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try changing the genre RAW novel - Chapter 168
장르를 바꿔보도록 하겠습니다. 외전 12화
그렇다 해서 상황을 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었다.
나는 의사에게 어떻게 해야 뤼디거가 기억을 되찾을 수 있는지 물었다.
“당장 뾰족한 방법이 없습니다. 시간이 약이죠. 사실 이런 경우가 무척 드문지라…….”
의사는 어물어물 말끝을 흐렸다.
전문성이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지나가던 하인을 붙들고 물어도 할 법한 대답이었다.
나는 발을 동동 구르며 의사를 재촉했다.
“뾰족한 방법이 없어도 있게 만들어야 해. 정말 아무 방법도 없는 거야?”
“뇌진탕으로 인한 기억상실에 대해 가장 최근에 남겨진 기록은 낙마로 인한 것이었습니다만…….”
“다만?”
“문제는 기억상실 치료가 되기 전에 낙마 후유증으로 세상을 떴죠.”
나는 참담한 신음을 흘렸다.
의사 또한 답답한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좀 더 사례 연구가 필요합니다. 수도, 아니, 왕실에는 분명 관련된 연구를 한 의사가 존재할 겁니다. 왕실에 서신을 넣어 볼까요?”
왕실 이야기가 나오기가 무섭게 내 입이 딱 다물렸다.
왕실에 연락하자니, 혹여나 선왕에게 이 이야기가 흘러들어 갈까 걱정이 되었다.
루카가 말한 대로, 선왕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이 기회에 뤼디거와 이혼하라며 길길이 날뛸 테니까.
물론 단지 그뿐이다.
지금의 뤼디거 또한 나를 좋아하니, 이혼을 조장하려는 선왕의 시도는 씨알도 안 먹힐 것이다.
다만, 꼬리에 불붙은 망아지처럼 이리저리 요란스레 날뛰는 선왕의 행동이 무척이나 시끄럽고 번잡스러울 것이라는 게 문제라면 큰 문제였다.
안 그래도 정신없는 내 머릿속을 이리저리 휘젓겠지.
그건 절대 사양이다.
차라리 왕실의 도움을 피해 빙 둘러 가는 한이 있더라도, 최대한 선왕에게 이 소식이 들리지 않는 쪽이 나았다.
“왕실 말고 도움을 받을 만한 다른 곳은 없어?”
“아무래도 왕실 의사만 못하죠. 왕실 의사들이 콧대 높기는 하지만 준장님의 일이라면 왕실에서도 흔쾌히 자료를 공개할 것입니다. 혹시…… 꺼리시는 이유가 있으십니까?”
“왕실에 뤼디거 씨가 기억상실이라는 걸 밝히고 싶지 않아서 그래.”
“아……! 제가 생각이 얕았습니다.”
의사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차기 빈터발트 공작이 되실 준장님께서 기억상실이라는 사실이 왕실에 밝혀지면 곤란한 일이 많겠지요. 왕실이 아닌 다른 루트를 통해 최대한 조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입단속 또한 걱정 마십시오. 철저히 숨기도록 하겠습니다.”
“그, 그래 주면 고맙고.”
의사는 내가 정치적인 문제 때문에 뤼디거의 기억상실을 숨긴다고 단단히 착각한 듯싶었다.
따지고 보면 크게 틀린 말도 아니었다.
“하여튼 당신은 치료법을 알아내는 데에만 힘써줘. 지원금은 얼마든지 댈 테니까.”
“예!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의사는 비밀 지령이라도 받은 것처럼 군기가 바짝 들어 외쳤다.
의사가 치료법을 알아내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나라 해서 그동안 손을 놓고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뤼디거를 고칠 방법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나는 내가 봤던 각종 매체에서 어떻게 기억을 되찾았는지를 떠올려 보았다.
하지만 별로 쓸모는 없었다.
거기선 어떻게 회복하냐가 중요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 벌어지느냐가 중요했지.
그래도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할 만큼 절박한 상황이었다.
나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싸맸다.
‘작중에서는 보통 머리에 비슷한 충격을 주곤 했지. 차에 다시 치이거나 떨어지거나……. 그런데 그런 충격을 한 번 더 받으면 기억을 되찾아도 목숨을 잃는 거 아냐? 무슨 리모컨 고치는 법도 아니고, 뭐 그런 성의 없는 해결 방법이…….’
나는 나직이 혀를 찼다.
그런 어처구니없는 방법을 시도할 수는 없었다.
‘계속해서 과거를 상기시켜 주는 건 어떨까……. 기억상실보다는 치매 환자한테 쓰는 방법이긴 한데, 밑져야 본전이니까.’
적어도 머리에 비슷한 충격을 주는 것보다야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최대한 뤼디거의 곁에서 옛날 일을 떠올리게 하려 애썼다.
집 안에 손님을 둘이나 불러둔 상황이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이사벨라와 해터 부인 또한 뤼디거의 곁에 있는 쪽이 나을 거라며 내 등을 떠밀었다.
그 결과, 하루 24시간 중 18시간 가까이는 항시 뤼디거와 붙어 있게 되었다.
