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try changing the genre RAW novel - Chapter 15
장르를 바꿔보도록 하겠습니다 15화
“보면 안 좋은 거라더니, 이모는 왜 봐?”
“……내가 언제 그랬어. 어린애가 보면 안 되는 거라고 했지. 이모는 어른이니까 괜찮아.”
뒷부분의 기사가 궁금했던 나는 미간에 주름을 잡은 채 루카를 향해 손을 뻗었다.
루카는 되레 신문을 꼭 끌어안은 채 객실 구석으로 달려갔다.
술래잡기할 기력도 없었던 나는 짐짓 엄한 목소리로 타일렀다.
“루카, 얼른 가져와. 이모 나름대로 열심히 사전 조사하고 있던 거니까.”
“사전 조사? 무슨 사전 조사말입니까?”
그때 신문을 읽고 있던 뤼디거가 불쑥 끼어들었다.
읽고 있던 신문도 내려놓고 나를 빤히 바라보는 눈길에 말문 이 틀어막혔다.
공작 부인에 관한 가십거리가 궁금하긴 했지만, 그에 대해 친아들에게 곧이곧대로 털어놓을 정도로 눈치 없진 않았다.
솔직히 대답할 수 없었던 나는 어물쩍 말을 흐렸다.
“……뭐. 그냥 빈터발트 분위기가 어떤지 알아보는 거죠.”
“그런 가십 신문은 겉만 보고 안을 추측해서 소설을 써놓곤 하죠. 썩 믿을 만한 매체가 되진 않습니다. 차라리 저에게 물어보시죠.”
“물어보면 제대로 답해주실 건가요?”
“그럼요.”
뤼디거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껏 묻고 싶었으나 묻지 못했던 것을 질문할 기회다.
나는 화색을 띤 채 대뜸 물었다.
“공주님과의 혼사 얘기는 어디까지 추진된 거예요?”
질문하기가 무섭게 뤼디거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아니, 물어보라며!
물어보래서 물어봤더니 바로 정색하는 게 어디 있어!
잘생긴 얼굴이 정색하니 더 무섭네.
내가 떨떠름히 그를 바라보자, 그 또한 자신이 인상 쓴 걸 깨달았는지 작게 헛기침을 하며 인상을 풀었다.
“……신문에 그리 나왔습니까?”
“네.”
뤼디거의 짙은 눈썹 끝이 움찔움찔했다.
못마땅해 죽겠는데, 그걸 노골적으로 티 내지 못하는 게 눈에 보였다.
그는 한숨과 함께 답했다.
“그런 일 없습니다. 썩 믿을 만한 매체가 아니라 하지 않았습니까.”
“보니까 철도 부설권인가 뭔가 때문에 왕족과 결혼해야 하는 것 같던데.”
“루카가 있으니 상관없는 이야기입니다.”
뤼디거는 단호했다.
어찌나 칼 같은지, 청회색 눈동자가 시리다 못해 추웠다.
나도 네가 결혼할 생각이 없다는 건 알아! 안다고! 결혼 얘기가 나오는 걸로 그렇게 기분 나쁜 티 내지 마!
뤼디거가 불쾌해하는 걸 알면서도 그에 관해 말을 꺼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그래도 왕족과 결혼하셔서 혈통을 공고히 하는 쪽이 논란의 여지를 줄여주지 않을까요? 방계 쪽 문제라거나…….”
내가 열심히 생각해 봤는데, 역시 뤼디거가 왕족과 결혼하는 쪽이 제일 프란츠를 견제하기 쉬운 방법이었다.
원작의 상황에서야 루카만 처리하면 된다 생각하니 눈이 뒤집혔겠지만, 뤼디거가 왕녀와 결혼하게 되면 왕실까지 상대해야 하는 게 아닌가.
프란츠가 아무리 욕심과 야망으로 득실득실한 작자라고는 해도, 천지 분간 못 하고 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 만큼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고, 뤼디거가 결혼할 생각이 없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고 제안이나마 해봤다.
아니나 다를까, 뤼디거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진심입니까?”
“네? 뭐가요?”
“제가 진심으로 왕족과 결혼하길 바라는 겁니까? 만약 그러면 루카가 후계자가 되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차기 왕으로서는 고모의 손자인 루카보다, 제 누이의 아들을 공작으로 만들고 싶을 테니까요.”
“뭐……. 꼭 공작 후계가 되는 것이 행복하다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실제로 원작의 루카는 결국 공작이 되기는 했지만, 전혀 행복하지 못했다.
원작 소설의 마지막 장면을 생각하면 이 이모 마음이 아직도 아려요…….
하여튼, 내 입장에선 루카가 공작이 되고 말고는 정말 아무 상관 없었다.
최대한 무사하게 성장하는 게 바람일 뿐.
그러기 위해선 이 복수극 소설의 장르를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과연 나는 프란츠의 음모를 무마시키고 이 소설을 따듯하고 풋풋한 성장소설로 바꿀 수 있을 것인가.
눈앞이 막막했지만, 어떻게든 하는 수밖에 없었다.
장르를 좀 바꿔야 나도 무사히 살 수 있을 테니까.
장르, 아니, 미래를 바꿀 생각을 하니 갑자기 어깨가 무거워졌다.
그런데 잠깐…….
그러고 보니 뤼디거 이 자식, 은근슬쩍 루카를 후계자 삼을 속셈을 드러냈잖아?
