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try changing the genre RAW novel - Chapter 152
장르를 바꿔보도록 하겠습니다.152화
* * *
클로이의 병은 생각만큼 심하지 않았다. 제때 약을 쓰지 못해 병이 커지긴 했지만, 치료와 요양을 함께하면 몇 년 새에 완쾌할 수 있을 거라는 의사의 말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어느 정도 주변 상황이 정리되고 나니, 이제야 결혼 준비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사이에도 결혼식 준비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가고 있었다.
양가의 협조, 그리고 유능한 일꾼들까지 손을 보태니 속도가 느려지고 싶어도 느려질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일이 마냥 수월하게 풀리는 것만은 아니었다.
뤼디거와의 결혼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진행되며 제일 큰 문제로 불거진 것은 바로 신접살림을 어디에 꾸리느냐였다.
블루옌? 아니면 빈터발트?
내가 염두에 둔 것은 바로 릴라니벨이었다.
선왕이 직접 골라준 영지가 아니던가. 날씨 좋고 수도에서 가깝기도 하니 선왕도 크게 반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마냥 일이 쉽게 풀리지는 않았다. 빈터발트를 물려받는 일로 뤼디거가 일 년에 4개월쯤은 빈터발트에서 머물러야 했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를 들은 선왕은 적어도 빈터발트에 머무는 만큼은 수도에 머무는 것이 인지상정 아니냐며, 시댁만큼 처가에서 머무르는 것이 공평하다 따지고 들었다.
‘굳이 따지자면 수도가 처가는 아니지만…….’
하지만 선왕의 나이가 나이이니만큼 마냥 그의 의견을 무시하기도 그랬다. 게다가 선왕 성격에 빈터발트와 비슷한 기간 정도로 제안한 것도 많이 무른 것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한참 고민하는 나에게 뤼디거가 흔쾌히 말했다.
“그렇다면 일 년의 삼 분의 일은 릴라니벨에서, 그리고 삼 분의 일은 빈터발트에서, 삼 분의 일은 수도에서 보내면 되는 일 아닙니까.”
“그래도 되나요?”
“뭐, 선왕 전하께서 돌아가시기까지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어차피 수도에서 처리할 일도 있고 하니 상관없습니다.”
말은 언제나처럼 냉정하고도 살벌했지만, 중요한 건 그 내용 아니겠는가. 나는 반색하며 반겼다.
“뤼디거 씨가 그렇게 이해해 주시니 고마워요.”
“아닙니다. 저야말로 추운 빈터발트로 오시게 해서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마음만 같아서는 그냥 릴라니벨에 계속 계셨으면 합니다만…….”
“아녜요. 저도 빈터발트 좋아해요. 마차 여행도 좋아하고, 기차 여행도 좋아하고……. 분기별로 여행 다니는 거, 좋잖아요.”
전생에서는 여행이 뭐냐, 매년 이사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에 비하면 지금은 집이 세 채나 되고 전부 집사들이 관리해 주니 얼마나 편한가. 나는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그렇게 집 문제는 해결되고, 이제 남은 것은 결혼식의 메인, 신부 드레스를 고르는 일이었다.
신부 드레스는 결혼식 날까지 남편에게 밝히지 않는 것이 관례였다. 그에 뤼디거는 한참을 전전긍긍했다.
“제가 유디트 씨의 모든 옷을 골라드리겠다 약조했는데……. 신부 드레스만큼은 그럴 수가 없네요. 이렇게 곤혹스러울 데가…….”
“뭐가 그렇게 곤혹스러워요. 제가 잘 골라볼게요.”
“…….”
뤼디거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못 미더운 기색이었다.
물론 내가 이 세계 패션 테러리스트이기는 하지만……! 원래 기억이 되돌아와도 패션 센스가 별반 달라지지 않기는 했지만……!
나는 억울해하며 변명했다.
“저, 저도 뤼디거 씨 체면 정도는 생각해요. 책잡힐 만한 옷을 고르지는 않을 테니까…….”
