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try changing the genre RAW novel - Chapter 179
장르를 바꿔보도록 하겠습니다 특별 외전 1화
특별 외전 1. 3년 후, 빈터발트
덜그럭거리는 마차에 계속해서 앉아 있으니 좀이 쑤셨다. 나는 로라의 옆에 있는 맞은편 자리를 향해 체통 없이 다리를 쭉 뻗었다.
그런 나에게 익숙해진 로라는 미끄러질 듯 아슬아슬하게 걸쳐진 발뒤꿈치를 잡아 제대로 좌석 위로 올려주었다. 발을 꽉 최는 구두를 벗겨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 이제 좀 살겠다.”
4개월마다 거주지를 옮기는 일도 익숙해지니 꽤 할 만했다. 정확히는 몸이 고됨에 적응했다는 것에 가까웠다. 나에게 있어 거주지 이동은 아침 훈련 같은 존재였다.
로라가 덧붙이기를, 귀족들 또한 대부분 그런 식으로 각지에 별채를 두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이동한다 했다. 봄부터 초여름은 수도에서 사교 활동, 여름부터 가을은 수렵을 하거나 바캉스, 겨울이 되고 나서야 고향으로 돌아온다고.
“나와 별 차이도 없네. 나 굉장히 귀족다운 일상을 보내고 있던 거였구나.”
“큰 차이가 있죠. 다른 귀족들은 자기 좋아서 자율적으로 그러는 거지만, 마님은 강제잖아요.”
“그게 참 신기하단 말이야. 나야 어쩔 수 없으니까 상황에 몸을 맞춘다지만, 다들 자발적으로 그러고 산다니…….”
“뭐, 다들 그러는 건 아니에요. 빈터발트가 같은 예도 있으니까요. 공작님도, 마님도 두 분 모두 수도에서 큰 업무를 보실 때 말고는 빈터발트에서 꼼짝도 안 하시잖아요.”
“그건 그래. 어지간한 일은 뤼디거 씨에게 맡기시니까.”
“그게 바로 장성한 자식의 쓸모죠.”
당사자인 뤼디거는 못 견디게 싫어하는 듯하지만…….
이번에 뤼디거 먼저 빈터발트로 향한 일도 그러했다.
막시밀리안이 평소보다 일찍 빈터발트로 오라 뤼디거를 호출하였는데, 어찌나 가기 싫어하던지. 고작 몇 주 떨어져 있는 건데도 가기 싫다 떼를 썼다.
하지만 안 갈 수도 없었다.
몇 달 전 뤼디거가 내가 던진 공을 맞고 잠시 기억상실에 걸렸던 일을 뒤늦게 알게 된 막시밀리안이 버럭 화를 내었기 때문이다. 전보로 전해지는 그 노호성이란……. 자기도 모르는 새 자식에게 그런 일이 있었다니 화낼 만도 했지만, 상대가 ‘그’ 막시밀리안이다 보니 어색한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어쨌든, 애초에 미리 전하지 않은 뤼디거 잘못이었다…….
아니다. 뤼디거가 저런 인간이라는 걸 진즉 알고 있던 내가 미리미리 연락을 넣었어야만 했는데.
결국 내 업보였다.
그 당시 뤼디거를 달래 빈터발트로 보내느라 얼마나 힘들었는 지를 떠올리니 눈물이 찔끔 났다.
학교 가기 싫다 버티는 아이를 등교시키는 엄마의 심정이 이럴까?
정작 내가 그런 감정을 느껴야 할 장본인인 루카는 학교도 척척 준비물도 척척, 등교하기 전에 내가 켜둔 가스 불까지 신경 쓸 만한 아이로 자라났는데 말이다. 이번에도 안 가겠다며 매달리는 뤼디거를 억지로 빈터발트로 데려간 게 루카였다.
“아무래도 삼촌 혼자 보냈다가는 패륜을 저지르고 올 것 같은 인상이니까, 내가 감시하고 있을게.”
솔직히 루카의 말에 나 또한 동의했다. 안 그래도 뤼디거는 과거 아버지 처리 운운한 전적이 있었으니까.
그때의 일을 회상한 나는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나와 떨어지기 싫어하면서도 추운 빈터발트가 내가 좋아하는 운동하기 좋은 환경은 아니라며 나를 데려가지 않으려는 점은 참 기특했다.
