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try changing the genre RAW novel - Chapter 154
장르를 바꿔보도록 하겠습니다 154화
소피아는 오히려 당연하다는 듯이 나에게 되물었다.
“그, 그건 그렇죠…….”
문득 짜고 치는 고스톱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네사와 소피아, 두 여자의 판에 공작이 완전히 말려든 것이었다.
자업자득이라 해야 할지……. 결국 공작 스스로 만들어낸 덫이었다.
‘뤼디거가 도박에는 쥐약인 점을 누구에게 물려받았는지는 확실히 알겠네.’
소피아는 생각보다 많은 걸 알고 있었다. 어쩌면, 뤼디거의 말대로 요나스가 자신에 대해 품은 경멸조차 알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다만 바네사의 자식이기에 그 모든 것을 눈감아줬을 뿐…….
하지만 그것은 자식을 아끼는 사랑이 아니다. 그녀에게 있어 요나스는 그저, 대체품이었던 걸까? 그렇다면…… 뤼디거는?
뤼디거가 죽고 나서 그녀 또한 충격을 받아 세상을 떴다 들었다.
그런 걸 보면 뤼디거에게 아무런 애정도 없던 건 아닌 것 같은데…….
대놓고 묻지 못해 마냥 짐작만 할 뿐이다.
‘그래도 요나스를 죽인 게 공작이라는 사실은 모르고 있는 것 같네.’
그건 그나마 다행이다.
아무리 그녀가 요나스를 바네사의 대체품으로 아꼈다 할지라도, 건넨 애정과 관심마저 거짓이라 할 수는 없었다.
그런 요나스가 그녀를 경멸했고 그 때문에 공작에게 죽었다니. 확실히 소피아가 알아서 좋은 일은 아니었다.
모든 진실이 행복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라는 뤼디거의 말이 유난히도 선명히 뇌리에 떠올랐다.
공작과 약속한 것도 있으니, 그에 대해 굳이 거론할 필요도 없고.
그렇게 나는 입을 다물었다.
“하여튼 그 남자는 그렇게 내가 좋을까……. 나는 잘 모르겠 구나.”
소피아는 심드렁히 말했다. 누가 본다면 넌지시 남편에게 사랑받는다 자랑이라도 하는 게 아니냐 했겠지만, 나는 그것이 정말로 순수한 의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왜냐면 나도 그런 생각을 했으니까.
확실히 빈터발트의 사랑은 평범한 사람들이 이해 못 할 정도로 맹목적인 구석이 있었다.
아무리 좋아도 그렇지, 그렇게까지 해? 싶은 구석 말이다.
“뤼디거는 그래도 제 아비보다는 낫지만, 다루기 까다로운 건 매한가지일 거란다. 종잡기 힘들 거야.”
“…….”
그렇죠.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나는 지금껏 뤼디거에게 휘둘려운 나날을 추억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사람이 잊을 만하면 사고를 치고, 내가 한 말을 540° 정도는 곡해해서 받아들이고.
행동력은 또 왜 그리 빠른지.
한 마디로 ‘내가 죽기 전에 상대를 죽여라’라는 말, 그 자체인 남자였다.
그래도 다른 사람에게는 조금의 틈도 안 주는 그 얼굴이 내 앞에서만 무력하게 흩어지는 것이 묘한 희열을 준단 말이지.
아……. 소피아도 이런 생각으로 저 공작을 데리고 산 건가 싶기도 하고.
소피아가 공작에게 사실을 숨기기는 했지만, 생각해 보면 자신을 두고 계약한 일로 공작을 경멸한다든가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조금은…… 좋아하는 게 아닐까?’
하지만 공작의 일에 대해 말하는 소피아의 낯은 건조하기 짝이 없었다.
그녀가 유일하게 웃음을 보일 때는 바네사의 일에 대해 말할 때뿐이었지만……. 그거야 바네사 왕녀가 예외이기 때문일 테고.
‘하지만 애초에 뤼디거한테 평소 대했던 거랑 뤼디거가 죽은 뒤 드러낸 속내가 달랐던 것도 그렇고……. 그래도 빈터발트를 싫어하는 건 아니지 않을까?’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데, 무표정하고 겉으로 드러나는 것 일절 없는 그녀의 속내를 내가 어떻게 전부 짐작할까?
