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try changing the genre RAW novel - Chapter 147
장르를 바꿔보도록 하겠습니다 147화
공작의 말은 마치 요나스가 무슨 꿍꿍이라도 갖고 있던 것처럼 느껴졌다.
“요나스가…… 뭔가를 했나요?”
“뭔가를 하진 않았지.”
공작의 눈에 불길이 솟았다. 지금껏 방관자처럼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한 태도였던 그에게서 처음으로 느껴지는 분노였다.
공작의 턱이 파르르 떨렸다. 요나스가 살아 있다면 다시 한 번 죽일 것 같은 기세였다. 그는 씹어 뱉듯 읊조렸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빈터발트를 뤼디거가 잇든, 루카가 잇든, 요나스가 잇든 상관없었네. 요나스가 왕실의 혈통이라 소원을 빌 수 있든 말든, 전혀 상관없었다 이 말일세. 하지만 그 빌어먹을 놈이 뭐라 한 줄 알고 있나? 제가 가주가 되면 왕이 되겠다는 소원을 빌겠다 공공연히 말하고 다니더군!”
그는 노기를 참지 못한 채 테이블을 쾅, 내리쳤다.
왕이 되겠다고? 그런 말을 했단 말이야?
나는 화들짝 놀랐다. 뤼디거와 루카도 마찬가지였다.
요나스의 말은 반역이었다. 잘못했다가는 빈터발트 가가 역모죄로 휩쓸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요나스라면 충분히 그럴 만하다. 적어도 내가 들어 알고 있는 요나스는 그러했다.
책임질 생각은 없으면서 욕망과 욕심만 많은 작자. 여자는 쉼 없이 품에 끼고 있으면서, 그로 인한 결투는 제 동생에게 대리로 맡기는 어처구니없는 작자…….
하필이면 그런 요나스가 럼가트의 피를 이었다. 소원의 잔이 정말로 소원을 들어주는 대상이었던 것이다.
자칫했다가는 정말 요나스가 왕이 될 뻔했다고 생각하니 여러 의미로 모골이 송연했다.
그런 생각을 한 게 나뿐만은 아닌 듯, 내 옆에 있던 루카 또한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렸다.
“그놈은 제가 빈터발트와 왕실의 핏줄을 이은 고귀한 정통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왕족 중 그 누구보다도 제 피가 우월하다고 생각했지. 그러니 감히 왕이 되겠다는 생각도 품은 것이겠지.”
“…….”
“그때만 해도 주변 입단속을 하고 그 녀석에게 주의를 시켰다네. 거기서 끝났으면 나도 그 녀석을 죽이지 않았겠지. 하지만 요나스 그 녀석은 건드리면 안 될 상대를 건드린 거야.”
“건드리면 안 될 상대라면…….”
공작의 입술 끝이 우는 듯도, 웃는 듯도 하게 일그러졌다.
공작이 그렇게 나서는 이는 단 한 명뿐이다.
나는 경악하여 되물었다.
“설마…… 공작 부인을요? 하지만 공작 부인께서는 요나스를 무척 아끼셨다고…….”
“그래. 아꼈지. 친자식인 뤼디거보다도 더.”
공작의 입가에 비릿한 조소가 감돌았다.
“하지만 그놈은 은혜를 몰랐어. 너무 오냐오냐 키운 탓일까. 아니면 섞인 핏줄의 문제일까. 그놈은 소피아를 우습게 봤다네. 제 친모의 시녀밖에 되지 않는 여자가 운이 좋아 가당치도 않게 귀한 핏줄인 제 모친 행세를 하려 든다 말했지.”
요나스를 떠올리는 공작의 낯은 마치 거두어 주었는데 조금도 고마워할 줄 모르는 짐승을 떠올리는 것 같았다.
말을 못 타는 요나스, 그 사실을 유일하게 알고 있던 건 소피아가 아닌 말리나였다.
말리나가 뭐라고 했었지? ‘자존심이 세서 자신이 말을 못 탄다는 사실을 숨긴다. 소피아도 모를 것이다’였나?
