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try changing the genre RAW novel - Chapter 150
장르를 바꿔보도록 하겠습니다 150화
“너라면 하녀장 대우를 받아도 돼. 나를 전담하고 있잖니.”
로라의 말대로, 하녀가 밑에 하녀를 부린다는 것은 실질적 출세였다.
로라의 경력이 제법 오래되었다고는 하나 이례적인 속도이기는 했다.
“진짜 신나요, 마님. 정말 이례적인 출세일 거예요. 저희 엄마도 주방에서 스무 명을 부리지는 못한다고요.”
로라의 얼굴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그렇게 좋을까. 로라가 기뻐하니 나도 기뻤다.
“네가 직접 뽑도록 하렴. 네가 밑에 두고 부릴 애들이니 네 입맛에 맞는 애들을 고르는 게 좋겠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이사벨라 같은 애들이 들어오면 좋을 텐데. 그래도 이사벨라가 일을 잘하긴 했거든요.”
저도 모르게 중얼거리던 로라가 뒤늦게 아차 했다. 로라는 어색하게 웃으며 목덜미를 긁적였다.
“이런, 이제 예전처럼 이름을 막 부르면 안 되는데. 이제 귀족 부인이 될 테니까요.”
그랬다.
프란츠의 죽음 후, 버켄레이스 가는 폭탄이 터진 것처럼 어수선했다. 납치, 암살, 테러, 반역…….
프란츠가 저지른 죄도 죄였거니와, 외동아들인 그가 죽음으로써 버켄레이스의 대도 끊기게 되어버렸다.
전부 뿌린 대로 거두는 법이었다.
버켄레이스 가에서 프란츠의 욕망에 대해 전혀 몰랐을까? 나는 항상 형의 눈치를 보던 아돌프 백작을 떠올렸다.
그의 속에 숨어 있던 은밀한 기대가, 프란츠의 행동을 묵인해 넘겼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버켄레이스 가에 절망이 내려앉았다 해서, 그 상황을 내가 이용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안 그래도 이사벨라에게 마음의 빚을 진 상황이었다. 나는 이 상황을 이용하기로 했다.
바로 이사벨라의 아이, 데이비드를 프란츠의 후계자로 삼는 것이었다.
‘제가…… 백작 부인이요?’
‘좀 더 정확히는, 프란츠의 아내가 되는 것일 뿐이지 백작 부인이 되는 건 아니야. 아직 버켄레이스 백작이 건재하니까.’
‘하지만 프란츠……. 그는 죽었잖아요.’
‘그런 서류상의 문제는 내가 다 해결해 줄게. 중요한 건 네 의지지. 물론 프란츠의 아내가 되는 것이 괴로울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사벨라의 눈치를 보며 말을 흐렸다.
평안 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라지 않던가.
그토록 사람을 우습게 보고 이용했던 작자였다. 프란츠라면 이가 갈리는 만큼, 서류상이나마 그와 엮이지 않고 싶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사벨라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지 명쾌한 목소리로 내 걱정을 날려버렸다.
‘어차피 죽은 사람인데 뭐 어때요? 제가 프란츠의 아내가 된다면 다비는…….’
‘그래. 다비는 차기 버켄레이스 백작이 될 거야.’
내 확답에 로라의 얼굴이 환희로 가득 찼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기쁜지 항상 무덤덤하던 그녀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이사벨라는 기쁨을 억누르며 애써 침착하게 물었다.
‘하지만 어떻게……. 버켄레이스 가에서 과연 절 인정해 줄까요?’
‘인정할 수밖에 없어. 그리고 인정하게 만들 거고.’
다비는 프란츠의 피를 이은 유일한 아이였다.
원래라면 귀족가에 사생아를 들이는 일은 흔치 않았다.
루카의 경우만 해도, ‘그’ 빈터발트 공작이 강행한 일임에도 방계의 반발을 사지 않았던가.
