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try changing the genre RAW novel - Chapter 142
장르를 바꿔보도록 하겠습니다 142화
못마땅해서만은 아니라는 이야기인즉슨, 못마땅하기도 했다는 말인데…….
잠시 딴지를 걸고 싶은 마음이 불쑥 치솟았지만,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뭐, 잠시 흘러들어 왔던 루카의 기억으로 미루어 짐작할 때 루카가 뤼디거에게 사감이 많은 것도 충분히 이해 가는 일이기도 했고.
“삼촌은 내가 요나스의 유일한 자식이기 때문에 잘해주려 했지. 친자식처럼 여긴다고도 했어. 나에게 책임을 다하려고……. 내가 요나스의 자식이라서. 내가 또 다른 빈터발트라서.”
뤼디거는 조용히 루카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루카는 뤼디거를 응시했다.
지금껏 여유만만이었던 앳된 얼굴이 슬픔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용기를 내어 운을 떼었음에도 여전히 쉬운 일은 아닌 듯 루카는 잠시 머뭇거렸다.
그만큼 말하기 힘든 일인 걸까?
루카는 마치 고해성사라도 하는 듯 힘겹게 운을 뗐다.
“하지만…… 나는 빈터발트가 아니야.”
루카의 말은 청천벽력 같았다.
루카에 대해 남들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나로서도 처음 듣는 말이었다. 루카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던 나는 눈만 크게 떴다.
루카는 어떻게 봐도 요나스의 자식이었고, 요나스 또한 바네사를 닮았다고 했다. 그런 루카가 빈터발트가 아니라니…….
설마.
나는 이불을 그러쥐었다. 지금껏 비밀로 남겨졌던 선대의 진실이 손에 잡힐 듯 아른거렸다.
물꼬를 트는 게 문제지, 그 뒤로는 쉬웠다. 머뭇거렸던 것이 거짓말처럼 루카는 줄줄이 말을 이었다.
“내가 삼촌을 삼촌이라 부르지 않은 건, 삼촌이 내 삼촌이 아니기 때문이야. 우리는 피 한 방울 안 섞여 있거든.”
“…….”
“삼촌이 형이라고 생각하는 요나스는 애초에 빈터발트 가의 핏줄이 아니었어. 빈터발트 공작은 내 할아버지가 아니야.”
어렴풋이 짐작했지만 실제로 루카의 입으로 들으니 심장이 쿵쿵 뛰었다.
소설의, 아니, 루카 인생의 제일 큰 분기점은 바로 뤼디거가 빈터발트의 후계자로서 루카를 데려가기 위해 나타났을 때였다.
그 근원이 애초부터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밝히는 건 무슨 심정일까?
그리고……. 삼십 년 동안 형이라 믿어온 요나스가 친형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어린 조카의 입에서 듣는 뤼디거의 심정은 어떠할까.
뤼디거의 낯은 언제나처럼 담담했다.
하지만 그 속이 언제나처럼 잠잠히 고요할지, 아니면 폭풍이 몰아치는 것처럼 심란할지는 전혀 짐작이 가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의 팽팽한 줄다리기 같은 분위기 속에서 나는 입만 꾹 다물고 상황을 살폈다.
“삼촌은 조카라고 믿었던 이를 위해 목숨을 걸었지만, 나는 뤼디거 빈터발트를…… 삼촌이라 부를 자격이 없는 사람이야. 그렇게 생각해서 지금껏 삼촌이라 부르지 않았던 거야.”
“…….”
허심탄회하게 사실을 털어놓은 루카는 후련해 보였다.
모든 것을 손에서 놓아버린 듯 개운한 미소는 지금껏 루카가 얼마나 속으로 많은 것을 쌓아 두고 있었는지가 느껴져서 안타까웠다.
자신을 위해 죽은 삼촌. 하지만 정작 그와는 피가 이어지지 않았다…….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의 루카가 얼마나 절망하고, 후회했을지 나는 그저 짐작만 할 뿐이었다.
“그래서 난 빈터발트 후계자가 될 수 없어. 지금까지는 빈터발트 후계자 위치에서 프란츠를 견제해야 했기에 일부러 밝히지 않았지만……. 프란츠를 처리했으니, 이 사실을 밝히고 후계자 자리를 내려놓을 거야. 빈터발트에서 할 일은 모두 끝났어.”
루카는 애초에 빈터발트에서 그리 오래 머물 생각이 없었던 게 분명했다.
빈터발트에서 다른 이들과의 관계는 등한시한 채 정보만을 긁어모으던 것이 이제야 이해가 갔다.
