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try changing the genre RAW novel - Chapter 163
장르를 바꿔보도록 하겠습니다 외전 7화
겉으로는 투닥거려도 이사벨라와 로라는 꽤나 사이가 좋았다.
그냥 그런 관계를 서로 즐기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로라가 이번에 와인도 만들었다면서요? 하여튼 부지런하다니까.”
“세상에는 주어진 일만 하는 사람과 없던 일도 만들어서 하는 사람이 있지. 로라는 단언컨대 후자야.”
“동감이에요. 솔직히 저도 어지간히 다사다난한 인생을 살았지만, 걔처럼 부지런한 사람은 처음 봤어요.”
“그래. 걔만큼 부지런한 사람은 많아도, 걔처럼 부지런한 사람은 없다니까? 로라는 확실히 생산적이지.”
나는 이사벨라의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뤼디거도 그렇고 루카도 그렇고 부지런하기론 따를 자가 없었지만, 로라의 부지런함과는 궤가 달랐다.
“하여튼 푹 쉬다 가. 여기는 귀족답지 않게 굴어도 뭐라 할 사람 없으니까.”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요.”
이사벨라가 씁쓸히 웃었다.
버켄레이스 가에서 이사벨라를 반기기는 했지만, 그렇다 해서 그곳이 그녀에게 마냥 살가운 곳은 아니었다.
그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건 바로 나였고.
내가 루카의 엄마로 빈터발트 가에 딱 입성했을 때, 지금의 이사벨라와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백작이 아무리 이사벨라를 아끼고 반겨도, 신분 상승을 한 이사벨라를 향한 은근한 시기 질투가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나마 뤼디거와 루카가 많이 방어해 줬지만…….
이사벨라는 그럴 상대도 딱히 없으니 더 곤혹스러울 것이다.
이사벨라가 한숨과 함께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래도 버켄레이스에서의 생활이 딱히 힘들진 않았어요. 마님 덕에 대놓고 괴롭히는 이들은 없었거든요.”
“나? 내가 무슨 도움이 됐다고.”
“제가 마님 이름을 좀 팔았죠. 다비가 버켄레이스의 후계자가 된 건 전부 마님께서 가호한 덕이라는 소문을 냈거든요. 소문 쓰는 법에 대해 준장님을 보고 좀 배웠죠.”
이사벨라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차기 빈터발트 공작 부인이시며 왕족이신 마님이 제 뒷배로 있는데, 그 누가 감히 저에게 트집을 잡겠어요? 마님 덕에 호의호식했죠, 뭐.”
“뭐, 따지고 보면 틀린 말은 아니네.”
내 심드렁한 반응에 이사벨라가 작게 미소 지었다.
잘 풀렸다 해도 마냥 좋은 이야기는 아니다. 나는 넌지시 화제를 돌렸다.
“이번 여름엔 시끌시끌하겠네. 너희 가족도 있고, 해터 가에서도 찾아오기로 했고…….”
“해터 가라면……. ‘그’ 클로이 해터?”
“응.”
이사벨라는 해터 가와 따로 만난 적은 없지만, 건너 건너 이야기를 들어 대략의 사정을 알고 있는 상태였다.
“또래 친구가 많아져서 다비도 좋아하겠네요. 그러고 보니 클로이가 아프다고 들었는데, 요양차 오는 건가요?”
“겸사겸사.”
“어린애가 아픈 건 확실히 마음이 안 좋네요. 빨리 나으면 좋겠어요.”
프란츠의 방치로 다비가 사흘 동안 굶은 뒤 한참 앓았던 일이 떠오른 듯, 이사벨라의 낯이 좋지 않았다.
어떻게 위로해야 할까. 차라리 모르는 척하는 게 낫지 않을까 잠시 고민하는 사이, 타이밍 좋게 로라가 등장했다.
“마님, 저녁 식사 준비가 다 되었어요.”