나야 루카가 후계자가 되는 걸 소설을 읽어 알고 있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었다면 어안이 벙벙했을 만한 상황이다.
정말로 후계자를 삼을 셈인지, 아니면 떠보는 건지 열심히 머리를 굴렸겠지.
아니면 정말로 날 떠본 걸 수도 있고.
루카를 후계자로 삼을 생각이니만큼, 그에 딸린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뱃속을 확인해 볼 필요는 있을 것이다.
괜히 루카를 후계자 만든다는 야욕에 불타 헛짓거리하면 안 될 테니까.
나는 작게 헛기침을 했다.
굳이 뤼디거에게 경계를 살 필요는 없었다.
아니, 오히려 뤼디거에게만큼은 절대적인 우군의 위치를 차지해야 했다.
이제 빈터발트에 도착하게 될 텐데, 그곳은 관습도 예의도 필요 없는 엠덴과는 생판 다른 곳이다.
보는 눈도 많고, 신경 쓸 일도 많고.
그런 낯선 타지에서 혹시나 있을 프란츠의 음모까지 염두에 두며 살아남으려 바둥거리는 게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내가 빈터발트에 가진 끈이라고 해봐야 루카뿐인데, 루카는 너무 어릴뿐더러 루카 또한 빈터발트에 적응하느라 고생일 것이다.
그러니 가문에서 믿고 의지할 만한, 날 편들어줄 사람이 한 명 정도는 필요하다.
그것이 뤼디거라면 더할 나위 없이 든든하지.
빈터발트까지 동행하는 지금도 나쁘지 않은 관계인 것 같지만, 이미지라는 것은 좋게 구축해 놓아 나쁠 이유가 하나 없었다.
나는 최대한 욕심 없는, 소박하고도 건실한 낯을 가장한 채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빈터발트에 가는 게 딱히 루카를 공작 만들기 위해서도 아니잖아요? 그냥 루카에게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다 하니 가는 거지. 애초에 뤼디거 씨가 그렇게 말했잖아요.”
속셈이 있기는 하지만 딱히 거짓말을 한 건 아니라고요!
나는 뻔뻔스레 눈을 치뜨며 뤼디거를 마주 보았다.
뤼디거는 한 방 먹은 듯 얼떨떨한 낯이었다.
미남은 당황스러워하는 모습도 미남이었다.
오히려 바늘 하나 들어가지 않을 것처럼 매끈했던 얼굴이 곤혹스러운 듯 쩔쩔매는 걸 보아하니, 묘한 가학심마저 들었다.
큼, 큼.
저건 그림 속의 떡이다. 못 먹는 감이야.
가게 앞의 음식 모형이라고.
내가 열심히 자기 세뇌를 하는 사이, 뤼디거가 슬며시 입을 열었다.
“유디트 씨는…….”
그의 나직한, 듣기 좋은 목소리가 낮게 잠겨 먹먹히 울렸다.
익숙해졌다고는 하지만 때때로 깜짝 놀라게 되는 목소리였다.
그는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며 날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안개 낀 호수처럼 일렁이는 청회색 눈동자에 스민 호의는 마주 보는 나마저 부끄럽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참……. 좋은 이모 같습니다. 인격적으로 존경심마저 들어요. 저는 루카에게 그렇게까지 헌신적이진 못할 것 같은데.”
아니, 당신 엄청 헌신적이었어. 루카 때문에 죽기까지 한다니까?
원작에서 뤼디거는 루카의 암살 시도를 수차례 막고, 루카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다 결국 마차 암살 사건에서 루카를 피신시키고 대신 죽는다.
루카는 그대로 몸을 숨기고, 직계의 후계자가 전부 죽어버린 빈터발트에서는 결국 프란츠를 양자로 들여 후계로 삼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하지만 소설에서 당신이 이러이러했다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루카에 대한 헌신에 있어서만큼은 비교도 되지 않는 상대이니만큼, 나는 감격한 듯한 그의 모습에 오히려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지난번에 친자식처럼 키웠느니 뭐니 운운할 때도 정말 당혹스러웠는데…….
물론 좋은 이미지로 비칠 생각이긴 했지만, 이렇게까지는 좀 부담스러웠다.
나는 머쓱히 목덜미를 긁적이며 시선을 피했다.
“뭐……. 하여튼 그렇다고요. 제가 봤을 땐 뤼디거 씨도 좋은 삼촌이 될 거 같고…….”
“그렇습니까? 당신에게 그리 보였다니 기쁘군요.”
어쩌다 보니 서로 추켜올리는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우리가 그러는 사이, 내 신문을 들고 도망친 루카가 도대체 뭘 하고 있느냐는 눈으로 우릴 바라보았다.
얼굴을 딱딱하게 굳히고 질색하는 것이, 본인을 곁에 놔두고 좋은 삼촌이니 좋은 이모니 덕담을 주고받는 게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결국 견디다 못한 루카가 빽 소리를 질렀다.
“둘 다 그만해! 아니, 후계자가 되고 말고는 내가 결정할 문제 아냐? 왜 내 문제로 둘이서 그렇게 알콩달콩한 건데?”
전자는 나도 충분히 공감 가는 사항이지만 후자는 좀…….
나는 정색을 하며 루카의 말에서 사실과 전혀 다르게 왜곡된 점을 짚어주었다.
“루카. 이건 알콩달콩한 게 아니라 예의를 차린다고 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