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try changing the genre RAW novel - Chapter 165
장르를 바꿔보도록 하겠습니다 외전 9화
칭찬에 둘러싸인 클로이는 조금 상기된 얼굴로 물었다.
“이렇게 하면……. 저도 다비나 루카랑 같이 캐치볼 할 수 있는 건가요?”
“당연하지!”
“제가 힘이 약해도요?”
“상관없어. 나도 준장님이랑 같이 하는걸? 내가 준장님보다도 더 잘 던진다고.”
“부인께서 준장님보다 더 잘 던진다구요? 정말요?”
클로이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뤼디거와 내 팔 두께가 거의 두 배 가까이 차이나니 의아해하는 것도 이해가 갔다.
“그럼! 마냥 힘으로 던지는 게 아니거든. 자, 잘 봐봐. 내가 저기 있는 나무를 정확히 맞춰볼 테니까.”
나는 충동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나무를 가리키며 말했다.
나무와의 거리는 대략 15m 정도로 보였다.
소프트볼의 투구 거리인 14m보다 더 멀었지만, 포수의 미트에 비해 넓디넓은 나무 기둥의 면적을 생각했을 때 여유만만이었다.
3m 남짓 거리에서 공을 주고 받던 아이들은 그 다섯 배나 되는 거리에 입을 딱 벌렸다.
오로지 루카만이 심드렁했다. 루카가 넌지시 물었다.
“내가 잡아줘?”
“아냐, 이번엔 간만에 진심으로 던져보려고.”
내 전심전력이 어느 정도인지 아는 루카는 순순히 손을 들고 물러섰다.
나는 본격적으로 자세를 잡았다. 발로 바닥을 다지고, 글러브에 가볍게 공을 두어 번 던졌다.
집중하니 내 시야에 나무 기둥의 중심이 또렷이 보였다.
나직이 숨을 고른 나는 이때다 싶은 순간, 그대로 팔을 크게 휘둘렀다.
“흡!”
짧은 기합과 함께 공이 내 손끝을 떠나 뻗어 나갔다.
공은 빠른 속도로, 직선에 가까운 곡선을 그리며 앞으로 쇄도했다.
궤도는 정확했고 속도도 좋았다.
그대로 공이 나무 기둥을 명중시키는 일만이 남았다.
만약 불청객이 끼어들지만 않았더라면, 분명 그러했을 터였다.
빠악!
듣기만 해도 아픈 소리가 울렸다.
궤도 사이에 불쑥 끼어든 검은 물체는 바로 사람이었다.
내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심지어 그 상대는…….
“뤼, 뤼디거 씨!?”
“사, 삼촌!”
잠깐, 네가 여기서 왜 나와!?
뤼디거는 잠시 신음을 흘리더니, 그대로 바닥에 털썩 쓰러졌다.
빈볼 정도로 끝났으면 다행이련만, 하필이면 공을 맞은 부위가 머리였다.
전심전력 헤드샷이라니……!
사색이 된 나는 글러브를 바닥에 내동댕이치고는 그대로 뤼디거에게로 달려갔다.
“괜찮아요, 뤼디거 씨? 왜 갑자기 거기서 튀어나온 거예요!”
하지만 바닥에 쓰러진 뤼디거는 아무런 답도 하지 못했다.
도저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그의 가물가물한 눈에 심장이 철렁 떨어졌다.
“뤼디거 씨, 정신 차려보세요, 뤼디거 씨!”
나는 애타게 그를 부르짖었다. 내 간절한 외침에도 불구하고 뤼디거는 그대로 정신 줄을 놓았다.
나는 공황 상태에 빠졌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나지 않고 머리가 새하였다.
그렇게 내가 망연자실해서 기절한 뤼디거를 부여잡고만 있는 사이, 나보다 먼저 정신을 차린 루카가 재빨리 자리를 박찼다.
“의사, 의사를 불러올게!”
* * *
루카가 서두른 덕에 늦지 않게 의사가 도착했다.
하지만 뤼디거가 도통 정신을 차리지 못하니 어디가 어떻게 안 좋은지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니 내 불안감만 심해졌다.
이대로 뤼디거가 식물인간이 되기라도 하면 어쩌지.
이 상황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던 나는 안절부절못하며 방을 거닐었다.
다른 사람 탓이라도 하면 마음이 편해질 텐데, 하필이면 원흉이 나인지라 누구 탓도 못 했다.
단단하게 닫혀 있는 뤼디거의 눈을 보니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나는 뤼디거의 곁에 털썩 주저앉아 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러게 도대체 왜 안 하던 짓을 해서…….’
어찌 된 영문인가 하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생각보다 일찍 집에 도착한 뤼디거가 조용히 내가 있는 곳을 물었다 했다. 하녀가 나를 불러오겠다 하니 고개를 젓고 발을 옮겼다더라.
예정보다 일찍 돌아온 일로 깜짝 놀래주기라도 할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계획은 참으로 그럴듯했다.
하지만 찾아온 시기와 장소가 문제였다. 왜 하필 내가 전심전력 투구를 던지는 시점에, 왜 하필 그쪽 길로 향한 걸까?
뤼디거가 나타난 길에서는 우리가 있던 뒤뜰이 절묘하게 가려졌다. 사각지대인 것이다.
우리 이야기가 들리기는 하지만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지 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어딜 향해 공을 던지는 줄도 몰랐을 테고.
이렇게 재수 없을 수가 있다니. 신의 악독한 농간이 틀림없다.
나는 존재하는지도 모를 신의 욕을 줄줄이 늘어놓았다.
