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try changing the genre RAW novel - Chapter 151
장르를 바꿔보도록 하겠습니다 151화
“저희 아빠요? 레이디……께서요?”
클로이는 믿기지 않는 듯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뜰 뿐, 내 손을 마주 잡진 않았다.
나름 수수하게 차려입고 왔다지만 평민처럼 보이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나는 어색하게 웃음을 흐리며 손을 내렸다.
투병 중이다 보니 클로이의 양 뺨은 해쓱했고 팔다리는 비쩍 말라 있었다. 보기만 해도 무척 안쓰러울 정도였다.
하지만 반짝이듯 빛나는 눈동자는 명석해 보였다.
아빠라는 말에 잠깐 경계심이 허물어졌지만, 클로이는 이내 다시 벽을 세웠다.
“아빠는 잠깐 일하러 나가셔서…… 아직 돌아오지 않으셨어요.”
혹시 막스의 죽음을 모르고 있는 걸까? 당황한 나는 뒤에 서 있는 뤼디거를 보았다.
뤼디거는 느릿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부고를 전했다는 뜻이었다.
아마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하면 여러모로 좋지 않기 때문이겠지.
이렇게 어린아이도 솔직함보다 자신의 약점을 꼭꼭 숨기는 것을 먼저 배운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인 것이다. 입맛이 썼다.
나는 일부러 캐묻는 대신 말을 돌렸다.
“그래? 그러면 어머니는 언제쯤 돌아오시니?”
“……금방 돌아오실 거예요.”
“그래, 클로이. 그때까지 우리가 안에서 기다려도 괜찮겠니?”
“…….”
클로이는 쉬이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경계심이 없는 것보다야 낫다. 여차하면 주변에서 기다리고 있어도 좋지만…….
그때, 잠시 잊고 있던 것이 퍼뜩 생각났다.
“맞아, 네 아빠가 너에게 남긴 선물을 가져왔단다.”
“선물이요……?”
클로이가 저도 모르게 손을 내밀었다. 클로이의 작은 손에 툭, 떨어진 것은 바로 막스가 돌려준 진주 귀걸이로 만든 브로치였다.
“이걸…… 아빠가, 나한테.”
클로이의 자그마한 손이 브로치를 조심스레 감싸 쥐었다. 그러고는 이내 가슴에 꼭 끌어안 듯 쥐었다.
나는 그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가슴을 먹먹히 잠식한 감정을 삼키며, 나는 다시 한 번 말했다.
“그러면 조금 있다가 어머니가 오실 때쯤 다시 올게.”
“……아니에요. 들어오세요.”
그제야 문이 열렸다. 경계심 많던 작은 아이가 열어준 호의에 감사하며, 나는 조심스레 막스의 집에 들어섰다.
밖에서 보는 것만큼이나 집안 내부 사정도 만만치는 않았다. 그나마 클로이의 침대 근처는 신경 쓴 듯 깔끔했다.
그리 오래 기다리지 않아 해터 부인이 돌아왔다.
해터 부인에게는 미리 전보를 통해 사정을 설명했다. 하지만 내가 직접 올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그녀는 깜짝 놀라며 당황했다.
“왕녀님께서 이렇게 누추한 곳까지 직접…….”
“아니에요. 응당 찾아 뵈야 하는 일인걸요. 부군이 아니었다면 큰일 났을 거예요.”
내가 그리 말하니 해터 부인의 입이 꾹 다물렸다. 피로에 젖은 그녀의 눈이 여러 가지 감정으로 일렁였다.
원망과 안도, 슬픔이 뒤범벅되어 이내 눈물로 뚝뚝 떨어졌다.
나는 그녀를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딸의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불법적인 일도 자행해 마지않던 남편.
그런 남편이 귀족을 구하고 죽은 대가로 딸의 치료비를 대주겠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녀가 느꼈을 허망함은 감히 짐작도 할 수 없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나는 머리 숙여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로써 조금이나마 해터 부인에게 내 진심이 전해지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 뒤로 나는 해터 부인과 클로이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로 그들의 사정을 듣는 것에 가까웠다.
막스와 약속한 것은 클로이가 완치될 때까지 책임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둘러본 주변 환경이 마음에 걸려 마냥 그렇게 둘 수가 없었다.
막스가 살아 있다는 듯 클로이가 거짓말을 했던 것 또한 신경이 쓰였다.
‘역시 여자 둘이 살기에 좋은 환경은 아니지.’
나는 넌지시 제안했다.
“좀 더 안전한 저택으로 이사하는 것은 어때요? 남는 저택이 하나 있어요. 세를 받지 않을 테니 편하게 쓰시면 돼요.”
“클로이 치료비를 대주시는 것만으로도 과분해요. 이 이상은 너무 죄송스러워요.”
“아니에요. 의사가 자주 오가기에도 좀 더 대로변에 있는 쪽이 나을 거예요. 아무래도 환경이 병을 좌지우지하기도 하니까……. 클로이를 생각하세요, 부인.”
“……그렇다면 부디.”
고심 끝에 해터 부인의 허락이 떨어졌다. 큰 시름 하나를 덜었다는 안도에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집 말고도 내가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를 최대한 해결하려 노력했다.
무척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순간 막스에게 진 빚은 돈으로는 갚을 수 없는 것이었다.
과연 막스가 원하던 보답이 되었을까. 나는 알 수가 없었다.
* * *
“클로이가 마음에 드셨나 봅니다.”
“귀엽잖아요. 착하고, 얌전하고, 기특하고……. 안쓰럽고.”
나는 마차 창밖을 바라보며 멍하니 대답했다.