“그래서 그때 뤼디거 씨가 반지를 하나 더 꺼냈을 때 다들 깜짝 놀랐죠.”
“그렇습니까? 혹시 지금 손에 끼고 계신 반지가?”
그리 말하며 뤼디거는 내 손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익숙한 사내의 낯선 손길에 나도 모르게 손가락이 움츠러들었다.
괜히 어색했다.
“맞아요. 그때 청혼은 신문에도 실렸었어요. 기억나세요?”
나는 뤼디거에게 그 당시의 신문 1면을 보여주었다.
세밀화로 그려진 당시의 상황은 다시 봐도 왕실 연회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난장판이었다.
루카가 왜 그런 걸 모으냐며 핀잔줄 때도 아랑곳하지 않고 추억 삼아 차곡차곡 모았는데, 이런 쓸모가 있을 줄이야.
나는 모아둔 다른 신문을 꺼내 들며 옛날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리고 이것도……. 이건 뤼디거 씨가 저한테 청혼하는 다른 사람들을 견제하려고 낸 전면광고예요. 좀 더 정확히는 선왕 전하를 견제하기 위해서였지만.”
“제가 가십지에 광고를 올렸단 말입니까?”
뤼기거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되물었다.
그러고 보니 초반의 그는 가십지에 대해 상당히 반감을 지니고 있었던 기억이 났다.
그래 놓고선 조금의 거리낌도 없이 가십지를 활용했단 말이지…….
필요하다면 무엇이든 이용하는 데 거리낌이 없는 그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떠올리니, 절로 혀가 내둘러졌다.
하여튼, 나는 그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있는 추억 없는 추억을 다 끄집어냈다.
하지만 뤼디거의 머릿속에 데이터베이스만 새로 차곡차곡 쌓일 뿐, 과거의 기억이 불러일으켜지는 일은 없었다.
좀처럼 기억이 돌아오지 않으면 불안한 게 보통일 텐데도, 뤼디거는 무척이나 담담했다.
여유롭고 느긋했고, 겉으로만 보기에는 기억상실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오히려 그는 필사적으로 그의 기억을 되살리려 하는 나를 만류했다.
“제 기억을 되찾기 위해 그렇게까지 필사적일 필요 없습니다, 유디트 씨.”
“하지만 전부 저 때문이잖아요. 미안해서 그래요.”
“미안해하지 마십시오. 저는 정말 괜찮습니다.”
“그래도.”
“굳이 급하게 기억을 되찾아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업무에 관한 것은 제가 문서로 남겨놨고, 가문에 관한 것은 다시 인수인계받으면 되는 일입니다. 당신과의 추억을 잊은 것이 제일 안타깝지만……. 그에 열중하느라 지금 이 순간을 허투루 보내고 싶진 않습니다.”
뤼디거 본인이 그리 말하니 나로서는 그런가, 하고 수긍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기억상실에도 불구하고 태연자약하기 그지없는 뤼디거지만 눈치 보는 일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유디트 씨께서는 제 외모가 마음에 들어 결혼을 결심했다고 하셨지요.”
“네? 네네.”
“지금은요? 이제 나이가 먹어 좀 별로지 않습니까?”
“지금도 예뻐요.”
기억을 잃기 전과 똑같은 질문을 하는 뤼디거를 보며, 아, 사람이란 쉬이 달라지지 않는구나를 깨달았다.
그 순간 나는 퍼뜩, 뤼디거의 기억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냥 이대로 살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에 순응한다기보다는 포기에 가깝기는 하지만……. 뤼디거 본인 성정은 그대로니까 상관없지 않을까?’
하지만 그건 오산이오, 내 착각이었다.
현실의 벽에 가로막힌 내가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머무는 사이, 이대로 나태하게 그의 기억 상실을 방관해서는 안 된다는 결심을 하게 될 사건이 터졌다.
“마님!”
어린 하녀 하나가 훌쩍훌쩍 울며 나를 찾아왔다.
나에게 오늘 있을 일정을 보고 하던 로라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하녀를 다그쳤다.
“베스, 울면서 막무가내로 마님을 찾아오면 어떻게 해? 아무리 마님이 잘 대해주셔도 그렇지…….”
“너무 그러지 마, 로라. 그래. 왜 그러니, 베스? 무슨 일이야.”
내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타이르자, 베스는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청소하다 화병이라도 깼나 싶었는데, 꺼이꺼이 서럽게 우는 것이 무척 큰일이라도 벌어진 듯싶었다.
“주, 준장님이…….”
“뤼디거 씨가 왜?”
한참의 오열 끝에 갑자기 불쑥 튀어나온 것은 바로 뤼디거였다.
생각지도 못한 그의 등장에 나는 얼굴을 딱딱하게 굳히고 베스의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렸다.
로라가 베스에게 손수건을 건넸다.
훌쩍이던 베스가 팽, 코를 풀었다. 베스는 아직 코맹맹이인 목소리로 훌쩍이며 말했다.
“준장님이 저보고 해고라고 하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