하지만…….
“왜. 지금껏 혈연이 아니라서 삼촌이라고 안 불렀으면서, 이제야 갑자기 마음을 바꾼 이유가 뭔지 궁금해?”
“…….”
정답이다.
내 심정을 읽은 듯한 루카의 질문에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루카는 그런 나를 보며 피식 웃더니, 이내 웃음기 어린 목소 리로 중얼거렸다.
“이모 말이 맞았거든.”
“응? 내 말?”
“사람에 대해 다 알 수 없다고.”
그래. 분명 나는 그런 말을 했다. 루카가 왜 그렇게 뤼디거에게 벽을 세우는지 몰랐을 때였기에 할 수 있었던, 그런 충고였다.
“이모가 납치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왕궁에 도착한 삼촌은……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한 뤼디거 빈터발트가 아니었어. 냉정하고, 항상 여유롭고, 사랑을 모르는…… 그런 사람이라고는 결코 생각할 수 없는 모습이었지.”
나는 뤼디거를 보았다.
움푹 들어간 그의 눈두덩이와 뺨에서 짧은 기간 동안 얼마나 마음고생 했는지가 절절히 느껴졌다.
뤼디거는 머쓱하게 웃었다.
내가 죽은 줄 알고 바로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말간 낯이었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른 사람이지. 그리고 내가 알았던 삼촌이랑 지금의 삼촌이랑도 다른 사람이고. 그 사실을 그제야 안 거야. 심지어 그때의 삼촌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나는 완전히 이해해 보려고 한 적이 없었다는 것도. 나는 그냥 상처받은 척 도피했을 뿐이었어…….”
하지만 충분히 그럴 만했다. 그럴 만한 일이었다. 나였어도 루카와 같이 반응했을 것이다.
나는 그저 너에게, 나 또한 해내지 못하는 이론적 충고를 건넨 것일 뿐이었다.
내 입술이 바싹 말랐다.
내가 그때 정확히 뭐라 말했을까. 혹시나 무신경하게 루카가 상처받을 만한 말을 한 건 아닐까 황급히 머릿속을 뒤졌다.
뒤늦은 후회가 파도처럼 밀려 왔다.
“그 모든 걸 깨닫고 나니까 그제야 후회가 되더라고. 내가 삼촌과 피가 이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밝히고 나면 이제 삼촌하고는 남남이잖아? 그러면 삼촌이라 부를 기회가 두 번 다시 없는 건데…….”
“…….”
“그래서 짧은 기간이나마 내가 사실을 털어놓기 전에 삼촌이라고 다시 불러보고 싶었어.”
그리 말하며 루카는 배시시 웃었다. 얼마 만에 보는지 모를, 열 살 아이다운 웃음이었다.
루카는 천사 같은 미소를 띤 채, 호수 같은 푸른 눈동자로 나를 빤히 응시했다.
“고마워, 이모. 나는 이모 덕에 용기를 낼 수 있었어.”
목이 꽉 막혔다.
왜 루카가 나에게 고맙다고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너에게 미안한 것밖에 없는데.
“난……. 미안해.”
“뭐가?”
“내가 널 괴롭혔던 거. 난 내가 유디트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내가 괴롭힌 게 아니라고 생각해서 모르는 척했어. 내가 비겁했어. 그 점에 대해선 분명 내가 너에게 사과했었어야 했는데.”
나는 횡설수설하듯 토로했다.
일사불란하게 머릿속에 정돈되었던 생각들이 혀끝을 지나니 부족하게만 느껴졌다.
루카는 거듭 사과하는 내 모습에 당황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건 이모 탓이…….”
“내 탓이야!”
나는 고개를 내저으며 외쳤다.
루카는 괜찮다고 해도, 그것이 정말 괜찮아서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루카는 그저…….
잊었을 뿐이다.
너무 오래전의 일이라서.
하지만 그렇다 해서 내가 저지른 일이 없었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나 또한 언니의 죽음으로 슬퍼했기 때문이라는 이유 또한 마찬가지였다.
“내가 그리 행동한 원인이 따로 있다 해도, 그게 내 행동의 면죄부가 되어주진 않아. 그리고 넌…… 아무런 잘못도 없는 어린아이였으니까.”
나는 숨을 헐떡였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치솟았다.
하지만 지금의 나에겐 눈물을 흘릴 자격도 주어지지 않았다. 나는 눈물을 참은 채, 루카와 눈을 마주쳤다.