움푹 팬 뺨에 서린 병색을 생각하면 고통이 심할 텐데, 클로이는 단 한 번도 그런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완쾌할 수 있었으면 좋겠네.’
역시 어린아이가 아픈 모습은 마음 아프고 신경 쓰인다.
그 짧은 시간에 정이 듬뿍 들었는지, 클로이를 두고 떠나는 마음이 무거웠다.
“부럽습니다.”
“뭐가요?”
“클로이 말입니다.”
도대체 클로이의 어떤 점이 부러운 것일까. 전혀 알 수 없었던 나는 창밖을 보던 시선을 돌려 뤼디거로 향했다.
“유디트 씨가 저와 헤어질 때도 그런 표정을 짓진 않으시는 것 같아서요.”
“지금 제 표정이 어떤데요?”
“헤어지기 싫어하는 표정입니다.”
“무슨 소릴 하는 거예요. 뤼디거 씨랑 헤어질 때마다 항상 아쉽다고요. 헤어진 뒤의 제 얼굴, 뤼디거 씨는 모르잖아요.”
말도 안 되는 소리에 나는 얼굴을 작게 찡그리며 투덜거렸다. 하지만 뤼디거도 서운한 게 쌓였는지, 쉬이 물러서지 않았다.
“하지만 항상 시간 되었다, 돌아가라 말씀하시는 건 유디트 씨잖습니까.”
“그거야 당신이 안 헤어지려고 기를 쓰니까 어쩔 수 없이 그런 거잖아요!”
“그러면 유디트 씨는 저랑 헤어지고 싶습니까?”
하, 잠깐. 좋아. 진정하고…….
나도 모르게 뤼디거에게 휩쓸려 울컥해 버렸다.
저 인간의 페이스에 휘말려서 좋을 게 없다. 부동심. 평정심. 색즉시공 공즉시색…….
마음을 진정시킨 나는 억지 쓰지 말라 버럭 화를 내는 대신, 눈을 휘어 웃으며 뤼디거의 뺨을 향해 손을 뻗었다.
“우리 뤼디거 씨가 왜 이렇게 응석꾸러기가 되었을까.”
뤼디거는 내 손에 얼굴을 기대며 눈을 감았다. 긴 속눈썹이 움 직이며 내 손바닥을 간지럽혔다.
아까 전만 해도 삐죽하니 따박따박 못된 대답을 늘어놓더니, 그사이 마음이 풀어졌는지 뤼디거는 누그러진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유디트 씨는 너무 인기가 많습니다. 마음도 넓고 말입니다. 당신의 주변 사람들을 전부 포용하려고 하지요.”
그는 내 손을 부여잡고 손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마치 내 손에 자신의 영혼을 불어 넣고 내 영혼을 들이마시듯, 경건한 모습이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나를 올려다보았다. 비 맞은 수사슴처럼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참으로 청승맞았다. 뤼디거는 안타까이 중얼거렸다.
“저는 그러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제 세계는 무척 좁아요. 그렇기에 그 모든 걸 이해해야 하는 걸 알면서도, 가끔은 제가 당신을 모조리 독차지하고 싶다는 이기심이 저를 이리 못난 사내로 만들어버립니다. 유디트 씨께서 실망하실 테니 이런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때때로 참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 말하는 뤼디거의 시선이 자신을 버리지 말아달라 외치고 있었다.
처음으로 타인에게 어른스럽지 못한 모습을 보인 것에 대한 불안감,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한 초조함으로 뒤범벅이 된 상태였다.
뤼디거는 항상 타인의 평가는 신경 쓰지 않았고, 누군가에게 어리광을 부려본 적도 없다.
그러니 뤼디거로서는 이 모든 것이 처음 느껴보는 감정일 터였다.
항상 날 배려해 주고 지탱해 주어 때때로 잊게 되고 하지만……. 뤼디거는 이렇게 제 감정을 온전히 타인에게 맡기는 일이 정말로 서툴렀다.
그런 뤼디거 또한 내가 좋아하는 뤼디거였다. 나는 그의 뺨을 감싸 쥔 채 내 얼굴 가까이 잡아당겼다.
우리 둘의 코가 닿을 듯 가까워진 상태에서, 나는 그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는 이제 결혼할 거잖아요.”
“……그렇습니다.”
“결혼이 뭔 줄 알아요?”
“…….”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관계를 맺는 일이에요. 그러니 너무 불안해하지 말아요.”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뤼디거는 눈을 깜빡였다.
파르르 떨리는 눈썹 아래 빛나는 청회색 눈동자가 몇 번이고 감정을 삼켜 넘기는 모습이 바로 코앞에서 보였다.
한참 끝에 뤼디거가 말했다.
“……유디트 씨에게는 당해낼 수가 없군요.”
“뭐가요?”
“아까는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당신의 말 한마디만으로 기분이 좋아집니다.”
입술을 삐죽이는 뤼디거는 왠지 억울해 보였다.
철면피 같은 남자의 이런 모습을 나 혼자만 본다고 생각하니 손끝이 저릿저릿해지며, 왠지 모르게 그를 더 당혹스럽게 만들고 싶다는 욕망이 치솟았다.
“더 기분이 좋아지게 해드릴까요?”
“네?”
나는 바로 뤼디거의 목덜미를 잡아당겼다. 코가 부딪히며, 입술이 마주 닿았다.
뤼디거가 당황하여 눈을 크게 뜨는 모습을 보며 나는 웃음을 흘렸지만, 그 또한 오래가진 못했다. 마주 닿아오는 숨결이 모든 것을 덮쳐 왔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