“제 체면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뤼디거가 펄쩍 뛰었다. 그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유디트 씨 자체만으로도 저에게는 과분합니다. 유디트 씨가 그 어떤 옷을 입는다 해도 유디트 씨의 품격이 저하되는 일도 없고 말입니다. 다만…… 유디트 씨가 조금 더 어울리는 옷을 입으셨으면 하는……. 그냥 제 욕심이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뤼디거는 쩔쩔매며 머리를 조아렸다. 그런 뤼디거의 심정을 알 것도 같았다.
‘좋아하는 배우가 워스트 드레서로 뽑히면 괜히 속상한 거랑 비슷한 느낌이지 않을까?’
그 말인즉슨, 내가 워스트 드레서나 다름없을 정도로 옷을 입고 다닌다는 말이지만…….
생각해 보면 나 또한 그 비슷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뤼디거가 비밀통로로 작업복을 입고 나타났을 때, 그것도 무척 잘 어울리고 색다른 매력이 있기는 했지만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 어색했다.
역시 뤼디거에게 제일 잘 어울리는 것은 장교복이었다. 나는 뤼디거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당차게 말했다.
“걱정 마세요. 드레스를 고를 때 로라도 함께할 테니까요. 때 마침 공작 부인께서도 같이 골라주신다 하셨어요. 아, 말리나 왕녀님도요.”
뤼디거의 눈빛이 잠깐 예리하게 빛났다. 뭔가 문제라도 있나?
“흠……. 그렇다면 안심입니다.”
하지만 내가 잘못 본 모양이다.
뤼디거는 이내 가슴을 쓸어 내리며 안도했다. 그 모습은 마치 전쟁 중에 간절히 바라던 지원군 소식을 듣게 된 것 같았다.
그렇게 이야기가 끝나고, 드레스를 고르기로 한 날이 되었다.
원래 계획한 대로 소피아와 말리나가 자리에 함께했다.
그리고…….
“준장이 꼭 참석해야 한다 등을 떠밀더군. 보는 눈은 하나라도 더 있어야 한다나 뭐라나.”
“공작 부인에 고모님에 언니까지. 그러면 굳이 나까지 참석할 필요는 없는 것 같은데.”
“…….”
계획에 없던 빅토리아와 죠세핀이 합류했다.
뭐, 그쯤이야 뤼디거의 걱정 정도로 치부해 넘길 수 있었다.
다만…….
나는 방 한구석에 오도카니 앉아 유유자적 차를 마시고 있는 루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루카. 너는 또 여기 왜 있는 거야? 신부 드레스는 신랑뿐만 아니라 신부 가족일지라도 남자들에게는 비밀로 하는 게 관례라고.”
그게 아니었다면 제일 먼저 들이닥친 건 바로 선왕이었을 것이다.
“내가 남자야? 열 살 꼬마잖아. 그냥 애라고 생각해.”
평소에는 어른 취급하라고 주장하더니 이럴 때만 약삭빠르게……!
“그래서 왜 갑자기 마음이 바뀐 거야? 귀찮은 건 싫다더니?”
“삼촌이 보냈어.”
“뭐?”
“머리가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갈 수가 있다고.”
“…….”
“만약의 만약의 만약에 대처하기 위한 안전핀 정도로 생각해.”
루카는 그리 말하며 어깨를 으쓱였다.
아니, 내 드레스 하나 고르는 게 왕실 사람 넷에 공작 부인까지 붙어야 할 일이야?
굳이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필요할 이유를 알지 못한 나는 한숨과 함께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뤼디거의 선견지명은 대단했다.
“유디트는 목이 길고 우아하니 목까지 레이스로 뒤덮인 쪽이 좋을 것 같구나.”
“아니죠. 그러니 오히려 목을 드러내고 화려한 목걸이로 장식해야 하지 않겠어요?”
“신부 드레스에 지나친 보석은 어울리지 않아.”
“그건 왕녀님 취향이겠지요.”