갑갑한 내 한숨을 어떻게 받아들인 건지, 로라가 슬쩍 눈치를 보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뤼디거 씨에게 공작위를 물려주고 나서는 여기저기 놀러 다니실 모양인 것 같던데요. 공작님께서 최근 럼가트는 물론이거니와 보아통을 포함한 인근 왕국의 휴양지 땅에 관심을 가지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정보통 로라의 말이라면 꽤나 신빙성이 있었다. 나는 마차 소파 등받이에 깊숙이 몸을 기대며 따듯한 태양과 반짝이는 모래 같은 것을 떠올렸다.
“휴양지도 좋지……. 솔직히 빈터발트는 지나치게 추운 감이 있으니까.”
“맞아요. 저도 빈터발트 사람이라서 추위에 내성이 꽤나 있다곤 생각하지만, 빈터발트에 다시 올 때마다 이 추위가 새롭다구요. 확실히 익숙해질 추위는 아니에요.”
“공작님께서 휴양지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신다니 아랫사람 된 도리로서 기뻐할 일이긴 하다만, 공작위를 물려주는 일에 대해 뤼디거 씨와 합의가 되었는지 모르겠네…….”
나는 연거푸 한숨을 내쉬었다.
뤼디거는 최대한 공작위 받는 걸 미루고 싶어 했고, 막시밀리 안은 반대였다. 두 부자의 대립이 첨예해진 지도 벌써 몇 년이었다.
그러던 상황에서 뤼디거가 기억을 잃었다니, 하늘이 무너져도 놀라지 않을 막시밀리안이라 해도 기겁하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로라와 수다를 떠는 사이, 역에서부터 달려온 마차는 어느새 빈터발트에 도착해 있었다.
로라가 먼저 마차에서 내리고, 내가 그 뒤를 이었다.
익숙한 빈터발트의 찬 공기가 나를 맞았다. 귀를 털로 꽁꽁 싸맨 덕인지 귀가 에일 것 같은 추위에도 끄떡없었으나, 뺨에 닿아오는 찬 공기에 얼굴이 불그스름해지는 것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뒤늦게 내가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은 뤼디거가 외투도 걸치지 않은 채 헐레벌떡 저택에서 뛰쳐나왔다.
“유디트 씨!”
뤼디거는 그대로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나는 기겁을 하며 내 목도리를 풀어 뤼디거에게 감아 주려 하였으나, 그는 그런 내 손을 꽉 붙든 채 믿기지 않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 어떻게……. 오시려면 아직 며칠 더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냥 일찍 왔어요.”
뤼디거야 날 생각해서 두고 간 것이었을 테지만, 뤼디거도 루카도 없으니 생각보다 저택이 적막했다. 혼자 집도 못 보는 인간이 된 것 같아 조금 부끄러웠던 나는 뤼디거의 손에 붙들린 채 작게 말했다.
“당신이 보고 싶었거든요.”
그런 내 대답이 기꺼운지, 뤼디거의 얼굴이 감격으로 타올랐다. 곧이라도 입을 맞출 분위기였다.
하지만 나를 언제까지 이 추운 겨울바람 사이에 둘 순 없다고 생각했는지, 뤼디거는 날 제 넓은 가슴으로 끌어당기며 저택으로 발을 옮겼다. 내 머리 위에서 뤼디거의 안타까운 탄식이 들려왔다.
“그러면 미리 전보를 치시지 그러셨습니까. 그랬더라면 제가 역까지 마중 나갔을 텐데.”
“그러지 말라고 그냥 온 거예요.”
초행길도 아니고, 어차피 오면 만나게 될 텐데. 굳이 오라 가라 하여 시간을 뺏고 싶지 않았다.
그런 내 결정이 마뜩지 않은지 뤼디거의 입술 끝이 아래로 내려갔다. 나는 뤼디거의 허리에 슬그머니 팔을 둘렀고, 그와 동시에 뤼디거의 목소리에 다시 활기가 돌았다.
“여행은, 불편한 점은 없었습니까?”
“전혀요.”
기차에서 내리기가 무섭게 차장이 마차까지 잡아줘서 아주 편하게 왔다.
그렇게 뤼디거와 내가 착 달라 붙어 저택으로 향할 때, 한발 늦게 내 소식을 듣고 마중 나온 루카가 그 꼴을 보며 혀를 찼다.
“아주 한 몸이네, 한 몸이야.”
“잘 있었어, 루카?”