하지만 버켄레이스 가는 찬물, 더운물 가릴 때가 아니었다. 아무렴 먼 친척을 입양하는 것보다야 제 핏줄이 섞인 이가 나았다.
버켄레이스 가에서도 이사벨라를 두 팔 벌려 반길 것이다. 내 확신에 이사벨라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다비가 부족함 없이 떳떳하게 살아갈 수만 있다면, 전 그보다 더 기쁠 수 없을 거예요.’
이사벨라의 대답이 떨어지고 나서는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최대한 다비의 입장을 떳떳하게 하기 위해, 나는 프란츠의 테러 행위를 비롯한 범법 행위를 숨겨주십사 왕에게 부탁했다.
아무리 귀족이 된다 해도 아버지가 반역자인 것이 좋지는 않을 테니까.
당사자인 내가 그리 바라니, 왕은 한참의 고심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결과, 왕궁에 있었던 폭탄 테러는 군대에서 폭발물 관리를 소홀히 한 것으로 처리되었다.
그 폭발물 담당자의 이름에 뤼디거가 적혀 있던 것은, 왕 나름의 소심한 복수였으리라.
물론 뤼디거는 징계고, 뭐고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웃긴 건, 그렇게 징계를 받고 난 뒤 뤼디거의 계급이 준장으로 올랐다는 것이다. 아마 선왕이 내 남편감이 대령인 건 말도 안 된다며 박박 우겼기 때문인 것 같았다.
하여튼 그렇게 이사벨라는 프란츠의 아내가 되었고, 다비는 사생아가 아닌 친자식이 되었다.
프란츠의 의사는 전혀 들어 있지 않았지만, 원래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 아닌가. 산 사람들로서는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었다.
프란츠의 죽음 또한 그러했다.
프란츠가 저지른 일을 묻다 보니 그의 죽음의 이유 또한 새로 지어내야 했다.
처음에는 요나스의 죽음처럼 낙마라든가 사고사로 처리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뤼디거는 굳이 저와의 결투로 해달라 우겼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잖아요? 사람 죽인 수가 늘어서 좋을 일도 없고.’
‘그 빌어먹을 놈의 죽음을 안타까운 사고사 정도로 마무리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프란츠는 제가 죽였으니, 부디 그렇게 해주십시오.’
뤼디거의 의지가 강경했다. 그렇게 프란츠는 뤼디거의 공식 결투 성적 44전 44킬의 주인공으로 남게 되었다.
프란츠는 원래 제 죽음보다도 한참 뒤에야 땅에 묻힐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이사벨라가 프란츠의 아내로서, 상복을 입은 채 프란츠의 장례식까지 참여하는 희극 아닌 희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프란츠의 관이 땅 속에 파묻히는 걸 보며, 이사벨라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하지만 검은 베일 아래 숨겨진 그녀의 입가가 빙긋 웃음을 짓고 있으리라는 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잠시 이사벨라와의 일을 떠올렸던 나는 이내 웃으며 로라를 다독였다.
“뭐, 이사벨라도 개의치 않을 테니 상관없지 않겠니.”
“이런 건 원래 친할수록 더 철저하게 해야 하는 거예요. 잘못하다가 남들 앞에서 실수라도 하면 이사벨라에게도 문제가 생긴다고요.”
로라는 투덜대며 내가 비운 찻잔을 정리했다. 나는 슬며시 눈을 휘며 의뭉스레 물었다.
“그새 친해졌던 모양이로구나?”
“제가 친하다고 했어요? 이사벨라랑? 맙소사. 아녜요. 안 친해요.”
로라는 화들짝 놀라며 부정했다. 얼마나 놀랐는지 로라의 손에 들린 찻잔이 달그락거릴 정도였다.
항상 태연하던 로라가 이렇게 당황하는 건 또 처음이다. 나는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 그런 거로 하자.”
“마님, 점점 막내 도련님 닮아 가는 거 아세요?”
“걔가 날 닮은 거거든?”
