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try changing the genre RAW novel - Chapter 169
장르를 바꿔보도록 하겠습니다 외전 13화
“해고? 왜? 어째서?”
“저도 모르겠어요. 실수한 것도 없고, 그저 방 청소를 하다 준장 님이 들어오셨길래 오늘 날씨가 좋다고 아침 인사를 건넸을 뿐인데…….”
베스는 억울하다는 듯 울먹였다.
목소리에는 당황스러움이 역력히 묻어났는데, 정말 영문을 모르겠는 모양이었다.
나와 같이 베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로라가 질린 목소리로 작게 중얼거렸다.
“옛날의 도련님이다…….”
그랬다.
잊혀진 뤼디거의 프로해고러의 본성이 뛰쳐나온 것이었다.
일단 울고 있는 베스를 위로하는 것이 먼저였다. 나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베스를 달랬다.
“……걱정 마, 베스. 내가 뤼디거 씨에게 말씀드릴 테니까. 해고는 취소야. 오늘은 좀 쉬도록 해. 로라, 주방장에게 말해서 베 스에게 따듯한 우유랑 쿠키를 좀 챙겨줘.”
“네, 알겠어요. 어휴, 이게 웬 일이람.”
로라는 투덜거리며 베스를 데리고 방을 나섰다.
베스를 다독이는 로라의 목소리가 닫히는 문 사이로 스며들었다.
“마님이 다 해결해 주실 거야. 너도 알잖아. 준장님이 아무리 쇠고집이어도 마님 한마디에 사르르 풀리는 거.”
“그건 그렇지만……. 준장님이 그런 모습 처음 봤는걸요. 제가, 저는 모르지만 정말 엄청난 실수를 저지른 게 아닐까요?”
“아, 그러고 보니 넌 여기 온 지 얼마 안 됐지. 걱정 마. 내가 확신하는데, 넌 실수 하나 안 했을 거야. 준장님 원래 성질머리가 더러……. 아니, 까다로우셨거든.”
두런두런하던 목소리가 멀어져 갔다.
혼자 남은 나는 답답함에 푹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기억을 잃었다는 건…… 그동안에 바뀐 것들도 전부 원래대로 돌아갔다는 소리지.’
지금껏 가르쳐 왔던 것이 모두 사라졌다는 것은 생각보다 허무했다.
도대체 뭘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까 싶은 막막함이 치솟았다.
‘일단……. 뤼디거에게 한마디 해야겠어. 그가 예전 대로라면 하인들이 남아나질 않을 게 분명해.’
하지만 그런 나의 다짐은 한발 늦었다.
뤼디거에게 한마디 하려 일어서기가 무섭게 내 방에 하인들이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마님!”
“마님, 준장님이……!”
생각하기가 무섭게 끝도 없이 들어오는 하인들을 보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 * *
“그래서, 베스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한 건가요?”
“베스? 베스가 누구죠?”
“당신이 아침에 제일 먼저 해고한다고 한 하녀요.”
“유디트 씨는 참…… 상냥하군요. 잡일 하는 하녀 이름도 다 외우고 계십니까?”
“이 집에서 일하는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게다가 항상 같이 있잖아요. 그 정도는 다 외우는 게 당연하죠. 당신도 그랬고요.”
“제가 뭘 그랬단 말입니까?”
“당신도 하인들 이름을 다 외웠다고요.”
“제가 말입니까?”
뤼디거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깜빡였다.
그럴 만도 했다. 원래의 뤼디거는 같은 사관학교 동기들도 친구라 인정하지 않는 사내 아니던가.
물론 예전의 그라 해서 하인들의 이름을 전혀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마부 한스나 집사 빈센트 등, 꽤나 친밀한 사이인 하인들도 있었다.
다만 그것은 모두 쓸모에 의해서였다.
‘이름을 알아두는 게 편리하기에 기억해 두었다, 에 가까워 보였지…….’
그런 만큼 자신이 일개 잡일을 하는 하인들의 이름을 모두 기억했었다는 사실에 당황하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그건 언제까지나 과거의 그였다.
“예, 지금의 당신은 이해 못 할 수도 있겠지만, 기억을 잃기 전의 당신은 이 저택에서 일하는 사람의 이름을 다 기억했어요.”
“…….”
쉬이 인정하기 어려워하는 뤼디거의 모습에 안타까운 심정이 들었다.
뤼디거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항복하듯 손을 들어 올렸다.
“좋아요. 제가 하인의 이름을 기억할 수도 있다 합시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그…….”
“베스.”
“베스라는 하녀는 빨리 해고하는 게 좋아 보입니다.”
“왜죠?”
“저에게 아침 인사를 건네더군요.”
“네?”
물론 베스도 뤼디거에게 아침 인사를 건넨 일밖에 없다고 했지만…….
정말 그 때문에 베스를 해고하겠다고 한 거야?!
내가 입만 벌린 채 아무 말도 못 하는 사이, 뤼디거는 당연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주인이 말을 걸기 전, 하녀가 주인에게 말을 건네는 것은 주제넘은 짓입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주인에게 잘 보이려 하는 이들은 일에서 게으르기 마련이죠. 오래 둬서 좋을 게 없습니다. 지금껏 저는 도대체 뭘 하고 있던 겁니까? 진즉 처리하지 않고.”
“아니……. 그저 아침 인사였을 뿐이에요. 보통 다들 그 정도는 하고 살아요. 너무 확대해석하는 것 아니에요?”
“한 번 무너진 기강을 바로 세우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애초에 그런 일이 없게 하는 것이 옳은 선택입니다.”