한마디로 요나스에게 있어서 소피아는 자존심을 세우는 상대였다.
이모인 말리나, 아니, 왕족인 말리나에게는 쉬이 털어놓는 것들도 소피아에게는 꽁꽁 감췄다.
마치 어머니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듯이.
“그래서 왕이 되고 나면 당장 소피아부터 눈앞에서 치우겠다 하더군. 천한 시녀가 저에게 뭐라도 된 듯 이것저것 간섭하는 게 짜증난다고. 제 모친 행세를 할 때마다 구역질이 났다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너무 인간쓰레기잖아!
소피아가 요나스를 어찌 대했는지 나는 직접 보지 못해 모르지만, 엄청나게 애지중지했을 거라는 것 정도는 짐작 갔다.
그런 그녀의 호의를 부담스러워하는 것도 아니고, 경멸이라고? 구역질이 난다고? 천한 시녀?
내 얼굴이 일그러졌다. 최악을 생각해도 그보다 더한 밑바닥이 나온다. 그게 바로 요나스란 사내였다.
유유상종이라더니. 프란츠와 어울렸던 요나스가 그냥 실없는 한량 카사노바 정도일 리가 없었다.
안색이 좋지 않은 것은 뤼디거도, 루카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특히, 소피아가 요나스에게 어떻게 대했는지 지켜봐 온 뤼디거의 얼굴은 무척이나 심란했다.
하물며 공작은 상상 이상으로 소피아에게 미쳐 있는 사내였다.
가문의 대를 잇는 것도, 지금껏 이어온 가문의 신념도 모조리 포기해서 얻어낸 소피아다. 공작의 모든 것은 소피아의 이름 아래 허물어졌다.
그런 그녀가 아끼는 개가 은혜도 모르는 채 소피아의 목덜미를 물어뜯고자 으르렁대고 있다면, 절대 가만두지 않았을 터였다.
내가 아는 공작이라면, 자신이 후계자 위치를 물려준 뒤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할 터였다.
생각보다도 더 최악인 요나스의 인성으로 인해 응접실이 정적으로 잦아들었다.
‘건국왕의 마력을 빼돌린 패륜아의 핏줄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만큼은 잘 알 것 같네……. 생각해 보면 내 아버지도 만만치는 않았지.’
좋게 말해 만만치 않았다는 표현이지, 그는 정말 최악의 아버지였다.
도박 중독에, 반반한 낯만 믿고 여기저기 행패를 부렸다.
언니가 그린할텐 백작가의 연회에 참석하게 된 것도 아버지 때문이었다.
없는 형편에 드레스며, 구두며 준비할 돈이 어디서 낫겠는가?
전부 언니를 귀족 나으리 눈에 들게 하여 팔자를 고치고자 했던 아버지의 판돈이었다.
물론 언니는 아버지의 장단에 맞춰줄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돈 많은 귀족 나으리들은 제 알 바 아니라며, 잘생긴 남자가 있었으면 좋겠다 바라며 그린할텐으로 떠났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언니가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의 애를 임신해 올 거라곤 생각도 못 했지만.’
하여튼 내 아버지도 요나스만 한 난봉꾼이었다. 가진 것 없는 몰락 귀족이기에 그 정도였지, 자신이 왕족이었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더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공작이 요나스를 죽인 것이 정말 그 때문이라면, 나는 공작을 힐난할 수 없었다. 그럴 자격이 나에겐 없었다.
아버지가 다리 밑으로 굴러떨어져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그 날, 내 머릿속에 떠오른 건 다행이라는 생각뿐이었으니까.
만약 그리 우연히 죽지 않았더라면 내가 아버지의 등을 떠밀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렇게 알 수 없는 기분에 휩싸인 채 과거를 곱씹고 있던 찰나, 한참을 침묵하던 공작이 돌연 루카에게 물었다.
“네 전 생에서, 소피아는 어떻게 되었느냐?”