그저 막연히 추측할 뿐이었다. 정확히는 그랬으면 좋겠다, 바라는 것에 가까웠다.
그때, 소피아가 손을 뻗었다. 그녀의 주름진 마른 손이 보석함을 틀어쥐고 있는 내 손등 위를 덮었다.
느릿하게 내 손을 두어 번 토닥이는 그녀의 낯은 평소와 똑같이 무덤덤했다.
하지만 나직이 건네는 목소리에서는 간절한 바람, 혹은 기원과도 같은 열망이 느껴졌다.
“행복하게 살 거라. 널 위해서 그리고 내 아들을 위해서.”
소피아의 진심이 담긴 축복에서 뤼디거에 대한 애정을 느낀 나는 그제야 한시름 덜 수 있었다.
아무리 뤼디거가 부모에게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소피아가 뤼디거의 죽음 이후 앓다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의 눈에 스친 것은 분명한 혼란이었다.
어쩌면 조금씩…….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
지금은 둘 다 제 감정을 꼭꼭 숨기고만 있지만, 한 발자국씩만 다가선다면. 그렇다면…….
하지만 먼 미래의 일이다.
지금으로서는 그 가능성을 본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나는 조용히 화답했다.
“저희도 행복하게 살 테니까, 공작 부인께서도 행복하셨으면 좋겠어요.”
소피아는 빙긋 눈을 접어 웃었다. 내가 본 그녀의 미소 중, 제일 자애로운 미소였다.
* * *
나는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오늘자 조간신문을 들어 올렸다.
나에게 청혼했다는 사실을 온 신문사에 광고를 내서 소문낸 뤼디거이니만큼, 결혼 발표 또한 그냥 넘어가질 않았다.
물론 이번에는 광고가 아니라 조금 더 기사의 형식을 갖추기는 했다.
‘내가 봤을 때는 기사가 아니라 소설이지만……. 이거 기사 검수 누가 한 거야? 이렇게 주관적 묘사 막 들어가도 되는 거야? 누가 봐도 자본의 입김이 들어갔습니다, 하고 외치고 있는데?’
나는 나직이 혀를 찼다.
내가 결혼식에 입을 드레스가 얼마나 화려한지, 보석이 얼마나 들었는지 구석구석 분석하지를 않나, 나와 뤼디거의 연애에 대해 한 편의 러브스토리를 쓰고 있질 않나.
심지어 러브스토리는 매일 연재되고 있는 수준이었다!
누군가가 소스를 흘리지 않았으면 나오지 않았을 법한 이야기들이, 현실보다 딱 두 배 정도 미화되어 적혀 있었다.
‘남 얘기였으면 재밌었을 텐데……. 안타깝게도 내 얘기란 말이지.’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신문을 덮었다. 내 맞은편 자리에 앉아 있던 뤼디거는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안절부절못했다.
물론 뤼디거가 나에게 허락도 안 받고 이런 얘기를 언론에 푼 건 아니었다.
허락도 없이 프란츠 암살 시도를 했다가 큰일 날 뻔한 뒤로, 사고를 치기 전에 허락을 맡아야겠다 정도의 프로세스는 입력된 모양이었다. 그건 꽤나 기특했다.
신문사에서 억측으로 말도 안 되는 기사를 써서 아닌 말이 도는 것보다야 이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허락하긴 했는데…….
기사가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지!
‘어휴. 허락한 내 잘못이다, 내 잘못이야.’
나는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이번 일로 뤼디거의 새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세기의 커플이니, 한 쌍의 잉꼬니, 역사서에 길이길이 남을 로맨틱한 이야기라느니 하는 식으로 나와 뤼디거를 한데 묶어 치켜세우는 표현을 읽을 때마다 그의 뺨이 씰룩이곤 했다.
타인의 시선을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남자라고 생각했는데, 저런 건 또 좋아한단 말이지.
그새 뤼디거는 아닌 척 신문 타이틀을 흘끔 곁눈질해 읽은 모양이다.