말리나와 소피아가 점점 언성을 높이더니, 갑자기 대립각을 세우기 시작한 것이다.
빅토리아와 죠세핀은 당황하며 두 사람을 말렸다. 두 사람이 있어 그나마 분위기가 수습되었지, 나 혼자 그녀들 사이에 껴 있었다고 생각하니 등골이 서늘했다.
‘설마 뤼디거가 이렇게 될 걸 짐작한 건 아니겠지…….’
한쪽은 왕가의 어르신 중 하나인 말리나 왕녀, 다른 한쪽은 세도가로 이름 높은 빈터발트 공작 부인.
두 권력가의 사이에서 난감해진 것은 재단사 또한 마찬가지였다.
수도, 아니, 럼가트에서 제일가는 재단사이니만큼 이런 다툼에는 잔뼈가 굵지만, 상대가 상대였다. 그녀는 입도 벙긋하지 못한 채 눈만 뒤룩뒤룩 굴리며 눈치를 보았다.
내가 딱 이것이 좋다 선택하면 좋으련만, 아무래도 당사자인 신부이다 보니 어느 한쪽 편을 들어주기가 난감했다.
‘딱 이거다 싶은 디자인이 있으면 그냥 그걸 고르면 될 텐데……. 문제는 나도 우유부단하다는 거지.’
그렇게 난감했던 순간, 루카가 나섰다.
“자자. 목까지 레이스로 뒤덮인 것도 좋고, 화려한 목걸이도 좋죠. 굳이 둘 중 하나를 포기할 건 없잖아요.”
“하지만 레이스에 목걸이라니, 아무래도…….”
“목걸이 끈을 금속이 아니라 하얀 실크로 하는 건 어때요?”
“쵸커식으로?”
“네. 그리고 보석으로 펜던트를 하면 괜찮지 않겠어요?”
루카의 말은 청산유수가 따로 없었다. 열 살 남자아이가 여자 드레스에 대해 이 정도로 자기 주장을 내세우는 일이 흔치 않다 보니, 그런 루카를 바라보는 재단사의 눈이 등잔만큼 커졌다.
루카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말리나와 소피아가 이내 고개를 주억거렸다.
“흠……. 나쁘지 않은 방안 같구나.”
“하긴. 유디트라면 어느 쪽이든 어울릴 테니까.”
휴. 간신히 타협점을 찾았다.
안전핀 역할이라더니, 루카는 중재자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루카는 제가 없었으면 어쩔 뻔했냐는 듯이 고개를 까닥거렸다. 무척 거만한 태도였지만, 지금의 나로서는 그저 고맙기 그지없을 뿐이었다.
그렇게 안도하기가 무섭게, 말리나가 툭 하니 말을 꺼냈다.
“드레스 치맛단은 역시 인어 꼬리처럼 길게 늘어트린 쪽이 낫겠지.”
“무슨 소리예요? 상반신이 붙는 만큼 치마는 풍성하게 퍼지는 쪽이 더 낫죠.”
아, 이런…….
2차전의 시작이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마 색이 흰색으로 고정된 게 다행이었다.
* * *
결혼은 온전히 신부나 신랑만의 것이 아니라더니…….
양측 어르신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 조율하느라 진땀을 뺐다.
그래도 뤼디거가 빅토리아와 죠세핀, 루카를 지원 보내주었기에 일이 그나마 수월하게 풀렸다.
‘굳이 이렇게까지 사람이 필요하냐며 유난 떤다고 욕했던 거 취소다, 취소.’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각고의 토론 끝에 드레스는 모두가 만족할 만한 것으로 골랐다.
문제가 있다면 럼가트에서 제일 눈이 높은 어르신들의 취향이 적극 반영되었다 보니 디자인이 까다롭기 그지없어, 재단사가 죽어 나가겠구나 싶은 것 정도였다.
그렇게 고심 끝에 드레스를 고르는 일이 끝나고, 나는 소피아와 단둘이 티타임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