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try changing the genre RAW novel - Chapter 17
장르를 바꿔보도록 하겠습니다 17화
승무원은 뤼디거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물었다.
“대령님. 저녁 식사는 몇 시쯤 준비할까요?”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유디트 씨는 역시 무리겠지요.”
“아무래도요.”
“그래도 수프 정도는 드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체해서 입맛이 없긴 하지만 그래도 다들 식사하는데 나만 가만히 있긴 좀 그렇고…….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그렇게 하는 거로.”
“저녁 지금 준비해 주게. 숙녀분께는 수프만.”
명령을 내리는 사이에도, 뤼디거는 계속해서 내 손을 주물렀다. 당연지사 시선 또한 내 손에 고정된 채였다.
그는 승무원이 객실을 나설 때까지 끝내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상대를 시야 밖으로 흘려 넘겨 배제하는 스킬이 일품이었다.
명령을 내리는 게 자연스럽다고 해야 할지, 타인에게 무관심 하다고 해야 할지……
귀족들은 다 이런가?
뤼디거가 타인을 그리 대할 때마다 나는 어색함에 어깨를 움츠러트렸다.
그녀의 손을 주물러주는 남자와 상대에게 고압적으로 명령하는 남자가 같은 인물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승무원도, 가게의 직원들도 뤼디거가 그리 대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굴었다.
‘하긴, 신분은 공작가야, 사회적 지위는 대령이야. 존대를 할 일보다 들을 일이 훨씬 많겠지.’
역시 계급제 사회는 영 적응이 안 된다니까.
뤼디거가 나한테 친절하게 대해줬다 해서 내가 귀족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건 그저 내가 루카 이모라서 해주는 배려였다.
한마디로 저들과 나의 계급은 차이가 없는데, 그저 뤼디거의 호의로 잠시 이쪽 세상에 발을 담그고 있을 뿐인 거다.
‘너무 이쪽에 익숙해지면 곤란해지겠는걸.’
주어지는 친절에 괜히 나대지 말고 분수를 알자. 나중에 실수라도 하면 곤란하니까.
나는 다짐하듯 반복해서 되뇌었다.
물론, 그렇다 해서 손을 꾹꾹 눌러주는 뤼디거의 손길마저 거부할 생각은 아니었다. 나는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손길이 기분 좋았다.
* * *
오래지 않아 웨건 가득 요리 접시가 실려 왔다. 고소한 풍미가 코끝을 간질였지만, 영 식욕이 동하질 않았다.
나는 느릿하게 몸을 일으켰다.
먼저 식탁에 가 있던 뤼디거가 내 의자를 빼주기 위해 기다리는 사이, 승무원은 웨건 아랫단에 있는 요리를 내기 위해 허리를 숙였다.
그때 내 곁에 있던 루카가 돌연 멈칫하더니 내 치맛단을 잡아챘다.
“왜, 루카?”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루카를 돌아보았다. 루카는 답하지 않은 채 승무원을 노려보고 있었다.
설마?
짧은 찰나에 불현듯 든 생각에 나는 승무원을 바라보았다.
때마침 승무원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의 손에는 요리 대신 산탄총이 들려 있었다.
총구와 마주친 순간, 내 몸이 저절로 얼어붙었다.
뭐, 뭐야. 암살이 오늘이었어?
암살자를 사로잡는다느니 어째야 한다느니 하는 생각은 머릿속에서 새하얗게 날아간 지 오래였다.
건방 떨었던 것이 우습게도 나는 꿈쩍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주춤한 사이 총구가 불을 뿜었다.
투다다다다다다!
연이어 쏟아지는 파열음.
다행이라 할지, 총구가 향한 곳은 내 쪽이 아니었다.
자신을 향한 총구를 바로 눈치챈 뤼디거는 테이블을 엄폐물로 이용해 바로 몸을 피했다.
커다란 덩치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재빠른 몸짓이었다.
그러고는 능숙한 손길로 허리춤에서 피스톨을 꺼내 승무원을 쏘았다.
탕, 탕!
“크윽!”
총탄이 승무원으로 가장한 암살자의 팔을 스치고 가며 피를 흩뿌렸다. 암살자 또한 재빨리 웨건 뒤에 몸을 숨기고 뤼디거와 대치했다.
나 또한 가까스로 소파 뒤로 몸을 숨겼다.
그 상황에서도 용케 루카를 챙겼다. 나는 루카를 품에 끌어안은 채, 소파 뒤에서 숨을 몰아쉬었다.
산탄총의 위력이 어느 정도지? 영화 속에서는 소파 정도는 잘도 뚫고 지나가던데.
‘아니야. 별일 없을 거야. 원작에서도 별일 없었잖아. 침착하자. 침착하자…….’
나는 심호흡을 했다. 루카를 끌어안은 손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지만, 그래도 머리는 아까보다 훨씬 차분해졌다.
나는 흘끗 소파 옆으로 상황을 곁눈질했다.
혹여나 이쪽으로 총구를 돌리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암살자는 현재 뤼디거에게만 집중하고 있었다.
우선 뤼디거를 해치우고 나면, 나와 루카를 죽이는 건 손쉬운 일이라고 생각하는 걸 수도 있었다.
이다음에 어떻게 되더라?