애써 무표정한 척하려 하지만, 입가가 들썩이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저 모습이 귀여워 보이는 걸 보니, 콩깍지가 씌긴 씐 모양이었다.
“빈터발트 준장님, 레이디 마이바움. 시간이 되었습니다.”
“벌써?”
나는 깜짝 놀라 시계를 보았다. 고풍스러운 탁상시계가 약속 시각을 가리키고 있었다.
약속이라 함은 바로 웨딩 화보 촬영, 아니, 화보 초상화 때문이었다.
뤼디거와 나의 결혼을 기념할 겸, 루카까지 해서 세 명의 초상화를 남기기로 했다.
물론 루카는 자기가 거기에 왜 끼냐며 펄펄 날뛰었다. 하지만 나는 루카가 없어서는 안 된다. 강하게 주장했고, 뤼디거 또한 나와 같은 의견이었다.
나와 뤼디거가 강경하니 어쩔 수 없이 허락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맘에 들진 않는지 루카의 입술이 댓 발 나왔다.
“아, 이걸 꼭 해야 해?”
“가족이 되었다는 증거라니까? 나중에 보면 추억이 될 거야.”
“추억은 뭐야, 그 신문 세밀화만 봐도 충분히 남겠는데 뭐.”
“물론 그것도 추억이지. 하지만 나중에 네 사촌한테 보여줄 만한 추억거리는 아니잖아?”
“사, 사촌? 그, 그런 말을 잘도 한다!”
순간 루카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하여튼 엉큼하긴. 이래서 어린애가 너무 많은 걸 알면 안 돼.
나는 태연히 받아쳤다.
“못할 게 뭐 있어? 아니면 뭐야. 사촌이 생기는 건 싫어?”
“시, 싫다는 게 아니라!”
루카가 버럭 외치며 자리에서 일어선 순간, 그림을 그리고 있던 화가가 심각한 얼굴로 주의를 줬다.
“도련님, 가만히 계셔주십시오!”
“거봐, 조용히 있어야지.”
나는 킥킥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맨날 루카에게 공격만 당하다 보니, 이렇게 한 방씩 먹일 때마다 재미있어 견딜 수가 없었다.
화가가 큰 한숨을 내쉬며 덧붙였다.
“어린애라 그런지 가만히 있는 게 힘든 모양입니다. 일단 구도는 잡았으니, 도련님은 잠시 나가 계셔도 됩니다.”
“어린애는 무슨……!”
화가의 말에 루카가 발끈했다.
자기가 스스로를 어린애라 주장하는 건 스스럼없이 하면서, 남이 자기를 어린애 취급하는 걸 죽도록 싫어하는 루카다. 화가를 쏘아보는 루카의 푸른 눈이 흉흉했다.
그 눈빛이 얼마나 살벌한지, 화가는 움찔하며 조심스레 덧붙였다.
“이모부……. 아니, 삼촌……. 하여튼 준장님을 보십시오. 꿈쩍도 안 하시는 것이 늠름하지 않습니까.”
복잡한 촌수에 한참을 횡설수설하던 화가는 결국 뤼디거의 호칭을 준장으로 고정했다.
뤼디거는 것 보라는 듯 더욱 미동도 하지 않았다. 무슨 조각상에라도 빙의된 듯한 모습이었다.
그 꼴을 보는 루카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이러다간 루카의 저 미모가 반의 반도 초상화에 표현이 안 되게 생겼다.
마음이 다급했던 나는 루카를 도발했다.
“나중에 또 그려야 하는데, 벌써 지치면 어떻게 하려고?”
“뭐? 이 짓을 또 해야 해?”
“그럼. 너 나중에 입학했을 때도 있고, 뤼디거 씨가 공작이 됐을 때도 있고…….”
“무슨 행사마다 할 생각이야?”
루카는 진저리를 치며 목이 졸린 듯한 소리를 냈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과장스럽게 목소리를 높였다.
“당연하지! 남는 건 사진, 아니, 그림밖에 없다? 싫으면 사진기 발명하든가!”
루카는 구시렁댔다. 그렇게 반항적인 태도를 계속해서 보이던 루카가 한참 끝에 슬며시 물었다.
“……사진기가 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