“나야 항상 잘 있지. 문제가 있다면 지금 삼촌 꼬라지 정도? 아니, 외투도 안 걸치고 뛰쳐나가는 게 어디 있어? 삼촌이 개야?”
루카는 성을 내며 뤼디거에게 외투를 집어 던졌다. 말은 여전히 되바라지게 하지만, 그래도 삼촌이라고 외투를 챙겨와 준 모양이었다.
뤼디거는 외투를 받기가 무섭게 내 어깨에 둘러주었다.
“뤼디거 씨 입으세요.”
“전 안 춥습니다. 빈터발트 사람은 추위를 타지 않습니다.”
“그런 게 어디 있어요. 로라는 빈터발트로 돌아올 때마다 새롭 게 춥다던데.”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뤼디거의 눈이 로라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그는 기가 찬 듯 코웃음 치며 덧붙였다.
“그건 로라가 진짜 빈터발트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니, 도련님. 저 빈터발트에서 태어났거든요? 저희 집안 3대를 거슬러 확인해 봐도 전부 빈터발트에서 태어나서 빈터발트에서 죽은 완벽한 빈터발트 사람이거든요?”
로라가 억울한 듯 씩씩댔다. 예전의 뤼디거와는 말 한마디 섞는 것도 몸서리치던 로라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이 자리에 있는 것은 빈터발트의 순수를 증명하는 빈터발트의 투사였다.
그러나 뤼디거는 더욱 뻔뻔스레 대꾸할 뿐이었다.
“진짜 빈터발트는 추위를 안 탑니다. 뭣하면 저희 아버지에게 한번 물어보십시오. 아버지도 저와 같은 말을 할 겁니다.”
“그런 거라면 아마 얼굴 가죽이 두꺼워서 추위를 안 타는 게 아닐까. 고집은 불도 안 붙을 쇠심줄이고. 어느 쪽이든 좋으니 얼른 외투나 입어. 이모도 아마 차가워진 삼촌은 끌어안고 싶지 않을걸.”
루카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뤼디거가 외투에 팔을 끼워 넣었다. 어찌나 잽싼지, 루카와 로라는 기가 차 말을 잇지 못했다.
* * *
“넌 왜 말도 없이 오니?”
소피아는 뤼디거와 똑같은 말을 다른 화법으로 구사했다. 얼핏 보면 냉랭하였으나, 그녀와 얼굴을 마주한 지도 시간이 꽤 많이 흘렀다. 저런 퉁명스러움은 다 걱정과 반가움 때문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네 방에 장작도 아직 안 넣었는데……. 방이 따듯해지려면 좀 멀었으니, 일단은 뤼디거 방에 가 있으렴.”
“네, 어머니.”
“저녁 메뉴를 바꿔야겠구나. 너는 여독이 쌓였을 테니 일단 가서 쉬고 있으렴.”
사람을 붙들어놓고 그리 구구절절 말하는 성미가 아닌 만큼, 소피아와의 면담은 일찍 끝났다. 당연지사 막시밀리안은 패스였다.
기차에 이어 마차까지. 익숙해졌다고는 하지만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뤼디거의 방으로 향한 나는 끔찍한 신음을 내뱉으며 그의 소파에 길게 몸을 뉘었다.
“으아아아아.”
“고생 많으셨습니다.”
뤼디거가 내 앞에 무릎을 꿇더니 이내 내 신발에 이어 스타킹까지 벗기고는, 따듯하게 데운 수건으로 종아리부터 발까지 마사지해 주었다.
꿈쩍도 하지 않은 채 뤼디거의 마사지를 받고 있으니 호사가 따로 없었다.
가만히 받고만 있자니 인간적으로 마음이 불편하기는 했지만, 몸은 너무나 편했다……. 나는 잠시 흐린 눈으로 양심의 가책을 접어두었다.
나는 눈을 내리감은 채 뤼디거의 마사지를 즐겼고, 뤼디거는 내 다리를 꾹꾹 누르며 나와 떨어져 있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주절주절 늘어놓았다.
“하여간 아버지도 걱정이 유난하십니다. 당신과 떨어져 있는 동안 제가 얼마나 마음고생했는지…….”
“아버님도 당신을 걱정하셔서 그런 거지요.”
“그런 분이 아들을 보자마자 지적 능력에 별다른 문제가 없는지 확인해 봐야겠다고 하셨군요.”
막시밀리안도 정말 어지간했다. 정 없이 말하는 데 따를 자가 없었다.