“여긴 군대가 아니에요!”
나도 모르게 소리를 빽 질러버렸다. 팔뚝에도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이거 완전 예전 대화 반복 아냐.
뤼디거와의 대화에서 느껴지는 기시감에 내 말문이 턱 하고 막혔다.
‘아마 이대로 내가 계속해서 설득해도 그는 쉬이 납득하지 못하겠지…….’
최근 들어 그가 그래도 평범한 사람처럼 굴게 된 것은 어디까지나 세월의 흐름 덕이었다.
수많은 사건과 그로 인한 고찰.
아마 뤼디거 홀로 자신의 가치관을 몇 번이고 세우고 무너트리기를 반복한 결과였을 것이다.
그러니 그에게 우리 사이 있었던 추억을 알려준다 해서, 그 일로 그가 느꼈던 생각마저 깨닫게 해줄 수는 없었다.
그런 것들은 그저 말로써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솔직히 뤼디거가 그렇게 바뀌게 된 데에는 내가 프란츠에게 납치도 당하고 별의별 쇼를 한 것도 영향이 없진 않겠지…….’
만약 뤼디거가 기억을 되찾지 못한다면 그를 바꾸게 할 만한 이벤트가 필요하다.
한마디로 뤼디거를 다시 개선하기 위해서는 암살자 및 납치 정도 급이 되는 이벤트가 필요하다는 말이었다.
예전에 한 번 해본 일이라서 쉽게 할 수 있다는 건 과욕이다.
그런 짓을 두 번은 못 한다. 암, 그렇고말고.
‘역시 기억을 되찾게 해야겠어. 한시라도 빨리.’
* * *
나는 바로 뤼디거를 데리고 수도로 가기로 했다.
의사는 하루 사이에 말을 바꾼 내 태도에 당황했지만, 굳이 그를 설득할 필요는 없었다.
그럴 정신도 아니었고.
나는 루카와 다른 이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뤼디거는 내 옆에 얌전히 앉아 있었다.
루카가 물었다.
“그래서, 수도로 가겠다고?”
“아무래도.”
“선왕이 알면 장난 아닐 텐데.”
“그 정도 귀찮음은 감수하기로 했어.”
“선왕보다 지금 삼촌이 더 귀찮구나.”
“…….”
루카의 말을 부정하기가 힘들었다.
나는 대답하는 대신 뤼디거의 눈치를 살폈다. 혹시나 뤼디거의 기분이 상했을까 신경 쓰였다.
다행히도 뤼디거는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속임수였다. 내가 작게 안도한 사이, 뤼디거는 태연자약한 태도로 내 허점을 찔렀다.
“제가 귀찮습니까?”
“아뇨. 그게 아니라…….”
“제가 귀찮지는 않지만, 제가 벌이는 일들이 당신을 귀찮게 합니까?”
“…….”
뤼디거는 생각보다 집요하게 물었다.
예전이었다면
‘아, 유디트 씨가 날 귀찮아하는구나. 적당히 나대야지’
하고 말 일이었지만, 지금은 내가 어떤 점에서 귀찮음을 느끼는지 파악해서 개선하고자 하는 필사적임이 느껴졌다.
하여튼 루카! 괜한 말을 해서는!
나는 루카를 흘겨보았다. 이 상황에 불을 붙인 루카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고 말 뿐이었다.
나는 뤼디거를 다독였다.
“걱정될 뿐이에요. 이 상태가 오래될수록 예전 상황으로 돌아가기 어려워질지도 모르니까요.”
뤼디거는 쉬이 납득하지 못한 것 같았지만, 반박하지는 않았다.
가까스로 상황을 무마한 나는 우리 집에 온 두 손님에게 사과를 건넸다.
“하여튼……. 이렇게 돼서 미안해요, 해터 부인, 이사벨라.”
“아뇨. 저희 애들이랑 놀아주다 생긴 사고인걸요. 오히려 저희가 더 죄송하죠.”
“저는 뤼디거 씨와 수도에 가지만……. 두 분은 릴라니벨에서 좀 더 쉬다 가세요.”
“하지만 주인이신 부인이 안 계신데…….”
“초대해 놓고 자리를 비우는 제 탓이지요. 그냥 별장을 빌렸다고 생각하세요.”
나는 가볍게 답했다. 내가 자리를 비워도 하녀장인 로라가 잘 접대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기에 내린 결정이었다.
그때, 루카가 말했다.
“그럼 나도 준비할게.”
“뭘?”
“수도 갈 준비.”
“네가 왜?”
“왜라니?”
루카는 진심으로 의아해했다. 나는 당황하여 손을 내저었다.
“너까지 갈 필요는 없어.”
“날 떼어놓고 갔다가 또 어디서 무슨 사고를 치려고. 됐어. 내가 같이 가는 게 속 편해.”
“난 네가 가는 게 더 불안하거든……? 너 또 선왕하고 무슨 작당을 한다거나 할 거 아니지?”
“뭔 소리야? 내가 선왕하고 왜?”
“너 선왕하고 친하잖아.”
“내가? 무슨 헛소리야.”
루카는 코웃음을 쳤다. 말도 안 된다는 듯한 태도에 나는 두 눈만 껌뻑였다.
루카는 뤼디거를 향해 턱 끝을 까닥였다.
“삼촌 상태가 멀쩡하면 모르겠는데 저런 정신 불안정 상태여서야 믿고 맡길 수 없지.”
“이제 열세 살 꼬마인 네가 함께 가서 뭘 어떻게 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지.”
“뭐?”
루카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받아친 뤼디거의 반박에 루카의 눈썹이 치켜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