“미안해, 루카.”
용서를 빌지는 않았다. 용서를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질까 봐서였다. 지금 이 순간의 용서는 그저 나 자신의 자기만족일 뿐이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루카에게서 되돌려 받은 답은 생각도 못 한 것이었다.
“나야말로 미안해.”
“네가 왜.”
“이 모든 게 나 때문이니까.”
루카는 그리 말하며 손을 뻗어 내 손등을 어루만졌다.
작은 손이 붕대로 칭칭 감긴 내 손가락을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이모가 다른 사람처럼 돌변한 것도, 내가 소원의 잔을 썼기 때문에 벌어진 일인걸.”
“하지만 네가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결국 난 죽었을 거야. 프란츠에게 이용당해서…….”
“그것도 결국 나 때문인걸. 애초에 내가 없었더라면…….”
“그런 소리 하지 마!”
나는 화들짝 놀라 소리 질렀다.
애초에 없었더라면 이라니. 루카가 그런 비관적인 생각을 했다는 사실에 나는 몸서리쳤다.
“이모가 엄마를 좋아했던 거 알아. 가끔 엄마 초상화를 들춰 보며 울었잖아. 그래서 엄마를 조금도 닮지 않은 날 싫어했고……. 어렸을 땐 몰랐지만 나도 나이를 먹으니까 알게 되더라고.”
루카는 피식 웃었다.
루카가 생각보다 많이 알고 있다는 사실에 내 입은 할 말을 찾지 못한 채 의미 없이 벙긋거렸다.
“지금 이모는 기억 안 날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삼촌을 따라 엠덴 마을을 떠나던 그때, 나는 무척 작은 짐가방 하나를 들고 갔어. 이모가 대충 싸준 짐가방이었지.”
나는 기억을 떠올리려 애썼다.
하지만 그것은 내 기억이 아닌, 흘러들어 온 루카의 기억이었다.
그런 장면이 있던 것 같기도 하고. 나는 묵묵히 루카의 말을 기다렸다.
“새로 생긴 옷가지와 바뀐 주위 환경 때문에 나는 한참 뒤에나 그 가방을 열어봤어. 정말 한참 뒤에……. 가방에는…… 엄마 초상화가 들어 있더라고. 이모에겐 한 장밖에 없던, 그 초상화 말이야.”
루카가 무슨 초상화를 말하는지 알 것 같았다.
마이바움 가를 정리하고 뤼디거를 따라 나오며, 나 또한 무의식중에 그 초상화를 가방에 챙겼다.
라리사가 요나스를 만나기 직전, 제일 예쁘게 꾸몄을 때의 모습이 그려진 초상화였다.
1회차의 나는 무슨 생각으로 루카에게 그 초상화를 건넨 걸까.
루카가 빈터발트에 가기는 하지만, 그곳에서도 라리사를 잊지 말아달라는 그런 뜻에서였을까.
“그 초상화를 발견했을 때, 나는 이모가 나를 그렇게까지 싫어하지 않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그저…… 이모도 괴로웠겠구나. 엄마의 인생을 망친 죄를 누군가에게 묻고 싶었구나……. 하지만 이모에게 그럴 상대는 나 하나뿐이었으니까, 그래서 오갈 데 없는 증오를 나에게 푼 것일 뿐이지 나를 싫어하는 건 아니었구나…….”
단지 초상화를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이 받은 그 고통을 이해하려고 하는 루카의 모습에 숨이 턱 막혔다.
미워하고 원망해도 부족할 텐데. 왜…….
루카는 너무 착하고 상냥한 아이였다. 그랬던 아이가 버티기엔 겨울바람은 너무나도 세찼다.
루카는 선택해야만 했을 것이다.
바람에 몸을 의탁해 이리저리 흔들릴 것인가, 아니면 바람에 꿈쩍도 하지 않는 존재가 될 것인가.
그런 환경에서 성장한 루카는 심지가 굵고 단단한, 그 어떤 폭풍에도 흔들리지 않는 고목이 되었다.
겨울 숲에 우뚝 선, 가지 위에 눈이 무겁게 쌓여도 굳건히 견뎌내는 그런 고목.
루카는 고요히 말을 이었다.
“이모가 나를 미워하지 않게 된 계기는 뻔했어. 증오의 대상이 바뀐 거였거든. 이모의 증오는 빈터발트 가로 옮겨 붙었어. 그리고 프란츠가 이모에게 접근했을 때……. 이모는 프란츠를 이용해 빈터발트 가에 복수할 생각이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