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try changing the genre RAW novel - Chapter 146
장르를 바꿔보도록 하겠습니다 146화
뭐? 소원의 잔이 일회용이란 말이야?
나는 루카를 돌아보았다. 혹시라도 그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있나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루카도 처음 듣는 듯, 드물게 당황한 표정으로 공작을 바라보았다.
그가 혹시나 거짓말하는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두 눈에 서려 있었다.
루카는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빈터발트의 가주가 되면 소원을 빌 수 있다는 이야기는…….”
“주변에 그렇게 알려져 있긴 하지. 그렇게 말을 하기도 하고. 루카 너에게도 내가 그리 말을 했지.”
무거운 진실을 말하면서도 공작은 태연자약했다.
“소원의 잔을 이용해 시간을 돌렸다고 했지? 그런 엄청난 규모의 마법은 신이 내린 기적이나 다름없지. 그런 기적의 기회가 매번 가주들이 임명될 때마다 주어질 리가 없지 않느냐.”
공작의 말은 그럴싸했다.
루카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아랫입술을 잘근 깨무는 어린 낯은 견딜 수 없는 죄책감과 부담감으로 가득했다.
가문의 보물을, 가문의 사람이 아닌 제가 망가트렸다 자책하는 낯이었다
그런 루카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공작이 돌연 중얼거렸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네가 소원을 빌게 된 것도 전부 예정된 일일지도 모르지.”
“……무슨 뜻이죠?”
“이번엔 아까 이야기보다 훨씬 오래된, 고대의 이야기를 해볼까.”
공작의 손가락 끝이 톡톡, 자신의 허벅지를 두드렸다. 머릿속을 가다듬은 그가 이내 입을 열었다.
“이천 년 전, 빈터발트가 공국이던 당시……. 인간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강한 마법의 능력을 지닌 영웅이 나타나 당시 춘추전국이던 나라들을 통일했지.”
“럼가트의 건국왕 말씀입니까?”
“그래. 그녀는 기적이나 다름없는 마법으로 모든 나라를 굴복시켰고, 그때 빈터발트 또한 럼가트에 복속되었지.”
빈터발트의 역사에 대해 배웠을 때, 언뜻 들은 기억이 났다.
하지만 건국왕이 왜?
생각도 못 한 상대의 등장에 나는 조용히 공작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렇게 건국왕의 치세 아래 럼가트의 전성기가 펼쳐졌지. 하지만 세월이 지나고 영웅도 늙어갔다네. 하지만 영웅의 자식은 평범한 범인이었지. 그는 제 어머니의 능력을 탐냈어. 그래서 다른 마법사의 손을 빌려, 늙은 왕의 힘을 하나의 매개체에 봉인하기에 이르렀지.”
공작의 두 손이 잔과 같은 형태를 허공에 그렸다.
“하지만 늙어도 호랑이는 호랑이. 자신의 마력이 빠져나가는 걸 눈치챈 건국왕은 늦기 전 제 아들과 마법사를 처단했다네. 하지만 이미 흘러나가 다른 곳에 고여 버린 마력은 다시 돌이킬 수가 없었다네.”
호부견자의 그린 듯한 예시였다. 이 경우는 호랑이 어미겠지만, 자식이 개새끼라는 것만큼은 다르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약삭빠른 아들은 건국왕 본인이 소원을 빌지 못하도록 금제까지 걸어놓았지. 오로지 건국왕을 제외한 건국왕의 혈족만이 그 소원의 잔을 사용할 수 있었어.”
“건국왕의 혈족…….”
“그래. 왕족만이 소원을 빌 수 있지. 그러니 루카의 소원이 이루어진 것이다.”
우연이라면 정말 기가 막힌다.
나는 멍하니 입을 벌렸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 있는 것이 많았다.
“그렇다면…… 왕가의 보물이 어째서 빈터발트에 와 있는 건 가요?”
