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try changing the genre RAW novel - Chapter 158
장르를 바꿔보도록 하겠습니다 외전 2화
외전 2 신혼생활
보석가루가 바닥에 소복하게 쌓일 정도로 어마어마한 규모의 결혼식이 끝나고, 드디어 첫날밤이 되었다.
이 첫날밤을 어디서 치를 거냐는 걸로도 한참 말이 많았었다.
신접살림을 차리는 릴라니벨인가? 아니면 빈터발트 가의 타운하우스? 아니면 왕궁?
하지만 선왕이 강력하게 우겼다.
“아니, 결혼해 놓고 다음 날 문안 인사도 안 올 셈이냐? 어? 그렇게 날강도처럼 날름 데려갈 생각이야?”
선택할 것이 하나 줄었다.
그러면 결혼식을 왕궁에서 했으니, 빈터발트 가의 타운하우스를 첫날밤 장소로 잡는 게 어떻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물론 선왕은 그것도 반대했다.
“왕궁이 뭐가 어때서! 안 그래도 럼가트 왕궁의 별궁은 타국에도 아름답다 유명하지 않느냐. 거기에 신방을 차리면 되지!”
선왕은 자신이 많은 것을 양보했지 않느냐며 뤼디거를 양심도 없는 파렴치한 놈으로 몰아갔다.
물론 뤼디거는 추호도 신경 쓰지 않았지만, 내가 신경 쓰였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남편이 처가에서 미움받는 것보다야 예쁨받는 쪽이 낫지 않겠는가!
한마디로 답이 정해진 이야기였다.
‘왜 신혼여행이 생겼는지 알 것 같다니까.’
결국 왕성에서 첫날밤을 치르게 된 우리는 선왕이 그리도 자신하던 별궁으로 향했다.
흰 대리석 기둥은 달빛을 받아 파르스름하게 빛났고, 겨울답지 않게 짙은 꽃내음이 코끝을 간지럽혔다.
‘침대가 커도 너무 크단 말이지.’
나는 방 안에 놓인 침대를 가느다란 눈으로 흘겨보았다. 마냥 누워 자는 것 말고도 한 바퀴 빙그르르 돌면서 별의별 짓을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포용력에 나직이 혀를 찼다.
조명은 또 어찌나 은은한지. 대놓고 판을 깔아놓았다 소리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내가 신방을 휘휘 둘러보는 사이, 뤼디거는 한쪽 구석에서 주저주저하며 서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듯한 기색이었다. 게다가 긴장까지 한 듯, 그의 무뚝뚝한 낯은 묘하게 파리하게 질려 있었다.
내 옷을 고르거나 보석을 고르는 일 같은 것들은 깜짝 놀랄 정도로 능숙하면서, 이런 일에는 서투른 것이 되레 내 구미를 당겼다.
나는 타는 속을 감추며 최대한 자연스럽게 침대를 향해 걸어갔다.
침대에 걸터앉은 나는 뤼디거에게 빙긋 미소 지었다.
“그러고 보니……. 저 보여주려고 운동했다면서요.”
“……예.”
뤼디거는 무언가에 홀린 듯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순종적인 태도에 심장이 두방망이질 쳤다. 나는 애써 태연한 척하며,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준비를 했으면 보여줘야죠.”
“지, 지금 말씀입니까?”
“그럼 지금 말고 언제요?”
“아닙니다. 당장 보여드리겠습니다.”
내 한쪽 눈썹이 치켜 올라가기가 무섭게 뤼디거가 후다닥 견장을 떼고 재킷의 단추를 끌렀다.
그렇게 재킷이 떨어져 내리고, 셔츠도 떨어져 내리고……. 어슴푸레한 분위기 속에서 뤼디거의 잘 짜인 몸매가 드러났다.
원체 이목구비도 뚜렷하기 때문일까. 얼굴에 드리운 음영이 그를 더욱 분위기 있어 보이게 했다.
흑백 사진 속 모델 같은 분위기에 나도 모르게 잠시 넋을 놓았다.
안 되지, 안 돼.