“그래. 이사벨라, 우리 로라의 칠면조 요리 솜씨를 보러 가자구.”
“로라가 요리도 하나요?”
“음……. 정확히는 로라의 칠면조 요리 레시피에 가깝지.”
더욱 정확히 말하자면 로라의 어머니의 레시피였지만.
내가 말을 덧붙이기가 무섭게 이사벨라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렇다면 안심이네요.”
“잠깐, 이사벨라. 그 말은 마치 제 요리 실력을 불신하는 것처럼 들리는데요.”
“어머, 너무 확대 해석하지 말아요.”
“확대 해석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그 말 맞잖아요?”
둘은 나이 차가 꽤 났지만, 투닥거리는 모습만 본다면 견원지간 또래 친구 같았다.
‘나도 레아랑 저러고 놀았었지…….’
로라와 끊임없이 입씨름하는 이사벨라의 낮에서 어느샌가 아까의 어두움은 자취를 감추었다.
한결 화기애애해진 분위기 속에서 나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하지만 상황은 마냥 흐뭇하게 흘러가지 않았다.
“그렇게 자신의 객관적 해석에 자신 있으시면, 부인께서는 어떻게 느끼셨는지 물어보든가요.”
“좋아요! 마님! 마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자, 잠깐. 다행이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화살이 나에게 향하는 걸 바란 건 아니었는데……?
괜히 두 사람 사이에 끼이고 싶지 않았던 나는 후다닥 그 자리를 도망쳤다.
“칠면조 식겠다, 얼른 가자!”
“마님!”
“부인!”
* * *
이사벨라와 다비가 오고 나서 며칠 뒤, 해터 가 또한 릴라니벨에 도착했다.
원래 오기로 예정되었던 때보다 이른 방문이었다.
근처의 역으로 마차를 보내 그들을 데려왔는데, 난생처음 해본 기차 여행에 클로이의 얼굴은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어서 오렴, 클로이!”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인. 그런데…… 준장님께서 안 보이시네요?”
해터 부인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뤼디거가 내 곁에 없는 게 그리도 이상한가 싶었다.
“다들 오자마자 뤼디거부터 찾네. 이사벨라도 그러더니.”
“오죽 옆에 붙어 있었어야지.”
“그렇게까지 붙어 있진 않았던 것 같은데.”
“그렇게까지 붙어 있었어.”
루카의 목소리 끝에 묘한 힘이 들어갔다.
해터 부인은 투닥거리는 루카와 내 모습을 불안스레 바라보았다. 우리가 싸운다고 착각했는지, 그녀는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운을 뗐다.
“항상 부인을 뵐 때마다 준장님이 함께 계셨던 것 같아서 드린 말씀이지 별다른 의도가 있는 건 아니었어요.”
“알아요. 루카랑은 항상 이래요. 요놈의 되바라진 꼬맹이.”
“흥.”
나는 루카의 뺨을 살짝 꼬집었고, 루카 또한 더 반론하지 않고 코웃음과 함께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가벼운 해프닝이 지나고, 해터 부인과 함께 저택으로 돌아온 나는 이사벨라와 해터 부인을 서로 소개해 주었다.
어쩌다 보니 일정이 틀어졌던지라 해터 부인에게 미처 이사벨라가 와 있다는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나는 다소 소심한 해터 부인이 당황하지는 않을까 조금 걱정을 했다.
하지만 그건 나의 기우였다.
두 사람은 의외의 공통점이 있었다.
“크라벳가 27번지에 살았었다구요?”
“네……. 혹시 뭔가 문제가 있나요?”
“저는 슈트라세가 12번지에서 살았었어요.”
“슈트라세요? 크라벳 바로 옆 골목이잖아요!”
그렇다. 엠덴 시골 출신인 나와 달리, 둘 다 블루옌의 빈민가 출신이었던 것이다.
옛 추억을 떠올린 두 사람은 봇물 터지듯 대화를 쏟아냈다. 어찌나 신이 났는지, 내가 소외될 정도였다.