“물론 건국왕도 소원의 잔을 파기하고 싶었지. 하지만 소원의 잔에 담긴 마력이 너무나도 강했기에 건국왕 또한 그 잔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네. 그렇다고 다른 자식들에게 맡기기엔, 그놈들도 건국왕의 마력을 빼앗은 아들과 별반 다를 바 없었지.”
역시 자식 농사가 중요한 법이다. 건국왕이 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자식들이 저 모양이니 말년에 고생하는구나 싶었다.
‘럼가트가 이천 년을 버틴 게 신기할 정도네.’
“그래서 건국왕은 이 잔을 아무도 사용할 수 없도록 봉인하려 했네. 그리고 잔을 지킬 파수꾼을 택했지. 그렇게 선택된 가문이 우리 빈터발트 가였네.”
“왜 하필 빈터발트였죠? 다른 가문도 많았을 테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겨놓는 방법도 있었을 텐데.”
“마법의 물건이란 으레 의지를 갖고 있어, 제가 바라는 대로 상황을 조종하곤 하지. 그러니 그 물건에 휘둘리지 않을 강인한 정신력을 가진 혈통이 필요했고, 그것이 바로 빈터발트였기 때문이란다.”
그것만큼은 동의했다. 뤼디거나 눈앞의 공작이나 소원이나 마법 같은 것에 휘둘릴 사람들이 아니었다.
시종일관 겨울인 지역에서 터를 잡고 살아왔기 때문일까.
그들은 주어진 것들을 닥닥 긁어 한 철의 겨울을 풍족히 보낸다면 다음 겨울을 버틸 수 없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과욕을 부리지 않는 것.
이것이 그들 가문의 특성이라면 선대는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으리라.
‘물론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해서 가진 게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아무리 욕심이 없다 해도, 쥐고 있는 칼을 제대로 휘두르지 못하는 겁쟁이 또한 겨울 숲에서 살아남지 못하는 법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권력과 힘을 사용하는 것 또한 주저 없는 자들이었다.
그럼에도 가끔 제가 쥐고 있는 것을 놓는 것에 조금의 주저도 없다는 점에서 선대의 혈통을 느낄 수 있었다.
“럼가트 왕가에서는 소원의 잔의 존재를 어디까지 알고 있나요?”
“왕가에서도 딱 너희들이 알고 있던 정보까지만 알고 있을 것이다. 철두철미한 건국왕이 소원의 잔에 관한 정보를 모두 파기시켰겠지. 바네사 왕녀와의 혼담이 오갈 때 선왕이 철도 부설권을 조건으로 조약을 붙이기에 혹시나 싶어 떠봤지만, 역시 아무것도 모르더군.”
공작은 협조적이었다. 이천 년 동안 대대로 지켜온 소원의 잔이 난데없이 망가졌다는데도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이제 더 이상 소원의 잔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개운함 때문일까, 아니면 언젠가 이런 날이 오리라고 짐작했기 때문일까…….
그때,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지금껏 애써 못 본 척 넘겼던 것들이 하나둘 목 안에 걸린 가시처럼 눈에 거슬릴 듯 아른거렸다.
나는 마른입을 달싹였다.
굳이 묻고 싶지 않았다. 파헤치고 싶지 않았다. 뤼디거의 말대로, 세상에는 알게 되어 좋은 진실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물어서 확인 받아야 했다. 다른 무엇도 아닌, 루카의 안전을 위해.
나는 공작을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그렇다면…… 공작님의 말씀을 미루어보건대, 빈터발트 가가 대대로 소원의 잔을 왕족의 손에 들어가지 않도록 지켜왔는데도 불구하고 왕족인 요나스를 후계자로 삼았다는 말씀이시네요.”
“…….”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공작의 청회색 눈동자는 흔들림 없이 곧았다.
나를 사랑한다 절절히 고백하는 남자와 똑 닮은 눈동자. 하지만 그 눈동자에 스민 온도는 달랐다.