나는 재빨리 정신을 수습하곤 엄한 목소리로 뤼디거를 채근했다.
“어두워서 그런가……. 잘 안 보이네요. 좀 더 가까이 와주시겠어요?”
“조금 더…… 말입니까?”
“네. 조금 더.”
그렇게 한 발짝 한 발짝 나에게 다가온 뤼디거는 바로 코앞까지 다다랐다.
나는 여전히 옷을 꽁꽁 입은 채고, 뤼디거만 상체를 홀랑 벗겨 감상하고 있으려니 내가 너무 파렴치하진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뭐 어때! 이런 건 원래 뻔뻔하고 파렴치한 사람이 승리자인 거라고!’
나는 그렇게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하며 뤼디거의 허리를 끌 어당겼다.
뤼디거의 몸이 바로 코앞에 우뚝 섰다. 바로 내 콧대가 있는 곳에 그의 오목하게 들어간 배꼽이 자리하고 있었다.
‘밑에서 보니까 정말…… 가슴 넓네.’
나는 멍하니 그의 가슴을 바라보았다. 단단한 가슴 근육부터 선명히 드러난 복근까지. 항상 그에게 끌어안기며 그 품의 단단함을 예측해 왔는데, 드러난 것은 상상 이상이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만져봐도…… 되죠?”
“유디트 씨 것이니 당연합니다.”
그리 답하는 뤼디거의 기색이 조금은 뿌듯해 보였다. 그럴 만도 했다. 이런 몸매는 운동한다고 해서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전생에서는 이런 몸매를 얻기 위해 부작용을 감수하며 스테로이드제 투약까지 하던데, 하물며 이 세계는 그런 약물도 없었다!
‘그래. 부작용 없는 실속형 근육으로 다져진 몸매가 최고지.’
나는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며 조심스레 그의 복근을 향해 손을 뻗었다.
내 손은 그의 배꼽을 지나 세로로 갈라진 복근의 틈을 지났고, 이내 그의 가슴에 닿았다. 가슴은 어찌나 단단한지, 손가락에 힘을 줘도 좀처럼 들어가지가 않았다.
내가 그렇게 한참 동안 그의 가슴을 매만지며 감탄하고 있는 사이, 뤼디거가 나직이 신음을 흘리며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음.”
“이상해요?”
“부끄럽습니다.”
“부끄러워요?”
뤼디거가 부끄럽다니. 도대체 부끄러울 일이 뭐가 있단 말인가?
당황한 내가 깜짝 놀라자, 뤼디거는 수줍게 속눈썹을 내리깔며 중얼거렸다.
“유디트 씨가 불만족스러우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이런 몸을 가지고 불만족이라니. 아니요, 오히려 만족, 대만족입니다!
나는 좀 더 적극적으로 내 만족감을 표현하기로 했다.
“정말 뤼디거 씨 몸 좋네요.”
“괜찮습니까?”
“네. 제가 본 남자 중 최고예요.”
“다행입니다.”
뤼디거가 활짝 웃었다. 진심으로 흡족해하는 만족감 어린 미소였다.
뭐가 그렇게 좋을까. 다른 남자들하고 비교하는 것에 기분 나쁘진 않을까 싶었는데, 역시 스스로에게 자신감이 넘쳐서 그런지 별로 개의치 않는 모양이었다.
그러면……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나.
나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그의 가슴팍부터 시작해서 손가락을 슬슬 그어 내렸다. 그러고는 손가락을 그의 허리춤에 걸친 채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몸은 됐고……. 그럼 이제 다른 것도 확인해 보고 싶은데.”
그러고는 그대로 뤼디거의 허리춤을 침대 쪽으로 잡아당겼다.
원래대로라면 내가 그를 침대로 던져 넣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하지만 내 손짓이라면 죽은 척할 생각도 만만인 뤼디거는 내 손짓을 따라 그대로 침대로 무너졌다.
커다란 체구의 그가 내던져지는 충격에 침대가 크게 출렁였다.