나는 원작의 내용과 내가 해야 할 일을 떠올리며 심호흡을 했다.
상대는 산탄총인 반면, 뤼디거는 리볼버였다. 누가 봐도 화력 면에서 불리했지만, 뤼디거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재주가 있는 사내였다.
이 시대의 산탄총의 수준이란 조악한 것이었다.
금방 화력을 잃은 암살자는 이내 총을 버리고 칼로 응대하지만, 뤼디거에게는 역부족이었다.
암살자는 그대로 도망치게 되고, 그를 추격한 뤼디거의 총에 맞아 결국 유명을 달리하게 된다.
어떻게든 암살자와 프란츠 사이의 관계를 밝혀야 하는 만큼 그를 죽여서는 안 된다.
하지만 코앞에서 총알이 오가는 걸 보니, 도무지 암살자를 생포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니야. 할 수 있어.’
나는 스스로를 세뇌하듯 중얼거렸다.
실제로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바로 암살자가 도주할 때를 노리는 것이다.
원작에서는 뤼디거가 정확히 암살자의 머리를 저격하지만, 그 대신 다리를 저격하게만 하면 일이 손쉽게 풀린다.
내가 이런저런 상황을 상정하며 머리를 굴리는 사이, 슬슬 총격전이 소강되고 있었다.
이 세계의 화력전이란 대개 오래가지 못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화력전의 끝은 곧 날붙이 싸움으로 이어진다.
간헐적으로 줄어든 총성 속에서 뤼디거가 이를 악물고 외쳤다.
“유디트 씨, 루카와 함께 피하십시오!”
그제야 지금 나 혼자만이 아니라, 루카도 함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루카는 소파 너머로 목을 빼고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혹시라도 루카가 엉뚱한 짓을 할까 걱정되었던 나는 루카를 애써 잡아 내리누르며 말했다.
“루카! 위험해!”
“이모야말로 위험하니까 꼼짝 말고 가만있어.”
아니, 누가 할 소릴?
얼마나 어이가 없었는지, 루카를 잡고 있던 손에 나도 모르게 힘이 빠졌다.
그리고 루카는 틈을 놓치지 않고, 바로 내 손을 뿌리치고 앞으로 튕겨 나갔다.
“앗, 루카!”
나는 루카를 잡으려 했지만, 내 손끝은 루카의 옷자락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튀어나간 루카는 그대로 암살자에게로 달려들었다.
암살자는 루카를 향해 총을 철컥거렸지만, 때마침 총탄이 다 떨어져 버렸다.
루카는 암살자를 향해 반짝이는 무언가를 휘둘렀다. 뭔가 하고 봤더니 식사용 커틀러리 나이프였다.
‘쟨 저걸 또 언제 빼돌린 거야?’
어처구니가 없었던 나는 입을 딱 벌렸다.
암살자 또한 허수아비는 아닌지, 바로 루카에게 칼을 휘둘렀다.
물론 루카는 잽싸게 피했다.
루카가 저렇게까지 재빨리 움직일 수 있는지 미처 알지 못했던 나는 지금 이 상황이 얼떨떨할 뿐이었다.
언뜻 보기엔 루카가 암살자를 거의 비등비등하게 상대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때 딱 뤼디거가 암살자의 다리를 맞추면 좋겠지만, 루카가 있어 제대로 총을 겨누질 못하는 모양이었다.
루카와 한참을 엎치락뒤치락하던 암살자가 이를 악물었다.
“이 빌어먹을 꼬맹이가……!”
그러고는 바로 루카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루카는 가까스로 막아냈다. 하지만 고작 열 살 어린아이가 커틀러리 나이프로 성인의 힘을 완전히 받아내는 것은 무리였다.
그대로 루카의 몸이 붕 떴다.
그리고 바람에 휩쓸린 낙엽처럼 힘없이 나동그라졌다.
“루카!”
나는 다급하게 루카에게 달려갔다.
루카의 잔뜩 일그러진 얼굴이 고통스러운 신음을 색색 뱉어냈다.
“그러게 왜 끼어들어서……!”
걱정 어린 질책이 절로 나왔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끼어든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는 사이, 암살자가 우리를 향해 다가왔다. 바로 코앞에 들이닥친 암살자의 모습에 내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암살자는 그대로 칼을 치켜들었다.
나는 오른팔로 루카를 꼭 끌어안은 채, 왼팔을 머리 위로 치켜 들었다.
그 팔로 칼을 막을 생각은 아니었다. 그저 날붙이 앞에 머리를 감싸려는 본능적인 행동이었을 뿐.
그런 내 머리 위로 암살자의 칼날이 단두대처럼 내려왔다. 마치 내 팔을 끊어낼 것처럼.
탕!
때마침 뤼디거가 암살자의 팔을 향해 총을 쐈다.
그 덕에 암살자의 칼은 내 팔을 스치는 정도에서 빗겨났다.
날붙이가 지나간 자리에 불에 타는 듯한 화끈함이 번졌다. 축축한 것이 옷을 점점 물들이는 느낌.
“아윽…….”
구급상자에 파상풍약은 있으려나.
나는 그런 시답잖은 생각이나 하며 이를 악문 채 비명을 삼켰다. 그래도 생각보다 견딜 만하다.
되레 해쓱해진 채 버럭 소리를 지른 것은 루카였다.
“이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