, 그렇다 해서 그가 자유의 몸이라는 뜻은 아니다. 안타깝게도 그는 그림 속의 과일이나 마찬가지였다.
‘철도 부설권에 관한 왕가와의 계약’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다!
왕실의 피를 이은 뷜로 백작의 죽음으로, 빈터발트에서는 다시 왕실의 피가 섞인 후계자를 만들어야만 한다.
빈터발트 공작이 재취를 할 것인가, 아니면 작센 자작이 왕실과 혼약을 맺을 것인가? 작센 자작이 결혼 적령기에 접어든 만큼, 아무래도 후자의 가능성이 컸다.
게다가 미혼인 둘째 왕녀는 평소 수도에서 군인으로 근무하던 뤼디거와 친분이 있으며…….』
아아, 철도 부설권…….
익히 알고 있는 주제였다. 어찌 모르랴? 그것이 바로 원작에서 갈등의 주원인이자 시발점이었는데.
사지 멀쩡한 서른두 살, 정실의 자식인 뤼디거를 두고 사생아인 루카를 공작가 후계자로 삼는 결정적 원인이기도 했다.
우선, 철도 부설권을 얻게 된 계기가 무엇이냐.
이 세계에서 철도가 놓이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철도가 발명되고, 당연지사 왕가에선 철도 부설권을 무척 제한적으로 풀었다.
모든 이들이 철도 부설권을 따내기 위해 노력했고, 그리고 승리자가 된 것은 보시다시피 빈터발트 가였다.
현 빈터발트 공작, 막시밀리안의 공로였다.
그는 자신과 바네사 왕녀와의 결혼을 대가로 협약을 추진했다.
물론 결혼만이 대가는 아니었다. 그 결혼에 수반된, 또 다른 조건이 포인트였다.
바로 ‘빈터발트 가의 후계자는 왕가의 피를 이어야만 한다’는 것이 문제의 조건이었다.
하지만 바네사 왕녀는 요나스를 낳고 산욕열으로 죽었다.
그 뒤로 바네사 왕녀의 시녀였던 소피아가 공작 부인이 되었고, 그녀가 아들을 낳았으니 그게 바로 뤼디거였다.
그런 사정으로 인해 빈터발트에서 왕족의 피를 이은 건, 사생아인 루카뿐이었다.
물론 루카가 빈터발트를 잇는 것 말고도 다른 방법이 있었다.
신문기사에 쓰인 대로, 뤼디거가 왕족과 결혼하여 또 다른 왕실의 핏줄을 이은 후계자를 낳으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나도 알고 너도 알고 모두가 알다시피…… 이 잘생긴 남자는 비혼주의자였다!
그렇다 해서 현 빈터발트 공작이 재취하는 건 말도 안 되는 개소리였고…….
뤼디거 대신 왕족과 결혼할 누군가가 필요했다
최대한 직계에 가까운, 결혼적령기의 사내.
그리고 그 조건에 가장 부합하는 사내가 있었으니, 뤼디거의 사촌, 프란츠 버켄레이스였다.
그리고 그가 바로 이번에 암살자를 보내는 당사자였다.
뤼디거가 비혼주의자라는 사실에, 요나스만 죽으면 자기가 공작가의 후계자가 될 줄 알고 희희낙락했을 텐데…….
그 모든 게 루카의 등장으로 어그러졌다.
사생아지만 직계 혈족이며, 확실한 왕가의 핏줄을 이은 루카가 있는데 무엇 하러 방계에까지 손을 벌린단 말인가?
한마디로 루카의 등장으로 프란츠는 닭 쫓던 개가 되었다.
차라리 희망도 없던 상황이면 모를까, 가능성이 조금 보였던 상황에서 내쳐지니 애가 완전히 돌아버리게 된다.
그 결과, 원작에서는 루카를 죽이기 위해 혈안이 되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악당이 된다.
실제로 그의 손에 뤼디거를 비롯하여 많은 이들이 죽게 되기도 한다.
아, 유디트를 이용하고 죽이는 것도 요놈이다.
소설의 메인 악당. 한마디로 나로서는 주적으로 삼아 제일 경계해야 하는 대상이었다.
‘뤼디거가 비혼주의자 선언만 안 했더라면 프란츠가 그렇게까지 돌아버리진 않았을 텐데……. 애초에 꿈도 안 꿨을 테니까.’
나는 쯧쯧 혀를 찼다.
‘도대체 뤼디거는 왜 비혼주의자인 걸까?’
물론 나도 결혼 생각은 없었다.
원래 세계에서도, 이 세계에서도 내 한 몸 건사하기 힘들었다.
연애의 여유 따윈 없었고, 그렇다 해서 결혼으로 신분 상승이니 뭐니 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나와 뤼디거는 사정 자체가 다르지 않은가.
뤼디거는 모든 걸 다 가진 이였다. 신분, 부, 명예, 권력, 외모……. 어딜 가도 무시당할 리 없는, 먹이사슬의 정점인 사내.
그런 그가 비혼을 결심한 이유가 도무지 짐작 가지 않았다.
하물며 공작가 후계 자리까지 걷어차 가며.
남들은 공작가 후계가 되기 위해서라면 결혼은 무엇이냐, 인간의 존엄성까지 버려가며 난리인데……. 아, 존엄성 운운한 건 프란츠 얘기다.
물론 왕족과 결혼해야만 하는, 정략결혼과 같은 상황이 싫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요나스가 살아 있어 연애결혼이 가능할 당시부터 결혼 생각이 없었던 걸 미루어 짐작할 때, 그냥 결혼 자체에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원작에서는 그에 대해 아무 말도 없었는데……. 뭐, 짝사랑하던 여자가 어렸을 때 죽기라도 한 건가?’
나는 혼자 머릿속으로 열심히 소설을 썼다. 그쯤 되지 않으면 이해가 안 가는 일이기도 했다.
‘하여간 잘생긴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니까……. 뭐, 유디트도 별다를 건 없나. 이 외모를 가지고 외모 콤플렉스가 있었으니, 원.’
어차피 내가 뤼디거의 비혼에 관해 왈가왈부해 봤자인 문제였다.
나는 어깨를 으쓱여 가벼이 넘기곤, 기사의 나머지로 시선을 돌렸다.
『결국 이렇게 사교계 영애들의 빈터발트 안주인의 꿈은 물거품이 되는 것일까?
하지만 마냥 포기하기엔 이르다. 현 빈터발트 공작 부인을 생각하면…….』
사실 적시는 어떻든 간에, 읽는 독자를 끌어들이는 호흡만큼은 아주 완벽했다.
나는 완전히 기사에 빠져들었다. 바싹 마른 입을 물로 축이는 것도 잊은 채였다.
그렇게 내가 다음 페이지로 이어지는 기사를 읽기 위해 신문을 넘기는 순간, 누군가가 내 신문을 낚아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