내 침대였다면 매트리스 상태가 조금 신경 쓰였을 테지만, 오 늘만 쓰고 말 침대 아닌가. 뭐, 애초에 이러라고 크고 넓은 거로 준비해 준 거잖아?
나는 침대에 누운 뤼디거의 위로 몸을 기울였다. 뤼디거는 나를 올려다보며, 필사즉생의 각오를 하듯 결연하게 답했다.
“무엇이든 유디트 씨 기대를 충족시키고자 노력하겠습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해사하게 미소 지었다. 여러모로 기대되는 밤이었다.
* * *
기대대로, 아니, 그 이상의,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딱 죽기 일보 직전까지 갔다 온 밤이었다.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고 반응도 순진하니 잡아먹는 맛이 있었는데, 그런 풋풋한 맛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나중에는 내가 잡아먹히는 줄 알 정도였다.
배우기는 어찌나 빨리 배우고, 체력은 또 얼마나 좋은지…….
나도 체력으로는 만만치 않다고 생각했는데, 직업군인을 얕보는 게 아니었다.
지친 내가 그만하자고 한참을 애원해도 울망울망한 눈으로 올려다보는데 어휴…….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 새는 줄도 모른다더니, 딱 그 짝이었다.
그는 처음 운전대를 잡고는 자신의 한계를 시험이라도 해보듯 전속력으로 내달렸다.
때마침 차는 기름도 빵빵하게 채워진 상태였고, 마력도 상당했다. 이제 기름이 떨어질 때까지 달려줄 도로만 있으면 되는데…….
‘그러다 내가 죽지, 죽어.’
그렇게 새벽까지 시달린 나는 아침 새 우는 소리에 선잠에서 깨고 말았다.
운동부 생활의 잔재인지, 아무리 몸이 고되어도 잠에서 빨리 깨버리곤 했다.
나는 비스듬히 들이치는 햇살을 보며 지금 시간을 가늠했다. 아마 평소 일어나던 시간을 두 시간 정도 넘긴 듯싶었다.
보아하니 나를 뒤에서 끌어안고 있는 뤼디거는 진즉 잠에서 깬 것 같았다.
일어났으면 침대에서 일어나든가, 아니면 다시 자든가. 왜 계속 이러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뤼디거를 재촉했다.
“이제 일어나야 해요, 뤼디거 씨.”
“싫습니다.”
“어허.”
“계속 유디트 씨와 붙어 있고 싶습니다.”
뤼디거가 칭얼대듯 들러붙었다. 알몸으로 달라붙는 거한이란 밝은 햇살 아래에서는 부담스럽기 짝이 없는 존재였다.
“아직도 믿기지가 않습니다.”
“어제 내내 안 믿긴다고, 몇 번이나 확인해 봐야겠다고 했잖아요. 그걸로도 성에 안 차요?”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제 뤼디거에게 시달린 일을 생각하면, 솔직히 지금 이 남자가 양심은 있나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뤼디거 빈터발트는 양심과는 거리가 먼 사내였다.
그는 나를 끌어안은 팔에 힘을 주며 더더욱 뻔뻔스레 말했다.
“신혼부부가 다소 늦게 일어나더라도 다른 이들은 별로 이상하게 생각 안 할 겁니다.”
“이상하게 생각은 안 하지만 방해할걸요.”
“일어나! 아침이야!”
“……이렇게요.”
때마침 방문 너머에서 들려온 루카의 외침에 뤼디거의 얼굴이 드물게 찌푸려졌다.
“설마 루카가 매일 아침 이렇게 찾아오진 않겠죠.”
“이게 바로 첫째가 있는 집에서 둘째를 갖기 힘든 이유랍니다. 시도 때도 없이 들이닥치는 첫째 저지하기가 쉽지 않거든요.”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나라고 해서 루카가 아침부터 들이닥칠 거라 예상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껏 행동 패턴을 봤을 때 대충 감이 오지 않던가.
그렇게 우리가 소곤거리는 사이, 루카는 조금도 기다리질 못하겠는지 다시 한 번 목청껏 외쳤다.
“아직도 안 일어났어? 도대체 언제 일어날 셈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