‘……아차, 이렇게 욕하다가 괜히 뤼디거 상태가 더 악화하기라도 하면 곤란하지. 신이란 신은 모두 끌어모아 기도해도 모자랄 판에…….’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한참 뒤에서야 그 사실을 퍼뜩 깨달은 나는 손바닥 뒤집듯 태도를 바꿔 신에게 간절히 빌었다.
‘뤼디거 씨가 좀 이상하긴 해도 마냥 나쁜 사람은 아니에요. 제발 뤼디거 씨가 정신을 차리게 해주세요…….’
내 기도가 하늘에 닿은 걸까. 한참 동안 미동도 하지 않던 뤼디거가 처음으로 신음을 흘렸다.
“음…….”
그토록 바라던 신호였다.
그의 곁을 지키고 있던 나는 다급히 의사를 불렀다.
“의사! 의사!”
내 외침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깜빡 소파에서 잠이 든 루카가 번쩍 눈을 떴고, 옆방에 대기하고 있던 의사 또한 바로 방으로 들이닥쳤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준장님께서 신음을 흘리셨네. 정신을 찾으시려는 모양이야.”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나는 호들갑을 떨었다.
잠시 후 뤼디거의 손가락 끝이 움직이더니, 그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며 들어 올려졌다.
초점이 맞지 않은 청회색 눈동자가 흐릿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몇 번 눈을 깜빡였다.
그 모습을 보니 애써 참았던 눈물이 왈칵 치밀었다. 나는 뤼디거의 손을 잡으며 걱정스레 물었다.
“뤼디거 씨, 괜찮아요?
순간 내 손 밑의 뤼디거의 손이 크게 움찔거렸다.
뤼디거의 눈이 느릿하게 나를 향했다. 당연히 괜찮다며 빙긋 웃어 보일 거로 생각했는데, 돌아온 것은 내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닌 어색한 시선이었다.
뭐지?
그의 눈빛에서 노골적으로 묻어나는 거리감에 나는 당황하여 그의 낯을 살폈다.
뤼디거의 시선이 나를 스쳐 내 뒤에 있는 의사에게 닿았다. 그는 낮게 침잠한 목소리로 운을 뗐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준장님께서 마님께서 던지신 공에 맞으셨습니다. 기억나십니까?”
의사가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물었다.
뤼디거가 나에게 얼마나 유난을 떠는지는 유명했다.
그런 뤼디거가 정신을 차리곤 내 질문에는 답도 안 한 채 의사에게 상태를 물었다?
무언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예감 때문일까. 의사의 얼굴이 파리하게 질렸다.
의사의 말을 곱씹던 뤼디거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준장? 마님? 다 무슨 소리인가. 내 직급은 대령일세. 아직 미혼이고 말이야.”
뤼디거의 말이 청천벽력처럼 떨어져 내렸다. 그의 말은 이상 했다. 마치, 그러니까…….
“아무래도……. 준장님께서는 단기 기억상실이신 것 같습니다.”
의사가 창백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설마 하기는 했지만 의사에게서 기억상실이라는 확답을 들으니 머리가 다 띵했다. 충격에 나도 모르게 몸이 휘청거렸다.
신이시여, 비록 제가 뤼디거가 정신 차리게 해달라고 빌긴 했지만, 그렇다 해서 정말로 정신만 차리게 해주신 건 너무 하잖아요!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지? 단기 기억상실이면……. 그래도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는 걸까? 그렇다면…… 기억이 돌아오기까지 얼마나 기다려야 하지?’
나는 포기하지 않고 희망을 계속해서 붙들었지만, 그 사이를 비집고 부정적인 생각이 계속해서 드는 것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만약 영영 기억이 돌아오지 않으면……. 아니, 일단 지금의 뤼디거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원래의 뤼디거는……. 3년 전의 뤼디거는 어떤 사람이었지?’
처음 뤼디거와 만난 이후로 너무 많은 일이 있었고, 그는 너무 많이 변했다. 그래서 과거의 그의 모습을 퍼뜩 떠올리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그래……. 과거의 뤼디거는 귀족적이고, 사랑이라고는 조금도 모르는, 주변 사람과의 관계라고는 건조하기 짝이 없는 소시오패스였다.
과연 지금의 뤼디거가 나에게 다시 한 번 반하는 운 좋은 일이 있을까? 조금은 회의적이었다.
내 목울대가 크게 움직였다. 다른 이들을 대하는 뤼디거의 태도가 갑자기 눈앞에 아른거렸다.
딱 잘라 선을 긋는 냉정함. 그 칼 같은 태도가 이제 나에게 향할 거라고 생각하니 바닥이 푹 꺼진 것처럼 어지러웠다.
어이가 없어 웃을 기력도 없다. 드라마에서 기억상실 운운할 때는 저게 저리 심각할 일인가 싶어 되레 우습기까지 했는데, 막상 당하는 처지가 되니 미치고 팔짝 뛰고 싶었다.
“일단…… 이모는 나가 있어. 내가 삼촌한테 상황을 설명할게. 보아하니…… 최근 삼 년간의 일은 아무것도 기억 못 하는 모양이니까.”
루카가 딱딱한 낯으로 나섰다. 뒤늦게 루카를 발견한 뤼디거의 눈이 크게 뜨였다.
“……요나스?”
루카 또한 전혀 기억 못 하는 모양이다. 앞으로의 일이 막막했다.
하지만 그렇기에 지금 이 상황을 외면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냐. 같이 있을게. 나 괜찮아.”
“그런 얼굴을 하고 말해봐야 설득력 없어. 가서 좀 쉬어.”
내 얼굴이 어떻길래.
나는 고개를 돌려 벽에 걸린 거울을 바라보았다. 핏기 없이 새하얗게 질린 여자가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