“……프란츠가 보낸 암살자로 인해 삼촌이 죽고 난 뒤, 시름시름 앓다가 돌아가셨어요.”
“그래.”
그 뒤로 공작이 어떻게 되었는지 루카는 덧붙이지 않았다. 공작 또한 묻지 않았다.
안 들어도 뻔했다. 모든 것을 놔버린 사람처럼 굴었겠지.
공작은 미래일지도 모르는 것에 대해 금방 수긍했지만, 뤼디거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제 죽음이 소피아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보였다.
뤼디거의 눈이 느릿하게 깜빡였다. 그것이 마치 미아처럼 애처로워 보여 나도 모르게 손이 움찔거렸다.
“유디트 마이바움 양.”
“……네, 공작님.”
그 때문에 나를 부르는 공작의 말에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
“이쯤이면 내 생각은 잘 알았으리라 보네. 궁금한 것도 풀렸을 테고.”
물론 그렇기는 했다.
하지만 그렇다 하여 루카를 계속해서 빈터발트에 두는 것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바로 반박하려 입을 열었다.
“그렇지만 공작님.”
공작은 손을 들어 내 말을 가로막았다. 내가 다시 입을 꾹 다무니, 그가 손을 내리며 말을 이었다.
“내 루카의 입적을 물러주지. 억지로 입적하라 붙들지도 않겠네.”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나는 반색했지만,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엔 아직 일렀다.
“다만 조건이 있다.”
그래. 순순히 물러주진 않겠지.
소피아를 위해서라곤 하지만, 소원의 잔을 사용했다며 손자뻘 루카를 협박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던 이가 아니던가.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이니만큼, 나는 이어질 말에 잔뜩 긴장했다.
공작은 진지하게 덧붙였다.
“소피아에게 이 모든 것을 비밀로 하는 것이네. 특히, 요나스가 그녀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겠나?”
“…….”
누가 감히 그런 말을 쉬이 옮기겠는가. 소피아에게 상처가 될 게 뻔한데.
너무 당연하기에 생각도 못 했다. 나는 입을 달싹였다.
공작은 만약의 만약. 혹시 모를 조금의 가능성도 완전히 뿌리 뽑고 싶었으리라. 그는 소피아에 관해서는 정말로 철두철미했다.
그의 조심성을 이해한 나는 맹세하듯 엄숙히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공작 부인께는 말씀드리지 않을 거예요.”
“자네의 입으로 한 약속, 잘 지킬 거라 믿겠네.”
공작의 청회색 눈동자가 내 속내를 떠보듯 반질반질하게 빛났다. 나는 그와 눈싸움을 하듯 눈에 힘을 주었다.
그는 한 번 깜빡, 눈을 감았다 떴다. 파르스름한 날붙이 같던 빛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럼 볼일은 끝났군. 더 전할 말 있나?”
“아, 아뇨.”
물론 더 할 말이 없기는 하지만, 이렇게까지 다짜고짜 물을 줄은 몰랐다. 직구를 던지는 것 또한 역시 가족 내력인 듯싶었다.
공작은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정말로 이대로 자리를 파할 생각인 모양이었다.
뤼디거가 공작에게 말했다.
“저는 나중에 따로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공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뤼디거가 함께하든 말든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기색이었다.
나와 루카는 공작을 배웅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때, 공작이 뒤늦게 생각났다는 듯 발을 멈추고 우리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이건, 빈터발트 공작이 아닌 그저 막시밀리안으로서 하는 말이네.”
공작은 루카에게 다가갔다. 공작은 북부인답게 컸고, 모피가 달린 망토를 걸치고 있어 더욱 풍채가 당당해 보였다.
그런 그와 마주 보고 있으니 안 그래도 작은 루카가 더욱 작아 보였다.
그때, 공작이 루카의 앞에 돌연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는 루카에게 눈을 마주치며 진지하게 말했다.
“루카. 네 소원 덕에 우리 모두가 행복해졌구나.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