조금의 온기도 느껴지지 않는 눈동자는 내 말에 긍정했다.
심장이 더욱 크게 뛰었다.
“그래서 요나스를 죽인 거였나요? 가주가 된 요나스가 소원을 빌까 봐?”
‘요나스를 죽인 건 그의 부친, 빈터발트 공작이다.’
프란츠의 말을 완전히 믿지는 않았다. 하지만 저 말만큼은 계속해서 뒤통수에 달라붙어, 잊을 만하면 때때로 그 존재를 과시하듯 드러냈다.
요나스가 빈터발트의 피를 잇지 않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설마 그 때문에 처리된 건가 싶었다.
하지만 인제 보니 그게 아니라 요나스가 왕족이라는 것 자체가 문제였다는 걸 깨달았다.
내 말에 나를 제외한 모두가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우습게도, 세 남자가 나를 바라보는 모습은 똑 닮아 있었다.
루카가 저도 모르게 물었다.
“뭐? 요나스가…… 사고로 죽은 게 아니라 살해당했다고? 그것도 공작님에게?”
나는 루카에게 답하지 않은 채 공작을 쏘아보았다.
요나스의 죽음에 대해 들은 것은 나 혼자뿐이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의 죽음에 대해 캐내거나 입에 담을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루카의 안전과 관련된 것이라면 상황이 달랐다.
나는 바르르 떨리는 아랫입술을 윗니로 꾹 눌러 멈추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입술을 타고, 목소리까지 떨리듯 흘러나왔다.
“만약…… 루카가 소원의 잔에 소원을 빌지 않았더라면, 소원의 잔이 여전히 마력을 품고 있었더라면……. 언젠간 루카도 죽일 생각이셨나요?”
나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을 기세로 따져 물었다. 오늘 기필코 답을 들어야만 했다.
애초에 요나스가 왕족인 것이 문제였다면 그를 후계자로 삼지 않으면 되었다. 암살해서 없애는 게 아니라.
소피아가 바라는 것도 들어줘야 하고, 가문의 신념도 지켜야 했겠지.
무척 비겁한 태도였다.
만약 루카가 소원의 잔에 소원을 빌었다는 사실을 공작에게 밝히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공작은 루카 또한 없애려 하지 않았을까……
그런 사람과 루카 사이에 조금의 관계도 남겨두고 싶지 않았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루카를 빈터발트에서 끄집어낼 생각이었다.
잠시의 침묵 끝에 공작이 입을 열었다.
“누구지?”
“네?”
“누가 내가 요나스를 죽였다 했지?”
“프란츠……. 프란츠 버켄레이스입니다.”
나는 말리나의 이름을 숨겼다. 혹여나 공작이 노기라도 띠면, 죽은 프란츠에게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울 생각이었다.
하지만 공작은 생각보다 순순히 수긍했다.
“아아. 그래. 둘이 같이 어울려 다니곤 했지. 그날도 같은 성에 있었다더니 목격한 모양이었군.”
“그렇다면……!”
“그래. 나야. 내가 요나스를 죽였지.”
“……도대체 왜.”
공작은 너무나도 쉽게 긍정했다. 조금의 숨김도 없었다.
이해할 수 없는 태도에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진 분위기 속에서 공작을 바라보는 뤼디거의 얼굴이 딱딱했다.
요나스와 그리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고는 하나 그래도 그의 형이었고, 그 형을 죽인 건 제 아버지였다. 뤼디거는 날 선 목소리로 공작을 추궁했다.
“이유가 뭡니까.”
“요나스. 그 어리석은 놈.”
공작은 나직이 웃었다. 요나스를 경멸하는 듯한 그 웃음은 생각보다 길게 이어지더니, 돌연 뚝 끊겼다.
웃음이 흔적도 없이 지워진 공작의 낯은 싸늘했고, 그의 혀끝은 칼보다 시렸다.
“주어진 것에 기꺼워하기만 했다면 그렇게 갈 일이 없었을 텐데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