하지만 난 그 상황이 오히려 반가웠다. 둘 다 자신들이 속한 신분에서는 비주류에, 남편도 없이 혼자가 아니던가.
이런 식으로라도 옛 추억을 나눌 상대가 있는 쪽이 좋았다. 더군다나 그들이 빈민가에서의 일을 추억으로 곱씹을 수 있는 것은 지금 그녀들의 생활이 예전보다 훨씬 여유로워졌기에 할 수 있는 것이기도 했으니까.
쌓이고 쌓인 그들의 이야기는 하루 이틀로 해결될 것이 아니었다. 나는 둘이 화기애애하게 대화할 수 있도록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는 우리 작은 꼬마들이 뭐 하고 있나 잠깐 보고 올 테니까, 편하게 대화하고 있어.”
“어머, 저희가 너무 들떴나 봐요. 초대해 주신 부인께서 계신 자리에서…….”
“아니야. 애들이 조용한 게 뭔가 수상해. 애들 감시할 겸 다녀올 테니 편하게 있어.”
둘은 나를 배웅하려는 듯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는 그럴 필요 없다 손을 가볍게 내젓고는 방을 나섰다.
나 좋을 대로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저 자리의 행복을 만드는 데 나 또한 기여한 바가 조금은 있는 것 같았다.
그리 생각하니 가슴속에 뿌듯함이 치고 올랐다. 복도를 밟아 나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 * *
2층 루카의 방에 올라간 나는 허리에 팔을 얹고 푸욱 한숨을 내쉬었다.
딱히 말썽을 부리고 있진 않았다. 다만 건강한 어린이들이 따사로운 낮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져 있을 뿐이었다.
“혹시나 해 와보길 잘했네……. 날씨도 좋은데 다들 여기 박혀 뭐 하는 거야!”
나는 목청을 높였다.
방 안에는 한창 뛰어놀 나이의 아이들이 다들 책 하나씩 잡고 있었다. 차라리 책이 재밌어서 보고 있으면 다들 지식욕이 높구나 싶기라도 할 텐데, 루카를 제외한 다른 두 아이의 얼굴을 보니 그건 아닌 듯싶었다.
그럴 만도 했다. 우리 집에는 루카의 또래 애들이 볼 만한 책은 전혀 없기 때문이었다! 단 한 권도!
회귀자인 루카를 아무리 어린애처럼 대우한다 하더라도, 알 거 다 아는 루카에게 동화책을 읽으라고 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물론 동화책이 루카의 잊힌 동심을 찾아주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로 책장에 몇 권 끼워두긴 했다.
하지만 예전에 내가 아무것도 몰랐을 때 동화책이나 읽으라며 떠민 것이 그리도 복장 터졌는지, 루카는 동화책을 발견할 때마다 비아냥거렸다.
‘솔직히 마녀가 백설 공주를 죽이려고 한 건 외모 때문이 아니라 혈통으로 인한 정치적 정당성 때문이겠지. 그걸 외모만의 이유로 국한한 건 여자는 외모에만 신경 쓴다는 사고방식 때문이 아닐까?’
‘…….’
‘신데렐라는……. 귀족의 유산 분배가 이렇게 엉망으로 된다는 걸 믿을 수가 없네. 어떻게 변호사를 하나도 안 두고 후견인을 지정할 수가 있지? 게다가 신발을 신으려고 발뒤꿈치를 뭐 어쩐다고? 이거 애들이 보기에 너무 잔인한 거 아냐?’
‘…….’
‘그리고 잠자는 숲 속의 공주……. 공주가 자고 있는데 왜 입을 맞춰? 처음 보는 여자 아냐? 이 왕자 변태야? 네크로필리아?’
말하는 족족 틀린 말 하나 없다는 게 문제였다.
그렇게 동화책들은 루카의 입으로 오체분시 되어 흩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