그렇게 우리는 서로 투덕거리며 농을 건넸다. 그러는 사이 시간이 훌쩍 지났다. 시계를 확인한 로라가 말했다.
“그러고 보니 시간이 어느새 이렇게. 오늘 외출하신다 하셨죠?”
“응.”
“둘째 도련님이 함께 가신다고 하니 걱정은 않지만……. 조심하시고요.”
“걱정도 참. 이제 별일 없다니까.”
나는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로라는 여전히 걱정을 지울 수 없는 모양이었다.
“내 걱정은 말고. 내가 다녀오는 동안 결혼식 준비 부탁해. 오늘 해야 할 일이…….”
“결혼식에 쓸 꽃과 초대 명단 정리하는 거죠? 걱정 마세요. 최연소 하녀장이 될 만한 실력을 보여드리죠.”
로라는 당차게 답했다. 로라라면 완벽하게 일을 해둘 것이다.
나는 신뢰 가득한 눈으로 로라를 바라보았다.
* * *
내가 뤼디거와 함께 향한 곳은 평민들이 거주하는 구역이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빈민굴로 떨어지지 않았다뿐이지, 럼가트의 최하층이 머무는 곳이었다.
마차의 창문 밖으로 보이는 건물들은 간신히 거주의 형태를 지니고 있었고, 도로의 사정도 좋지 않았다.
빈터발트 가의 마차나 왕가의 마차는 너무 눈에 띌 것 같아 일부러 수수하고 평범한 마차를 선택했는데, 이곳에는 마차 자체가 드물다 보니 저절로 이목이 쏠렸다.
뤼디거는 이런 곳에 내가 발을 디딘다는 것이 불만인지, 연신 옆에서 투덜거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 혼자 와도 되는 일 같습니다. 굳이 유디트 씨가…….”
“뤼디거 씨 혼자 오면 경계를 살걸요.”
나는 픽 웃었다.
아무리 내 눈에 콩깍지가 껴도 그렇지, 우리 집 멍멍이가 다른 사람 눈에는 도사견으로 보이는 것쯤은 인지하고 있다.
“그에게 신세 진 것은 저이니, 제가 직접 감사 인사를 전하는 것이 옳죠. 게다가 이런 곳, 익숙하다고요. 솔직히 마이바움 저택도 만만치는 않았어요.”
“하지만.”
“아, 도착한 것 같아요.”
뤼디거의 항변이 길어지기 전, 때마침 마차가 멈춰 섰다.
뤼디거는 못마땅한 듯 미간을 찌푸렸지만, 순순히 문을 열고 나서서 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혹여나 내가 에스코트 받지 않고 홀로 훌쩍 뛰어내리기라도 할까 싶어 선수 친 게 분명했다.
나는 한 집 앞에 서서 문패를 확인했다.
크라벳가 27번지. 이 집이 맞다. 문고리조차 없는, 낡은 나무 판자가 나를 반겼다.
심호흡을 한 나는 이내 손을 들어 똑똑, 문을 두드렸다.
그렇게 두어 번 더 문을 두드렸을까. 한참 끝에 안에서 반응이 들렸다.
“누구……세요?”
비스듬히 열린 문 아래로 까만 머리카락의 비쩍 마른 소녀가 불안한 듯 눈을 굴렸다.
역시 뤼디거만 보내지 않길 잘했다.
나는 최대한 무해하게 보이기 위해 노력하며 미소 지었다.
“안녕, 클로이.”
하지만 클로이의 눈에 서린 경계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처음 보는 내가 대뜸 자기 이름을 대니 경계가 더 높아졌다.
생각해 보니 내 인상 또한 썩 좋은 편이 아니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그래. 일단은 시선을 마주치는 것부터.’
나는 그대로 문 앞에 쪼그려 앉았다. 그제야 클로이와 내 눈이 제대로 마주쳤다.
나는 빙긋 웃으며 클로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만나서 반가워. 나는 네 아빠 친구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